출판사서평
조선이라는새로운왕조가탄생한뒤첫세기를지나면서맞은성종·연산군·중종의치세75년은『경국대전』이완성되는등국가의주요제도가정비된기간이기도했지만한편으로는조선최초의사?화,조선최초의반정등다양한정치적갈등과변화가일어난격동의기간이기도했다.2007년에출간된『사화와반정의시대』의내용을수정하고보완해다시출간한이책은,성종·연산군·중종대에전개된정치적역정과의미를국왕·대신·삼사(三司)의관계에초점을맞추어분석한다.이를통해조선의정치는국왕·대신·삼사라는주요한세정치...
조선이라는새로운왕조가탄생한뒤첫세기를지나면서맞은성종·연산군·중종의치세75년은『경국대전』이완성되는등국가의주요제도가정비된기간이기도했지만한편으로는조선최초의사화,조선최초의반정등다양한정치적갈등과변화가일어난격동의기간이기도했다.2007년에출간된『사화와반정의시대』의내용을수정하고보완해다시출간한이책은,성종·연산군·중종대에전개된정치적역정과의미를국왕·대신·삼사(三司)의관계에초점을맞추어분석한다.이를통해조선의정치는국왕·대신·삼사라는주요한세정치세력이시기와국면에따라협력·대립관계를바꿔가면서운영되었으며,그결과어느한정치세력의독주보다는서로의합의와균형이중시되는형태를갖게되었음을규명한다.
▶출판사서평
조선최초의사화와반정의시대,
그뜨거운정치적역정을새롭게읽다!
시대와지역을넘어중앙정치에는평화와안정보다는긴장과갈등이우세하다.조선이건국된뒤첫1백년을통과한시간에걸쳐있는성종·연산군·중종의3대75년은그런일반적과정에서도특히흥미롭고중요한사건이전개된기간이었다.그사건은‘조선최초의사화와반정’이다.왕조가탄생한지거의1세기만인성종중반『경국대전』이마무리되어주요제도가완비됨으로써조선의앞길은평탄하게보였다.그러나그런예상은,13년뒤최초의사화가일어나고다시20년동안두번의사화와한번의반정이더발생하면서크게빗나갔다.
제도가완비되었지만심각한혼란과갈등이이어진까닭은무엇인가?이책은‘삼사’를그대답의핵심어로제시한다.이기간의뜨거운정치적역정은삼사라는중요한제도가현실에뿌리내리는성장통이었다.아울러그런과정을통과한신하들은‘훈구’와‘사림’이라는고정된이분적구도가아니라‘대신’과‘삼사’라는직책에따라활동한인물들이었다.이시기다양한실험과모색을거쳐이뤄진국왕·대신·삼사의‘정치적정립구도(鼎立構圖)’는그뒤조선이멸망할때까지중앙정치를움직이는핵심적체제로기능했다.
왕권의안정,그리고삼사의정립
예종이재위14개월만에갑자기붕어하자,성종은왕의적장자가아님에도13세의나이로갑자기조선의최고권력자가되었다.그러나그결과성종은성년이된재위7년까지조선최초의수렴청정과훈구대신에의한원상제라는변형된왕정을경험해야했다.그동안성종이훈구대신의지나친권력팽창에문제의식을갖게된것은자연스런일이었다.
왕권의강화와안정을모색한성종은,훈구대신의지나친권력팽창을견제하고자치세중반부터대간을적극후원했고,그에힘입어대간은활발한언론활동을전개하면서위상을크게높였다.한편으로성종은홍문관을언관화함으로써언론기관내부의견제와균형을유도했다.그결과성종초까지대신에게기울어진중앙정치권력은이후국왕이상위에군림하면서대신과삼사가견제와균형을이루는안정된모습을갖추게되었다.하지만폭력을수반하지않는,어쩌면이상적인유교정치를수행하고자했던성종의노력은대간이충분히제어되지않음으로써만족스럽게구현되지않았다.
무오사화와갑자사화,그이면과본질
성종의적장자로열번째국왕에올라12년을재위한연산군은,즉위당시부왕의유산이었던삼사의지나친언론활동은매우불만스러웠다.성종도고민했듯,삼사의가장큰문제점은지엽적사안들을물고늘어져국왕과대신의정당한권한을제약하는것이었다.왕과대신이보기에그것은윗사람을능멸하는‘능상’이었다.왕권의자유로운행사에남다른의지를가진연산군에게이것은반드시해결해야할문제였으며,이를위해특별한해결책이필요하다는데에대신도공감했다.그결과연산군4년7월,조선최초의사화인무오사화가발생했다.김종직과그일파의숙청이라는무오사화의표면적인이유이면에는삼사의활동을제재하려는연산군의의지와대신세력의동의가내포되어있었다.사화의지속기간·처벌규모·수준등을분석했을때전면적인숙청이아닌상당히제한적으로이루어진,그래서폭정이아닌왕조국가에서는일반적으로볼수있는정치행위였다.그러나무오사화이후강력해진왕권을오용한연산군의일탈은대신과삼사를협력하게했으며,연산군스스로를고립시키는결과를초래했다.이러한정국을타개하고자연산군이주도한갑자사화는결국조선최초의반정과연산군의폐위로이어졌다.
새로운중흥을위한끝없는노력과한계
비록반정때중요한역할을하지못했고단지추대된국왕이었지만,중종은즉위후연산군때의정치적파탄을수습해왕권을회복하고국정을안정시키고자다양한방법을시도했다.기묘사림의등용과김안로일파를앞세운정국운영등은그런모색의대표적성과였다.하지만전체적으로중종은왕권을충분히행사하지못했다.집권초반의정국공신,삼사의변화를위해등용한기묘사림,사화를주도한일부대신,그리고권신김안로에이르기까지중종은대체로어떤집단에왕권의영향력을위임하거나정치적주도권을빼앗긴상태로치세를이어왔기때문이다.결국사평에서드러나듯중종의과단성의부족에서기인한인사정책의실패등은그로하여금어떤문제를적절한시점에서제어하거나수습하지못한채계속확대시키다가결국밀지와숙청이라는돌발적수단으로사태를종결하게했다.이처럼국정의핵심인인사정책에서충분한판단력과조정력을발휘하지못해왕권을제대로행사하지못한것은중종의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