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김저운 소설집)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김저운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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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저운 소설집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김저운의 소설이 사유하는 것은 이 말없음 내부의 소리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없음’이라는 표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갈 때 소설가는 오히려 표지를 들어내고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곳에서 소설가가 만나는 것은 소리 없는 자들의 소리들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 소리 없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소리를 내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자들의 소리가 그것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설가는 현실의 표층위로 드러나지 않고 가라앉은 자들의 서사를 외부로 복원한다.
저자

김저운

저자김저운은전북부안출생으로전주대학교국어교육과를졸업하고,삼십여년간중·고등학교에서국어를가르쳤다.1985년《한국수필》에수필,1989년《우리문학》에서소설로등단하였다.저서로는산문집『그대에게가는길엔언제나바람이불고』,소설집『두번결혼할법』(공저),휴먼르포집『오십미터안의사람들』등이있다.
<전북수필상><작가의눈작품상>등을수상하였다

목차

개는어떻게꿈꾸는가○7
청학동가는길○39
로그아웃○83
누가무화과나무꽃을보았나요○113
그들도몰랐던그들의진실○143
소도蘇塗의경계○169
연緣○207
거꾸로흐르는강○237
회문回文○269
해설|말없음의내부에서말하기|김대현○325
작가의말○341

출판사 서평

말없음의내부에서말하기

1.

그러나이세상엔드러난것보다은폐된것들이더많지않은가?은폐된것들,즉말없음표의진실을어떻게이해해야하나?굳이판단이라는걸해야만할까?「누가무화과나무꽃을보았나요」부분

어떤종류의말은반어의형태를가짐으로써오히려자신의실체를드러내는경우가종종있는데‘말없음’또한그런종류의것이다.‘말없음’이란표기는그곳에원시적으로‘말이없음’을뜻하지않는다.진정으로말이부재하는자리에는애초부터아무것도표시할필요가없는것이다.안전지대는언제나위험지대에서생성되는것과같은원리다.그러므로‘말없음’이란기호는그안에본디누군가의발화가자리하거나자리하려했지만모종의사유로그것이외부로은폐되고있다는신호에해당한다.다시말해‘말없음’이란,억지로만들어진침묵,무언가를말하려다제지된것들,본디‘있음’이있어야할자리에강제로자리잡은‘없음’을의미한다.
이런맥락에서‘말없음’은더이상안으로들어가사유할필요가없다는은밀한억압의기제로작동한다.‘말없음’의내부에자리한또다른‘말’들은담론의장을구성하는주도적인원리에의해이미무가치한것또는공표되지말아야할것으로평가받은것들이기때문이다.말사이의투쟁에서패배한그들의서사는‘말없음’의영역에서아무도알지못한채무화되어간다.
김저운의소설이사유하는것은이말없음내부의소리들이다.다른사람들이‘말없음’이라는표지앞에서걸음을멈추고뒤로돌아갈때소설가는오히려표지를들어내고그안으로깊숙이들어간다.그곳에서소설가가만나는것은소리없는자들의소리들이다.조금더정확히말하자.소리없는것이아니라끊임없이소리를내고있지만들리지않는자들의소리가그것이다.들리지않는소리에귀를기울이는소설가는현실의표층위로드러나지않고가라앉은자들의서사를외부로복원한다.

2.

「로그아웃」으로이야기를시작하자.소설에등장하는인물들은대화할수있는누군가를찾기위해매일저녁인터넷을헤맨다.일상의관계에서상처입은그들은현실의자신을은폐하기위해다른인격과배경을구비한다.상대에게자신이꾸민사실이드러날우려따위는하지않는다.애초에그들의진정한목적은“상대방에대한관심보다자신의말을하기위해상대를필요로하는것”이기때문이다.”

인혜는‘고니’라는인격으로‘권태’라는가명을쓴남자를만난다.‘고니’는결코자신의현실에대해이야기하지않는다.권태또한마찬가지다.그또한자신의인격을고니에게결코보여주지않는다.그래서고니와권태의대화는언제나현재형이다.그들의만남은연속된분광의형태가아니라선후가없는점과점으로이루어져있기때문이다.대부분시시껄렁한농담으로이루어진그들의발화는누적되지않는다.그들의관계에지나간과거와도래할미래는존재하지않는것이다.
그들은자신이누군가에게말을건네고누군가가그말을들어주고있다는착각을한다.하지만관계의종료와함께그들은깨닫게된다.지금껏그들이나눈것은대화가아니라무의미한혼잣말이었다는것을.가상의공간에서가상의인격이나눈그들의소리는네트워크라는가상의공간으로사라지며현실에서어떠한의미도가지지못한다.고니와권태의대화는고니가로그아웃한순간소멸한다.하루에도수없이명멸하는관계들사이에서재방송을보며키들거리는인혜는여전히자신의공간에서고립되어있다.
「그들도몰랐던그들의진실」에등장하는사내의고립또한인혜의고립과유사하다.한때이름을날렸지만이제는한물간음악가인사내는“내음악은팔십년대에서끝났어.내인생은구십년대에서차압당했고……”라는말을던지며자신의고독을해소하기위해과거의연인이었던그녀를찾는다.사내는그녀에게그간의사정을시시콜콜이야기한다.하지만그녀는건성으로듣기만할뿐자신의이야기를하지않는다.그녀는대화를통해이제는후회로남은그와의관계가복원되는것을원치않기때문이다.그와그녀의대화는고니와권태의대화처럼서로의내면에다가가지못하며허공으로비산한다.
이소설의가장흥미로운지점은그다음이다.언제까지나자신의말을들어주지않는그녀앞에서사내는정신적으로붕괴하기시작한다.사내는“나좀재워줘요.”라는아기의흉내를내며그녀앞에서모든것을놓아버린다.하지만그녀는여전히요지부동이다.어떤수를써도움직일수없을것같은결과앞에서그는모든것을포기하고그녀의곁을떠난다.기적이일어난것은그무렵이다.그녀는왜그런지모르게사내를받아들이기로결정한다.소설은이렇게무너지는자들을구원하는해피엔드로끝나는것으로보인다.
하지만독자의기대를배반하는결말은여기서부터시작이다.그토록애타게그녀를찾던사내가그녀의어깨를부여안고그녀와의유일한연결고리인전화기를남기고떠나버린것이다.소설은이지점에서어떤휴머니즘을완성한다.김저운식의휴머니즘이란이런것이다.진정한휴머니즘이란무너진사람의육신을끌어안는것이아니라무너진그의자존감을세워주는것이라는것을.
무수히많은관계를맺은것처럼보이지만사실은철저하게무화된관계속에서살아가는사람들의이야기는「개는어떻게꿈꾸는가」에서도나타난다.재산을자신이기르던개,모리에게물려주려는어머니의계획을저지하기위한아들의노력을다룬이소설에서아마도가장중요한언술은자신은사람을“식별한다기보다감각한다”는모리의진술일것이다.소설속에서모리는예전의화려함을잃어버린마미의모습에도현혹되지않는다.모리는언제나마미의본질을감각한다.하지만아들은다르다.자신에게닥쳐온상속위기를알려주는친구에게“법률가는무슨사무장주제에…….”라고타박하는이는그가감각하는사람이아니라식별하는사람이며사람의본질을주어가아닌수식어에방점을찍는사람이라는것을보여준다.그들이관계형성에실패하는이유또한여기에있다.이성이개입된식별은모든것을통째로받아들이는감각과달리필연적으로관계사이에위계를형성하기때문이다.그러므로모리를제외한등장인물은모두다른층위에서서서로와고립되어있다.오직모리만이모두를평등하게동일한평면에서감각한다.
그러므로이소설은오늘날위계로인해형해화된인간관계에대한유쾌한야유에해당한다.소설에서인간이가져야할덕목은개에게부여되어있으며개가가져야할것은인간에게있다.인간이꾸는꿈이곧개의꿈이고개의꿈이곧인간의꿈이다.우리모두는개와인간의시선이전복된시기에살고있는것이다.

3.

김저운의소설에서자주만날수있는인물유형은목격자들이다.사건의외부에서사건의내막을알고있는유일한인물인목격자는소설의서사를이끌어가는중요한역할을한다.흥미로운것은각각의목격자들의성격이작품에따라조금씩다르다는점에있다.잔혹한사건의기억으로부터도피하는목격자가있는가하면,사건에적극적으로개입하는목격자가있으며사건으로부터거리를둔채방관하는목격자도있다.
그중도피하는자를먼저읽도록한다.「소도의경계」에서오랜만에귀국한진이는고향친구들과여행을떠난다.겉으로드러난유쾌하고즐거운분위기와달리여행에참가한고향친구모두는한계상황에처해있는사람들이다.화숙은암투병중이며진태의회사는어렵다.민수는시인도농부도어느하나제대로되지못했다.윤정은자신의가정을신뢰하지만진태의추근거림이그리싫지만은않다.여행을즐기는과정에서진이는어린시절민수엄마의기억과함께그동안한번도기억하지못했던민수와잠지를맞댄야릇하면서도즐거운추억을기억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진이는옥주에게있었던끔찍한기억의핵심은떠올리지않는다.친구들또한마찬가지다.그들의사춘기를강타했던사건에대해풍문으로알고있는그들은옥주의이야기를“진이야.너무마음에담지마.용서하고잊어버려야너도편하잖아?”라며기억의저편으로묻어버리려한다.단지진태만이호기심의차원에서그날의사정에대해집요하게물을뿐이다.더이상그날의기억으로부터도피하는것이어렵다는것을깨달은진이는고해성사를하듯자신이기억하는그날의사건을이야기한다.자신은옥주가강간의피해자가되었다는것을목격했으며,옥주의아버지로부터사건의경위에대해말하는것을금지당했다는것을.그리고이후의사건진행은마을주민모두의묵계에의해수면으로가라앉고어떠한응보도없이마을은다시평온해진다.
주목할것은이러한과정에사건의피해자인옥주의의사는하나도반영되지않았다는점이다.진이에게이제그만스스로를용서하라는친구들의권유나.사건이잠잠해지도록침묵을권유하는과정또한마찬가지다.용서와화해의주체는옥주가아니다.진이가사건의기억을끝끝내놓지못하고“단지나만그들속에서부유하고있었다.”고느끼는이유는아마도이럴것이다.
반면「청학동가는길」의‘나’는진이와전혀다른성격을가진다.‘나’는자신의눈앞에서벌어지는부조리들을목격하는동시에사건에적극적으로개입한다.‘나’는학생들의내용이주가되어야할학교신문에자신의글을세편이나싣겠다는교장의‘몰상식’을반대하며,멀쩡히살아있는친일파후손의동상을세워사전선거운동을하겠다는것을반대한다.하지만그때마다돌아오는건“매사에부정적이시고편견이심”하다는‘나’에대한교장의인물평이다.흥미로운것은이러한인물평이자신의의견이거부당한것에악의를품은교장개인의독단만은아니라는점이다.부조리에대한‘나’의항의에도불구하고사건은언제나“겉으로드러나지않고침묵하는다수가기우는쪽으로일이진행”된다.그들은“나약하면서은밀했고,은밀하면서강했다.침묵은,스스로그것을아는까닭에언제나요지부동”인것이다.
거듭되는‘나’의개입에도부조리는결코개선되지않는다.성희롱의희생자가된차선생은자신하나가입을다물면끝나는일이었다며자책한다.옥주의희생으로마을이평화를찾은것과동일한구조인것이다.“후련함도아니고미련도아닌,어쩔수없다는데서오는서글픔같은”체념은이지점에서온다.
하지만결정적인파국은아직오지않았다.자신에게주어진원칙을지키며살아온‘나’의아들이음주운전으로사망사고를일으킨다.이는우리가익히알고있는‘공정한사회가설’을재인식시킨다.결국“혼자정직한척,올바른척하고,아무것도아닌걸가지고시비걸며법석을떨”며세상을바꾸고자했던‘나’의‘부적절한’태도는세상의규칙을알지못해그대가를치른것이다.
목격자가사건으로부터도피하거나개입하는것이결과에아무런차이가없다면남은것은방관하는일이다.「누가무화과나무꽃을보았나요」는그렇게마지막까지방관자로남은사람의이야기다.
어느날‘나’의주변에수상한사람이맴돌기시작한다.한눈에봐도미인으로보이는그녀는아무리봐도우연으로가장해엘리베이터,주차장,시장,목욕탕에서‘나’와마주친다.‘나’를궁금하게했던그녀의정체는곧밝혀진다.그녀는자신이고등학교선생으로있던시절가르쳤던제자명화다.
‘나’는명화의과거를생각한다.고교시절명화는선도부의소지품검사에서피임약을가지고있다가걸렸다.피임약의처분을묻는명화에게‘나’는“그걸왜나한테묻니?할머니가주신약이면먹고,아니면버리든가네가알아서하란말야.알겠어?”라며방관한다.조금심한처분이었다는생각이든‘나’는명화의집에방문하지만이미때는늦었다.‘나’의방문을계기로명화는가출하고피임의상대방으로추정되는오빠가자살한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명화는다시‘나’를찾아온다.이유는얼마후밝혀진다.고교시절과마찬가지로명화는누군가가파멸로향해가는자신을붙잡아주기를바라기때문이다.모두가명화를방관하는세상에서그나마오직‘나’만이명화를찾아본것이다.하지만명화의바람에도불구하고“나는그렇게명화에게방관자”로남는다.

4.

김저운의소설이가지는또하나의특징은먼길을떠난남성에대하여여성들이행하는기다림의서사이다.이를페넬로페들의서사라고부를수있을것이다.페넬로페의서사는길떠난오디세우스가겪는무용담이아니라그를기다리며고초를겪는여성들의이야기다.
「거꾸로흐르는강」은근현대사를거치는동안남성들이겪었던수난에비해그동안주의깊게다루어지지않았던우리여성들의수난사를다룬다.강희는아직자신의도움이필요한승구와함께치매기운이있는외할머니를모시고산다.강희의어머니는한국전쟁때에“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