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식사 (오늘 당신의 끼니에 안부를 묻는 8인 소설집)

마지막 식사 (오늘 당신의 끼니에 안부를 묻는 8인 소설집)

$13.00
Description
일가족이 먹는 밥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집
남도의 풍요로운 산물과 넉넉한 인심, 그리고 따뜻한 인정이 어우러진 『마지막 식사』는 어머니의 밥상 같은 작품집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이 상 위에는 생면부지 나그네라도 소매를 붙잡아 음식을 대접하는 남도의 정서가 함께 묻어 있다. 그런 따뜻한 인정과 배려는 신개발로 사라지게 된 마을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무연고자의 무덤에 음식상을 차려주는 마음씀씀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섭식장애에 걸린 소녀의 고통에 대한 연민, 대구탕, 돼지고기 들어간 청국장, 매실장아찌, 브리야니, 멀리 멕시코에서 먹는 김치찌개, 한 가족이 단 한 번도 다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없는 현실까지를 음식에 담아 지면으로 불러낸다. 화목하게 둘러앉아 일가족이 먹는 밥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집이다. - 김양호(소설가ㆍ숭의여자대학교 교수)
저자

이광재

1963년전북군산에서태어났다.전북대철학과를졸업했다.1989년무크지『녹두꽃』에단편「아버지와딸」로등단.소설집『아버지와딸』(1992)과장편소설『내가슴의청보리밭』(1993),『폭풍이지나간자리』(1994)등을냈고,전봉준평전『봉준이,온다』(2012)를냈다.제5회혼불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먹을만큼먹었어-이광재007
청국장을끓이다-정도상037
한가족따로밥먹기-장마리073
모니카,모니카-황보윤105
초대-차선우139
장마-김소윤167
4월이었을까-한지선191
마지막식사-김저운223

해설:먹는인간과혀끝의기억-이지은257

출판사 서평

■먹는인간과혀끝의기억
먹는인간
맛보다.이것은인간최초의감각적경험이아닐까.태초의인간은금단의열매를먹음으로써영생을반납한다.죽을운명에놓임으로써비로소인간이되었다고한다면,선악과(善惡果)를베어먹는행위야말로인간의탄생을알린사건일것이다.인간의생명은신의숨으로부터나온것이아니다.인간의역사는이브의혀로부터,거슬러올라가뱀의혀로부터시작되었다.
남자와여자는‘맛보다’를통해선악을알게되고,자신의몸을보게된다.인간사의시작부터먹고맛보는일은죽음으로열려있었으며,선악(善惡)에대한도덕판단,미추(美醜)에대한미적판단과직결되어있었던것이다.그러니아름다움을뜻하는‘美’라는글자가본디신에게바치는크고大살찐양羊에서유래했다는것도쉽게수긍이간다.여기엔맛이좋은것이보기에도좋다는고대인의인식이담겨있다.영어의‘taste’나우리말의‘맛’도사정이다르지않다.영어의‘taste’가‘맛’이라는의미외에‘취향’이라는뜻을가지고있듯,우리말‘맛’은본디‘멋’을포함하는의미로사용되었다고한다.한편,금욕적자기수양의첫단계는금식이다.미각은미적판단과결부되어있기도하지만곧바로‘쾌락’과‘도덕’으로연결되기도한다.
이처럼‘삶과죽음’,‘쾌락과금기’,‘선과악’은‘먹음’이라는가장원초적인행위를통해서인간사에스며든다.살아서는밥상,죽어서는제사상을받는인간을떠올려보라.생과사를잇는것은밥상이아니던가.산자를살게하는힘도,죽은자를기억하는예식도‘밥’에서비롯된다.관혼상제라는인생의통과의례마다빠지지않는것이음식이아닌가.어떤이는인생의가장아름다운한때를슈크림의달콤함으로기억할것이고(「먹을만큼먹었어」),어떤이는평생의그리움을메주뜨는일로풀지도모른다.(「청국장을끓이다」)또누군가에겐매실장아찌가인생의구원일것이며(「장마」),누군가에겐흔하디흔한김치찌개가귀여운복수의수단이되기도한다.(「초대」)그러니복잡하고미묘한모순덩어리인삶을탐구하려면무엇보다‘먹는인간’을그려야하지않을까.

계란프라이,매실장아찌,김치찌개:「모니카,모니카」,「장마」,「초대」
계란프라이,매실장아찌,김치찌개.벌써군침이돈다.귀하고값진음식이라그런것이아니다.누구의밥상에나있을법하지만,세상의밥상의수만큼이나다른맛을가질법한음식.김치찌개는모두의음식이지만,모두다각자나름의‘그’김치찌개맛을고집하는음식이다.우리는그런음식을매일먹고산다.소설에따르면,계란프라이는속죄의맛,매실장아찌는구원의맛,김치찌개는복수의맛이다.거창할것없다.살아가는동안우리모두는속죄와구원과복수를갈망하지않는가.바로그것.모두가가지고있지만모두다른사연을가진것.소설들은어느집에나있을법한밥상을각자의이야기로차려낸다.
「모니카,모니카」의아름다운모니카는섭식장애를앓고있다.그녀의도시락엔밥과계란프라이뿐이다.모니카는여고생어머니와바티칸에서갓돌아온젊은사제사이에서태어났다.모니카의어머니는딸에게금욕을강조한다.모니카는죄로태어난아이니까.죄갚음을위한금욕.모니카에게그것은‘미각’을희생하는일이다.한편,「장마」의‘나’의젊은엄마는전동거인과의사이에서나를낳고,새로운남자를맞았다.엄마와그녀의새남자는‘나’를학대했다.어른이된‘나’는어린시절의악몽과다시마주한다.떠났던남자가자신의딸을데려와눌러살게된것.거기다남자는‘나’와어린아이를학대한다.되풀이되는과거에서‘나’는무엇을할수있을까.어린아이의애처로운시선이어떤구원을요구하는지알면서도‘나’는모른체한다.몸만어른이된‘나’는아직도과거의학대받는아이에서벗어나지못했기때문이다.그러던‘나’가남자를제압하고,벽장속에가두고,아이에게밥을지어준다.그리고군침이도는시큼한매실장아찌를꺼낸다.길지않은시간,‘나’가유일하게누군가의사랑을받으며지냈던시간,그때먹었던매실장아찌다.‘나’에게매실장아찌는구원의맛이아닐까.

와드득씹히는매실이입안에퍼질때마다나는눈을꼭감았다.신맛이퍼질때의강렬한자극이싫으면서좋았다.어이구,지애비랑똑같네.할머니는혀를쩌쩌차면서웃었다.할머니가웃는일은흔치않았다.나는간혹그소리를듣고싶어서고집스럽게도매실장아찌를씹었다.(「장마」,171쪽)

이들소설에비한다면「초대」는경쾌하고발랄한복수극이다.‘나’는김치찌개를끓이는중이다.초대손님을맞기위하여.손님은다름아닌남편과그의내연녀.남편의직장을따라멕시코에온‘나’는한국인교포희린의도움을받는다.남편의직장에통역이필요하다고하자‘나’는망설임없이희린을추천했다.남편과희린은깊은관계가되고,‘나’는우연히남편의핸드폰을통해알게된다.그러나어찌해야할것인가.‘나’에겐지키고싶은가정이있고,아이가있고,부모의기대가있다.더불어남편이가져다주는안정된생활이있다.‘나’는‘적’을곁에두기로한다.곁에두고지켜보면서자신의가정을파괴하지않는선에서모른체하는것.‘나’에게복수는그저양념같은것이다.오늘‘나’는김치찌개에그녀의소변을좀섞었다.손님들은육수에감탄하면서잘도먹는다.

혼밥족과식구(食口):「한가족따로밥먹기」,「마지막식사」
흔히가족을식구라부른다.식구食口란문자그대로‘먹는입’,끼니를같이하는사람들을일컫는말이다.그런데요즘은식구라는말보다‘혼밥’이라는말이더자주들린다.때로신조어들은시대를비추는거울이되는데‘혼밥’이라는말이딱그렇다.우리시대는혼자끼니를해결하는사람들이살아가는세상,가족은있어도식구는없는세상이다.그러한세태를그린소설이장마리의「한가족따로밥먹기」다.소설은예순네가족의식사를별다른설명도없이조용히관찰한다.
그들의릴레이아침식사를잠깐엿보자면이렇다.가장먼저할아버지.당신용돈은당신손으로벌겠다고새벽녘경비실로출근한다.단촐한아침식사는밥한공기와김치와보리차만으로끝.이어서가장성진의출근.오늘아침따라부부금슬이좋았던바람에식사는입맛만다시며생략.세번째예진도식사대신긴머리손질에시간을쏟느라생략.이모예진의요란한출근에잠이깬현서가주방을기웃거릴때엔싱크대에할아버지의식사흔적만이남아있다.그러나그녀도냄새나는식빵,바닥이드러난딸기잼에짜증을내며라면을먹느라10분늦게출근한다.이제이집의안주인예순의차례다.예순은돼지고기를넣은김치찌개를끓여놓고감자탕집으로출근.그러나마지막차례경서는김치찌개냄새의유혹에도불구,늦잠을원망하며식사를거른채등교한다.이렇게경서까지집을나서면인기척만으로확인되는가족의아침식사가완성된다.소설은여섯명가족의삼시세끼그러니까열여덟번의식사를그린다.온갖궂은일을하느라라면도제대로못먹는경비할아버지,선배들뒤치다꺼리하느라남은반찬으로점심을때우는사회초년생,체력이예전같지않은중년가장의삼겹살구이,식당아주머니들의하루치고달픔이배어있는소주한잔.소설이그려내는열여덟번의끼니는하나쯤은나의것,또하나쯤은내아버지,동생의것일수밖에없는지극히평범한우리의삶그자체이다.
「한가족따로밥먹기」가가족은있으되식구는없는고된현대인들의일상이라면,「마지막식사」는죽은자에게올리는제사상에관한이야기다.소설의배경인함박리는추모공원을조성한다는등쌀에쇠퇴해버린마을이다.주민들이떠나도공원조성은쉽지않은데,까닭은주인을찾을수없는무덤때문이다.묘지기권이라는게있어묘주가나타나지않으면함부로건들수없단다.게다가마을엔동학농민군을묻은돌무덤까지있다.산사람은빠져나가고,죽은자들이권리를주장하는이마을에함박슈퍼할머니가있다.할머니는산사람보다죽은사람끼니를차려줄팔자인지,텅빈마을에서홀로주인없는묘를돌본다.어느젊은여자의묘에꽃배달을대신해주는일부터,제아비무덤가에서목숨을끊은청년의묘,동학농민군의돌무덤까지.남편과아들의무덤에술한잔마른북어올리는김에할머니는이무덤,저무덤에도음식을놓아준다.그러나소설의결말은할머니의인정을배반한다.추모공원사업자가몰래무덤가에불을질러버린것이다.불을끄던할머니의옷자락에불길이옮겨붙는다.
이소설을「한가족따로밥먹기」와맞세워놓고보면묘한아이러니가느껴진다.살아서식구가되지못했던이들이죽어서끼니를함께하는식구가된듯한인상을주기때문이다.식구란애초혈연을전제하는말은아니었던것같다.음식을나누는사람들,음식에담긴인정과한을나누는사람들,그들이식구다.그래서할머니의인정은이름없이스러져간이들,오랜시간의차이를두고죽어간이들을식구로엮어낸다.일면식도없는이들의무덤에제주祭酒와마른북어포를올리고,멧비둘기소리에맞추어덩실춤을추는할머니의모습.그사이사이로죽은자들이어렴풋보이는것같다.늙은이의주름진얼굴에는늘두가지이상의표정이있다.그표정은처음보는낯선청년도,이름도모르는죽은자도‘식구’가될수있음을,그것이‘먹는인간’의본성임을알려주는너그러운미소이기도하지만,그본성이지친삶이끝난후에야발현되는각박한세계에살고있음을일깨워주는서러운울음이기도하다.

그때그맛,혀끝의기억:「4월이었을까」,「먹을만큼먹었어」,「청국장을끓이다」
죽기전에그때그음식을한번더먹어보고싶다는소원을품는이들이있다.돌아올수없는한시절을‘맛’으로기억하기때문일것이다.미각은자주촉각과후각을포함한다.혀에닿는음식의질감이나,구수한냄새가‘맛’의요소이기때문이다.고대희랍의철학자는후각,미각,촉각을근접감각으로분류했다.그들은‘감각’을‘이성’에비해열등한것으로,감각중에서도‘근접감각’을시각과청각과같은‘원격감각’보다열등한것으로놓았다.근접감각은육체를매개로대상을파악하는것이기에보편타당한인식이되지못한다는이유에서다.여기에는육체에직접접촉하는감각은인간을쾌락으로빠지게할수있다는우려도섞여있다.고대철학자들은미각을열등한것으로놓았지만,이러한경계와우려에는우리가왜삶의구체적인한국면을‘맛’으로기억하는지에대한설명이담겨있다.미각이야말로육체로느끼는가장구체적이고생생한감각이기때문이다.
「4월이었을까」의주인공진은후와의무엇이라명명하기어려운관계를‘브리야니’의맛으로기억할것이다.그시절진은장기간중국에머물고있는남편과이혼위기에처해있었고,후는후대로이혼후힘든시간을보내고있었다.나란히걸을때손가락이스치듯,손가락끝에잠깐설렘이맺히듯,그들의감정은깍지를끼고,부둥켜안는사건으로나아가기도전에끝난다.남편은돌아왔고,후도그의전부인에게돌아갔다.시작하기도전에끝나버린두사람의관계를무엇이라불러야할까.그들에게붙여줄적당한이름이없다.대신그때그들이함께한음식의‘맛’이선명하게남아있다.후가떠난후진은브리야니를먹으며그를떠올린다.어쩌면그녀는후가떠오를때마다브리야니를먹을지도모른다.
진의이야기를한평생으로늘여놓으면「먹을만큼먹었어」에가까워질것같다.소설의주인공‘나’는스스로곡기를끊으며죽음을맞이하는인물이다.소설은죽음을준비하는주인공의삶의회고를따라간다.흥미롭게도‘나’는자기곁에머물렀다떠난이들을‘맛’으로기억한다.‘나’의부인은죽기전까지도젊은시절남편이사주었던슈크림빵을잊지못했다.그보다전에세상을떠난어머니는곤궁한시절에도잔칫날같은대구탕을끓였다.어머니에게대구탕이란아버지에대한그리움이다.남편이만주로떠나던날대구탕을어찌나맛나게먹던지,그때부터어머니에게남편은대구탕이되어버렸다.평생을마음에두었던여자허란숙은또어떤가.그녀는평생생당근의맛으로‘나’를추억했다.
「먹을만큼먹었어」가흥미로운것은한사람한사람의가장소중한순간이그들의미각에각인되어있다는점인데,여기서나아가소설은,주인공의인생을그를둘러싼타인들의인생의‘맛’으로엮어나간다.그러니까‘나’의일대기에는타인들이기억하는그들인생의‘맛’이누벼져있고,그속에서‘나’의삶이직조되는것이다.가령,슈크림의달콤함으로‘나’를기억하는아내,죽음을앞둔그녀의수줍은고백은‘나’의인생속에아내의무게로자리잡는다.이렇게‘맛’이왕복하고,기억이교차하는동안‘나’의지난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