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에서 신의주까지 : 경의선 따라 산문여행

경성에서 신의주까지 : 경의선 따라 산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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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방민호

저자:방민호
1965년충남예산에서태어났으며,서울대국어국문학과및동대학원박사과정을졸업했다.1994년『창작과비평』제1회신인평론상을수상하면서비평활동을시작했다.문학평론집으로『문학사의비평적탐구』(2018),『감각과언어의크레바스』(2007),『행인의독법』(2005),『문명의감각』(2003),『납함아래의침묵』(2001),『비평의도그마를넘어』(2000)가있다.
2001년『현대시』로시창작활동을시작했고시집으로『숨은벽』(2018),『내고통은바닷속한방울의공기도되지못했네』(2015),『나는당신이하고싶은말을하고』(2010)가있다.
2012년『문학의오늘』에「짜장면이맞다」를발표하면서소설창작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로『대전스토리,겨울』(2017),『연인심청』(2015)이있으며창작집으로『무라카미하루키에게답함』(2015)이있다.산문집으로『서울문학기행』(2017),『명주』(2002)가있다.
현재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서문5

I.경성에서개성으로
-용산·신촌·수색·능곡·일산·금촌·문산·장단·봉동·개성·토성·여현
임학수,「경성과나」김일엽,「여인과서울」김동인,「경성전차」,
김도태,「지상수학여행,경의선편」(1)~(7)최정희,「만월대와선죽교」
토해선(토성~해주)
박태원,「해서기유」.
장만영,「천향통신-백천온천에서」

II.황해도를가로질러
-계정·금교·한포·평산·남천·물개·신막·서흥·문무리·흥수·청계·마동·신봉산·사리원·계동·침촌·황해황주·흑교
박달성,「황해도에서얻은잡동사니」,『개벽』,1925년6월.염상진,「서선(西鮮)을돌아본인상」,『개벽』,1924년11월.이상,「첫번째방랑」,『문학사상』,1976년7월.
장연선長淵線(사리원~장연)
서항석,「비경탐승」.『동아일보』,1938.8.9~12.
구자균,「민요와여인-황해도순력기」,『조선일보』,1935.8.11~14.강경애,「기억에남은몽금포」,『여성』,1937년8월.

III.평양과대동강의추억
-중화·역포·대동강·평양·서평양·서포·간리·순안·석암·어파·숙천·만성·대교·신안주
김억,「사도(四道)민요기행」,『삼천리』,1938.10.김동인,「대동강」,『매일신보』,1930.9.6.
최명익,「칠월의서경-매생이·어죽(魚粥)의야취(野趣)」,『여성』,1940.7.이효석,「유경식보(柳京食譜)」,『여성』,1939년6월.
김남천,「뒷골목평양잡기첩」,『조선일보』,1938.5.28~6.4.
평양탄광선(대동강~승호리~강동)
김계성,「건축원료의석회광평남의대부고(大富庫)」,『동아일보』,1926.12.25.이광수,「강동에단군릉을찾아서」,『수필과시가』,영창서관,1939.

IV.청천강에서압록강까지
-맹중리·영미·운전·고읍·정주·하단·곽산·노하·선천·동림·차련관·남시·양책·피현·백마·석하·남신의주·신의주
노자영,「방랑의하로(夏路)」(8)~(10),『동아일보』,1921.8.5~8.8.
김준연,「부흥의의기충천한정주오산학교를보고」,『동아일보』,1935.10.4~8.백석,「소월과조선생」,『조선일보』,1939.5.1.
묘향산인,「격변중에있는평북지방을잠깐보고」,『개벽』,1921년6월.김억,「신의주정취」,『삼천리』,1932.3.

부록:국경너머
나혜석,「구미시찰기」(1)~(3),『동아일보』,1930.4.3~5.손기정,「백림원정기」,『삼천리』제9권제4호,1937.5.1.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참고로당시승차삯을상세히따져보자면경기감영서동대문까지상등5전,하등3전.경기감영서종로까지상등2전5분,하등1전5분.경기감영서청량리까지상등3전5분,하등1전5분,동대문서청량리까지상등5전,하등3전5분.
---「김동인,『매일신보』,1937.12.28」중에서

이러는사이에차는개성역에다다랐다.한시간사십분이면간다는길을두시간넘어를갔건만,조금도지리한줄을모르겠다.여행이란언제나즐겁고유쾌한것인가보다.나는앞으로는적어도한달에한번씩적은여행이라도하리라.역앞에나서니어떻게땅이질퍽한지고무신이물이넘는다.진흙물을흠뻑뒤집어쓴버스한대와또그와똑같은자동차한대가서있는데어지간히약삭빠르지못하면얻어타기가어려웠다.나는버스도자동차도다못얻어타고보행하기로했다.
---「최정희,『반도산하』,삼천리사,1944」중에서

【평양지국전화】동맹파업중에있는평원고무공장직공삼십여명은파업이래공장을점령하고나가지아니하다가금29일오전1시경에평양서원의축출로해산되는동시에여직공한사람이을밀대로올라가서체공여덟시간여에경찰에게붙들려내려온사실이있었다.을밀대다락으로올라간여직공강주룡(姜周龍)(30)이라는바,공장을지키고있다가경찰에쫓겨나오는길로사십여척이나되는을밀대다락으로올라가서누구든지쫓아올라오면떨어져죽는다고하며무산자의단결과고용주무리를타매하는연설을하였다고한다.오전1시로부터8시40분까지체공하고있는여직공을경찰에서아무리붙들어내리려도여의치못하던바경찰서에서는강력의서원을보내어사닥다리를놓고몰래올라가서잡아끼고내려와서즉시평양서에검속하였다고한다.일본노동쟁의에굴뚝남과비하여평양노동쟁의의여직공이을밀대다락위에서체공을계속하려던것은호대조의에피소드라고한다.
---「『동아일보』1931.5.3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