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경교장 (양장본 Hardcover)

아! 경교장 (양장본 Hardcover)

$31.36
Description
신간《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에서는 1945년 8월 15일부터 1946년 1월까지를 주로 다룬다. 일왕이 항복을 선언하고 많은 수의 독립지사들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나라는 미군정하에 통치되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소식과 뉴스로 들끓었던 때였다. 중국 상해에 있던 임시정부는 광복군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시도하고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해방에 제대로 그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귀국한다. 미 군정청 하지는 성명과 포고령을 발표했으며, 임시정부는 정부차원의 성명을 발표한다. 임시정부는 14개조에 달하는 당면정책을 공식 선언했다. 이 가운데 임시정부는 정부 차원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개인자격으로 1945년 11월 23일 환국한다. 숨가쁘게 돌아가던 정국은 임시정부요인의 환영대회를 기점으로 통합의 정점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연말을 앞두고 벌어진 ‘모스크바 3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으로 온 나라는 양분된다. 친탁과 반탁으로 정국이 요동치고 상점과 극장이 철시하고 총파업으로 신년을 맞이한다.

<제2부, 남북협상의 산실>에서는 1948년 1월부터 6월까지 통일된 조국과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룩하고자 했던 현장을 생생히 포착한다. 1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이 있고 이를 절대 반대하는 김구 주석의 성명으로 시작한다. 통일조국에 대한 백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세력과 노선의 충돌은 불가피해 갈등은 증폭되기 시작한다. 임시정부의 유엔을 상대한 각종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군정과 뜻을 같이한 이승만 계열의 세력들과 충돌한다. 그리고 김구 주석은 지금 보아도 애절한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통일과 완전한 독립국가를 꿈꿨던 임시정부는 북쪽에 있던 독립운동가 백연 김두봉에게 서로 만나자는 전갈을 비밀리에 전한다. 그 와중에 김구 주석은 김규식 박사와 이승만과 회담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다한다. 하지만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자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은 총선참여를 거부한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의 역사적인 남북협상 회담을 위해 38선을 넘어 북행한다. 남과 북이 갈라지면 필시 전쟁이 오고야 말 거라는 생각에 남북화합에 온 몸을 내던진 노 혁명가 김구의 뜻은 비록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를 동행 취재했던 여러 사람들의 생생한 취재기로 마무리한다.

<제3부, 백범 암살의 현장>에서는 1949년 6월 26일 백범 서거 당일부터 7월 국민장을 치루는 과정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피습이 이루어지고 그 즉시 온 나라는 비분강개하며 슬픔에 빠진다. 노 혁명가이자 정치인인 민족의 큰 별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을 추모하는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는 지금 봐도 아쉬운 감정을 느끼게끔 생생하다. 망자를 위한 거국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장례를 위한 준비와 장례식이 온 겨레의 슬픔 속에 거행된다. 그 가운데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정부의 어설픈 수사결과가 진행된다. 당시 조문객이 10일간 124만 명이라는 기사를 보더라도 그를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베트남의 민족영웅인 호치민의 청빈한 삶과 비교되는 백범 선생의 검약생활은 오늘날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백범이 서거하신 지 오랜 세월이 흐른 52년 만인 2001년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백범 암살의 배후가 미 공문서의 비밀해제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며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저자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은백범김구선생의암살진상규명과임시정부마지막청사인경교장복원을위해서1995년창립되었으며아울러선생의사상계승과염원인통일문화국가건설을실현하기위한활동을목적으로하는문화체육관광부소관의사단법인이다.

목차

제1부대한민국임시정부마지막청사
●일본천황의조서
●임시정부당면정책14개조발표
●하지,조선동포에고하는성명발표
●대한민국임시정부의환국
●27년만에고토밟는김구선생의거자
●환국한우리대한임시정부
●임시정부요인23인금일서울에개선
●동경턴고국서역사적국무회의
●대한민국임시정부전국환영대회
●국무위원회긴급개최
●신탁통치반대조직조례결정발표
●임정탁치에대한불합작방침을발표

제2부최초의남북협상산실
●단정은절대배격김구씨담
●유엔한위에보낸의견서
●삼천만동포에게읍고함
●백연인형
●장덕수암살사건1회공개재판
●김구한독당중앙집행위원회에서통일추진
●김구김규식왕복서신발표
●피를같이한동족끼리조국통일을논의
●김구38선을넘어북행
●남북연석회의축사
●남북협상수행기(민족자주연맹송남헌)
●남북협상수행기(합동통신특파원)

제3부백범암살의현장
●김구씨피습절명
●오호!민족의광망김구선생.
●3천만의비분은충천!보답이총살이냐어안이벙벙말할수없다
●비애와분노에쌓인경교장,말없이흐르는것눈물뿐
●애끓는울음소리,경교장이구석저구석에
●깡통을집어던지고걸인들도대성통곡
●10일간조문객무려124만
●하늘도흐려,조조경교장에서발인식
●오호!발구르며우는소리,눈물의바다식장은처연
●바람속의경교장,명도냐기념보존이냐
●백범암살안두희는미공작원이었다
●'백범암살진상'재조사하라!

출판사 서평

[기획의도]
1945년11월25일일요일,정동의예배당.예배가거의끝나갈무렵진행하던정일형박사는예배당에모인이들에게미래에대통령이될한사람을소개했다.예배당은사람들의놀라움과흥분으로술렁였다.당시광복군으로활약중이던장준하는〈회고록〉에서당시모습을이렇게기록하고있다.
「여기에한위대한사람이앉아계십니다.장차이민족을이끌고나갈참지도자가이자리에서하나님앞에무릎을꿇고계십니다…….」
그로부터3년7개월후(1949년6월26일)에그사람은그렇게간절히고대하던완전한자주독립의꿈을이루지못한채세상과이별했다.그는타국에서온갖고초와어려움을온몸으로이겨낸대한민국의위대한혁명가이자정치가인백범김구선생이었다.

2019년올해로3ㆍ1운동및임시정부수립100주년과백범서거70주년을기념하는뜻깊은해를맞이하여출판사멘토프레스에서는《비운의역사현장,아!경교장》을내놓는다.제목에서알수있듯이책은해방전후대한민국전체상황을다루지는않는다.27년동안의파란만장했던항일투쟁을마친임시정부와그수장인백범김구선생의발자취를위주로,당시의<자유신문><서울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경향신문>등의언론에기록된내용을중심으로책속에담고있다.광복을맞이하고3개월뒤인1945년11월23일,김포비행장에착륙한임시정부요인들이처음으로조국의밤을맞이한곳이경교장(당시죽첨장)이었다.경교장은그로부터백범김구선생이암살당하기까지3년7개월,정확히1,310일간임시정부의마지막청사였으며남북통일운동의본산이었고백범암살의현장이었다.
이책은김인수(‘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과‘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대표)씨의각별한노력에의해이루어졌다.그는2001년부터2년에걸쳐국립중앙도서관을비롯,관련도처에서경교장에관한방대한자료를수집하기시작했는데,당시자료들은현재처럼디지털화작업이이루어지기전의상황이라일일이수작업에의해자료를모아야하는시간과노력을기울여야했다.게다가해방이후당시의신문이한자위주로표기되어있던터라해석작업에많은고충이따랐다.드디어2003년1월어렵사리책이출간되었지만,불가피한사정으로일반인에게책이공급되지못하는사태가발생했고,그로부터무려16년이지난2019년4월11일임시정부수립100주년을기점으로《비운의역사현장,아!경교장》이세상의빛을보게되었다.

신간《비운의역사현장,아!경교장》의장점을말하자면앞서도언급했지만첫째,방대한자료를꼽을수있다.무려731쪽에달하는내용을담고있는데,그의미를생각할때어느것하나허투루게재된것이없다.둘째로당시의긴박감이옆에서지켜보듯독자에게생생하게전해진다는점이다.예를들자면‘때는1948년4월19일새벽.남조선만의총선거를반대하고자율적통일정부수립의필요성을느낀김구는남북정치지도자회담에참여하고자서둘러평양으로향하는데,반공청년학생들이경교장주변을에워싼다.“주석님못가십니다”“주석님이가셔서만일다시못오시면우리동포는누구를믿고살아갑니까”애원하는청년들에게김구주석은“나는21세때부터이미생명을내던진사람이오.내가이번에(38선을넘어)가서만일성과를얻지못하면차라리배를가르고나의피로써당신들청년들에게모범을보여줄생각이오.-〈서울신문1948년4월20일〉일부발췌”하며어떠한희생을무릅쓰고서라고남북화합을도모하고자하는김구주석의결연한의지를엿볼수있다.
또한,1947년12월2일발생한한국민주당당수이던‘장덕수피살사건’과관련해서암살배후로지목되던김구선생의재판심문과정이수차례에걸쳐본문에등장한다.예컨대장덕수암살사건제8회군율재판공판에서검사는“한민당중의장씨(장덕수를일컬음)기타사람들은죽일놈들이라”말한적없느냐는질문에,김구주석은“누구에대해서든말한적이없소.이러한것은모두모략에서나온것같소.이런친한동족에대해서죽일놈이니뭐어니중상할만치그리박덕한나라면그런박덕한나를따를사람이없을것이오.”라고답한다.마치이대목에서는김구주석의당당하고도쩌렁쩌렁한목소리가귓가에울려오는듯하다.이렇듯해방이후의나날들은나라의운명을결정할만한큰뉴스들로넘쳐나는,그야말로격동의시대였다.이러한점들을놓치지않고책속에충분히녹여내고있는데,즉이책의세번째장점은,기사위주의편집이라는단순함에서탈피하고자다양한이들의증언을수록했다는점이다.환국시기의장준하선생의글에서부터남북으로오간왕복서신,남북연석회의당시의송남헌선생의증언과동행기자의취재기,백범암살에대한당시시대상황을생생하게묘사한광복군제3지대장김학규의회고와안두희의생생한육성증언을함께실어공시적共時的시대를통해통시적通時的인의미를찾을수있게구성했다.

함석헌선생은“해방은도둑같이뜻밖에왔다”고말했다.그의말처럼당시의해방은제대로된준비없이,완전한자주독립을이루지못했다.이런어수선한상황에서이승만정부가수립되었다.백범은암살당하고그범인인안두희는거리를활보했으며암살의배후는베일에가려져있었다.그로부터무려74년이흐른현재,대한민국은속수무책임시정부수립100주년을덜컥맞이하고말았다.이에대해김인수씨는안타까운심정으로말한다.“한·중수교이후수많은국민들과정치인,대통령들까지상하이의옛임정청사를방문하여선열들의항일독립정신을높이기리고있지만정작한반도에서유일하게존재하는임정최후의현장경교장은국민모두가잊고살아왔다.”그이유가대체무엇일까ㆍ김인수씨의말은계속이어진다.“정부와삼성,언론때문이다.백범암살의배후로지목받고있는이승만독재자와연이은군사정권들은경교장을오랜기간에걸쳐철저하게의도적으로방치하여왔다.더욱이삼성은광고주란힘으로경교장언론보도를철저히통제하여왔다.뿐만아니라삼성은경교장이2001년서울시문화재가됐을때문화재지정취소행정소송까지시도했다.이것이여의치않자계획을바꿔경교장이문화재인데도불구하고경희궁터를놓고서울시건축승인을받아260억대의불법건물을증축하여지금도경교장경관을훼손한채원형복원을가로막고있다.”
참으로안타까운현실이다.게다가2013년서울시예산40여억원을들여경교장내부를복원하지만,서울시조차삼성의입장에서서원형복원을했다고주장하며손을놓고있다는것.결국현재반쪽복원에머물러있는초라한경교장모습을두고김인수씨는‘정·경·언의유착이낳은대한민국의부끄러운자화상’이라고일축한다.“경교장복원은단순히건물만의복원이아닌,굴절된한국현대사의복원을의미한다”는김인수씨의의미심장한말처럼《비운의역사현장,아!경교장》은숨겨진,왜곡된역사의산증인이되어잘못된역사인식을바로잡아주며,과거백범김구선생이그토록희구했던남북통일로함께가는지렛대,중추역할을하리라본다.

[책속으로이어서]
첫술에배부를수없는것이니우리가이것으로만족을느낄수없는것이다.이미거두어진성과를가지고최후의성공을하는것은오직우리의애국동포전체가일치하게노력하는데있을뿐이다.상술한연석회담에서국제협조및기타수개문제에대하여,우리의종래의주장이다관철되지못한것은우리로서는유감으로생각하는바이나국제협력문제에대하여서는앞으로어느나라가우리의독립을더잘도와주느냐는실지행동에서용이하게해결될수있는것이며.또기타문제에있어서도앞으로각자가노력하며남북지도자들이자주접촉하는데서원만히해결할수있으리라고믿는다.우리는행동으로써만우리민족은단결할수있다는것을증명한것이아니라,사실로도우리민족끼리는무슨문제든지협의할수있다는것을체험으로증명하였다.482p
전차를내려서상수리특별호텔을찾았다.노크를하고문을여니마침김구씨는몸이편치않았던지침실에서이불을제끼며넌지시일어나앉았다.이것은여담이지만단둘이마주앉아서이야기해보기는이때가처음이었는데축늘어져덮인세모눈을슴벅슴벅하면서뜸직뜸직한마디할때마다널따란입술이너웃거리는그모습에서순간「오래묵은호랑이」가턱앉아있는것같은강한인상을받았다.517p
백범김구선생이오늘흉변을당하신보도를들은나로는놀랍고담색해서말이잘아니나옵니다.범인이잡혔다하니무슨주의主義로이런일을행하였으며이것이개인행동인지연루자가있는지엄밀히조사해서일일이공포하고,범인은법대로처벌될것입니다.한인韓人들이어찌해서이런만행을범하는지과연통탄할일입니다.531p
일생을바쳐조국광복을위하여분투하시던독립운동자에대한총살이보답이란말인가.이것이무엇이냐?지금본인은입안이굳어져어떠타말할수없는동시에국가민족을위하여이이상애석한일이어디있는가한다.534p
28일오전10시부터경교장2층회의실에서개최된백범국민장상임위원회에서는장례비용으로약900만원을계상하였다고하는데,한편정부에서는이번장의가정부와민간이합동하여거행하는국민장인만큼장의비용에대해서도정부의부담금액결정을위하여28일긴급국무회의를개최한바,동同회의에서는정부부담으로비용의반액인450만원을지출할것을결정하였다고한다.558p
백범김구선생은해방후의자유가방종으로오인되고오용되는것을경계하였다.“최고最高문화로인류의모범이되기로사명을삼는우리민족의각원各員은이기적개인주의에서는아니된다.우리는개인의자유를극도로주장하되그것은저짐승들과같이저마다제배를채우기에애쓰는자유가아니요,제가족을제이웃을제국민을잘살게하기에사용되는자유다.공원의꽃을꺾는자유가아니라공원에꽃을심는자유다”고하였다.588p
고백범김구선생의시체를모신충정로경교장에는서거하신26일하오부터정부요인,각정당사회단체,일반시민,경향각지남녀노소가모여들어조문객으로인해人海를이루었는데,총조문객은무려124만여명이라하며,선생을사모하고조문하러온사람중에도초만원으로문밖에서조사를하고간사람들도이루헤아릴수없었다한다.630p
장의위원회에서는이방을이대로영구히보관한다는말을하였는데,그렇게된다면장식없는방안의모습이선생의검소한성품을그대로말하여줄것이며,유리창에남은역력한탄흔(彈痕)은후대의사람으로하여금당시의참변을눈물과분노로길이회상케하여주리라.681p
"선생님그리아름답지못한정보가들어왔는데요.좀주의했으면좋겠습니다."
"무슨정본데ㆍ”
"다른게아니라이놈들이선생님께대한암살계획이있다는데금명간행동이있을것이라는것입니다."
"박동지,그까짓소리듣고다니지말게.그놈들뭐매일하는소린걸.그런말은내게전할필요도없어,사기저상되는말이야"바위와도같이움직이지않는김구선생의태도였다.708p
백범김구선생의암살범인안두희가미군방첩대(CIC)요원이었다는충격적사실이처음밝혀졌다.이에따라당시미국이백범암살을방관또는사주했을가능성이높은것으로드러났다.이같은내용은해방직후부터1948년12월까지한국CIC에서정보장교로일하다가미국으로돌아간실리소령이백범암살사흘뒤인1949년6월29일작성해상부에제출한보고서에서나타났다.72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