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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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세계문학상 우수상, 4·3평화문학상 수상 작가 임재희 소설집
여기에도 저기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과 경계인의 삶이란 얼마나 고단한가!
2013년 장편소설 《당신의 파라다이스》로 세계문학상 우수상, 2023년 장편소설 《세 개의 빛으로》로 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임재희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20대에 미국으로 이민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작가의 경험이 투영된 작품 아홉 편이 실려 있다. 2018년에 출간된 것을 이번에 표지와 편집을 완전히 새로 해 재출간한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살다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평생 사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들 세 부류의 인간형을 통해 여기에도 저기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 또는 ‘경계인’의 고단한 삶과 내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20대에 미국 이민 길에 올랐던 나는 생존의 언어와 사유의 언어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민 세대에 속한다. 혀에 지문처럼 새겨진 모국어가 자연스럽게 사유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였다면, 생존의 언어는 밥벌이와 생활에 필요한 제2의 도구처럼 몹시 이질적이어서 내 안에 두 개의 세계가 따로 존재했던 것 같다”고 말하는 작가는 “‘그곳’에서도,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도 바깥에 머무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서성이곤 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이질감은 〈히어 앤 데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방인의 냄새라도 맡았다는 말일까. 산속을 오래 헤매다 돌아온 짐승의 냄새처럼 야성적이고 쓸쓸한 기운이라도 감지했다는 말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승객들을 뒤따라 나오는 모습이 어리바리해 보였던 걸까. 동희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왔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았지만 들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히어 앤 데어〉 중). “폴은 발걸음이 금방 떼어지지 않았다. 그는 반쯤 펼쳐진 여권을 잠시 바라보다 주머니에 다시 넣었고 두 개의 트렁크를 카트에 실었다. 그리고 버릇처럼 자신의 행동을 자꾸 되짚어 보았다. 한국에 와서 생긴 이상한 버릇이었다. 그의 한국어 억양이 상대방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인가 먼저 생각했다. 엄마 말대로 그는 천천히 또박또박, 존칭어를 곁들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와 함께 얼굴에 미소를 담아 말했다. 그런데 이런 대접이라니”(〈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중).

이들이 미국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냐고.” 미국에 갔을 때도 그런 질문을 받는다. “왜 미국에 왔냐고.” 작품 속 주인공은 그때마다 단답형의 대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늘 명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이유 같았고 모든 것이 이유가 아닌 것만 같았다”는 것.


그런가 하면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삶도 만만치 않다. “출근 차량이 길게 이어지는 도로는 정체가 심했다. 나는 동생과 무슨 얘기라도 나누고 싶었다. 전에 살던 곳보다 렌트가 오백 달러나 더 비싼 곳에 사는 기분이 어떤지. 생활이 너무 빠듯한 건 아닌지. 너무 바쁘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은 건 아닌지.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과 이제 대학에 들어간 아들 하나 키우기 위해 남은 인생 전부를 건 것은 아닌지. 아무리 동네가 안전하고 좋다지만 방 두 개짜리 아파트는 부부만을 위한 공간이 없으니 좀 넓은 곳으로 이사 가는 건 어떤지”(〈라스트 북스토어〉 중). “남편은 반은 영어, 반은 한국어를 섞어 말했다. 점점 영어에 더 가까웠다. 술이 과하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초대한 사람들 가운데 남편의 술버릇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남편과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왔거나 유학을 왔다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은 술 취하면 꼭 언어를 섞더라. 완전 창조적인 제3의 언어로 말이야!”(〈로사의 연못〉 중).

그렇다고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녹록지 않다. “세상은 불행의 시간을 먹고도 지치지 않았는지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계속 흘러갔다. 작은아버지는 불구가 되어 오토바이를 버렸고 저승으로 가면서 휠체어를 버렸다. 친척들은 옷자락 끝에라도 불행의 씨가 묻을까 작은엄마를 멀리했고 작은엄마는 그들로부터 스스로 멀어져 가는 방법을 택하며 자존심을 지켰다”(〈동국〉 중).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미숙하고,
모든 곳을 고향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미 강하며,
전 세계를 타향으로 여기는 사람은 완벽하다” - 빅토르 위고

이처럼 떠나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한곳에 붙박여 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하와이 이민 1세대의 신산한 삶을 그린 《당신의 파라다이스》에서 “내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린다. 흑백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들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이렇게 물을 것만 같다. ‘당신의 파라다이스는 어디쯤에 있습니까?’ 나는 낙원을 향해 가는 긴 여정이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한다. 파라다이스가 생존의 장소가 되었을 때, 그곳은 일상에 파묻혀 빛을 잃고 삶은 또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꿈꾸게 한다”고.

이에 대해 허희 문학평론가는 위 빅토르 위고의 언명과 “양 진영의 한계에 서 있는 망명자야말로 단수의 눈이 아닌, 복수의 눈을 갖는다”고 설파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인용하며 “낙원으로 가는 길 위에서의 삶이 곧 낙원이라는 통찰” 이것이 바로 임재희 소설의 일관된 테마라고 말한다. 낙원은 이편에 있으면서도 없고, 저편에 없으면서도 있다는 점에서 실체화된 파라다이스로의 입성은 영원히 불가능하겠지만, 결국 현재 서 있는 곳이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 이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소중한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저자

임재희

소설을쓰며번역일을한다.둘사이가멀지않은일이다.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사회복지학을공부했고,중앙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학과에서소설을배웠다.2013년세계문학상우수상수상작《당신의파라다이스》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비늘》,소설집《어디에도속하지않은폴의하루》가있으며,《라이프리스트》,《블라인드라이터》,《예루살렘해변》,《모호한상실》등을우리말로옮겼다.2023년《세개의빛》으로4·3평화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히어앤데어
동국
라스트북스토어
천천히초록
로사의연못
분홍에대하여
압시드
어디에도속하지않은폴의하루
로드

작품해설_사이-공간을상상하는지도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세계문학상우수상,4·3평화문학상수상작가임재희소설집
여기에도저기에도온전히속하지못하는
주변인과경계인의삶이란얼마나고단한가!

2013년장편소설『당신의파라다이스』로세계문학상우수상,2023년장편소설『세개의빛으로』로4·3평화문학상을수상한임재희작가의첫번째소설집이다.20대에미국으로이민갔다한국으로돌아와살고있는작가의경험이투영된작품아홉편이실려있다.2018년에출간된것을이번에표지와편집을완전히새로해재출간한것이다.

소설속인물들은크게세부류로나뉜다.한국인으로한국에서살다미국에정착한사람들,한국인으로미국에서살다한국으로돌아온사람들,한국인으로한국에서평생사는사람들이다.작가는이들세부류의인간형을통해여기에도저기에도온전히속하지못하는‘주변인’또는‘경계인’의고단한삶과내면의갈등을그리고있다.

“20대에미국이민길에올랐던나는생존의언어와사유의언어가다를수밖에없는이민세대에속한다.혀에지문처럼새겨진모국어가자연스럽게사유세계를지배하는언어였다면,생존의언어는밥벌이와생활에필요한제2의도구처럼몹시이질적이어서내안에두개의세계가따로존재했던것같다”고말하는작가는“‘그곳’에서도,다시돌아온‘이곳’에서도바깥에머무는마음으로오랫동안서성이곤했다”고고백한다.

이러한이질감은「히어앤데어」,「어디에도속하지않은폴의하루」에서선명하게드러난다.“이방인의냄새라도맡았다는말일까.산속을오래헤매다돌아온짐승의냄새처럼야성적이고쓸쓸한기운이라도감지했다는말일까.그것도아니라면혹시승객들을뒤따라나오는모습이어리바리해보였던걸까.동희는외국에서오래살다왔다는사실을굳이숨기고싶지는않았지만들키고싶은마음도없었다”(「히어앤데어」중).“폴은발걸음이금방떼어지지않았다.그는반쯤펼쳐진여권을잠시바라보다주머니에다시넣었고두개의트렁크를카트에실었다.그리고버릇처럼자신의행동을자꾸되짚어보았다.한국에와서생긴이상한버릇이었다.그의한국어억양이상대방에게짜증을불러일으킬만한것인가먼저생각했다.엄마말대로그는천천히또박또박,존칭어를곁들여,크지도작지도않은목소리와함께얼굴에미소를담아말했다.그런데이런대접이라니”(「어디에도속하지않은폴의하루」중).

이들이미국에서살다한국으로돌아오게된이유는저마다다르다.사람들은묻는다.“왜다시한국으로돌아왔냐고.”미국에갔을때도그런질문을받는다.“왜미국에왔냐고.”작품속주인공은그때마다단답형의대답을찾아보려했지만늘명쾌하지않았다고말한다.“모든것이이유같았고모든것이이유가아닌것만같았다”는것.

그런가하면한국을떠나미국에서디아스포라의삶을살고있는이들의삶도만만치않다.“출근차량이길게이어지는도로는정체가심했다.나는동생과무슨얘기라도나누고싶었다.전에살던곳보다렌트가오백달러나더비싼곳에사는기분이어떤지.생활이너무빠듯한건아닌지.너무바쁘게살고있는건아닌지.다시한국으로돌아가살고싶은건아닌지.피아노를전공하는딸과이제대학에들어간아들하나키우기위해남은인생전부를건것은아닌지.아무리동네가안전하고좋다지만방두개짜리아파트는부부만을위한공간이없으니좀넓은곳으로이사가는건어떤지”(「라스트북스토어」중).“남편은반은영어,반은한국어를섞어말했다.점점영어에더가까웠다.술이과하면나오는버릇이었다.초대한사람들가운데남편의술버릇을모르는사람이없었다.모두남편과비슷한시기에이민을왔거나유학을왔다정착한사람들이었다.“이사람은술취하면꼭언어를섞더라.완전창조적인제3의언어로말이야!”(「로사의연못」중).

그렇다고한국에서한국인으로살아가는것도녹록지않다.“세상은불행의시간을먹고도지치지않았는지끝을알수없는곳으로계속흘러갔다.작은아버지는불구가되어오토바이를버렸고저승으로가면서휠체어를버렸다.친척들은옷자락끝에라도불행의씨가묻을까작은엄마를멀리했고작은엄마는그들로부터스스로멀어져가는방법을택하며자존심을지켰다”(「동국」중).

“고향을달콤하게여기는사람은아직미숙하고,
모든곳을고향으로여기는사람은이미강하며,
전세계를타향으로여기는사람은완벽하다”-빅토르위고

이처럼떠나는것도,돌아오는것도,한곳에붙박여사는것도결코쉬운일이아니다.작가는하와이이민1세대의신산한삶을그린『당신의파라다이스』에서“내소설속인물들을떠올린다.흑백사진에서튀어나온듯한그들이내어깨를툭툭치며이렇게물을것만같다.‘당신의파라다이스는어디쯤에있습니까?’나는낙원을향해가는긴여정이파라다이스라고생각한다.파라다이스가생존의장소가되었을때,그곳은일상에파묻혀빛을잃고삶은또어쩔수없이새로운파라다이스를꿈꾸게한다”고.

이에대해허희문학평론가는위빅토르위고의언명과“양진영의한계에서있는망명자야말로단수의눈이아닌,복수의눈을갖는다”고설파한에드워드사이드의말을인용하며“낙원으로가는길위에서의삶이곧낙원이라는통찰”이것이바로임재희소설의일관된테마라고말한다.낙원은이편에있으면서도없고,저편에없으면서도있다는점에서실체화된파라다이스로의입성은영원히불가능하겠지만,결국현재서있는곳이자신이존재하고있는곳이라는인식이중요하다는것.이는작가가독자에게전하는소중한깨달음이아닐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