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2: 효창원과 만초천 주변

용산, 빼앗긴 이방인들의 땅 2: 효창원과 만초천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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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길 위의 역사학자 이순우
오욕의 땅, 용산을 말하다
「정동과 각국공사관」, 「손탁호텔」, 「광화문 육조앞길」 등의 연구 성과를 내며 근대 서울의 공간 변천사를 천착해온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한국근현대사 수난의 현장 용산에 대한 본격 인문 해설서를 내놓았다. 이순우 연구원은 10여 년간 증권맨으로 일하다 돌연 인생행로를 바꾼 뒤, 20년 째 역사탐방과 사료발굴에 몰두해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관심은 일제시기 우리 문화재 수난사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탐구에 집중되고 있다. 그는 역사학계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던 근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의 시공간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자신만의 시각으로 은폐되거나 잊혀졌던 역사를 발굴·조명해왔다. 스토리텔러로서 그의 강점은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조사와 대중적 글쓰기에 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하는 듯,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일상의 공간과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고 역사와 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

이순우

李舜雨
1962년경북경산에서태어나고려대학교정치외교학과와대학원(비교정치전공,석사과정수료)을나왔고,10여년가량증권회사와투자자문회사에몸을담았다가돌연인생의행로를바꿔거의20여년째역사탐방과사료발굴에몰두하는삶을살고있다.다큐멘터리방송작가이자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이던시절에일제강점기이후이땅에서벌어진문화재수난사에대한기록발굴과뒤틀린근대역사의흔적들에대한글쓰기에주력하여,『제자리를떠난문화재에관한조사보고서,하나』(2002),『제자리를떠난문화재에관한조사보고서,둘』(2003),『테라우치총독,조선의꽃이되다』(2004),『그들은정말조선을사랑했을까?』(2005),『꼬레아에꼬레아니「사진해설판」』(2009;이돈수공저),『통관관저,잊혀진경술국치의현장』(2010)등을펴냈다.이와함께근대서울의역사문화공간에관한시리즈로『정동과각국공사관』(2012),『손탁호텔』(2012),『광화문육조앞길』(2012)등의책을썻다.그러다가오랜프리랜서의생활을청산하고2014년8월이후에는민족문제연구소책임연구원으로재직하고있으며,서울특별지문화재위원회표석분과위원(2013.6~2019.5,2021.6~현재)으로도활동하고있다.앞으로도여력에닿는한기억이희미해져가는일제침탈의현장과근대서울의역사공간에대한자료발굴과글쓰기에더욱힘을쏟을작정이다.

목차

『용산,빼앗긴이방인들의땅』2-효창원과만초천주변

제1부옛용산과만초천물길
01삼남으로가는길목인청파배다리는왜사라졌을까?10
02만초전물길이남겨놓은흔적,갈월동굴다리21
03식민지조선에도난데없이연합군포로수용소가만들어진까닭은?34
04평식원(平式院)혹은상공과용산분실자리의공간내력47
05대륙고무(大陸護謨),친일귀족세력과일본자본의결합체63
06카토신사(加藤神社),당고개에터를잡은왜군장수의추모공간79
07용산주변에유달리일본인불교사찰들이많이몰려있는이유는?91
08조선은행권지폐를찍어내던총독부인쇄소의공간내력105
09이지용의용산강정(龍山江亭),노름꾼친일귀족의흥망성쇠가어린공간121
10용산한강변언덕에터를잡았던일진회장이용구(李容九)의묘지143
11용산에있던경성전기의발전소가끝내당인리로옮겨진까닭은?160
12한강변의절경지로알려진읍청루(?靑樓)는어떻게사라졌을까?176

제2부효창원과연화봉일대
13효창원,일제의기념물이그득했던수난의공간194
14효창공원,결국애국선열묘역으로남다211
15“그깟종묘의어보를읽었다고꼴푸놀이도못한단말이요?”231
16한국병탄의대업을영구히기리고자기획된식목일행사의기원241
17누에치기열풍속에뽕나무밭으로변한만리창(萬里倉)일대256
18친일파인사35명이요리집식도원(食道園)에급히모인까닭은?273
19‘미도리가오카’신흥주택지로변신한친일귀족민병석의별장터287
20연화봉산등성이에서매일오포(午砲)소리가울리던시절303
21효창원구역에터를잡은숙명여자전문학교의건립내력319
22동포상애와유한단련을기치로내건수양단(修養團)의정체는?331
23하마터면오쿠라상업학교가될뻔했던선린상업학교345
24행려병인수용소였던경성불교자제원(京城佛敎慈濟院)의공간내력358
25용산서룡사,일진회의배후인일본인승려타케다의활동근거지368

출판사 서평

용산은어떤곳인가?

근대이후서울용산은일본군주둔지로서일제침략의교두보를거쳐강압적식민지배의본산으로자리잡았다.해방이되면서미점령군이이를이어받았으며한국전쟁을계기로장기간주한미군의중추로기능해왔다.한세기넘게외국군의핵심주둔지라는멍에를쓰게되면서이곳은우리에게사실상이방인들의땅으로각인되고말았다.식민과분단시대의상흔이오롯이담긴한국근현대사의그늘을상징하는공간이된것이다.

그런데지난2004년12월미군기지평택이전협정이체결되고,2009년에「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마련됨에따라변화가시작됐다.현재주한미군사령부와미8군사령부는이전을마쳤고,기지의각종편의시설도폐쇄된상태다.하지만2008년말로명기된반환시한은이미지난지오래다.10여년의세월을훌쩍넘긴지금도언제이전절차가끝날지알수없는채안타까운시간이흐르고있다.그러나한편으로역사문화와환경생태적측면에서환골탈태를위한대전환은이미시작되고있다.지난세기를넘어미래100년을내다보는원대한시각으로우리는이곳에새로운역사를써나가야할것이다.어떤역사를만들것인가?그답은어쩌면용산이겪어온지난날의경험에서찾는것이가장쉬울지도모른다.

폭과깊이를더한용산의근대사

용산에대한탐구는일본군군영지의조성과정이나일대의일제잔재등에초점이두어졌으나,최근에는공원화계획을둘러싼활용방안과역사문화적인보존가치에주목하는경향이두드러지고있다.그런데저자는용산기지자체의연혁과공간변화를포괄하면서도,배후지로시야를넓히고미시적접근을시도했다.그는일본군병영지안쪽은물론이고그배후지역을이루고있는용산역,남영동,후암동,효창원,그리고옛용산지역인원효로일대의공간변천을두루조망하는한편,그간지역사연구에서크게주목을받지못했던다수의근대역사공간들을새롭게소개한다.누구도눈길을주지않았으나결코의미가적지않은역사의흔적들을추적발굴한것이다.

▲이태원쪽에서용산보병영일대의전경을담아낸사진자료이다.언덕바로아래에보이는구역이보병제78연대이며,그너머로연병장이보이는구역이보병제79연대(지금의전쟁기념관자리)리가.왼쪽에보이는길은용산병영지를동서로가로질러삼각지방향으로직통하는도로(지금의이태원로)이다.(민족문제연구소소장자료)



수록된방대한자료들은책의가치를한층돋보이게만든다.민족문제연구소가소장한희귀실물자료와저자가조사한사료들은저자의해석에설득력을더해주면서자칫지루해질수있는전문해설서의단점을효과적으로보완하고있다.

욱일기는어떻게전범기가되었을까
일본군주둔지주변의깨알같은역사

「용산,빼앗긴이방인들의땅」(전2권)은일본군병영지와용산역일대에관한것을1권으로하고,효창원과옛용산지역에관한것을2권으로하고있다.경부선철길과만초천물길을기준으로그동쪽일대가1권이고,서쪽일대가2권에해당한다.

우선1권은용산지역외국군의주둔내력과함께러일전쟁이후일본군병영지의조성과정과공간이재배치되는과정,용산주둔일본군주력부대인보병제78연대및제79연대의편성과정등에대한설명을담고있다.이에곁들여침략전쟁의선봉에선일본군의특징적인면모를쉽게이해할수있도록이들이사용한욱일기(旭日旗)와각부대의군기,침략군대의정체를감추기위해사용했던각부대암호명의역사도함께다루고있어이채롭다.

이밖에용산총독관저를비롯하여육군무선전신소,군악대음악당,육군장교의사교클럽인용산해행사등일본군병영지안에포진하고있는각종부속시설의연혁과그배후공간에자리했던침략전쟁의기념공간인용산육군묘지,조선판야스쿠니신사였던경성호국신사,변두리재개봉관의대명사성남극장(옛경룡관),용산중학교를비롯한각종일본인학교의내력도살피고있다.특히저자는용산연병장앞에있다고하여생겨난‘연병정(練兵町)’이해방이후그유래를알수없는‘남영동’으로돌변한과정을추적하면서아직까지도지명에버젓이남아있는고약한일제잔재를깨끗이청소해야한다고힘주어말한다.

강제동원의출발지용산역
빼앗긴조국,끌려간사람들

1권에서는일제가침략전쟁때마다대규모병력의‘출정’과‘귀환’을반복했던곳,무수히많은조선인청년들이징병·징용으로머나먼이역에끌려가야했던강제동원의출발지인용산역에관한내용도본격적으로다룬다.또한용산역일대에흩어진철도관련시설로서용산철도병원,철도순직자조혼비의소재지인용산철도공원,철도구락부로옮겨진개성연복사탑중창비의내력,한강철교와인도교,삼각지의유래,한때군수공업의원료공급처로활용됐던용산와사제조소,일본인유곽의대명사인야요이쵸(彌生町)의존재도함께소개하고있다.

노름꾼친일귀족이지용의흥망성쇠
용산만초천주변의공간변천사

제2권에서는효창원과만초천주변에흩어져있는다양한역사공간들을포착하여이에대한세밀한자료발굴을통해공간변천의내력을알차게담아낸다.일제의인위적인공간변경에따라청파배다리가사라지고갈월동굴다리가생겨난이유를비롯하여일제패망기에난데없이등장한연합군포로수용소(신광여고자리),도량형법의산실인상공과용산분실자리,조선고무신의대명사였던대륙고무공장,당고개지역에있던카토신사(加藤神社)의유래와그흔적을추적한다.

옛용산지역에해당하는원효로끝자락에일진회장이용구의묘지가있었던사실이라든가,노름꾼친일귀족이지용의흥망성쇠가어린용산강정(龍山江亭)에대한자료추적도흥미를더해준다.또한저자는이지역에유달리일본인불교사찰들이많이몰려있던연유를살펴보고,용산전원국으로사용된군자감터의변천,한강변용산발전소,용산과마포의경계를이뤘던별영창구역의공간변천사도자세히밝히고있다.

조선왕조의유산인효창원이애국선열묘역으로거듭난사연은?
숙명여자전문학교가효창원인근에자리한까닭은?

저자는효창원의역사도주요하게다룬다.조선시대이래효창원의공간변화와함께이곳이왜일제의기념물로가득한공간이되었는지효창원의수난사를조명한다.또해방이후에도효창원의수난은그치지않았기에왜효창원의공간훼손의역사는단절되지않았는지의문을던진다.물론왕조시대의유산이었던이곳이난데없이애국선열의묘역으로탈바꿈하게된경위도더불어밝히고있다.

효창원의공간수난사와관련하여일제강점기총독부고관들과친일귀족들의골프장이야기,한국병탄을영구히기리고자기획된‘기념식수일’의연원에관한풍경들도다룬다.숙명여자전문학교가효창원에인접하여들어선연유,이토히로부미가학교명을지어줬다는선린상업학교의연혁,그리고누에치기열풍속에뽕나무밭으로변한만리창일대,총독부관변단체의하나인수양단조선본부와행려병인수용소였던경성불교자제원등의존재도저자가이책에꼼꼼히담아내고있는꼭지들이다.

연화봉자락에걸쳐있던친일귀족민병석의별장터와이곳산등성이에자리했던오포대(午砲臺),그리고을미사변의대역죄인이주회의묘지가자리했던용산서룡사등도관심있게살펴볼용산지역의역사공간들이다.이러한내용외에도드물게남아있는일제침탈에대한항거지로서제1권에서소개된후암동고봉근집터(김상옥의사의총격전현장),이른바‘철도파괴범’의처형지였던도화동공동묘지에대한내용이담겨있으며,제2권에서는효창원앞쪽에있던이봉창의사의집터에대한흔적을재구성하여소상하게담아냈다.

식민과분단의상흔따라우리근현대사읽기
용산의어제와오늘에서민족의미래를묻는다

▲옛보병제79연대의병영은전쟁기념관건립과정에서일괄철거되고지금은여기에보이는건물1동만이보존한상태이다.

용산은오랜세월외세의영향아래놓인지역으로우리근현대사의어두운측면이응축되어남아있는곳이다.이제우리는‘이방인들의땅’용산이어떻게거듭나야하는지지혜를모으기위해머리를맞대고있다.변화는이미시작됐다.앞으로용산에어떤역사를써나갈것인가?미래세대에게어떤모습의용산을물려줄것인가?이미사라졌거나잊혀지고있는지난날의역사에서그답을찾아보는것은어떨까.이책이역사탐방과교육자료를넘어미래를구상하는조그만디딤돌이되기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