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여기

그만큼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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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은이 ●詩作 노트

어릴 적 우리 집 대문 옆에 두엄자리가 있었습니다. 닭똥, 소똥, 돼지똥, 지푸라기 썩은 것, 개밥 남은 것 등을 내다 버린 곳이었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 쓰고 남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을 모아두는 곳이었는데 무더기 위에는 늘 김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 못난 것들이 모여서 함께 섞여 썩어가면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분노의 표출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그 김 서린 부근을 지나칠 때면 콧구멍에 확 끼쳐오는 냄새와 함께 어떤 훈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열을 내고 있었던 게지요. 세상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어요. 그냥 이렇게는 사라질 수 없다는 그 몸부림.
그들은 높이가 올라갈수록, 잡것들이 더 많이 어우러질수록 진한 열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사람들은 그 진한 열기 속에 비닐로 싼 홍어를 밀어 넣기도 했어요. 삭히는 거죠. 그렇게 삭혀진 홍어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귀한 음식으로 쓰였습니다.
버려짐 속에서, 그 끓던 분노조차 녹여버리는 발효였습니다. 그들은 또 한 번 자신들의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었어요. 그렇게 속이 다 타들어 간 뒤에는 호박밭으로, 배추밭으로, 혹은 뒤뜰에 있는 감나무 아래로 이사 갔어요. 거기서 호박 모종과 어우러져 실한 호박덩이가 되기도 하고, 김치가 되어 식탁에 오르기도 하고, 또 감나무 뿌리에 스며들어 알 굵은 홍시가 되어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던 것들. 바쁜 생활 속에서 큰 것만 좇다가 자칫 흘리고 가버린 것들. 이런 것들을 두엄자리처럼 한곳에 모아 썩히려고 합니다. 그게 삶이고 시니까요.
저자

유종화

1958년생
김제에서나고자랐다.이리에서배우고,목포에서가르쳤다.
1994년『민족극과예술운동』봄호에평론「노랫말속에서의‘시인의몫’찾기」를발표하고,1995년『시인과사회』봄호에시「오살댁일기」연작으로신인상을받았다.
1994년시노래창작곡음반『노래로듣는시』를, 1996년 시노래평설집『시마을로가는징검다리』를냈다.
1998년광주에서한보리오영묵등과〈시하나노래하나〉를,1999년서울에서백창우안도현등과〈시노래모임나팔꽃〉을결성하여‘시노래’라는장르를개척하고,시노래운동을시작하였다
2024년계간『시의시간들』창간호(겨울호)에시「파랑」외4편을발표하면서다시작품활동을시작했다.정읍에서살고있다.

저서로
(-나를바꾸는시읽기)시마을로가는징검다리(새로운눈발행)
(-나를바꾸는시읽기)시창작강의노트(새로운눈발행)이있다.

목차

2024
짹! ㆍ13
아나 ㆍ14
당신 ㆍ15
도곳대춤 ㆍ16
선물 ㆍ17
우우 ㆍ18
문어짬뽕을먹다가 ㆍ19
깨끗한어둠 ㆍ20
풍경 ㆍ21
그족발집 ㆍ22
겨울비맞는단풍나무를보며 ㆍ23
우린아주조금만본다 ㆍ24
사랑 ㆍ25
한몸 ㆍ26
공황장애 ㆍ27
얼굴 ㆍ28
안좋은집 ㆍ29
대저좋은시(詩)란! ㆍ30
파랑 ㆍ31
김제 ㆍ32
예순일곱살 ㆍ33
쇠아치 ㆍ34
빈들판에서 ㆍ35
천국 ㆍ36
미스고 ㆍ37
하늘이높은것은 ㆍ38
먼곳을볼땐가보다 ㆍ39
적막하다 ㆍ40
구절초 ㆍ41
서설(瑞雪) ㆍ42
겨울,깊다 ㆍ43
백화점 ㆍ44
백창우 ㆍ45
강경식당의힘 ㆍ46
매생이탕불이설법(不二說法) ㆍ47
목포 ㆍ48
쌍놈 ㆍ49
유언아닌유언 ㆍ50
짹!-내詩를위해 ㆍ51


2025
눈오는날 ㆍ54
할아버지 ㆍ55
지극한사랑 ㆍ56
밥그릇 ㆍ57
연둣빛 ㆍ58
심연(深淵) ㆍ59
소나무 ㆍ60
안개 ㆍ61

1994
오살댁일기1 ㆍ64
오살댁일기2 ㆍ65
오살댁일기3 ㆍ66
오살댁일기4 ㆍ67
오살댁일기5 ㆍ68


발문정윤천(시인) ㆍ69
삶이,견딘다는말의엄숙한초대이었음을깨달으러가는이의더듬거림에대하여.

詩作노트 ㆍ89
표사(表辭)안도현(시인) ㆍ91
표사(表辭)안치환(가수) ㆍ93

출판사 서평

●표사(表辭)1

유종화형하고나는절친이다.작당40년이넘었다.그이는일찍이시인이었으나시집을낸적이없어시인이아니었고,선생이었으나일찍이사표를던져선생이아니었고,작곡가였으나히트곡이없어작곡가가아니었고,술꾼이었으나병을얻어술꾼이아니었고,아들귀한집외동이었으나주머니를자주열어재산을모으지못했다.실패가재산인사람,혹은“깨끗한어둠”같은사람.그이가평생처음내는이시집의시들을읽다가보면“가까이/아득하게”아프다.자신을과하게드러내지않으면서있는그대로를받아들이려고하는여여(如如)함때문이다.이쪽과저쪽의경계와구별이불필요하다는통찰을제시하는「당신」,들판이라는공간을지금이라는시간으로전환해시적인여백을만드는「구절초」,눈을번쩍뜨게하는개안의순간을노래하는「서설(瑞雪)」,사소한기쁨을존재론적인발견으로상승시키는「천국」이나는좋다.이렇게말과마음이텅텅비어있는시들을근래만나보지못했던터라더욱귀하게여겨지기도한다.그러니이제“기어이가득하지못했을까”라는자탄은하지않아도될듯하다.“통증도한몸이다”라는깨달음을얻었으니아파서답답한통(痛)은곧사통팔달통하는통(通)이될것이다.
-안도현(시인)

●표사(表辭)2

뒤돌아보니형이랑함께보낸세월이까마득합니다.30년,반평생을같이했습니다.
제노래의가사가막히거나알쏭달쏭할때짬짬이멋진도움준거고맙고잊지않을겁니다.
형이나나나음악을배우진않았지만,몸과마음이동하여글을쓰고노래를만들고있으니참행복한일입니다.그렇지요?
종화형의시집을대하니반갑고축하드리고,또부럽습니다.
아참,여러분께살짝!
제가아는종화형은다른이들에겐어떤지모르겠지만제게는더이상‘쇠아치’는아니더군요.
-안치환(가수)

지은이●詩作노트

어릴적우리집대문옆에두엄자리가있었습니다.닭똥,소똥,돼지똥,지푸라기썩은것,개밥남은것등을내다버린곳이었지요.한마디로말하자면다쓰고남은,더이상사용할수없는것들을모아두는곳이었는데무더기위에는늘김이서려있었습니다.그못난것들이모여서함께섞여썩어가면서화를내는것처럼보였습니다.
주인에게버림받은분노의표출이라고생각했었지요.그런데그김서린부근을지나칠때면콧구멍에확끼쳐오는냄새와함께어떤훈기를느낄수있었습니다.열을내고있었던게지요.세상에서의마지막몸부림이었어요.그냥이렇게는사라질수없다는그몸부림.
그들은높이가올라갈수록,잡것들이더많이어우러질수록진한열기를만들어냈습니다.사람들은그진한열기속에비닐로싼홍어를밀어넣기도했어요.삭히는거죠.그렇게삭혀진홍어는집안에큰일이있을때귀한음식으로쓰였습니다.
버려짐속에서,그끓던분노조차녹여버리는발효였습니다.그들은또한번자신들의살아있음을증명해주었어요.그렇게속이다타들어간뒤에는호박밭으로,배추밭으로,혹은뒤뜰에있는감나무아래로이사갔어요.거기서호박모종과어우러져실한호박덩이가되기도하고,김치가되어식탁에오르기도하고,또감나무뿌리에스며들어알굵은홍시가되어서다시우리곁으로돌아왔습니다.

세월이지나면서자연스레기억속에서사라져갔던것들.바쁜생활속에서큰것만좇다가자칫흘리고가버린것들.이런것들을두엄자리처럼한곳에모아썩히려고합니다.그게삶이고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