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세계의 운명을 바꾼
말로와 드골의 위대한 우정의 역사
“우선 과거를…….” 이것이 드골 장군이 앙드레 말로에게 건넨 첫마디이다. 첫 만남. 1945년 7월 18일 수요일 아침 11시, 파리 생도미니크 가(街)에서 두 전설이 만났다. 자유프랑스의 수장과 양차대전 사이에 반파시즘 투쟁에 참여한 신화적 작가가 만난 것이다. 포옹도, 완곡한 표현도, 예의상의 표현도 없이 드골 장군은 앙드레 말로의 과거 정치 참여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공격했다. 놀란 앙드레 말로는 일단 자신의 정치 참여의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에 참여한 겁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인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어서 그는 1930년대 파시즘에 맞섰던 투쟁을 설명했다. 앙드레 말로는 계속해서 스페인 내전에 대해 설명했다. 이 전쟁에서 그는 프랑코 장군의 군대와 맞서 스페인 공화국 정부 편에서 싸웠다고 주장했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스탈린의 공산주의자들과는 한 패가 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앙드레 말로는 알자스로렌 부대에서 했던 레지스탕스운동과 신조에 대해 설명했다.
드골 장군과 앙드레 말로는 서로 첫눈에 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25년 이상 그 강도 면에서 한결 같았던 그들 사이의 우정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 첫 만남에서 모든 것이 분명한 것은 아니었다. 이 첫 만남은 심지어 늦은 것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출판된 기록이나 증언에 의하면, 드골과 말로의 관계는 불균형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까 이들의 관계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직급상 상관이었던 드골이 항상 주도권을 쥐었고, 말로가 그 뒤를 떠받쳤다는 사실에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알렉상드르 뒤발 스탈라는 이와 같은 불균형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드골과 말로의 관계가 위계질서에 의해 지배되는 관계가 아니라 거의 완벽한 상호주체성에 의해 지배되는 관계라는 것이다. -옮긴이 서문 중에서
책속으로 추가
어쨌든 만남은 끝났다. 한 시간이 지났다. 앙드레 말로는 감정을 실어, “진짜 레지스탕스 대원 3분의 2를 잃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드골 장군은] 슬프게, “잘 압니다. 나는……”이라고 대답했다. 앙드레 말로는 그때 드골 장군이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자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 역시 당신의 사람들을 잃게 될 것이란 걸 난 잘 알고 있소.” “다시 찾은 파리에서 뭐가 가장 인상적이던가요?” 그러자 앙드레 말로가 이렇게 대답했다. “거짓이죠……” -32쪽
앙드레 말로의 어린 시절은 독학자의 그것이었다. “나는 나의 청소년 시절을 좋아하지 않는다. 청소년 시절은 사람을 과거로 잡아당기는 일종의 감정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말로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앙드레 말로는 어른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에 중요한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들이다. 몇 세대를 거쳐 ?케르크에 정착했던 앙드레 말로의 집안은 수공업, 어부, 선주(船主)의 프티부르주아 집안이었다. 할아버지 알퐁스는 앙드레 말로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왕도(王道)』에서 묘사한 주인공과 가장 닮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나이 든 바이킹으로서 그가 맞은 죽음이 그러하다. 배보다는 포도주 통 제조 자격증을 더 자랑스러워했던 할아버지는 바다에서 거의 모든 재산을 까먹었으나, 젊은 시절에 경험했던 여러 의식(儀式)을 간직하고자 했다. 자기의 마지막 배의 뱃머리를 전통에 따라 도끼로 두 쪽을 내는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39쪽
앙드레 말로의 어머니 베르트 말로의 고향은 라미였다. 그녀는 파리로 와 정착한 쥐라 산맥 출신의 빵 장수 아버지와 이탈리아계이자 양재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삶은 계속되는 내적 상처의 연속이었다. 열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였고, 앙드레 말로보다 단지 1년 늦게 태어난 아들이 겨우 3개월 만에 죽었고, 말썽 많았던 부부 관계는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어쩌면 앙드레 말로에 대한 그녀의 서툰 행동은 그녀가 항상 간직하고 있던 마음의 상처로 설명된다. “어머니는 아들이 밉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의 불쑥 튀어나온 귀로 인해 그의 얼굴이 밉상이 될 정도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부부 관계의 실망에서 유래한 사디즘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 당시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에 의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41쪽
샤를 드골은 박식한 가정환경에서 교육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이렇게 해서 그는 독서 취향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고전 작품들을 읽기 시작했다. 세귀르 백작 부인의 작품, 쥘 베른의 작품, 『집 없는 아이』(엑토르 말로), 『로빈슨 크루소』(대니얼 디포), 『모히칸족의 최후』(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등과 같은 단편들과 장편들을 읽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새끼 독수리』(에드몽 로스탕), 『시라노 드베르주라크』(에드몽 로스탕) 등을 위시해 많은 작품들을 읽을 것을 권유하면서 그를 이끌었다. 샤를 드골의 교육과 지식은 예수회 수도사 학교에서의 교육으로 윤택해지기도 했다. 이 학교는 그에게 지적, 정신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시르 준비 과정, 그리고 1914~1918년 전쟁 동안에 겪었던 포로 생활 등을 통해 그는 놀랄 만한 교양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때 얻었던 교양 덕택으로 그는 평생 동안 사색하고 행동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데 도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 비극은 물론이거니와 베를렌의 시를 외우면서 놀랄 만한 기억력을 과시할 수도 있었다. 샤를 드골의 독서는 다양하면서도 광범위했다. 그리스·라틴 역사학자들, 교회의 교부(敎父)들, 코르네유, 라신, 라로슈푸코, 라브뤼예르, 보쉬에, 파스칼, 샤토브리앙, 위고, 발자크. 비니, 라마르틴, 플로베르 등의 저작들을 섭렵했다. -43쪽
앙드레 말로의 지적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명의 주요 인물은 도스토옙스키와 니체이다. 그에게서 있어서 니체는 서구 사상으로의 안내자이다. “그는 가치를 재발명했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아주 중요한 발견이었다. “우선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힘이 있다.” 열여섯 살 이후에 쥘 미슐레 역시 앙드레 말로의 세계로 편입된 주요 저자였다. 미슐레가 가진 역사에 대한 정열 때문이었다. “미슐레는 ‘프랑스는 하나의 인격이다’라고 말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빅토르 위고 역시 앙드레 말로의 역사 감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역사는 그 자체의 진리를 가지고 있고, 전설도 그 나름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 전설적 진리, 그것은 현실이라는 결과를 가진 발명이다. 역사와 전설은 하나의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시적인 인간의 모습에 영원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앙드레 말로에게 지적으로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영역은 동양 사상, 보다 일반적으로는 서양 문명과 다른 문명과의 비교였다. 앙드레 말로는 진정한 문학적 절충주의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절충주의는 알고자 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땅, 알려지지 않은 땅을 탐사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 그리고 분명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하는 그의 갈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드골 장군을 위시해 앙드레 말로를 알았던 자들은 그의 엄청난 기억력, 그의 풍부하고도 다양한 지식에 경악하곤 했다. 앙드레 말로와의 거의 모든 대화는 그의 독백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드골 장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앙드레 말로는 풍요로운 정신을 통해 상대방을 수준 높은 대화의 경지로 이끌곤 했다.
샤를 드골과 앙드레 말로, 만일 그들이 그들 각자의 개성을 넘어 역사와 문학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갖지 못했더라면, 그들이 만나서 정립했던 것과 같은 인간관계를 맺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의 정신 유산에 대한 취향과 감수성을 갖지 않은 뛰어난 책사는 없다. 알렉산더 대왕의 성공에는 항상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 앙드레 말로와 샤를 드골의 어린 시절의 유일한 공통점은 책과 역사에 대한 동일한 열정이었다. 후일 그들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서로를 존중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우정의 시작에 언어, 즉 문학과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47쪽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샤를 드골은 생시르(육군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장교였고, 앙드레 말로는 아직 청소년이었다. 1914년 8월 3일, 독일이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20세기가 탄생한 것이다. 샤를 드골과 앙드레 말로는 이 전쟁을 겪게 된다. 한 사람은 비극적인 전선에서, 다른 사람은 태평한 후방에서 겪게 된다. 이 전쟁은 한 사람에게는 끔찍한 참호로 기억될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버지의 여러 일화로 기억될 것이다. -52쪽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태평한 댄디의 모습과, 전선과 포로 생활을 겪고 돌아온 군인의 모습이 완전히 대조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한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무공 이야기를 통해 이 전쟁을 겪었고, 또 한 사람은 죽은 자들과 참호의 끔찍함 속에서 이 전쟁을 겪었다. 하지만 앙드레 말로와 샤를 드골은 역사와 영웅주의 곁을 스쳐 지나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골 대위는 포로로 잡혔으며, 앙드레 말로는 너무 젊었던 것이다. 이들 두 사람은 영광에 목이 말랐다. 하지만 이들의 야망의 원천은 아주 달랐다. 앙드레 말로의 운명은 보통 인간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복수라는 감정 위에서 펼쳐지게 될 것이다. 반면, 드골 대위의 운명은 자존심, 그것도 자기가 예외적인 존재라는 자존심 위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69쪽
1920년대에 서로 아주 다른 앙드레 말로와 샤를 드골은 만개하게 된다. 앙드레 말로는 실패했던 성공했던 간에 그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모험가였다. 그는 다양한 경험을 책으로 변형시키게 된다. 그는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는 대신 기복이 심한 부부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샤를 드골은 군에서 경력에 따라 생활하는 장교 신분이었다. 그는 벌써 군의 위계질서에 대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