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최초로미국역사학회회장을역임한
하버드대학이리에아키라가보는20세기의전쟁과평화
2015년역사와현대세계를보는관점을담은책『역사가가보는현대세계』를선보여신선한반향을일으킨바있는하버드대학역사학부이리에아키라교수의『20세기의전쟁과평화』가초판(1986)과개정판(2000)이후의변화를대폭반영한개정원고를수록하여조진구·이종국선생의번역으로연암서가에서출간되었다.『역사가가보는현대세계』가글로벌,트랜스내셔널한역사에관심을두어특히관계의중요성을강조했다면신작은국제관계사를전문으로하면서그동안권력정치를중심으로전개된19세기부터현재에이르는100년의역사적과정을역사적통찰과세계적시야를통하여복수의국가간관계를설명하면서세계사적전망을하고있다.저자이리에아키라는국제관계사분야,특히미·일외교사및중·일관계에관한많은연구업적을가지고있으며,전쟁과평화,문화교류를중심으로국제관계를해석하는미국과일본에서대표적인역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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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종종“전쟁과혁명의세기”였다고묘사된다.20세기는로마노프왕조를무너뜨린‘러시아혁명’으로부터시작되어두번의세계대전과냉전이라는이름의새로운전쟁의종식으로막을내렸다.그사이에무수히많은전쟁과혁명이꼬리에꼬리를물듯일어났으며,따라가기조차힘든빠른속도의변화와사건들이이어졌다.
이런커다란변화는영국에서시작된‘산업혁명’과‘시민혁명’에바탕을둔것이며,대영제국이세계를지배하는원동력이되기도했다.산업혁명으로운송수단이발달함으로써군의기동력은크게향상되었으며,무기의살상능력이비약적으로증대함으로써전쟁으로인한피해규모와지역은현저하게증대되었다.당연히어떻게전쟁을막고평화를구축할것인가가가장중요한과제가되었다고할수있다.이책은이런20세기의최대아포리아에대한역사가의도전이라고할수있다.
전쟁과평화의문제는외교사,국제법,국제정치,평화학등많은학문영역의연구테마였다.영토와민족,종교,경제적이익등전쟁의배경이나원인을규명하는것뿐만아니라,어떻게하면전쟁을회피하려고해왔는가에대해서도관심을기울여왔다.전쟁을회피하기위한외교적노력에초점을맞춘것이외교사라고한다면,전쟁과국가의행동을법적인측면에서탐구하는것이국제법이라고할수있다.
지금까지의많은연구들이국제관계에서의행위주체,즉국가에초점을맞추었다고한다면,저자이리에교수는국제관계도궁극적으로는개인차원의행위라고보고그런관점에서전쟁과평화에관한다양한사조와관점들을되돌아보고있다.전쟁과평화를국가나권력을중시하는전통적인파워폴리틱스만이아니라비정부기구(NGO)나시민사회,사상이나문화같은소프트파워의중요성을강조한다.그런의미에서이책은외교사나국제정치에관심이있는대학(원)생이나일반인들의좋은길잡이가될수있을것이다.
∠주요내용
넓은의미에서문화란한국민이쌓아온유산을종합한것이라고도할수있다.미국의사상가루이스멈포드(LewisMumford)의말을빌리자면문화라는것은“인간이기억해야하고기억된경험”이다.문화인류학자마거릿미드(MargaretMead)는“미국인에게는과거만이친근감을줄수있다”고말하지만,이말은다른국가에대해서도적용할수있을것이다.멈포드나미드의정의에의한문화,즉과거유산의축적에는정치·경제제도와조직,예술과사상,관습등도포함된다.쇼가말하는문화는주로후자를가리키는것이고,전자는권력이라고정의되고있다.그러나양자를합쳐서한국가의내적인모든행위를모두문화라고하는것도가능하다.따라서이개념을사용할경우넓은의미의것과좁은의미의것사이에는차이가있음을밝혀두고싶다.한편넓은의미의권력이라는것은한나라의대외적인힘의총화(總和)이다.군사력은그것의가장좋은예이지만,그것을뒷받침하는군수산업혹은경제제도전반,나아가서노동력이나정치기구도당연히관계가있다.미드도전쟁을수행하기위해서는국내의모든것,즉문화의힘을결집하지않으면안된다고말했다.넓은의미의문화는넓은의미의권력의기반이다.문화와권력은표리일체의관계를이루고있다.-30쪽
비스마르크는항상평화라는것은국제질서의안정화라고생각하고있었지만,원래이러한생각은비스마르크에의해처음제기된것은아니다.나폴레옹전쟁후빈회의에서오스트리아의클레멘스폰메테르니히(KlemensvonMetternich)는전후유럽의안정을위해각국이참가하는동맹체제를만들려고하였고,어떠한형태로든19세기의유럽적인국제질서를유지하는것이평화에이르는길이라고주장했다.그러한견해는평화의조직론적혹은질서론적인정의라고말할수있다.평화라는것은전쟁이없는상태이고전쟁은국제질서의붕괴에의해서발생한다.따라서전쟁의발발을저지하기위해서는가능한한안정된국제질서를구축할필요가있다는것이다.메테르니히가만들어낸‘빈체제’가좋은예이다.그리고1848년을전후하여각국에서의혁명과정변의영향으로이체제는붕괴하기시작했고,그후20여년간유럽의국가들간에전쟁과내란이계속되었다.이러한혼란의시대는1870년대에들어와일단종말을고하게된다.바로그때새로운국제질서의수립에고심했던사람이비스마르크와각국의지도자들이었다.-34쪽
어느시대에도전략의준비나작전계획은있는법이지만19세기말에는두세가지의특징이있었다.첫째로는과학기술의발달을반영한소위근대전이상정되었다는것이다.그때까지가령고전적인전쟁이라고불러야만하는것이있었다고한다면그것은육지에서는보병과기병의정면충돌,바다에서는범선으로구성된함대간의대결을중심으로한것이었다.그런데철공업의발달,교통통신수단의진보,나아가서는컴퓨터의발명등은전쟁을기계화해버렸다.그것들중에서가장중요한예는철도의이용일것이다.수송차량의사용에의해보병뿐만아니라무기도과거에는볼수없었던빠른속도로전선으로보낼수있었다.독일의참모총장알프레트폰슐리펜(AlfredvonSchliffen)이입안했던대(對)프랑스전략(벨기에와네덜란드로부터전격적으로프랑스로침공해간다는것)도철도의건설없이는불가능했던것이었다.-40쪽
유럽에서의대국간의전쟁계획에상정되어있던미래의전쟁이다수의국가를휘말리게하는것이될것이라고보았다는것이당시전쟁관의다섯번째특징이다.이미1890년독일의참모총장헬무트폰몰트케(HelmuthvonMoltke)는유럽에서일어나는다음전쟁은모든강국이참가하는‘제2의7년전쟁’이될것이라고예언했다.과연그정도로긴전쟁이될것인가를둘러싸고이견도있었다.몰트케의후임인슐리펜은네덜란드와벨기에를통과해서프랑스를공격하는전격전을감행한다면비교적전쟁은빨리종결될것이라고낙관하고있었다.다음전쟁이얼마나길어질것인가에대한일치된견해가있었던것은아니다.1914년이전의수십년간발생했던전쟁(보불전쟁,청일전쟁,러시아·터키전쟁,러일전쟁및몇차례의발칸전쟁)은모두단기간의전쟁이었기때문에다음전쟁도비교적빨리끝날것이라는기대는각국에존재하고있었던것같다.그러나영국의역사가졸(JamesJoll)이그의저서『제1차세계대전의기원(TheOriginsoftheFirstWorldWar)』에서말했던것처럼전전에상정되었던‘전쟁’과실제의대전은완전히다른별개의것이었다.-44쪽
유럽제국이비서양의각지로진출하는과정에서혹은그결과전쟁의가능성이필연적으로증대할것이라는것은당시일부논객들사이에상식처럼되어있었다.여기에는긍정적인견해와부정적인견해가모두있었다.전자에따르면문명국(군사대국)이야만적인국가내지미개국이나민족을상대로싸워후자를자신의지배하에두는것은역사의필연적인흐름일뿐만아니라,문명을활성화시키기위해서도필요하다고보았다.앞에서소개한피어슨은그러한전쟁론을갖고있었던사람들중에서가장유명하다.그러나이것은피어슨뿐만아니라제국주의긍정론자들대부분이비문명지역에서의전쟁을합리화하는이론을찾고있었다.가장단순한형태의개념은러디어드키플링(RudyardKipling)의『백인의책무(TheWhiteMan’sBurden)』에잘나타나있다.즉,서구제국은문명수준이낮은다른민족을위해무력을행사해서질서있는사회를만들책임이있다는생각에집약되어있다.미개한종족이나문명도가낮은유색국가는스스로의힘으로진보할수없고,반대로시종일관야만적인행위를함으로써세계각지에불안정한상태를초래한다.따라서외부의힘을빌려질서를구축하지않으면안된다는것이다.그러한과정에서선진국의힘과원주민의힘이충돌하고나아가식민지전쟁으로발전하는것은자연스러운결과라는것이다.-57쪽
1914년8월에발발했던유럽의대전을당사자인유럽인들이어떻게보고있었는가에대해서는각국에서치밀하게연구되어왔으며,이책에서자세히살펴볼수는없다.전쟁이현실이로되어버린이상전쟁에대한이미지나견해가이전보다훨씬구체적이며전후의평화에관한문제가전쟁목적과밀접한관계가있었다는것은분명하다.병사로서전장에보내지거나적군에의해점령당한지역의사람들이개인적인체험을바탕으로전쟁에대해서다양한생각을갖게되었다는것을잊어서는안된다.추상명사로서의전쟁(war)이구체적인정관사가붙는전쟁(thewar)이되어버렸던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전쟁일반에대한생각이전혀없어진것은아니다.사실현실의전쟁이장기화하면할수록도대체전쟁이란무엇인가,평화를어떻게정의할것인가에대해서많은논의가있게마련이다.그러나전쟁당사자인유럽인들보다비참전국이었던미국,도중에탈락한러시아,부분적으로밖에전쟁에참가하지않은일본등에서이러한문제에대해서깊은논의가있었던것은우연이아니다.-76쪽
전쟁에대한관념적인견해,혁명의수단으로서의평화그리고전쟁과평화의상대화라는것을여기에서볼수가있다.이것과미국에서의전쟁·평화론을비교해보면흥미롭다.실제로일어난대전에자신들이참전한후미국은도덕적인의미를부여하고있었는데비해서러시아는전혀이것을무의미한것으로보았다.한편미국에서이전쟁은‘모든전쟁을없애기위한전쟁’이었는데,레닌등은머지않아찾아올사회주의와자본주의국가간의전쟁을염두에두고있었다.그러나전쟁과평화에대한양측의구별은매우애매했다고할수있다.즉,미국은전쟁속에서평화를묘사했고러시아는평화속에서전쟁을생각하고있었다.양자간의경계선은막연했다.그러한점에서는윌슨도레닌도평화를절대적인것으로보는종래의평화주의나상시임전체제(常時臨戰體制)를상정했던영구전쟁국가론과도다른개혁(미국)내지는혁명(러시아)의수단으로서의전쟁과평화라는이념을만들어냈던것이다.-99쪽
일본이구미제국을배우고선진국의전략론이나평화의개념을흡수하는데전념하던메이지시대에도일본이아시아의일원이며인종적문화적으로서양제국과다르다는인식이없어진적은없었다.다만대부분의경우,이러한인식은그렇기때문에더욱서구에수용되도록국력을충실히하고국제무대에서도이들국가와동등하게행동하지않으면안된다고보았다.전쟁과평화론의발전과정에서가장단적인예는삼국간섭(1895)에서러일전쟁(1904~1905)에이르는시기의일본의입장이었을것이다.모처럼청나라와의전쟁에서이겨승자의평화를획득하고도러시아,프랑스그리고독일의간섭에의해서그평화(남만주의권익)를포기하지않을수없었던것,10년후이번에는미국,영국그리고프랑스의암묵적인양해하에러시아를상대로전쟁을시작해남만주에서의지위를획득했다는것은일본에게전쟁과평화가얼마나구미열강의이해를바탕으로하고있었는가를보여주었다.아시아에고립되어있어서는전쟁도평화도바람직한방향으로이끌어갈수없다는것이었다.-102쪽
사회주의자나마르크스주의자이외에는선진국간의전쟁은반드시필연적인것은아니라는것이전전의일반적인견해였는데,전후이러한신념은더욱강화된다.또한강화되어야한다고보았다.평화가하나의이상(理想)으로서이전보다훨씬중심적인의미를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