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

$19.26
Description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관찰한 독특한 자서전이다. 거트루드 스타인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직접 기록한 자서전이지만 독특하게도 그녀의 평생 동반자였던 앨리스 B. 토클라스의 이름을 빌려 『Autobiography of Alice B. Toklas』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스타인의 필생의 꿈이던 『애틀랜틱 먼슬리』에 연재되는가 하면 30여 년 만에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저자

거트루드 스타인

저자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은 1874년 2월 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앨러게니에서 태어났다. 1946년 파리 근교 뇌유쉬르센에서 몰(沒). 거트루드 스타인은 단편집 『3인의 생애』, 장편 『미국의 형성』 등에서 스냅사진의 반복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스타일로 ‘문학적 큐비스트’라는 별명을 얻은 작가이지만, 그녀의 이름은 특정한 작품보다는 한 세대 또는 집단의 문학적 분위기와 더 밀접히 연결돼 있다. 그 세대 또는 집단의 이름은 ‘길 잃은 세대’ 또는 ‘파리의 미국인들’이다.
유년기를 빈에서, 청년기를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거트루드 스타인은 하버드의 자매교인 래드클리프여대에서 윌리엄 제임스로부터 심리학을 배운 뒤 다시 대서양을 건너가 파리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 뒤의 삶을 거기서 살았다. 유대인이었던 거트루드 스타인이 독일 점령기의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나이도 있었겠지만, 그 도시에 대한 그녀의 애착을 보여준다.
1910~20년대 파리에는 프랑스 예술가들 못지않게 미국 예술가들이 우글거렸다. 거트루드 스타인을 위시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만 레이 같은 이들이 바로 그 ‘파리의 미국인들’이었다. 이들은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막스 자코브, 콕토, 지드 같은 프랑스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파리를 진정한 국제적 예술 도시로 만들었다.
이 그룹의 한 가운데 있던 사람이 거트루드 스타인이었다. 파리 플뢰뤼스 거리 27번지에 있던 그녀의 아파트는 이 세대 작가?예술가들의 아지트였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헤밍웨이와 잠시 사이가 틀어졌을 때, 이들을 싸잡아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불렀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심술궂게 붙여준 이 딱지를 헤밍웨이는 영예로 받아들였다. 삶의 좌표를 잃은 채 방황하는 파리의 미국인들을 그린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의 제사(題詞) “당신들은 모두 길 잃은 세대입니다”는 이렇게 탄생했다.

목차

매일매일 오는 기적을 위하여: 거트루드 스타인의 문학과 삶-장영희

1. 파리에 가기 전
2. 파리에 도착하다
3. 파리의 거트루드 스타인
4. 파리 시절 이전의 거트루드 스타인
5. 1907년부터 1914년까지
6. 전쟁
7. 전쟁 이후 1919~1932년

역자 후기

출판사 서평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관찰한 이 전기는 마치 거울로 자신을 비춰 보듯이, 한 발자국 떨어져 자신을 바라보는 미적 효과와 동시에 자신의 내적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심리적 효과를 꾀하고 있다. 또한 회화성과 음악성이 가미된 스타인의 문장을 통해 우리는 걸출한 외모와 성격 안에 가려진 스타인,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하나의 여자,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장영희(전 서강대 영문과 교수)

“이 책은 명쾌하고 탄탄한 구성의 일화로 가득 찼으며, 앙드레 지드나 헤밍웨이보다도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서술체로 씌어졌다.” -도널드 서덜랜드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관찰한 독특한 자서전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 손턴 와일더 등
거트루드 스타인이 만난 20세기 문화를 주도한 인물들을 가장 잘 묘사한 책


20세기 전반의 미국과 유럽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유명한 미술품 수집가이자 소설가, 극작가이며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끝없이 다양하고 다채롭다. 작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타인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 물론 칭찬, 칭찬, 칭찬이지요.” 그리고 그녀가 일생 동안 고대했던 막대한 ‘칭찬’이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과 함께 왔다. 1933년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그녀는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진 것이다. 1920년대 유럽의 문화계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은 이전의 스타인의 작품과 달리 즉각적으로 비평적 호평을 받았고 독자들이 이 새로운 형태의 자서전을 환영했다. 거트루드 스타인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직접 기록한 자서전이지만 독특하게도 그녀의 평생 동반자였던 앨리스 B. 토클라스의 이름을 빌려 『Autobiography of Alice B. Toklas』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스타인의 필생의 꿈이던 『애틀랜틱 먼슬리』에 연재되는가 하면 30여 년 만에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그녀에게 일약 명성과 부를 가져다준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은 자서전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살몽과 기욤 아폴리네르는 이때 몽마르트르의 주민이었다. 살몽은 나긋나긋하고 발랄한 성격이었지만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에게서 특별히 흥미로운 점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살몽을 그냥 좋아했다. 한편 기욤 아폴리네르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었다. 특히 이 시기의 기욤은 참으로 눈부셨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처음 알았을 때 기욤은 다른 작가와 결투를 앞두고 있었다. 페르낭드와 파블로는 이 결투 이야기를 할 때면 깔깔 껄껄 웃으며 몽마르트르에서나 통하는 속어들을 아주 많이 섞어가며 몹시 신나했는데, 거트루드는 그들과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때라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이 결투를 짧게 정리하자면, 기욤이 한 남자에게 결투 신청을 했다는 것, 그리고 막스 자코브는 그 결투의 입회인이자 기욤의 목격자였다는 것이다. 기욤과 결투 상대자는 각자가 좋아하는 카페에 따로 앉아서 두 사람의 입회인들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이 결투의 결말에 대해서 결투가 없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짜 재미있는 것은 양측의 입회인과 목격자들이 내세운 결투 수칙이다. 결투 당사자들은 매 시간 커피를 한 잔 마셔야 했다. 물론 입회인들이 수칙을 정리하기 위해 이쪽 저쪽 카페에 갈 때도 커피를 마시고, 다시 두 입회인이 상대 결투자와 만날 때도 커피를 마셔야 했다. 이 밖에 다른 조건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커피를 마실 때 브랜디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그들은 입회인이 없을 때는 얼마나 자주 커피를 마실 것인가도 정해야 했다. 이 모든 것 때문에 끝없는 만남과 끝없는 토론과 끝없는 부가항목이 자꾸 만들어졌다. 이 작업은 며칠 동안, 아마도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들이 마신 커피 값과 브랜디 값을 결국 누가 치렀는지는 그 누구도, 카페 종업원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 사건은 아폴리네르가 한 푼 없는 가난뱅이 시절 일어난 일이라 더욱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101쪽

마티스는 피카소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우정이 두터워지는 게 불안했다. 마티스는 거트루드 여사는 지방색과 무대적 가치를 좋아하는 분이라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기질 어느 하나가 피카소 같은 사람과 진지한 우정을 나누기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었다. 마티스는 여전히 플뢰뤼스 거리를 자주 찾았지만 그들 사이에 정직한 교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무렵 거트루드 스타인과 그녀의 오빠는 벽을 장식한 그림들의 화가들을 모두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물론 죽은 화가나 늙은 화가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이날 거트루드 스타인은 화가들에게 행복한 점심 식사를 대접하면서 그들을 자신들이 그린 그림과 마주 앉도록 좌석을 배치했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모두는 그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티스가 떠나는 순간 문에서 돌아서서 방 안을 돌아보다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연출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111쪽

거트루드 스타인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의 책상 위에 영어 책들은 늘 넘치지만 프랑스어 책은 한 권도, 심지어 프랑스어 신문 쪼가리도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당신은 프랑스어를 절대 읽지 않나요? 비단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주 하는 질문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요, 난 내 눈이 본 것을 느낍니다. 귀로 들리는 언어가 무엇인지는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언어가 아니라 목소리의 색깔과 리듬을 듣습니다. 하지만 눈으로는 단어와 문장을 보는데,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한 언어는 영어 하나입니다. 긴 세월 일어난 숱한 일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는 내가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이 내게 내 눈, 그리고 나의 영어와 더 내적으로 홀로 있게 해줍니다. 만약 내가 영어 사용자와 지냈다면 과연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내가 쓴 단어를 읽지 못하고 대부분은 심지어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삶, 그리고 영어와 내 자신과 홀로 있는 존재가 좋습니다. -119쪽

피카소와 같은 궤적으로 거트루드 스타인도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은 스페인인들처럼 추상적이고 잔인합니다. 야만적인 게 아니라 잔인합니다. 대부분의 유럽인들과는 달리, 스페인 사람은 세상에 별 미련이 없습니다. 스페인 사람의 물질주의는 생존과 소유를 위한 물질주의가 아니며, 행동과 추상의 물질주의입니다. 그러므로 입체파는 스페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함께 간 스페인 여행에서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입체파가 등장하고 일년 남짓 지난 때였는데 스페인에서 입체파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지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의 기념품점들에는 흔한 우편엽서 대신에 사각형의 작은 틀들이 있었다. 그 틀 안에는 담배, 진짜 담배로, 파이프, 손수건 조각 등등이 입체파 그림 작품과 절대적으로 똑같은 배열방식으로 다른 오브제들을 상징하는 잘린 종이들에 의해 싸여 있었다. 모던이라는 말은 스페인에서는 이미 수세기 전부터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151쪽

파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Daniel-Henry Kahnweiler)가 파리에 왔다. 독일인인 그는 프랑스 여자와 결혼한 다음 영국에서 오래 살았었다. 그는 영국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파리에서 화랑을 열겠노라 꿈을 키웠고 그 꿈을 위한 자금을 열심히 모았다. 때가 왔고, 그는 비뇽 거리에서 조붓한 작은 화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신의 입지가 너무 좁은 걸 절감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입체파 그룹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피카소는 늘 칸바일러를 의심하며 거리를 두려 했지만, 결국 사람들은 칸바일러의 관심과 믿음이 진정임을 알아보았고 그에게 자신들의 작품을 시장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또 그렇게 해낼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입체파 화가들 모두가 칸바일러와 계약을 맺었다. 칸바일러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입체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칸바일러는 오후에는 자기 화랑을 오가는 이 화가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이 시간들은 실상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의 시각에 맞춰 미술작품의 조류를 공부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칸바일러는 입체파 화가들을 믿었으며, 입체파가 미래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전쟁 발발 일년 전, 그는 자신의 후원 목록에 후안 그리스를 첨가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기 정확하게 두 달 전에 거트루드 스타인은 칸바일러 화랑에서 후안 그리스의 회화들을 보고는 세 점을 구입했다. -176쪽

콘스탄스 플레처는 이제 빛나는 청춘은 아니라 해도 여전히 매력이 있었다. 바느질과 수예를 좋아하는 나는 그녀가 꽃을 수놓는 양식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도안도 없이 그저 양손으로 리넨을 잡고 가끔 천을 눈에 가까이 대고서 수를 놓았는데 나중에 보면 아름다운 화관이 수놓여 있었다. 콘스탄스 플레처는 유령들을 아주 좋아했다. 빌라 쿠로니아에는 유령이 둘 살고 있었고, 마벨은 유령 이야기로 미국인 방문객들을 겁주는 걸 아주 재미있어 했다. 한번은 마벨이 조 데이비드슨과 이본느 데이비드슨, 폴로렌스 브래들리, 메리 푸트와 다른 손님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모두를 공포감에 미치게 만들고는 급기야 지역 사제를 불러 악령을 쫓는 의식까지 벌였으니 그날 손님들의 심리상태가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하지만 콘스탄스 플레처만큼은 유령들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그 집에서 자살한 영국 관료의 유령 생각에 점점 빠져들었다. -213쪽

우리가 빌라 쿠로니아에 머물 때 앙드레 지드(Andr? Gide)가 나타났다. 조금 맹숭맹숭한 저녁이었다. 우리가 뮤리엘 드레이퍼와 폴 드레이퍼를 만난 것도 그날이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언제나 폴을 아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