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우리 마음의 본질이라 할 진심眞心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파한 ‘진심직설’을, 체험에 기반해 쉽게 풀어쓴 강의록이다. 진심직설은 그 내용이 진심에 대한 바른 믿음인 진심정신眞心正信에서 시작하여 진심의 본체와 작용, 진심을 발견하는 10가지 방법인 진심식망眞心息妄 등을 거쳐 육신의 사후에는 진심이 어디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진심소왕眞心所往으로 끝난다.
[진정한 황홀은 무욕의 상태를 재발견하는 것]
욕망을 만족시켰던 순간을 한번 떠올려봅시다. 여러분이 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던 때를 떠올려보세요. 그 순간의 마음에는 아무런 욕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최고의 축복은 바로 그 순간에 도달한 때 일어납니다. 오랜 추구가 이루어지면 충분히 만족하고, 기쁨에 들뜨고 황홀하죠. 축복의 순간입니다. 그때의 마음은 무욕의 상태입니다. 우리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서 결국 얻어지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욕구가 없는 상태란 말입니다. 더 이상 어디론가 달려가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멈춘 마음이에요. 깨달음이라는 상태를 얻고자 하는 마음도 똑같습니다. 추구하는 마음 자체가 멈춘 무욕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으면 될까요? 그렇게 마음을 먹지만 저 밑바닥에서 뭔가 자꾸 올라옵니다. 그렇게 올라오는 마음이 모두 멈춘 상태가 무욕의 상태이고 가장 만족한 상태입니다. 더 이상 추구할 무언가가 없는 상태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상태입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그럼 애초부터 추구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어린아이가 그렇죠.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고, 그냥 그 순간을 즐깁니다. 이미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점차 마음의 구조가 형성되어서 나와 대상이 생겨나고,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생겨나면 이제 그것을 향해 평생 달려갑니다. 열심히 달려가서 그 목표를 이룬 사람도 있고, 목표를 이루고서 다른 목표를 정해놓고 또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도 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달려가는 마음만 경험합니다. 추구가 멈춘 무욕의 상태를 발견하지 못한 채 끝없는 욕망에 허덕이다가 떠나갑니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경험하고 즐기면서 충분히 자유롭게 에너지를 쓰면서 살다가 가도 됩니다. 그것이 삶이니까요. 다만 매순간 욕망에 시달리지 말고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말이에요. 이미 우리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욕구만 멈추면, 이미 무욕의 상태에요. 욕구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구조로 인해 생겨나는 흐름이에요. 이 말을 듣고 ‘아, 그래? 그러면 멈춰야지.’한다면 마음이 멈춘 상태를 상정해놓고 그만 달리겠다는 ‘의도’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또다시 그 의도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됩니다. 모든 의도는 마음을 달리게 합니다. 의도를 멈추려는 마음 자체가 하나의 의도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 자체가 묘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상태’가 ‘얻을 것이 없는 상태’라는 굉장히 묘한 구조 속에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도 어렵지 않으면서도 너무도 어렵습니다.
욕구가 충족되면 마음은 정지합니다. 더 이상 그 무엇도 원하지 않으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도 않는 마음상태가 되죠. 즉 무욕의 상태입니다.
가장 커다란 만족은 결국 욕망 없음에 이르렀을 때 얻어집니다. 아랫배와 연관된 물질적인 욕망과 육체적인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면 이제 가슴의 기쁨이 느껴지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가슴의 욕망이 충족되어 커다란 기쁨이 오면 가슴이 벅차죠. 그리고 다음은 지성적인 황홀감으로 이어집니다. 인도에는 이런 에너지 흐름에 관한 차크라chakra 개념이 있습니다. 최상의 누진통漏盡通을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열렸다’고 표현합니다. 상징일 수도 있고 에너지 흐름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중요한 것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이 아랫배에서 완전히 충족되면 가슴의 충족으로 이어지고, 가슴이 충족되면 지성적인 황홀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황홀감은 어떤 건가요? 간단히 말하면 ‘내’가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빙 둘러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무욕의 상태이지요. 그 무욕의 상태를 발견하십시오.
[진정한 황홀은 무욕의 상태를 재발견하는 것]
욕망을 만족시켰던 순간을 한번 떠올려봅시다. 여러분이 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던 때를 떠올려보세요. 그 순간의 마음에는 아무런 욕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최고의 축복은 바로 그 순간에 도달한 때 일어납니다. 오랜 추구가 이루어지면 충분히 만족하고, 기쁨에 들뜨고 황홀하죠. 축복의 순간입니다. 그때의 마음은 무욕의 상태입니다. 우리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서 결국 얻어지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욕구가 없는 상태란 말입니다. 더 이상 어디론가 달려가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멈춘 마음이에요. 깨달음이라는 상태를 얻고자 하는 마음도 똑같습니다. 추구하는 마음 자체가 멈춘 무욕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으면 될까요? 그렇게 마음을 먹지만 저 밑바닥에서 뭔가 자꾸 올라옵니다. 그렇게 올라오는 마음이 모두 멈춘 상태가 무욕의 상태이고 가장 만족한 상태입니다. 더 이상 추구할 무언가가 없는 상태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상태입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그럼 애초부터 추구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어린아이가 그렇죠.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고, 그냥 그 순간을 즐깁니다. 이미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점차 마음의 구조가 형성되어서 나와 대상이 생겨나고,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생겨나면 이제 그것을 향해 평생 달려갑니다. 열심히 달려가서 그 목표를 이룬 사람도 있고, 목표를 이루고서 다른 목표를 정해놓고 또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도 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달려가는 마음만 경험합니다. 추구가 멈춘 무욕의 상태를 발견하지 못한 채 끝없는 욕망에 허덕이다가 떠나갑니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경험하고 즐기면서 충분히 자유롭게 에너지를 쓰면서 살다가 가도 됩니다. 그것이 삶이니까요. 다만 매순간 욕망에 시달리지 말고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말이에요. 이미 우리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욕구만 멈추면, 이미 무욕의 상태에요. 욕구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구조로 인해 생겨나는 흐름이에요. 이 말을 듣고 ‘아, 그래? 그러면 멈춰야지.’한다면 마음이 멈춘 상태를 상정해놓고 그만 달리겠다는 ‘의도’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또다시 그 의도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됩니다. 모든 의도는 마음을 달리게 합니다. 의도를 멈추려는 마음 자체가 하나의 의도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 자체가 묘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상태’가 ‘얻을 것이 없는 상태’라는 굉장히 묘한 구조 속에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도 어렵지 않으면서도 너무도 어렵습니다.
욕구가 충족되면 마음은 정지합니다. 더 이상 그 무엇도 원하지 않으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도 않는 마음상태가 되죠. 즉 무욕의 상태입니다.
가장 커다란 만족은 결국 욕망 없음에 이르렀을 때 얻어집니다. 아랫배와 연관된 물질적인 욕망과 육체적인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면 이제 가슴의 기쁨이 느껴지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가슴의 욕망이 충족되어 커다란 기쁨이 오면 가슴이 벅차죠. 그리고 다음은 지성적인 황홀감으로 이어집니다. 인도에는 이런 에너지 흐름에 관한 차크라chakra 개념이 있습니다. 최상의 누진통漏盡通을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열렸다’고 표현합니다. 상징일 수도 있고 에너지 흐름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중요한 것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이 아랫배에서 완전히 충족되면 가슴의 충족으로 이어지고, 가슴이 충족되면 지성적인 황홀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황홀감은 어떤 건가요? 간단히 말하면 ‘내’가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빙 둘러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무욕의 상태이지요. 그 무욕의 상태를 발견하십시오.
니르바나, 번뇌의 촛불이 꺼지다(하) (진심직설 강의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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