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시계와문명』은이탈리아의저명한역사학자카를로치폴라가근대초유럽문명의극적인부상을기술진보의측면에서탁월하게설명한저작으로『대포,범선,제국』과함께유럽근대사의고전으로평가받는책이다.
13세기후반,가장후진적인문명인유럽에서최초의기계시계가탄생했다.유럽은왜시계를만들었을까?비슷한시기에출현했던대포와시계는어떤특별한관계가있었을까?극소수의숙련장인들의이주가과연국가경제의흥망을좌우했을까?시계는과학혁명과산업혁명에어떤핵심적인역할을했을까?마지막으로아...
『시계와문명』은이탈리아의저명한역사학자카를로치폴라가근대초유럽문명의극적인부상을기술진보의측면에서탁월하게설명한저작으로『대포,범선,제국』과함께유럽근대사의고전으로평가받는책이다.
13세기후반,가장후진적인문명인유럽에서최초의기계시계가탄생했다.유럽은왜시계를만들었을까?비슷한시기에출현했던대포와시계는어떤특별한관계가있었을까?극소수의숙련장인들의이주가과연국가경제의흥망을좌우했을까?시계는과학혁명과산업혁명에어떤핵심적인역할을했을까?마지막으로아시아,특히중국은어째서기계시계를만들지못했는가?이책은이러한질문들에답하면서,유럽과아시아의극적인근대사적분기(分岐)를이해하는데귀중한통찰을제공한다.
과학혁명과산업혁명을예비한13세기기계시계의탄생!
유럽과아시아를넘나드는기술진보의역사,
“왜유럽은성공하고중국은실패했는가?”
『대포,범선,제국』에이은카를로치폴라의또하나의역작
시계의역사로살펴본근대서양기계문명의태동
“우주는신성한존재와유사한것이아니라시계와비슷하다.”
-요하네스케플러(JohannesKepler,1571~1630년)
“증기기관이아니라시계가근대산업사회의핵심기계이다.”
-루이스멈포드(LewisMumford,1895~1990년)
유럽에서최초로출현한기계시계
13세기유럽에최초의기계식시계가등장했다.그이전에도해시계나물시계와같이시간을측정하는정교한기구가있었지만,그동력을기계로대체한것은유럽이처음이었다.시계의역사에서가장획기적이고근본적인발전은13세기후반‘폴리옷이달린굴대탈진기’가등장하면서이루어졌는데이것이야말로진정한의미에서기계시계의탄생으로볼수있다.당시유럽은크고작은도시들이성장하면서봉건세계와는독립된자유롭고실용주의적인문화적환경이조성되었다.14세기유럽에닥쳐온흑사병으로거대한인구학적재앙이일어나노동력이급감했고,유럽문명은더욱기계지향적으로변해갔다.인간의힘을기계의힘으로대체하고자하는경제적유인과수공업자들이자치를누리는도시의발달은기계시계가탄생할수있는풍부한토양을제공했다.
최초의기계식시계는도시한가운데설치된거대한공공시계였다.14세기에이르면이러한공공시계는유럽전역에확산되었다.성당,교회,시청사등도시의중심시설에설치되어시간마다자동으로종을울리는대형시계의존재는세계어디에서도찾아볼수없는광경이었다.(1309년에밀라노산테우스토르조교회를시작으로1324년보베의대성당,1335년밀라노산고타르도교회,1340년클뤼니수도원,1344년파도바광장,1353년제노바,1356년볼로냐,1359년샤르트르대성당,1362년페라라,1370년파리궁정에공공시계가설치되었다.)
사람들은자신들이사는곳의공공시계를무척자랑스러워했고,15세기프랑스의한문헌에따르면“도시를빛낼크고훌륭한시계를갖고있다는명성을두고다른도시와경쟁했다.”초창기의기계식시계는매우비쌌기때문에초창기시계의확산은공공부문에서활발할수밖에없었다.그러나도시의자부심,실용성,기계에대한관심이결합하여비교적높은비용에도불구하고시계의확산이촉진되었다.
서양은왜기계시계를만들었나?
기계식시계는해시계나물시계의대체물은결코아니었다.초창기기계식시계는매우부정확했기때문에해시계나물시계에근거하여시침을앞뒤로돌려시간을정정해야했다.“왜유럽이기계식시계를만들었는가?”라는질문에치폴라는무엇보다기계적세계관이유럽에서싹트고있었기때문이라고설명한다.우주를각각의부품이맞물려돌아가는조화로운시계장치로비유하는표현은14세기철학자니콜라스오레스무스의작품에서부터등장하고있었다.그는우주는신이창조해작동시키는거대한시계장치로서“모든톱니바퀴들이아주조화롭게움직인다”고썼다.
기계시계의발명이전에이미유럽전역을뒤덮었던방앗간(mill)과각종자동장치들은유럽인들이가졌던기계에대한관심의의미심장한증거들이다.물레방아는기원전1세기소아시아에알려졌고수직형태의풍차는7세기페르시아에알려져있었지만,방앗간건설이진정으로유행한곳은중세유럽이었다.무명의수공업자들은일련의기계장치들을고안해물이나바람에서나온회전력을망치,압축기,드릴,맷돌등여러종류의잘분화된운동장치로전환했다.
여기에는물론주변의봉건세계와독립된자유민들의연합체인도시의발달,수공업자들의사회적지위,도시를휘감고있던실용주의적분위기와부족한노동력을기계로대체하려는경제적요인등이심층적으로작용했다.
대포를만드는사람이곧시계를만든사람들
기계의힘으로인력을대체하려는유럽인들의관심은다른문명권에서찾아보기어려우며유럽만의독특한성격이라고파악하는치폴라의관점은대포를탑재한원양범선이유럽에결정적인군사적우위를가져왔음을설명하는『대포,범선,제국』에서도드러난다.이책『시계와문명』에서치폴라는기계시계의탄생이과학혁명과산업혁명에미친영향을평가하면서,언뜻매우상이하게보이는시계와대포가역사적으로커다란친연관계를가지고있음을논한다.오늘날손목시계와유도미사일을동일한가게에서구할수는없을지라도,놀랍게도유럽에서최초로시계를제작했던사람들은바로대포장인들이었다.치폴라는초창기대부분의시계가쇠나청동으로만든거대한공공시계였으므로시계제작자들이대장장이나자물쇠공,총포공등일반적으로금속을다루는노동자들이었음을밝힌다.13세기후반유럽에서기계식시계와대포가같은시기에등장했다는사실은단순히역사적우연으로치부할수없으며,시계장인과대포장인은유럽금속수공업자계층의괄목할만한성장의소산이었던것이다.즉대포와시계의동시출현은유럽식발전의특징을증언하는것이며앞으로전개될역사의양상을예고하는것이었다.
시계의대량생산이과학혁명과산업혁명을예비하다
초창기거대한공공시계였던기계식시계는15세기에태엽이동력으로등장하여크기가작아지면서가내용시계,회중시계로발전했고,16세기에들어서면유럽의신흥부유층의사치품으로등극하게된다.이때부터시계장인은대포장인보다는보석세공인에가까운형태로진화하였고,시장이확대되면서시계제조업중심지가생겨나기시작했다.처음에는독일이선두주자를달려15세기말아우크스부르크와뉘른베르크가시계제조업의중심지로부상했지만,30년전쟁의참화로산업의중심추가영국(런던)과스위스(제네바)로옮겨갔다.
17세기전반기에는시계제작의전문화가이루어져,시계장인들은탈진기,도르래,태엽,외장등각각의부품을제조하는수공업자들로분화되었다.이러한전문화는대단히의미심장한데,교환가능한부품으로구성되고전문화된직공의손을거친대량생산시계는산업혁명으로가는길을주도했다고볼수있기때문이다.
실용적목적으로대량생산된시계는유럽사회의심성전반에커다란영향을미쳤다.케플러는“우주는신성한존재와유사한것이아니라시계와비슷하다”고말했으며,로버트보일은“우주는거대한시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