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발견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힘의 정체를 찾아서)

한국인의 발견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힘의 정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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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학으로 본 한국인 굴기의 대서사,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본격적인 시작
『한국인의 발견』은 우리 한국인이 해방 이후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시대정신을 소개하며, 나아가 한국인들이 20세기를 통해 형성한 ‘힘’, 즉 ‘사상’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역사를 이야기한다. 한국인들의 사상과 정체성에 접근하기 위해 저자 최정운 교수가 찾아낸 중요한 경로는 한국 현대 소설이었다. 현대 소설에 담긴 ‘픽션’은 소설가들이 당대 현실과 조응하며 기록한 가장 온전한 ‘사상’의 모습이고, ‘픽션’의 밑바닥에는 늘 시대적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일주하며 그 과정에서 발견된 우리 역사는 ‘예술 작품’의 연속이다. 이리하여 저자 최정운 교수는 전작 《한국인의 탄생》과 이 책을 통해 20세기 한국인들이 걸어온 근대로의 여정을 하나의 대서사로 완성했고, 이로써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발굴과 정립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우리의 반세기 현대사는 자랑스러운 역사라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피와 눈물이 흘렀고, 부끄러운 역사라 하기에는 너무나 영웅적인 투쟁의 연속이었다. 지금 그 시대를 돌아보는 것은, 그토록 거친 역사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거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최정운

저자 최정운은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시카고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서양 정치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부재를 깨닫고 이를 발굴, 정립하는 연구에 매진해왔다. 전작 『한국인의 탄생』과 이 책 『한국인의 발견』은 그러한 지적 여정의 결과물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인의 탄생』(2013년) 『오월의 사회과학』(1999년), 『지식국가론』(1992년)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푸코의 눈: 현상학 비판과 고고학의 출발」, 「새로운 부르주아의 탄생: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의 근대사상적 의미」, 「개념사: 서구 권력의 도입」, 「국제정치에 있어서 문화의 의미」, 「권력의 반지: 권력담론으로서의 바그너의 반지 오페라」 등이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제1장 문학에 나 있는 사상으로의 길
우리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하기 전에│사상으로의 접근│문학 작품 해석을 통한 사
상사의 구성│소설 해석 시 주의해야 할 점들

제2장 해방과 건국
해방 공간

취약국가

제3장 전쟁과 아프레게르
전쟁의 성격

아프레게르
손창섭의 「공휴일」-1952년│황순원의 「소나기」-1953년│황순원의 『카인의 후
예』-1953년│손창섭의 「사연기」-1953년│손창섭의 「비 오는 날」-1953년│손
창섭의 「생활적」-1954년│김동리의 「밀다원 시대」-1955년

제4장 한국인의 부활
되살아나기
손창섭의 「잉여인간」-1958년 9월│손창섭의 「포말의 의지」-1959년 11월│손창
섭의 「혈서」-1955년 1월│손창섭의 「미해결의 장-군소리의 의미」-1955년 6월
│손창섭의 「유실몽」-1956년 3월│손창섭의 「층계의 위치」-1956년 12월│손창
섭의 「소년」-1957년 7월│손창섭의 「치몽」-1957년 7월│손창섭의 「침입자-속
「치몽」」-1958년 3월

부활의 마법
손창섭의 사실주의│장용학의 「요한 시집」-1955년│영겁회귀

생명을 찾아서
손창섭의 「미해결의 장」-1955년 6월│손창섭의 「미소」-1956년 8월│장용학의
「요한 시집」-1955년│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1955년

출발
손창섭의 「유실몽」-1956년 3월│장용학의 「비인탄생」-1956년│송병수의 「쑈리
킴」-1957년│이어령의 『저항의 문학』-1956년│1950년대 중반의 변화들

욕망과 분노
선우휘의 「불꽃」-1957년 7월│장용학의 「역성서설: 비인탄생 제이부」-1958년 3
월│손창섭의 「잡초의 의지」-1958년 8월│손창섭의 「잉여인간」-1958년 9월│
1950년대 말의 현실

제5장 두 개의 혁명
혁명 전야
이범선의 「오발탄」-1959년 10월│손창섭의 「포말의 의지」-1959년 11월│장용
학의 「현대의 야」-1960년 3월

4·19와 그 성격

4·19가 연 세상
최인훈의 「가면고」-1960년 7월│최인훈의 『광장』-1960년 10월

5·16과 그 성격

5·16이 연 세상
5·16의 첫인상: 김동리의 「등신불」-1961년 11월│최인훈의 「구운몽」-1962년 4월

제6장 역사와 개성의 시대-1960년대
역사와 현재의 발견
최인훈의 『회색인』-1963년 6월│최인훈의 『서유기』-1966년 6월

생명과 개성의 시대
1960년대 한국인의 자아 구조│1960년대 한국인의 정체성│1960년대 한국인의 자
아와 시간과 욕망

제7장 분열과 연합의 시대-1970년대
한국 사회의 분열
서곡: 최인훈의 「하늘의 다리」-1970년│청년의 등장│여성의 등장│노동자, 빈민
계급의 등장│부르주아 계급의 등장

순수와 참회의 시대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1972년│최인호의 『바보들의 행진』-1974년│윤흥길의
「양」-1974년│윤흥길의 「장마」-1976년│전상국의 「아베의 가족들」-1979년

인간을 위한 싸움
황석영의 『장길산』-1974~1984년│최인훈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1976년│
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 「날개 또는 수갑」, 「창백한 중년」-1977년│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년│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79년

제8장 투쟁의 시대-1980년대
아마겟돈을 향하여: 전조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1979년│전상국의 「우상의 눈물」-1980년

5·18의 전개와 의미

존엄성을 찾아서
이철용의 『어둠의 자식들』-1981년│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1981년

지성을 찾아서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1982년│최인호의 「고래 사냥」-1984년

정체성 위기
이문열의 『변경』-1986년│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8년

제9장 근대로의 진입-1990년대
정체성 만들기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1990년│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1992년

공동체의 복원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1995년│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1995년

근대로의 진입
시대 구분: 공지영의 『고등어』-1999년

제10장 결론

후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한국인의 탄생』, 『오월의 사회과학』 저자
최정운 서울대 교수가 완성한 20세기 한국인들의 근대로의 여정

20세기 한국인들의 근대로의 여정

우리의 비틀거린 반세기 현대사는 원치 않았던 거칠고 넓은 세상을 두루 여행한 역사였다. 우리 민족은, 좌우의 이데올로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아와 죽음의 공포에서부터, 전쟁도, 어두운 죽음의 세계도, 부활도, 혁명도, 쿠데타도, 희망의 세상도, 내전도, 계급 갈등도,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죽음을 넘어선 투쟁도, 군사독재도, 민주주의도 경험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시련을 두루 겪었다. 그렇다고 모든 시련을 섭렵했다고 안도할 수도, 자만할 수도 없다. 자랑스러운 역사라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피와 눈물이 흘렀고, 부끄러운 역사라 하기에는 너무나 영웅적인 투쟁의 연속이었다.
이 책의 부제에서 ‘힘의 정체’란 일차적으로 20세기 역사의 주인공 한국인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힘의 정체’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현실에 균열을 내고 사건을 만든 근본적인 힘으로서 한국인의 시대정신을 뜻하며, 나아가 시대정신을 담고 그것을 끊임없이 갱신해온 한국인의 내면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힘의 정체’는 ‘사상’이라는 범주로 합류한다. 그런데 그 ‘힘’이란 당대 현실에 반응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 책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되지만 사실 ‘사상’의 변화가 가장 심대하게 일어나는 때는 세상을 뒤바꾸는 역사적 정치적 사건의 전후 시기였다. 결국 이 책은 사상의 탐사 과정에서 발견된 역사적 현실, 주요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도 그 어느 역사서보다 근본적인 이해를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해방 직후의 분위기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의 분위기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환희와 축제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해방 후 남한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해방 공간에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마음대로 편안하게 자기 생각을 펴지 못하고, 일제가 물러가는데도 서로 눈치를 보며 자유를 느끼는 게 아니라 더욱 무시무시한 시대를 예감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그들은 당시 정치 문제, 즉 건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당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주변의 조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믿을 수 없었다. 한편 해방 공간의 한국인들은 ‘국가’나 ‘나라’, ‘관(官)’에 대해 전혀 신용하지 않았고, 그런 그들에게서 ‘우리가 대한민국을 만든다’라는 뚜렷한 의식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오늘날 현실 인식에 기대어 우리는 종종 한국인들이 ‘강한 국가’를 원하는 ‘국가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때 한국인들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로크적 자연상태와 유사했던 해방 공간
일제가 물러간 해방 공간에는 권력 공백이 생겼고 ‘자연상태’가 돌아왔다. 그러나 해방 공간의 자연상태는 구한말의 ‘홉스적 자연상태’는 아니었고 ‘로크적 자연상태’에 가까웠다. 그 속에서 한국인들은 앞다퉈 수많은 정치 단체와 정당들을 만들어냈다. 해방 공간의 자연상태와 그로 인한 혼란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홉스적 사회 계약’이 필요했고 이는 자연스레 미국에 대한 의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군정은 홉스적 사회계약에 의거한 전제군주로서 남한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법치주의로 남한을 다스렸고 따라서 한국인들끼리 정치가 가능한 하위 정치 공간이 열렸다. 한국인 정치 집단들은 한편으로는 미군정의 지배를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하위 정치 공간에서 자기 보호를 위한 단체 결성과 테러 등 권력 투쟁을 벌였다. 해방 공간은 이러한 이중적인 정치 행위가 구조화된 공간이었다.

취약국가로 태어난 민족국가 대한민국
신생 대한민국은 분명 민족국가로 만들어진 나라였다. 하지만 건국 과정에서 자원의 부족을 급박하게 보충하기 위해 취한 초기 조치들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국가 전체에 광범위한 결과를 야기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취약국가’로 태어났다. 우선 대한민국은 ‘친일파’를 대거 재등용했고 이 때문에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채 역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은 국가로서의 능력도 형편없었다. 재정이 없어서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고 모든 정부 사업은 싸구려로 부실하게 집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부분은 ‘부실과 부패의 온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또 폭력 수단의 보유라는 측면에서도 대한민국의 상황은 너무나 열악했다. 대한민국이 폭력적 행위를 저지르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무력, 폭력적 능력이 많고 넘쳐서가 아니라 폭력 수단과 국가로서의 능력이 모자란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주체가 되지 못한 한국인들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외국에서 꾸어 오는 식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바로 민족적 주체 의식이었다. 대한민국은 시작에서 민족주의가 부족한 나라였지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오히려 민족, 대중을 두려워했다. 민족적 주체 의식의 결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주체 의식의 부족은 국민의 생명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고, 거창 양민 학살, 보도연맹원 학살, 국방경비군 아사 사건 등은 모두 이로 인해 저질러진 역사였다. 대한민국은 모든 젊은이들의 생명과 자원을 총동원하여 휴전선을 다시 긋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존재는 생존자들의 경우에도 긍정되지 못했다. 한국전쟁은 한국인들에게 여러 층위의 온갖 악몽을 심어놓았다. 우리는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였고, 형제를 학살한 살인자들이었다. 열심히 싸워 나라를 지켰지만 영웅도 없었다. 한국전쟁은 흡사 패전이었다.

아프레게르와 한국인의 부활
전후 한국은 공동묘지 같은 을씨년스런 폐허였다. ‘재건’의 구호도 들리지 않았다. 한국이 겪은 아프레게르(apr?s guerre)는 한 점의 빛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죽음만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1950년대 전반 손창섭, 황순원, 김동리 등이 그린 우리의 모습은 죽음이었고 한국은 죽음이 편재하는 세상이었다. 이 시기 손창섭과 장용학 등이 수행한 문학적 실천의 핵심은 괴롭고 암울한 현실을 더욱 괴롭고 무겁게, 도망갈 곳 없이 끝없이 반복될 현실로 만들어 한국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현실을 대안이 없는 무게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문학적 실천은 죽은 시체 같은 한국인들을 되살리는 부활의 마법이 되었다. 한 문학가는 1950년대를 단순히 서양 문학을 모방하는 데 그쳤을 뿐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 한심한 시대였다고 회고했지만 손창섭을 위시한 이 시대의 작가들이야말로 우리 현대사 최고의 영웅들이었다.

부활을 넘어서―욕망하고 분노하는 한국인
1950년대 후반부터 출간된 대부분의 소설들에서 한국인은 욕망의 주체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1950년대 말이 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그야말로 욕망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욕망하는 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욕망은 좌절의 계기였고 계속된 좌절은 분노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여 선우휘의 「불꽃」, 장용학의 「역성서설」 같은 작품이 발표되었고 1958년 9월에는 드디어 손창섭의 「잉여인간」이 나왔다. 「잉여인간」의 채익준은 한국 문학에서 최초로 등장한 ‘분노하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낼 인물이었다. ‘영겁회귀’의 사상적 결과로 한국인은 부활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절대 빈곤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영겁회귀’가 가능했던 사상적 조건과 본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한국인은 부활을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했다.

먼저 당도한 혁명 4·19
1950년대의 비참함을 자각한 우리 민족은, 한편에서는 민중의 분노가 무르익어감을 통해, 또 한편에서는 민족을 이끌고 나갈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혁명에 다가갔다. 먼저 당도한 혁명은 4·19였다. 그런데 4·19는 민중의 폭발을 두려워한 언론계 지식인들(특히 『사상계』)에 의해 ‘대학생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일으킨 의거이자 혁명’이라는 해석을 부여받았고, 이 해석이 요지부동으로 모든 교과서와 담론에서 공식 정론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 정론은 4·19의 힘을 두 단계에 걸쳐 거세한 것이었다. 첫 단계에서 언론계 지식인들은 대학생들을 긴급하게 무대에 투입하여 그동안 시위의 주된 참가자였던 고등학생과 도시 빈민들의 존재를 지우는 한편, 대학생들로 하여금 ‘민주주의’ 구호를 외치게 함으로써 시위의 성격을 바꾸었다. 다음 단계에서 그들은 권력을 기성 정치인들의 손에 넘겼고, 그렇게 사태는 종결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개입은 의도치 않은 정치적, 역사적 왜곡을 가져왔다. 권력을 넘겨받은 민주당과 제2공화국은 4.19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식인들의 각본에 따라 외쳐진 ‘민주주의’를 위한 ‘놀이’를 벌였다. 그들은 고등학생과 민중들의 좌절과 분노가 폭발한 원인, 이승만 시대를 통해 쌓이고 쌓인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제2공화국은 역사를 4·19 이전, 원점으로 되돌리고 있었고, 혁명은 다시 시작되어야 했다.

‘붉은 심장의 설레임’을 가진 세대의 등장
4·19의 가장 의미심장한 결과는 바로 4·19세대의 출현이었다. 4·19와 5·16 사이의 일 년 남짓한 기간에 최인훈은 「가면고」와 『광장』을 발표했는데 두 작품은 최근 민족적 영웅에서, 스타로, 그리고 한낱 배우로, 꼭두각시로 전락한 ‘4·19세대’ 젊은이들의 고뇌를 다루고 있었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4·19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4·19에서 그의 세대는 혁명을 목전에 앞두고 무대에서 끌어내려졌다. ‘혁명’ 후에 발표된 『광장』에서 이명준은 미리 포기하지 않고 직접 제 발로 계시 받은 특별한 운명을 찾아 ‘광장’을 찾아가봐야 했다. 그러나 4·19세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붉은 심장의 설레임’을 느낀 세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