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시집

운곡시집

$15.00
저자

공선정

출판사 서평

가.삶이란기다림의온축蘊蓄이다

삶은하릴없는기다림
무턱대고달려온꿈의그림자
기다림은기다림이고
얼핏보이다사라질눈부신그것
거룩함이란지금여기이것
닦고쌓아온땀과눈물의사리탑
큰지혜란어리석은소걸음
겨울물여기기다려얼어붙다
(49쪽기다림일부)

홍진(紅塵)에뭇친분네이내생애(生涯)엇더ᄒᆞᆫ고
녯사ᄅᆞᆷ풍류(風流)ᄅᆞᆯ미ᄎᆞᆯ가못미ᄎᆞᆯ가

정극인의상춘곡(賞春曲)의도입부다.옛사람의풍류에비해나의삶은어떤지돌아보는그지점이무겁게다가온다.
나의삶은어떤지생각하고사는지묻는다.
돌이켜보니삶이란모였다가흩어지는이합집산離合集散의연속인것같다.만나고모이는결말을생각해도좋고결국은흩어지는것으로봐도무방하다.결국"얼핏보이다사라질"그무엇인이삶에큰지혜는별무소용인것일까?
노자의대교약졸(大巧若拙)과대지약우(大智若愚)처럼세상에는보이는것과는다른심층구조가있는것같다.어리석어보이는내면에는큰지혜와기교가있고그것이대대로이어지는것이인생이리라.
개인적소회를덧붙이자면삶이란저절로살아지는것이아니다.대개그렇게보이지만내면에무수한에너지의들고남이쌓여야생명이이어지는것이다.삶이란살려는의지의축적이고또그것의발산이기도하다.영생불멸까지는아니고건강한삶을희망한다.특히질병과환난에고통받는분들의분투를바란다.

나.술없이어떻게인생을얘기할수있겠는가

소주는참아내는맛이다
소주는오랫동안속을달이고
한참동안,그러나
아주길지는않게
참는맛이다
(시집95쪽소주앞부분)

조조의대주당가인생기하(對酒當歌,人生幾何)의호기는아니고,
이백의장진주(將進酒)의친절도아니다.달고도속쓰린삶을술에빗대어얘기하는것이리라.
참아내는맛,긴듯그러나너무길지않게(소주를마셔본사람은다안다.오래가지않아합자연이된다.이백의독작獨酌의三盃通大道一斗合自然참고)마셔봄직하지않은가?

시인은술에서도를찾는다

술을마시는순간부터술이깨어다시술을마시는시간까지,생과사의비의에대한번득이는영감과세상과나의강한일체감을간직할...(시집194쪽격포기행일부)

술이란삶과죽음사이의다리같은것이다.너무많이나가면저쪽저승이다.아직여기이쪽은이승이니생과사의경계에서목숨걸고마시는자만의비장함이있다.술이어느정도되면번뜩이는영감이무수히명멸한다.이현상은합자연合自然이되기전에가장활발한데아쉬운점은그것을담아내는그릇이없다는것이다.지구의문명을수천년앞당길묘의가그자리에서일어났다사라지는데...

어쨌든술로시작해서예술로아름답게마무리하면좋을것같다.

마시면마시고
마실수록마시는
그맛은
지날세월이삶을
억눌러조여터트리는맛이다
한잔을따른다하더라도
(시집95쪽)
*여기서지날은지난의오타가아닐까하는생각.

최근금나라시인조병문(趙秉文)의사(詞)인청행아(青杏兒)·풍우체화수(風雨替花愁)를얻어들을수있는기회가있었다.

風雨替花愁。
風雨罷,花也應休。勸君莫惜花前醉,
今年花謝,明年花謝,白了人頭。
비바람이꽃을대신해시름하네.
비바람이그치면꽃도시들겠지.
그대에게권하노니꽃앞에서취하는것을아까워마오.
올해꽃이지고,내년에도꽃이지면,사람의머리도하얗게세어버리니.

乘興两三甌。
揀溪山好處追游。
但教有酒身无事,
有花也好,无花也好,選甚春秋。
기분이좋을때술몇잔을즐기고,
산과계곡의경치좋은곳을찾아거닐어보세.
술이있고근심걱정이없다면,
꽃이있어도좋고없어도좋다.
봄이든가을이든무슨상관이겠는가?

여기서

有花也好,无花也好
꽃이있어도좋고없어도좋다.

이구절이너무좋다.
꽃이있으면있는대로없으면없는대로그대로좋다는말씀.
복잡다단한인생에길흉화복,흥망성쇠는너무나당연한일.

選甚春秋。
봄이든가을이든무슨상관이겠는가?

다.시간,꿈,죽음

시간속에시간있고
시간밖에시간있어
양파껍질벗기듯이
시간을벗겨보나
남은건
지나간시간일뿐
(시집175쪽죽음일부)

시간은지구의자전주기를일률적으로구획한것이니태양의이동에따라흐르는것처럼보인다.
그래서시간개념이없는아마존사람들은태양의높이로약속을정한다.

"해가저만큼왔을때출발합시다."

생명을놓고얘기하자면태어나서죽을때까지의여정을순차적으로나누어할당한것이다.그래서시간은생과사가뒤섞인뫼비우스의띠같은것이다.생명을시간으로적분하면삶의전과정이된다.그기록이Biography가될것이다.시인의작품을해석할때이biography가중요하고,반대로시를보면서시인의biography를유추하기도하는것이다.죽음을앞둔도스토예프스키처럼많은이야기가시인의시간과시에녹아있다.우리는지나간시간만을보기때문에인생에서항상지각생일수밖에없지만시인의시를보면서그의시간을,인생을같이들여다봐야한다.

꿈이라
꾸며서꿈인가
헛되어서꿈인가
바람이라꿈인가
빌려서꿈이러니
꾸어서꿈이러니
(시집174쪽)

우리의삶은부모에게서,더올라가조상님에게서,지구와태양과우주에게서빌어온(꿔온)것이니꿈은삶이고전우주와의소통이고전우주에우리가갚아야할빚이다.삶이란꿈처럼흐릿하고확정할수없지만더크고아름답게키워야하는희망(바람)의소산이다.헛되게꾸민꿈이아닌자신만의포부로꽉찬꿈을꾸었으면좋겠다.

죽는다는것은
산다는것의색그림자이니
사는것이죽는것이고
죽는것도꿈이리니
죽음또한
긴꿈리리라
(시집177쪽)

무거운주제그러나피할수없는주제인죽음으로들어섰다.
삶과죽음이다르지않은경지는어디일까.
우리는늘어제와오늘사이에(시집205쪽)에서지나간시간을보며산다.그리고또죽어간다.

땅의끝인바다에서혹은바다의끝인땅위에서(시집205쪽)
앞과뒤의경계에서살아가는존재가인간이다.어쩌면우리는뒷물결에밀려나아가는앞물결처럼속절없이흘러가는인생의타자他者일수도있다.

삶이란,동시에죽음이란우리가죽기전에는풀수없는영원한숙제인것같다.

그러나언제나나는오늘여기에서있다.
갈매기가힘차게날아가듯이우리는씩씩하게나아가야하리라.(시집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