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기. 3: 소련군의 해방과 미군의 해방

해방일기. 3: 소련군의 해방과 미군의 해방

$21.00
Description
역사학자 김기협, 65년전의 ‘오늘’에서 민족의 미래를 찾는다!
‘해방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해방일기. 3 : 소련군의 해방과 미군의 해방』. 역사학자 김기협이 1945년 8월 1일 해방 전야부터 1948년 8월 31일 대한민국 건국 무렵까지 ‘65년 전의 오늘’을 되살리는 대장정에 올랐다. 이 책은 시간별로 해방 전후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적대적 공생관계’로 맺어진 극좌와 극우가 함께 중도파를 억압하고 봉쇄하던 상황 등을 사진과 함께 보여주어 현장감을 더한다. 또한 원자폭탄의 등장은 우리 해방공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폴란드, 일본, 중국 등지에서 펼쳐진 상황 등을 해방공간의 실질적 이해에 도움이 되는 관점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해방’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제3권은 1946년 2월 초부터 1946년 4월 말까지를 다루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의 아들, 김기협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20여 년 전 해방공간의 역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 사회의 시야를 열어주고 있다. 지금 사람들 눈에는 ‘별난사람’들의 모습에 가려 그 ‘보통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김구, 이승만, 박헌영 같은 사람들보다 여운형, 김두봉, 김규식, 안재홍, 홍명희같은 사람들의 가르침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모든 이야기의 끝 부분에는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라는 가상 대담을 배치하여 안재홍을 해방공간의 안내자로 그리고 있다.
저자

김기협

저자김기협은1950년서울에서태어났다.경기고등학교를졸업하고서울대학교이공계수석으로물리학과에입학한뒤,사학과로전과한보기드문배경의역사학자다.문명사의거시적인관점에서우리역사와동아?시아역사를바라보는작업에몰두하고있으며,‘역사에세이’라는새로운장르를통해독자들과소통을시도하고있다.경북대학교에서중국고대천문학연구로석사학위를,연세대학교에서마테오리치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계명대학교사학과교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편집위원(과학분과),중앙일보문화전문위원과한국과학사학회편집위원을역임하였다.저서로는『미국인의짐』,『밖에서본한국사』,『뉴라이트비판』,『김기협의페리스코프』,『망국의역사조선을읽다』,『아흔개의봄』이있고역서로는『용비어천가』,『역사의원전』,『소설장건』,『공자평전』등이있다.

목차

목차
머리말미국과소련이조선에서원한것
1부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성립
1946년2월1~11일
1946.2.1.대표도못하고민주적이지도않는‘대표민주의원’
1946.2.7.민생을엉망으로만든미군정
1946.2.8.‘쌀소동’속에서도한민당은‘딴민당’
1946.2.9.조선인의첫‘정권’,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1946.2.10.한가마150원?차라리떡해먹겠다
1946.2.11.남한경찰,식민지시대보다더나빠졌다
안재홍선생에게묻는다/민주의원,무엇이잘못되었나?
2부해방공간의미ㆍ소대결,극심한좌우대립
1946년2월15~25일
1946.2.15.민주의원과민전,좌우대결의초점이되다
1946.2.16.냉전의씨앗,모스크바미국대사관에서나타나다
1946.2.17.38선에서막힌독립동맹의역할
1946.2.18.민주의원,‘을사5적(賊)’못지않은‘병술23적(賊)’
1946.2.21.토지개혁,좌익만의과제가아니었다
1946.2.22.‘냉전의아버지’조지케넌
1946.2.23.소련의‘적화야욕’,정말어떤것이었나?
1946.2.24.군정청의전염병후안무치증
1946.2.25.속이빤했던미군정의정당규제정책
안재홍선생에게묻는다/국민당이왜한민당을따라가나?
ㆍ해방의시공간-일지로보는1946년2월
3부민심을읽지못한미군정정책
1946년3월1~11일
1946.3.1.분열의외길로나아가는우익진영
1946.3.2.“우리편만되세요.박흥식이라도지켜줍니다”
1946.3.4.대미예속을향한‘원조경제’의길
1946.3.7.민족주의를적대시한경찰2인자장택상
1946.3.8.“소련영화상영금지”
1946.3.9.일본ㆍ미국,참골치아픈이웃들골라서만났다
1946.3.10.이북의토지개혁,이남은어쩌나?
1946.3.11.‘유흥사업가’김계조의배후는누구였나?
안재홍선생에게묻는다/이남이이북보다앞선점한가지,정치테러
4부미소공동위원회개막
1946년3월15~31일
1946.3.15.대한민국‘배금(拜金)풍조의아버지’이승만
1946.3.17.해방공간경제의키워드‘횡령’
1946.3.18.하지의미소공위사보타주전술
1946.3.21.일본의‘새국가건설’은어떻게되어가고있었나?
1946.3.22.국민당을김구에게갖다바친안재홍
1946.3.23.새국가건설에서학문의역할
1946.3.25.범죄의공포에떨며살게된이남주민들
1946.3.28.새국가건설에서예술의역할
1946.3.29.좌익의제3세력으로등장한신민당
1946.3.31.궤도에올라선미소공동위원회
안재홍선생에게묻는다/한독당으로의우파통합
ㆍ해방의시공간-일지로보는1946년3월
5부미소공동위원회의구조적문제
1946년4월4~30일
1946.4.4.이승만보다도팔자가좋았던비서실장
1946.4.5.미국국가주의의전초병이승만과굿펠로
1946.4.7.해방공간의경찰을‘막가파’로만든자들
1946.4.8.음산해져가는사법부분위기
1946.4.11.미군정비판으로구속당하는임정요인
1946.4.12.돈때문에험악해진해방공간
1946.4.14.공산당에겐우익보다중도파가더미웠다
1946.4.19.미소공위앞에서혼란에빠진우익
1946.4.21.정치지형을바꿔놓은이승만의‘남선순행’
1946.4.25.미소공위의구조적약점
1946.4.26.암초를향해흘러가는미소공위
1946.4.28.양심적지식인의갈길
1946.4.29.윤봉길과김구가테러리스트라고?
1946.4.30.한국전쟁,누가먼저방아쇠를당겼는가?
안재홍선생에게묻는다/좌우합작보다우익연합이더급한이유
ㆍ해방의시공간-일지로보는1946년4월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미국과소련이조선에서원한것은?”
‘해방공간’의역사적의미를되살리는역사학자김기협의『해방일기』.1946년2월초부터1946년4월말까지시기를다룬『해방일기3』“소련군의해방과미군의해방”이출간되었다.1권“해방은도둑처럼왔던것인가”와2권“해방을주는자와해방을얻는자”에이어세번째책이다.
일본항복후반년이지난시점에서남북간의정치풍토차이는극명하게드러나기시작했다.이북은조선인의자치정권인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수립되었고,1946년3월토지개혁실시를...
“미국과소련이조선에서원한것은?”
‘해방공간’의역사적의미를되살리는역사학자김기협의『해방일기』.1946년2월초부터1946년4월말까지시기를다룬『해방일기3』“소련군의해방과미군의해방”이출간되었다.1권“해방은도둑처럼왔던것인가”와2권“해방을주는자와해방을얻는자”에이어세번째책이다.
일본항복후반년이지난시점에서남북간의정치풍토차이는극명하게드러나기시작했다.이북은조선인의자치정권인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수립되었고,1946년3월토지개혁실시를계기로민심을수렴하며순조로운발전을시작했다.반면이남은1946년2월좌익중심의통일전선인민주주의민족전선과우익결집체인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이만들어지면서좌우정치세력의분열이깊어져갔다.
그배경에는이책의부제가암시하듯이소련군과미군의점령정책의차이가있었다.저자는“소련군은‘점령’의의미를최소한으로해석해서주민의자치노력을도우려했고,미군은최대한으로해석해서자치노력을막으려했다.소련군의점령은‘해방’이었고,미군의점령은‘지배’였다.”라고단언한다.과연해방과지배의차이가어디에서온것일까?미국과소련이조선에서원한것은무엇이었을까?저자는지정학적조건과새로이발굴된자료를포함하여해석을가한다.
3권의대표사건은1946년3월미소공동위원회의개최였다.시작부터구조적약점이노출된미소공위를끝내좌초시킨난제는‘협의상대’였다.‘협의상대’란조선인대표로누구를참석시킬지어떤방법으로결정할것인지의문제였다.미군정에서는‘민주의원’이협의상대로채택되기바라는마음에서‘남조선국민대표’라는간판을붙여놓았지만이름이무색하게도대표성이없었다.우익은혼란에빠졌다.하지의사보타주전술이가미되면서미소공위는암초를향해흘러갔다.
『해방일기3』“소련군의해방과미군의해방”은정치사외에도횡령과테러,그리고막가파경찰등65년전오늘의키워드에대해서도생중계하고있다.
『해방일기』제3권소련군의해방과미군의해방(1946.2.1∼1946.4.30)개요
1945년연말에시작된반탁운동을통해좌우익경계선이새로만들어졌다.미군정에의지하는한민당-이승만세력과상해ㆍ중경임정을지지하는민족주의세력이합쳐져반탁세력을만들었고,이것이우익의울타리가되었다.반탁운동을통해우익통합이강화되면서우익끼리만비상국민회의로뭉쳤다.비상국민회의의최고정무위원회가미군정자문기관인민주의원간판을걸면서미군정과우익의결탁이한차례매듭지어졌다.
민족통일전선을포기한우익끼리의결집에대한반발로중도적인물과단체들이대거민주주의민족전선에참여했다.민전은좌익의주동으로결성되었지만통일전선을표방하고문호를개방했기때문에참여범위가넓었다.심지어비상국민회의를떠난임정비주류요인몇몇도민전에참여했는데,그중에는넓은의미의‘좌익’으로도볼수없는인물들이있었다.
민주의원은미군정의획책으로만들어진기구였다.애초에미군정이바란것은우익이중심을잡되좌익도포괄하는,통일전선의성격을가진기구로서미소공위에서남조선을대표하게하는것이었다.좌익의정체를이해하지못했기때문에비현실적인목표를세운것이었다.이실수를이승만이이용해서민주의원을극우세력의아성으로만들었다.군정청에서민주의원을만드는데앞장선사람이하지의고문으로들어와있던이승만의측근굿펠로였다.
우익의비상국민회의,좌익의민주주의민족전선,군정청의민주의원,모두미소공동위원회에서한국인을대표하는위치를구축하려는목적을가지고있었다.건국의주도권을쥐겠다는것이었다.우익의비상국민회의는김구와이승만의동상이몽형국이었다.이승만은미국의절대적영향력하에건국을원했고,분단건국이라도마다하지않는속셈이었다.김구는이와달리완전한통일민족국가를원했다.그러나그는임정의권위를과신한것이었을까?이승만과한민당의‘임정추대’바람잡이에말려들어좌익등다른세력과의협력과연대를도외시하고미소공위에대해서도오만한태도를견지했다.
1946년3월20일개막한미소공동위원회는소련의국제주의와미국의국가주의가부딪친현장이었다.소련측은제2차세계대전중의미ㆍ소협력체제가미소공위에서지켜지도록애쓰는반면미국측은회담이결렬되어도괜찮다는배짱으로소련측양보를요구하고있었다.트루먼시대의미국은루스벨트시대의미국과달라지고있었던점이배경이었다.국제주의노선은약화되어갔고,하지의미소공위사보타주전술에대한암묵적지지와동의가미국의정책결정관계자들사이에서폭을넓혀가고있었다.
이런상황에서4월6일남한단독정부추진설이처음으로언론에나타났다.이승만과결탁된인물로하지의정치고문이던굿펠로가5월하순한국을떠나면서“미소공위가조속히재개되지않을경우미국은남한단독정부구성을추진해야할것”이라고선언했다.며칠후인6월3일이승만은“남한만이라도임시정부또는위원회같은것을수립할것”을제기하는‘정읍발언’을터뜨렸다.1차미소공위는5월8일끝나고무기한정회에들어갔다.
간단하면서도중요한사실의하나는이남지역의경찰인원이해방후1년간갑절로늘어났다는점이다.1946년전반기를통해미군정의가장큰사업은국가경찰육성이었다.미군정하의남한은식민지시대보다더많은경찰력이필요한곳이되어있었다.
『해방일기』시리즈소개
역사학자김기협의해방일기,
65년전의‘오늘’에서민족의미래를찾는다
3년전부터왕성한저술활동을펼치고있는김기협은특이한배경의역사학자다.1968년서울대이공계열수석으로물리학과에입학했다가1년후사학과로전과해서중국사전공을시작한뒤석사과정은경북대에서,박사과정은연세대에서수학했다.1990년대학교수를그만둔이후칼럼니스트와번역가로활동하다가근년들어본격저술활동을시작했다.
그런그가환갑을맞은작년8월1일『해방일기』를쓰기시작했다.(「프레시안」연재)목표는2013년8월31일까지37개월간.1945년8월1일해방전야부터1948년8월31일대한민국건국무렵까지의기간동안‘65년전의오늘’을되살리는작업이다.
8월1일자첫회에서김기협은선친의전쟁일기를언급했다.『역사앞에서』의저자김성칠교수가그의선친이라는것은널리알려진사실이지만,60년전세상을떠난선친을스스로들먹인데서새작업에대한만만찮은각오를느낄수있다.
(…)제가어떤사람인지아는독자께서는바로제아버님을떠올리시겠죠.그렇습니다.이작업에는아버님의전쟁일기를흉내내는뜻이들어있습니다.전쟁이란상황에마주쳤을때한역사학도로서할수있는일을힘껏모색하신것이그일기였다고저는생각합니다.저역시통상적인서술방법으로한계를느끼는주제앞에서제최선을다하려는마음으로『해방일기』에착수합니다.
(…)이막막한작업에구상이떠오른지불과한달만에착수하고있다는사실부터어리둥절합니다.가만생각하면바로이런성격의작업을위해지금까지의제인생이배치되어온것이아닌가,운명적인생각까지듭니다.(…)
그후60주가넘는동안매주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