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이제깨진빗돌을찾아다녔던김정희의발길을따라
그가빚어낸금석학의세계로들어간다”
『세한도』『서재에살다』의저자박철상,
그의20년추사김정희공부의독보적인성과를담은책
지금부터200년전인1816년7월어느날,김정희는북한산승가사뒤쪽의비봉(백운대)에올라가마침내이성계의왕사였던무학대사또는신라도선국사의비석이라고구전되어오던옛비석의정체를밝혀낸다.“이것은신라진흥대왕의비석이다.”조선금석학의개창자추사김정희가금석학자의길로들어서는첫발이었다.김...
“이제깨진빗돌을찾아다녔던김정희의발길을따라
그가빚어낸금석학의세계로들어간다”
『세한도』『서재에살다』의저자박철상,
그의20년추사김정희공부의독보적인성과를담은책
지금부터200년전인1816년7월어느날,김정희는북한산승가사뒤쪽의비봉(백운대)에올라가마침내이성계의왕사였던무학대사또는신라도선국사의비석이라고구전되어오던옛비석의정체를밝혀낸다.“이것은신라진흥대왕의비석이다.”조선금석학의개창자추사김정희가금석학자의길로들어서는첫발이었다.김정희개인에게는추사체의출현을예고하는신호탄이었고,조선지식인들에게는금석학이라는새로운학문의필요성을각인하는계기였다.그리고청조문사들에게는조선금석문에대한광적인수집은물론조선의역사에대한관심을촉발시킨역사적인사건이었다.그렇다면김정희는어떤연유로금석학자의길로들어선것일까?김정희의학문세계에서금석학의의미는무엇일까?
『나는옛것이좋아때론깨진빗돌을찾아다녔다-추사김정희의금석학』은조선시대출판과장서문화,간찰,금석문,연행등의연구로학계의주목을받아왔으며,『세한도』(2010)『서재에살다』(2014)를출간하며고수의내공을선보인저자박철상이그의20년추사김정희공부의독보적인성과를담은책이다.김정희를빼놓고19세기학문과예술세계를이야기하기어렵다는박철상은“김정희학문의본령이고증학이고,금석학이그중심에있었다.금석학이야말로추사체가탄생한까닭이자,추사가이룩한최고의업적”이라하며금석학을통해김정희를보아야하는이유를역설한다.
박철상의김정희연구에서2002년은중대한전환점이었다.그기폭제는유홍준의『완당평전』출간과김정희금석학연구저작『해동비고』의발굴이었다.200군데가넘은오류를지적한박철상의「완당평전,무엇이문제인가?」라는논문은당시에큰화제였다.“후지쓰카지카시라는일본학자의연구성과는유홍준의연구성과로바뀌어있었고,고증없는서술로일관되어있었다.”라평한박철상의문제의식은김정희란인물을바라보는인식의전환을촉구하는데있었다.그런데앞의논문을발표한다음날,절묘한인연으로인사동고서점가에서김정희의『해동비고』를찾은것이다.『해동비고』는이책에서주요하게다루어지고이글에서도후술하겠지만김정희사후150년동안이제까지한번도언급된적없는새로운내용이었다.저자는『완당평전』에대한문제제기와『해동비고』의발굴에이르기까지누군가김정희의학문과연구세계로잡아끄는듯했다고소회한다.
저자는이책의출간에부처“내년이면김정희가북한산진흥왕순수비를고증한지200년이된다.조선에금석학이태동한지200년이되는해이기도하다.이책이김정희의학예를기리는데조그만보탬이되었으면하는바람”이라한다.이제깨진빗돌을찾아다녔던김정희의발길을함께따라가며그가빚어낸금석학의세계로들어가보자.
추사김정희는최근‘연예한류’에비견할만한‘학예의조류(朝流)’를만들어낸한류스타
『나는옛것이좋아때론깨진빗돌을찾아다녔다-추사김정희의금석학』는먼저조선시대금석학자료들을정리하며김정희에이르기까지조선시대금석문이어떻게인식되었는지시기에따른흐름을살펴본다.조선시대에처음부터금석학이학문으로존재했던것은아니었다.초기에는서법수련의전범으로서,그리고감상의대상으로점차발전하였다.그러다가금석학이학문으로그맹아를보이기시작한것은18세기의일이다.북학파지식인들이금석학의토대를마련하였는데,저자는그중에서도김정희금석학연구에큰영향을끼친금석학자로영재유득공에주목한다.유득공이조선금석학의선구자였던것이다.『한객건연집』『이십일도회고시』『발해고』등의유득공의저작들에는언제나고대사에대한깊은이해가깔려있는데그런그에게있어금석문은사료였다.그때문에그는석문(釋文)을작성하고본격적으로내용을분석한첫번째학자가된것이다.
이어서저자는19세기를‘연행을통한북학의시대’라는배경을펼쳐놓고추사김정희가금석학자로서성장하는과정을보여준다.특히김정희가젊은시절연행을갔다가옹방강(翁方綱)옹수곤(翁樹?)부자와완원(阮元)등대가와교유하는장면은이책에서빼놓을수없는백미이다.옹방강은청나라고증학을수용하는데결정적역할을했고,완원은추사체탄생의이론적근거를제공했다.또한옹방강의아들옹수곤과의교유는김정희금석학탄생의직접적계기가되었다.옹수곤은조선학자들을통해조선금석문을수집하고연구했다.그중심에김정희가있었다.김정희는자신과친분있는인물들이연행갈때면옹방강부자에게편지를써서소개해주었고,옹방강부자는김정희를통해신분을확인한인사들을중심으로조선의문사들과교유하게된다.김정희가금석학을학문으로인식하기시작한것은옹수곤과편지로교유하면서부터였다.옹수곤은금석문을연구하는과정에서의문점을김정희에게물었고,김정희는그과정에서금석문의연구방법론을터득했던것이다.그런데1815년옹수곤이요절하자,옹방강은옹수곤의금석학연구자료를김정희에게전달한다.이것이김정희의금석학성립에중요한전환점이된다.
“이아이가대아(大雅,김정희)의정성스럽고간절한가르침과사랑을자주받았으니더욱고마울뿐입니다.이아이는일찍부터친구가적었고,오직존형과의우정을일찍부터마음으로맹세한바이니,존형이이소식을들으면너무도슬퍼할것입니다.(중략)몇년동안오형이멀리서보낸고비(古碑)의탁본들을받고편지를주고받으며변석하면서얻은것이꽤있습니다.그아이는또모방(摹?),향탑(響?),구록,전랍등의방법을세밀한데까지파고들어이아이가지은금석문을연구한여러건은대아에게한두가지자료가될만한게있을것입니다.”-본문123~124쪽,옹방강이추사에게옹수곤의죽음을알리는편지중에서
이후김정희는본격적으로조선금석문연구에뛰어들었다.그결과앞서전술한1816년북한산진흥왕순수비를고증한다.김정희가「북한산진흥왕순수비」를고증한일은탁본과함께중국에도알려졌다.김정희는일약조선금석문연구의선두주자가되었고,이후김정희는금석문연구에박차를가하기시작한다.그리고마침내1817년고적답사를위해경주로떠난다.주요목적은금석문을찾는것이었다.
김정희는답사를통해우리금석문연구사에획을그을만한성과를거둔다.대표적으로진흥왕릉과다른세왕릉의위치를고증한「진흥왕릉고」와「화정국사비」「문무왕비」「무장사비」등의비석을발굴하고고증한일이었다.답사의요체는탁본과책을통해서만보고연구했던내용을실사로확인하는작업이었다.15일여행은그의연구업적속에고스란히반영되었다.이후한양에돌아온김정희는금석학연구에더욱매진하게된다.김경연의기록은당시김정희가금석학연구에얼마나몰두했었는지알려준다.이렇게김정희는명실상부한조선금석학의개창자로우뚝서게된것이다.
“정축년가을황산·추사가내동리서당으로찾아와「역설」과「시의」몇조목을서로토론하고금석문자1천권을읽었다.”-본문157쪽중에서
「진흥왕릉」「화정국사비」「문무왕비」「무장사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