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대한새로운정의가내려진시대
후한제국이무너지자중국은남과북으로분열되었다.그러나이분열은동시에중국문화권의확장과다양화를의미하는것이었다.『하버드중국사남북조-분열기의중국』에서마크에드워드루이스교수(미스탠포드대)는특유의박람강기를동원하여그복잡한변화상을그려낸다.
한과당사이4백여년동안중국은지리적정의가바뀌었고,외부세계와한층밀접한관계를맺게되었다.가족의모습에도큰변화가일어났고,문학및사회영역에서발전이이루어졌으며새로운종교가등장하였다.새로개발된양자강유역은쌀생산중심지로부상하였다.문학은조정과수도를벗어나원림,사찰,전원별장등새롭게등장하는사교공간과지역문화를묘사하기시작하였다.자기인식이분명한상류층가문이성장하자물질적부로규정되는전통적인한대호족과는다른지배층의개념이형성되었다.후한을무너뜨린종교반란뒤에새롭게나타난도교와불교는국가,경제,친족을포함한삶의모든측면에변화를불러왔다.
수왕조가589년에중국을재통일하자황제의권력은보다강고해졌고지배층은제국의질서에귀속되었다.이제중국인들은새로운세계질서의일부가되어공통의불교신앙을가진국가들과물질적으로그리고사상적으로교류하게되었다.이처럼한과당사이의수세기는중국에깊고영원한자취를남겼다.
남북조시대에비한족인이민족들이맡은역할과공헌에주목한다
후한제국이무너지고수·당제국이중국을다시통일하기까지400여년에걸친,흔히‘위진남북조’라부르는이시대에대한일반적인인상은어떠할까?중국역사상처음으로이민족이중원을점령한미증유의혼란기,분열의시대,불교와도교신앙의확산같은것들이아닐까?게다가수많은왕조들이명멸한탓에전공자가아니라면각왕조의이름,연도,지역조차제대로알기어려운것이사실이다.또한이시기에대한중국의지성사는‘허무주의,현실도피,퇴폐’처럼부정적표현들로설명되곤한다.이는기존의중국사에서통일되고군사적으로강성했던시대를중심으로서술하려는경향때문이었다.그결과로한과당사이의4백여년의역사가무시된것은아닐까?
이책의저자인마크에드워드루이스교수(미스탠포드대)는크게는북중국과남중국의지리를새롭게정의하며유력가문의등장과군사왕조의특징을풀어낸다.또한이시대의내부에밀착하여도시,농촌,가족,종교,문학,예술에이르기까지중국역사에끼친영향을풍부한서술과간결한정리로그려낸다.그래서유럽과미국의괄목할만한새로운중국사연구성과를담고있으면서,이해하기쉽고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이책은남북조시대의역사에서비한족인이민족들이맡은역할과공헌에주목한다.중국이항상강력하게중앙집권화한왕조가다스리는지역이라는기존의통념과는전혀다른곳임을보여주는것이다.또한남북조시대는한국고대사와도밀접하게연관되어있어고대사를이해하는데풍부한배경지식을제공한다.예를들어,수양제가돌궐에대해서는분열과지배라는고전적전략을채택하면서도,왜고구려에대해서는실제로정복하기를고집하다오히려자신의제국을파멸시켰을까?저자는이를유목민과정주민의차이로설명하고있다.
또한수·당제국이다시중국을통일한의의를한제국의계승혹은부활이라고주장하였으나사실수·당왕조는5~6세기에북중국을지배했던이전의‘오랑캐’왕조-북위,북주,북제-에서발전한많은제도와관행을흡수하였음을지적한다.최후의토지국유제였던균전제를시행하고,최후의세습군제였던부병제를실시하며,조세를곡식과직물로거두고,도교와불교교단을국가가후원하며,한대이후등장한동방과남방먼나라들과정기적대외관계를맺고,수당황실이한족이아닌가문과빈번하게혼인관계를맺어황실내에외국인을받아들인일등은모두위진남북조시대의유산이었다.
분열기의중국,남북조시대는과연중국사와세계사의흐름속에서어떠한의미를가지고있을까?저자가이시대의창을열면서강조하는중요한특징을중심으로따라가본다.
중국이황하유역을중심으로하는북중국과양자강유역을중심으로하는남중국으로나뉜다
이책의최고특징은제목에서드러난다.통상이시기를‘위진남북조’라고부르는데반해(한국과중국에서는왕조별시대구분의전통에따라‘위진남북조’로,반면서구학자들은‘분열의시대’혹은‘초기중세’라는대안을제시하기도했다),저자는이명칭보다짧은‘남북조’라부른다.그이유는첫째,‘위진남북조’보다한결간결하게이시대의모습을드러내기때문이다.다시말해사미씨의서진왕조가통일을이룬아주짧은기간을제외하면우리에게잘알려진위·촉·오삼국시대를포함하여4세기에가까운이기간동안중국은실질적으로황하유역을중심으로하는북중국과양자강유역을중심으로하는남중국의두부분으로나뉘어있었다는점이다.‘위진남북조’가운데‘위’시기는보통‘위·촉·오삼국’시기로더알려져있는데,당시중국은북부황하유역을지배하는한국가‘위’와남부양자강유역을분할하는두국가‘촉’과‘오’로분열되어있었다.그뒤로‘진晉’시기단30여년만통일되었을뿐,다시황하유역과양자강유역으로분열된시기가뒤따랐다.위촉오의삼국,서진의통일,동진과5호16국,남조와북조등으로각기분절적으로이해하기쉬운이시대를저자는남과북의틀로비교적크게묶어서이해하는것이다.저자가‘남과북’이라는틀을더선호하는두번째이유는남북의지리적구분과관련한주요변화들이여러면에서이시대의역사적의의를규정하기때문이다.이시대에한족인구상당수가북에서남으로이주하였고,이들은남중국의낯선자연환경및이민족들과조우하였다.이러한대규모이주와그와중에나타난문화변동의결과,남중국은북중국으로부터문화적으로분화되었다는것이다.‘남북조’라는명칭은정치적분열이라는역사적사실을인정하는용어이지만,동시에이시대중국문화권이확장되고다양해졌음을의미하는용어이기도하다.
“중국문명이장기지속한비밀은문명이북에서남으로옮겨간것”
마크루이스교수는남북조시대의가장중요한발전은양자강이남지역에전면적으로진출하고정착하면서중국에대한새로운지리적정의가이루어진것이라한다.
남중국으로의이주는중원의고도인낙양과장안이각기311년과317년이민족의지배에놓이는4세기초에정점에달했다.이주의결과280년에서464년사이양자강유역과그이남에서호적에등록된인구는다섯배로증가하였고,589년수가중국을재통일하였을때중국인구의40퍼센트가양자강유역에거주하였다.소위‘강남’즉양자강이남지역이중국문화의주요중심지가된것이다.문명의기반을북에서남으로옮긴역사적의미에대해미야지마히로시교수(성균관대동아시아학술원)는중국문명이세계어떤문명에비해장기지속할수있었던비밀이며세계사의기적이라칭한바있다.
중국문명의중심이남쪽으로옮아가는장기적변화는전국의구릉과산지등미개척지였던곳을채워가는과정이었다.한족은꾸준히남방을점거해가면서산지를개간하고습지를간척하여농지를확장하였다.그결과현지토착민은원거주지에서쫓겨나거나한족에흡수되었다.새로운지리적정의는북과남이라는중국내지역구조에그치지않았다.외부세계와의교섭은한층중대한변화를불러왔고,넓어진영역에서중국은자신이차지하는위치를새롭게이해하게된것이다.
남북조시기와이후의역사에서중국전체혹은상당부분을정복한왕조는대부분-요,금,청-중국의동북지역에서등장하였다
단순화하여중국주변민족은세무리로나누면,첫째는북쪽또는서북쪽의순수유목국가들이다.흉노가대표적인예인데이들은중국바깥에남아있으며교역에종사하고,공납을요구하며정기적으로약탈을행하였다.둘째는동북쪽의반(半)정주민들로,농민들로부터조세를거두어들이기위한중국식행정체제와조정에종속된유목군대를결합한이원적체제의국가들이다.5세기황하유역을통일한북위의탁발부가그예다.마지막으로먼동북쪽(한국과일본),동남쪽(베트남),그리고서남쪽(운남과귀주)의정주민들은중국을모방하는방식으로중국과관계를맺었다.이들은농업국가나교역에기초한도시국가를형성하였는데이들국가는남북조를거쳐당대에이르면공통문자인한자와중국식통치술,그리고공통종교인불교에의해통합된정교한교역체제를갖추는데589년중국이재통일되자그들은큰동아시아혹은범아시아세계체제의일부분이되었다.
후한이무너진이후북중국에는앞서말한첫번째유목민국가들과두번째반정주민국가들이전통적중국의심장부인중원을점령해들어왔다.이때공납과약탈에의존하는흉노모델을대신할성공적대안이나타난것은동북지역에서였다.북중국에모용씨의연을비롯하여북위,북주,북제등의국가를건설하였던동북지역민족들은정주적혹은혼합적성격덕분에나중에그들을중국에편입시키려는반복되는시도에도저항할수있었다.결국이후시대에중국전체혹은상당부분을정복한왕조들은대부분-요,금,청-동북지역에서등장하였다.이들민족과중국사이의긴장관계는동북변경근처에있는북경을제국의수도로확립시키기에이르렀다.
마크루이스교수는4세기에걸쳐장기간북중국을지배했던이민족즉비한족들의역사적역할을강조한다.최근세계적으로도북위에서수당까지일종의‘탁발왕조’로이해하는시각도제기될정도로,이시대중국역사를만들어가는과정에서한족이아닌다양한민족들이행한역할에주목하고있다.한국에서는박한제교수가이미오래전부터호한체제론(胡漢體制論)이라는틀을통해북방유목민족들의역할을강조하기도했다.이책의마지막부분에서도드러나듯,이들이민족들의유산은수당제국을형성하는데큰기여를하였고,이점에서도남북조의역사적의미는간과할수없음을기억할필요가있다.
유력가문의공간으로서원림과장원,그리고청담
남북조시대를관통하여저자가제기하는특징중의하나는이시대지배층을보는시각이다.핵심은새로운문화와문학경향에따라구분되는새로운사회지배층이등장했다는것이다.한국에서는흔히위진남북조의지배층을귀족이라부른다.귀족들의사회적지위는매우강고한것이었고그래서문벌귀족이라칭한다.그런데마크루이스교수는귀족(aristocrats)대신에‘유력가문(greatfamilies)'이란용어를사용하며한대의지배층과구분하는것이다.한대의귀족들을특징짓는요소는주로토지와같은물질적부,사회연줄의네트워크,그리고중앙관직독점등이었다.재력과권력은통일제국초기에지위의주요지표였다.이와달리남북조의유력가문의특징은여러문화및문학활동을추구하며그들스스로를세밀하게구별짓는것이다.고상한가문으로스스로를정의하며단순히부유하거나권력을지녔을뿐인사람들과자신을구별하기위해,시짓기,서예,철학적대화,특징적복식,그리고세련된몸가짐을계발하여내세웠다.이러한사회지위를만들어내는활동은점차관직임용의첫단계를통과할수있는세습적권리를인정하는새로운관료선발방법과합쳐지기에이른다.남북조는상세하게기록된족보를작성함으로써지배층이자신의친족집단을규정하기시작한시기이기도하다.
새로운지배층의만들어낸공간인도시의정원인원림과전원의장원은주목할만하다.원림이나장원처럼자연을인공적으로복제함으로써,이제새로이중요해진산지풍경이도시로옮겨져졌고거꾸로인간문명의영역이산이나구릉으로확장되었다.이러한공간은당시사회를지배하던유력가문들의전유물이었으므로,남에게보여주기위한새로운경쟁의장이되기도하였다.누각,담장,관청이한대사회적위계질서를공간적으로그려낸것과동일한방식으로,도시의원림과전원의장원,주택의살롱은새로운시대의사회적지위를알리는도시의지표로기능하였다.사찰의불당,원림,탑들또한중국의도시경관을변모시켰다.중요한것은이러한공간이시를짓고교류하는장소이기도하였다는점이다.시와청담이지배층의지표가되자원림과장원은권력의새로운지형을규정하였다.
도시의변화중흥미로운것은남중국의여성들은공적영역은물론심지어사교라는준공적영역에서도거의배제되어있었던데반해북중국에서는남성과여성이상대적으로평등하였다는것이다.이는비한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