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29.00
Description
조선 당쟁의 사실을 엄밀하게 밝히며 현재적 의미를 탐구한 역작!
선조 집권 이후, 사림의 정치적 공간이 열렸다. 조선시대 통틀어 이 시대만큼 도덕적 확신과 정치적 이상이 드높이 외쳐진 시대도 드물었다. 그러나 선조 8년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사림 내부의 갈등, 이른바 ‘동서분당’이 발생했다. 왜 도덕적·정치적 이상에 대한 사림의 오랜 집단적 열망이 그들 중 누구도 원치 않았던 거대한 파국으로 귀결되었을까? 훌륭한 개인의 인격과 무관하게, 그들의 진정성에 독립하여 작동하는 정치적 힘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는 그 물음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다. 저자는 동서분당 사태 이후 잇달아 벌어지는 사건들과 인물들의 움직임이 만든 당쟁의 사실을 엄밀하고도 깨알같이 적시해간다. 그 결과 ‘스스로 확신한 도덕적 정당성’이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하고 분열을 정당화 하는 기제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도덕적 확신에 찬 사림은 결국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장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선조 8년~23년, 동서분당에서 기축옥사까지 당쟁의 사실을 엄밀하게 밝히며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역사적 사고를 하게 한다. 가장 치열했던 진정성조차 시대적 상황에 지배된다는 점, 같은 신념으로 뭉쳤다고 해서 그것이 객관적인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대의를 잊으면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 등 조선시대 당쟁과 인물들에 대한 깊은 성찰은 오늘날에도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저자

이정철

고려대학교를졸업했고,같은대학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미국UCLA에서머물며다른나라역사에대한수업도듣고,한국사연구성과를영역화하는작업을했다.현재는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연구소에서조선왕조실록에등장하는용어를사전으로만드는작업에참여하고있다.많은시공간에서인간이의식적,무의식적으로전개한다양한상황속에나타나는유사성을제도적차원에서이해하고재구성하는것에관심이있다.『조선후기경제변동의새로운성격규정을위하여』,『조선후기사연구의현황과과제』(창작과비평사,2000),『조선시대공물분정방식의변화와대동의語義』(한국사학보,Vol.34,2009)등의글을썼고,『TheInstitutionalBasisofCivilGovernanceintheChosonDynasty』(TheAcademyofKoreanStudies,2009)(공역)를펴냈다.

목차

프롤로그
전사前史

1부사림의분열_사림의정치화
리더십
1장선조8년~10년:분열의시작
인순왕후사망
애도의정치성ㅣ선조,정치를시작하다ㅣ“낭천을폐지하라”
‘동서분당’
미해결살인사건ㅣ피혐과처치ㅣ살인사건의정치적변주ㅣ이이의처치ㅣ허봉과박근원의결합ㅣ박근원이란인물ㅣ개성유수,경흥부사ㅣ사건배후의구조
2장선조11년~13년:대립구도의성립
이수의옥사
서인의짧은권세ㅣ선조11년ㅣ같은사건,다른처리ㅣ동인의새파트너,구신
백인걸상소대필사건
시비에서정사로ㅣ시비와정사의여러거리ㅣ“유자가도를행함이이정도뿐인가ㅣ이이에대한동인의첫공격ㅣ김우옹이란인물

2부이이의시간_사림의이상,정치의현실
프레임
3장선조13년말~15년:이이의분투와좌절
정치의한복판에선정치적이지않은이이
선조가이이를부른이유ㅣ이이가돌아온이유ㅣ이이에대한동인의시선ㅣ우성전탄핵사건ㅣ이경중탄핵사건ㅣ순진한이이,저돌적인정인홍,배후조정자이발
심의겸,정철탄핵사건
수면과저류ㅣ“이는이발을잘알지못하는것이다”ㅣ이발,정치를하다ㅣ정철문제에불을붙인정인홍의한마디
윤승훈사건
정철은외척인가ㅣ“윤승훈이무슨식견을지녔겠습니까”ㅣ대신의권위,언관의권위
일진일퇴
복상과처치ㅣ이이,선조에게개혁을호소하다ㅣ“이일을이이와함께할수는없다”ㅣ성혼눈에비친이이
4장선조16년:계미삼찬
‘이탕개의난’이불러온효과
여진의성장,선조의충격ㅣ이이개혁안과선조의변화ㅣ경안령이요사건
공론은누구에게있는가
계속되는북방상황ㅣ“전천·만군의죄”ㅣ이이의정체성ㅣ이이가탄핵받은진짜이유ㅣ“이이를공격하는자가소인이다”
좌절된이이의꿈
성혼의상소ㅣ송응개의상소ㅣ송기수라는인물ㅣ기억의당파성ㅣ“언관들이간사한것은아닙니다ㅣ동인이이해한조제보합론ㅣ김우옹의뒤늦은상소ㅣ선조와동인의맞대결
대간의말이라고다옳은것은아니다
또하나의공론ㅣ선조와승정원의갈등ㅣ“신들역시조종조노신의후예들입니다”ㅣ“심의겸이라는함정”

3부선조의시간_나는어느쪽이옳다고말한적이없다
관점의현재성
5장선조17년~22년:불안한평화
계미삼찬후조정풍경
단호한선조ㅣ“이이를그르다고한것은온나라의공론입니다ㅣ4월14일?4월17일?ㅣ초조한이이ㅣ이이의입장은
조정의재편
이이의죽음ㅣ현상유지ㅣ미묘한변화ㅣ김우옹과신응시ㅣ영의정박순,탄핵을받다
선조의정치
“내뜻을말하겠으니사관은기록하라”ㅣ선조의이상한하문ㅣ조정밖목소리ㅣ선조18년9월2일선조의전교ㅣ이발의복귀
6장선조22년:기축옥사발발
고변에서체포까지
고변서접수직후ㅣ고변서가올라오기까지ㅣ정여립체포에실패하다ㅣ다복,10월14일저녁에서밤까지ㅣ온산을태워서라도체포하라ㅣ죽음을부르는‘적가문서’ㅣ주륙과은택
국면의전환
전주생원양천회의상소ㅣ선조의구언ㅣ정철의복귀ㅣ정집의진술,김천일의상소ㅣ낙안교생선홍복
공포의정치
조정을지배한공포ㅣ선조,사건을일단락짓다ㅣ이산해,용같은사람ㅣ성혼의상소

4부파국
책임
7장정개청옥사
정암수와배명의상소
호남의중심,나주ㅣ나사침부자와그가문의내력ㅣ구절의대배절의
투옥과정과심문의쟁점들
홍여순이란인물ㅣ고발사유는사라지고ㅣ「절의청담변」을둘러싼오해
정개청과박순
‘배사론’ㅣ저마다의기억ㅣ진실은?ㅣ향리가문출신서원원장
8장최영경옥사
기축옥사이전의최영경
성혼과의만남ㅣ스승을빼닮은제자ㅣ『심경』이라는책ㅣ최영경이진주로간이유는ㅣ“미움이규모를달리하고”ㅣ“박순과정철을반드시효시한뒤에야”
‘삼봉즉경영설’의부상
소문ㅣ알리바이
1차수감,정철과의만남
두가지쟁점ㅣ정철의올리지않은차자
2차수감,이이에대한기억
‘하늘그물’ㅣ“말의근거를자세히아뢰라”ㅣ“신이한말이아닙니다”ㅣ죽음,그주변

에필로그
부록_1.이조및삼사三司의관직|사가독서자일람표|연표:동서분당에서기축옥사까지|4.인물정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조선시대당쟁과인물들에대한깊은성찰
“역사공부는대의를찾아가는과정”

선조8년~23년,동서분당에서기축옥사까지
조선당쟁의사실(史實)을엄밀하게밝히며
현재적의미를탐구한역작


“왜선한지식인이나쁜정치를할까?”이정철박사(국학진흥원연구원)가『대동법,조선최고의개혁』(2010,역사비평)을낸후받았던곤혹스런질문이었다한다.이책은그물음에대한저자의치열한고민의결과다.선조8년(1575)누구도상상할수없었던사림내부의갈등,이른바‘동서분당’이발생한다.이렇게시작된당쟁은정치적사건들로끝없이변주되다가선조23년기축옥사로파국을맞는다.이책은이과정과인물들에밀착하여놀라울만큼생생하게드러낸다.크게는이이와선조의행적을중심으로살피되,200여명이넘는수많은관련인물들의동선을드러내고그동선아래에흐르는의도까지도밝힌다.저자는정치세력의구조를중심으로서술하는방식을택하지않았다.그렇게상황을이해하면개인적특성이나가변성,현실의생생함을놓치게될가능성이높기때문이다.즉귀납적으로도출되는구조만이진짜현실을반영한다는것이다.
그런데당쟁사라면조선후기가절정인데저자는왜선조8년~23년까지그15년에주목했을까?한세대앞선퇴계이황이살았던문정왕후시대에는물론이고,16세기초등장한이래로사림(士林)은정치의주체라기보다사화로집약되는탄압을견디며스스로를지키는것이우선이었다.선조집권이후드디어사림의정치적공간이열렸던것이다.조선시대통틀어이시대만큼도덕적확신과정치적이상(理想)이드높이외쳐진시대도드물었다.
그런데곧‘동서분당’사태를시작으로사림은분열했다.왜도덕적,정치적이상에대한사림의오랜집단적열망이그들중누구도원치않았던거대한파국으로귀결되었는가?훌륭한개인의인격과무관하게,그들의진정성에독립하여작동하는정치적힘의실체는무엇이었을까?
이정철박사는올바른정치적대의가있을때와없을때의당쟁은큰차이를낳는다한다.동서분당에대해“당연히정치적욕망을가장큰동력으로움직였습니다.하지만중요한것은대의가그것을제어하지못했다는것입니다.”며대의의중요성을역설한다.과거든현재든대의는비록수적인우세를차지하지못해도강력한힘을발휘한다.한사회의공적합의를만드는핵심이기때문이다.역사공부는바로그것을찾아내는과정이다.
이책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2016년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사업선정작이다.

‘훈척’에대한도덕적비판자의역할이아닌
국정과민생을책임져야하는시대가열렸지만


선조5,6년.삼사의청직에서최고요직까지모두사림이차지했는데도좋은정치가이뤄지지않자이이는당황하고고민했다.그결과가선조7년1월에나온「만언봉사」였다.

“정치는시의(時宜)를아는것이귀하고일은실공(實功)을힘쓰는것이중요합니다.정치를하면서시의를모르고일을당하여실공을힘쓰지않으면,비록성군(聖君)과현신(賢臣)이서로만나도성과가이루어지지않을것입니다.”

‘수기’된군자가집권을하면‘치인’이된다는믿음,성군과현신이만나면좋은정치가이루어진다는믿음이선조대초반을경과하면서흔들리게된것이다.다시말해의도와결과는다를수있다는것,의도가좋다고반드시좋을결과가온다는것은아니라는것,결과를만들어내기위해서는의도가아닌방법이필요하다는것을이이는깨달았던것이다.이제훈척에대한도덕적비판자의역할이아닌국정과민생을책임져야하는,즉결과에대해서책임을져야하는새로운상황을맞았던것이다.많은사람들이이제됐다고생각했을때이이는이새로운상황을정확히이해했다.이이가생각을바로잡을수있었던것은누구에대해서책임져야하는지에대해서분명히인식했기때문이라고저자는설명한다.“백성에대해서책임져야한다고생각했던것입니다.이이의그책임의식이상황을다른사람과다르게보게했던단서라고생각합니다.”불행하게도이이만이그것을분명히인식했다.(이이는다음시대에대동법으로귀결된개혁의아이디어를사실상처음공론화했다.)나머지사람들은임진왜란과병자호란을겪으며그들중국소수가살아남아그것을이해하게된다.
역사를좀더길게볼때광해군,인조,효종대가대동법등정책생산이가능했던시대라면,선조대는대동법을만들어갔던시대의아버지세대로정치세력이갈등했던시대였다.정책생산은정치세력의형성과연결될수밖에없다.오늘날우리도개혁이절실하고그것을위한정치세력을어떻게형성할것인가하는문제를과제로가지고있는것과다르지않은것이다.이책에서중요하게다루는이이의보합조제론도이런맥락이었다.그는국정개혁과정치세력화둘다하려다가결국하나도못이룬것이다.저자는기존의당쟁론이나붕당론이아닌이러한관점에서선조대의정치세력의갈등양상을다시해석한다.「만언봉사」나나올무렵거의동시적으로발발하는당쟁의격랑에서이이에게국정개혁을할정치적공간과기회가과연있었을까?

사림은왜분열했을까?
‘스스로확신한도덕적정당성’으로분열을정당화하다


당쟁은이듬해인선조8년에발생했다.1월명종비인순왕후가죽자선조는비로소자신의정치를시작했다.같은해7월한미해결살인사건에서시작된‘동서분당’사태는김효원과심의겸을지방으로내보내는것으로일단락되었지만사림이무리지어공개적으로갈등하는양상은이후국면을바뀌며계속해서이어졌다.일시적으로서인이승리한듯했으나동인세력은계속해서확대되고강해졌다.
선조11년,12년은동서갈등의진정한전환점이었다.이른바‘이수의옥사’와‘백인걸상소대필사건’을거치면서동인과서인은각각인적구성과그에상응하는정치적신념혹은대의명분을갖추었다.구신과결합하기시작한동인은자신들과서인을선과악으로나누기시작했다.그러면서당시의조정이‘외척세력서인’대‘진정한사림동인’으로대립한다고인식했다.즉서인전부를외척심의겸의당여라고주장했으며나중에는이이까지도심의겸의당여로보고또그렇게공격했다.서인을‘친심’세력으로규정하는것이야말로동인의가장강력한정치적공격방식이었다.
저자는동서분당사태이후잇달아벌어지는사건들과인물들의움직임이만든당쟁의사실(史實)을엄밀하고도깨알같이적시해간다.이이와선조는한순간도빼놓을수없겠지만김효원과심의겸은갈등의언설속에있을뿐현실에서는비중이없다.대신에김우옹,이발,성혼,류성룡,이산해등이중요한인물이었다.
사림은왜분열했을까?물론어떤시대의정치에도나타나기마련인정치권력에대한욕망이원인일것이다.하지만저자는그것이전부가아니라한다.사림의분열은스스로에대한강력한도덕적확신에기인했다고한다.사림(동인)의강력한힘은그들이가진도덕성에있었다.그도덕성은적어도두세대에걸친사화의시대를이겨낸힘이었다.
이책의제목처럼선한지식인이나쁜정치를하고분열을정당화하는기제는‘스스로확신한도덕적정당성’이었다.젊은사림이가졌던도덕적확신은역설적이지만앞시대훈척정치가물려준유산이었다.그들이가진도덕적신념은그자체로정당할뿐아니라,불의하고강력했던권력을물리친정치적참호이자무기였다.도덕적신념은고유한인간형을만들어냈다.예를들어정철과최영경은서로를미워했지만,흥미롭게도그들에대한사람들의평가는비슷했다.‘악’을미워하는마음이지나치고,다른사람의견을구차히따르지않았다는것이그것이다.비단두사람만의특징이아니었다.도덕적확신에찬사림은결국그것보다더강력했던권력에대한욕망의자장(磁場)으로빨려들고마침내함몰되었다.
이책은현재를사는우리에게질문을던지며역사적사고를하게한다.가장치열했던진정성조차시대적상황에지배된다는것,앞시대의‘정치적올바름’이뒷시대까지지속되지않는다는것,같은신념으로뭉쳤다고해서그것이객관적인진실이되지는않는다는것,공동체다수의객관적요구가중요하다는것,대의를잊으면욕망의지배를받는다는것등이다.과거는쉽게우리를놓아주지않는다.

이이는개인이책임질수없는것을책임지려했고,
대간들은사회적결과가아닌자신의신념에충실했다


선조8년인순왕후사망이촉발시킨두가지현상,즉선조가자신의정치를시작하고사림이분열하기시작한가운데이이의입지가좁아진것은우연이아니었다.사림이분열할수록선조의주도권은강해졌고,사림은권력에대한욕망의소용돌이로끌려들어갔다.선조8년부터이이가사망한선조17년까지,이구조는몇차례무게중심을옮기며유동했지만계속유지되었다.이책에서그구체적인내용을확인할수있을것이다.이구조에서이이는마치덫에걸린것과비슷한상황에처했다.이때이이가요구한국정개혁의핵심은공안(貢案)개정,수령숫자감축,감사구임등이었고이를이루기위해서는우선은사림의대동단결즉당파간조제·보합이필요했다.사림이힘을합해도개혁이어려운데분열되어서는가망이없다는인식이었다.다음은대신이실제국정운영을해야한다는것이다.당시언관들을중심으로공론이독점되었고,조정의의사결정과정에서삼사의내부에서이루어지던‘처치’의힘이지나치게비대해지면서국가경영을할대신들의힘이현저히약화된것이문제라여겼던것이다.
이이의국정개혁안은선조와동료의외면으로결국실패한다.두가지중에서더중요한것은동료의외면이었다.이이는믿었던이발,류성룡,김우옹,이산해등에게철저하게외면당했다.류성룡은“개혁하는것은옳은일이지만,이일을이이와함께할수는없다.”고했다.이이가특히기대했던김우옹은계미삼찬직후상소에“이이를그르다고한것은온나라의공론입니다.”라고썼다.실낱같은개혁의가능성은지워졌다.이들은우선순위면에서국정개혁이당파간시비(是非,옮고그름)와정사(正邪,바르고삿된)를가리는것보다더중요하다고생각하지않았다.정치세력간의시비가아닌민생개혁에대한추구가자신들도보존할수있는유일한방법임을알지못했던것이다.그결과사림은분열했고,그것은선조의독재로이어졌다.
선조대조정에서여러정치적행위자들은정치적책임을지는데결국은모두실패했다.이이는개인으로는책임질수없는것을책임지려했고,대간들은사회적결과가아닌자신의신념에충실했다.책임져야하는의무와지위에있었음에도그래야한다는의식이부족했던사람은선조였다.

선조는책임져야하는의무와지위에있었음에도
그래야한다는의식이부족했다


이책에서동과서의갈등과분열의현장에서수많은인물들과함께가장주목되는인물이선조다.아이러니하게도선조는양진영이극단으로치솟는갈등의상황에서정국의주도권자가되었다.특히정여립의난으로촉발되어수많은희생자를내었던기축옥사과정에서선조는거의완전하게조정을장악하고관료들에게거의제한받지않은독재에가까운권력구축에성공했다.
선조는서인과동인사이에서무게중심을이쪽저쪽으로옮겨가며명망있는인물을정치적으로소비했다.이이,박순,이산해,류성룡,정철,성혼,이원익,노수신등이다.그들은정치적용도가다했다고판단되면버려졌다.이이는그렇게되기전에갑자기사망했지만,더오래살았어도다른사람들과별로다르지않았을것이다.심지어선조는정여립사건이일어났을때정철에게위관을맡도록강제했다.이것이가져올당파적갈등과그결과가어떠할지에대해서는관심이없었고이를통해서자신의힘을최대화하는데에만관심을쏟은것이다.그는왕이라는제도가자신에게제공한것을최대한이용했고또누렸다.하지만그것을토대로가능한공적이상(理想)의정책적구현에무관심했다.선조는정치상황및그결과에대한궁극적책임이자신에게있다는의식이거의없었다.선조를통해정치적힘과정치적책임은분리되었고,자연스럽게도그것은국정의무정부적상태를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