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상가장중대한전환기,
동아시아문화권의형성기
중국역사의“황금기”로불리는당제국은중국역대왕조중가장개방적으로다양한문화를수용하였던기간이었으며,동시에오늘날에이르기까지사회문화적으로동질성을유지하고있는동아시아문명이본격적으로형성되는시기였다는점에서범지구사적으로대단히중요하다.
저자마크에드워드루이스(미스탠포드대교수)는이책에서중국이‘중원지역’을벗어나지리적확장을이루었고,한국과일본,그리고페르시아만여러나라들과밀접한관계를맺었던역동적인...
중국역사상가장중대한전환기,
동아시아문화권의형성기
중국역사의“황금기”로불리는당제국은중국역대왕조중가장개방적으로다양한문화를수용하였던기간이었으며,동시에오늘날에이르기까지사회문화적으로동질성을유지하고있는동아시아문명이본격적으로형성되는시기였다는점에서범지구사적으로대단히중요하다.
저자마크에드워드루이스(미스탠포드대교수)는이책에서중국이‘중원지역’을벗어나지리적확장을이루었고,한국과일본,그리고페르시아만여러나라들과밀접한관계를맺었던역동적인당대라는시기를쉽고도풍부하게담아낸다.당대사람들은바다와육지에서광범위하게무역에종사했다.내륙아시아로부터온상인들이장안과낙양에거주하였고,모험적인상인들은보다넓은세상을향해나아갔다.이는곧범지구적디아스포라의시작이었다.
그러나영원할것같던번영과평화는곧종지부를찍었다.756년절도사안녹산의반란은당제국을그뿌리까지흔들었고그후재건된당왕조는이전과뚜렷이구별되었다.이책은흥미롭게도후대동아시아인들에게찬란한영광의시기로기억되는당대의전반기보다쇠락해가는당의후반기에주목한다.그역사적단절이중국역사궤도에서결정적순간이었다고보기때문이다.
저자는서구학계의방대한학술성과를집대성하고특유의박람강기를동원하여지리,정치,도시생활,농촌사회,외부세계,친족,종교,문학과예술에걸쳐난숙하였던당대문명이정치적위기를통해한계에직면한뒤에새롭고보다업그레이드된문명으로탈피하는과정을유려하게풀어낸다.
“사실상중국의중심지이면서북부의통제를받는남부”
;당대가장큰변화는중화제국의공간에대한재정립이었다
저자는이책에서가장먼저중국의중심지관중,북동부,중원평원,사천,그리고남부지역등지의지리적경관에대해기술하면서,당대의가장큰변화로남부지역이경제와인구,문화등여러측면에서중국의중심지로등장한것을꼽는다.
당왕조첫140여년간(618~756년사이)그중심지인장안과제2의수도인낙양에서외부로확장하고있을때에인구의대다수는북부최대수로인황하,그리고그주요지류인위하와분하유역에거주하고있었다.하지만당왕조가멸망할즈음에는완전히변하였다.전통적중심지였던북서부지역은장기간의경제적,생태적쇠퇴가시작되어오늘날과같은빈곤하고반(半)사막인후배지로전락하였다.중원평야는고대중국문화의전형으로서의광채를상실하였고,북동부(하북성과산동성)는거의이민족에게점거되거나경계지역이된다.이지역들은후기중화제국시기내내비한족의‘정복왕조들’의본거지가되었다.
남부의개발은위진남북조시기잇따라등장한국가들에의해시작되었고,단명한수왕조의최대업적인대운하를통해곡물,특히쌀을남부에서북서부의장안에까지운반할수있었다.안녹산반란이후,황하유역대부분의지역에대한당왕조의통제권이상실되면서양자강유역,이른바강남은제국의경제중심이자국가재정수입상으로도가장중요한지역이되었다.남부는경제적,인구나문화등모든면에서북부를압도하였다.하지만전략적인이유로북부에있던수도의정치적통제를받는남부라는전형적인형태는당말이후의중화제국시기내내유지되었다.
최상위대가문의몰락과함께‘상업화’와‘도시화’가진행되다
중국역사에서되풀이되는주제는정치권력의중앙집권화와지역자치세력사이의긴장관계이다.756년장안을장악하면서그절정에도달한안녹산의반란은당전기의제도적인틀즉균전제,부병제,조용조세제가실패함으로써발생하였고또한그것을완전히붕괴시켰다.이는국가자산과신민(臣民)에대한국가통제의상실을의미하는것이며,일련의변화들은차례차례대가문중심의귀족제적사회질서를종결시켰다.후기중화제국을창조해내었던‘경제혁명’이송대에절정을이루지만그변화는8~9세기당대에시작되었던것이다.이는오대시기에이르러중국인들의생활을근본적으로바꾸어놓았다.마크에드워드루이스는당후반기위진남북조이래형성된기존의사회시스템이중단및폐기되는시점을‘남부’라는문화적지형의변화와함께후기중화제국으로서가장큰전환점이라강조한다.
변화의방향은‘상업화’와‘도시화’였다.저자가깨알같이묘사하고있는장안과낙양의벽으로둘러싸인격자형의페쇄적인도시구조는8세기중반을기점으로균열이생긴다.많은공간적제약들이사라지면서도시의상업시설들이시끌벅적한거리를따라주거공간과섞여있는후기중화제국의도시모델로변화하였다.더중요한것은대운하를따라설탕,차,종이,소금,목재,보석,약초,구리,실크등의상품들이대규모로운송,교역되는새로운중심지가등장하여번성하였다는점이다.바로강도(남경),항주,소주,번우(광주)등이다.경제혁명은도시생활과상인에게가장두드러지게나타났지만,당대농촌사회역시혁신을이시기에겪는다.농촌여기저기에서생겨난새로운상업중심지들은중개인이나소매상인의지배하에점차상업화되어가는농업시스템에편의를제공하였다.당의후반기는이러한상업적혁신의전환기였다.
한편,남북조시대에걸쳐형성되었으며당대의특권층으로존재했던대가문이당제국의운명과함께소멸한것은20세기중국역사학의주요한쟁점중의하나였다.다수의통설은과거시험제도의등장에주목해왔지만,이러한경향은그결과가원인으로변한것이라저자는주장한다.오래된가문에게당시의과거시험은전적으로유리하였고,과거를통한최고위관료로의변신은놀랄만한일이아니었다는것이다.문제는이들이지역적기반을포기하고수도장안과낙양으로실제로이주하게되면서,국가체제밖에서는존재할방법이없는관료적귀족이되었다는점이다.
또한안녹산의난이후,국가관료제외부에서새로운권력의기반이등장하였다.동북지역과중원지역에서절도사들이발호하고,남부지역에서소금전매제가등장하면서군사적,재정적,행정적전문가로서의배경을지닌인물들이바로그들이다.반면난세로인해북부의대가문들은그들의지역적기반을버리고장안으로더욱결집하였다.881년황소반란군의장안약탈은대가문구성원의죽음이나당왕조의종말만이아니라그들의물질적부의파괴도의미하였던것이다.
상업과외부와의교섭에무관심한중국중심적제국이라는서구의시선을걷어낸다
당대상인들이외부세계와의교역관계를재편한것은새로운중국으로가는또하나의전환점이었다.서북쪽의최대중심지는수도였던장안과낙양이었다.투르크,위구르,소그디아나인뿐만아니라아랍,이란,인도등의상인과각국의외교사절과유학생및외국인불교승려등이가득차있었고,돈황이나양주와같은감숙회랑지구의도시는외국계주민이중국계주민의수를훨씬상회하였다.남부항구인교주(하노이),번우(광저우),복주에는주로참족,크메르족,자바인,신할라인이거주하였던것처럼외국상인의분포는교역의패턴과일치하였다.
당시강도(남경)는동아시아상업교역의최대중심지로서그지위를8세기후반까지유지하였는데,대체로한국인이장악하고있었고,일본인은제한적인역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