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시대를 세우다 (새 권력은 왜 새 수도를 요구하였나)

경복궁 시대를 세우다 (새 권력은 왜 새 수도를 요구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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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앞둔 지금,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역사! 정도전은 경복궁의 전각 이름을 통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역사 속의 이상적인 군주는 누구인가? 그러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 현재의 임금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가? 권력은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그의 답변에는 바로 조선인들이 지향한 새로운 체제와 권력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 권력이 행사되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다. 경복궁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담은 집이었다.

궁궐과 수도 계획 전반에 대해 연구해온 장지연(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새로운 권력과 그 권력이 행사되는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문제의식으로 하여 경복궁과 한양의 초기 모습에 주목한다. 새 권력이 만든 공간이었기에 그 권력의 성격과 의도를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태조대의 한양천도와 정종대의 개경천도, 그리고 다시 태종대 한양 재천도의 과정을 통해 수도 한양과 법궁 경복궁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기획은 기획일 뿐, 조선 건국자들의 의도가 현실에서 그대로 관철되지는 않았다. 저자의 역사를 보는 눈과 수사력은 그 ‘기획’과 ‘현실’ 사이에서 빛난다. 새 체제의 정당성과 유토피아에 대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늘 강력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불확실성, 관성과 제약, 굴절까지, 이 책은 여말선초 새로운 시대를 치열하게 세웠던 당대인들의 역사적 경험을 섬세하게 들려준다.

장지연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흔히 거론되는 구체제란 것이 불과 십 수 년, 길게 늘려 잡아 봐도 반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조선인들이 맞닥뜨렸던 구체제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웠는지 익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체제를 청산하며 새로운 권위를 세워 나간 과정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앞두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우리에서 여러 시사점을 준다며 일독을 권한다.
저자

장지연

서울대국사학과를졸업했고,같은대학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구원,서울시립대서울학연구소연구교수를거쳐현재는대전대역사문화학과에서학생들을가르치고있다.궁궐과수도계획전반에대해꾸준히연구하고있으며,언어를통해공간의위상을살피는등다양한방법으로공간의역사성을짚어보고그안에담긴이야기를탐구하는작업을하고있다.
지은책으로『고려?조선국도풍수론과정치이념』(2015),『민음한국사:15세기,조선의때이른절정』(공저,2014),『마주보는한국사교실5』(2010),『고려황도개경』(공저,2002)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보이는공간에서보이지않는권력과시대를읽어내기

1.고려의마지막몸부림
사라졌다찾은연복사탑중창비
공양왕과정몽주,반전을꾀하다
태조유훈,고려의미란다와크레덴다
ㆍ훈요십조
한양순주와연복사중수
구언교서,무너지는선왕성헌
왕건의재해석

2.새왕조새수도정하기의여정
한양은정말무학대사가고른땅일까
설화에담긴시대성
왕건이되고싶었던이성계의꿈
유교군주이성계의독실한불교신앙
계룡산에라도천도하겠다
천도지답사,마침내한양으로
전통의영향과퇴조,그리고수도의조건

3.정도전이경복궁에담은뜻
한양의밑그림:종묘와사직,궁궐,시장과도로
경복궁은어떻게구성되었나
임금의큰복은무엇인가:경복
침전은편안한공간인가:강녕전,연생전,경성전
투명한정치에대한갈망:사정전
‘부지런함’의근거:훈요십조와근정전의차이
임금의부지런함은어떠해야하는가
政과正,德과得:정문

4.굴절,그러나연속
왕자의난,개경으로의복귀
다시한양으로갈수있을까
500년수도,개경의관성
공간의전환,그리고구질서의해체
아버지의죽음과태종의새로운공사
ㆍ태종에의해재탄생한한양
버릴수없는법궁
새로운위상을더하다:경회루

5.궁궐의안팎에위치한관서
관서의위치는무엇을의미하는가
없던건물은왜만들었나:도평의사사
문무는양팔과도같다:도평의사사와의흥삼군부,융문루와융무루
문무의겸비는왜중시되었나
학문은늘임금의곁에:집현전
지식은널리보급되어야한다:주자소
공과사의경계,편전에사관이들어가기까지
권력을어떻게승계할것인가:동궁

에필로그:기획과현실사이에서

참고문헌
감사의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조선의건국자들은나라의앞길을어떻게공간에담아내었는가

『경복궁,시대를세우다』는한양천도에앞서,1389년말부터1392년여름까지,공양왕이재위(1389~1392)했던2년반이란짧은기간에숨가쁘게벌어졌던정치투쟁에상당분량을할애한다.우리는1388년위화도회군부터사전개혁을거쳐공양왕이물러나기까지새왕조의개창자들이예정된길을차근차근밟아간것처럼생각하는경향이있다.그러나당대로들어가서보면예정된것은아무것도없었다.한치앞을예측할수없는매우격동적이고다면적인변화의과정이었다.
당시폭발적인이슈는‘연복사중수’와‘한양순주’였다.이사건들은공양왕이공민왕의정치를모방하고,멀리는태조왕건의유훈(훈요십조)실행이란전통적권위를빌어왕권의회복을위한마지막노림수였다.성균관유생들은즉각적으로반발했다.저자는이시기정치공방의본질은권력의정당성에있었다고본다.좋은목적만큼이나바른수단을중시해야한다는압박감이물리적힘의억지스러운강압보다는정치적정당성을확보함으로써지지의논리와세력을구축하는과정이었다는것이다.
조선건국자들은전통적권위를해체하고비판하는것뿐만아니라,자신들의이념이더욱우월하다는점을입증해야했다.우월할뿐만아니라,그것이궁극적으로어떠한형태의권력을지향하고있는지도설명할수있어야새로운프레임을짤수있었다.이책은한양천도와궁궐을통해새권력의주체들이어떻게전통적권위를해체하고새정치권력의상을그려내었는지를섬세하게살핀다.그리고그것이상당히성공적이었다는것을보여준다.

조선이건국되던시기의레이어를탐구한다는것은단순히이시대의단면을평평하게늘어놓겠다는의미는아니다.그보다는새로운권력이성립하던그시대의기획을이해함으로써변화의방향과이를추동한힘을읽어내고,그것이현실에부닥치며어떻게조율되는지를살펴보려고하는것이다.이글에서다룰궁궐과수도는늘권력의핵심장소였다는점에서,그권력의성격과기획을가장잘드러내는지점이다.이렇듯가시적인공간을통해비가시적인권력을드러내고,기획과현실의변증법을통해이시대를종합적으로보려는것,이것이이책을통해독자들과나누고싶은부분이다.(프롤로그중에서)

임금의부지런함은어떠해야하는가?

새왕조의새수도정하기의여정은전통적권위의영향과새로운권력의장점이교차하는매우극적인선택의연속이었다.한양천도는이성계가했던그어떤일보다도우리에게가장깊은족적을남긴것으로저자는꼽는다.계룡산,한양,무악,적성광실원,장단백악,도라산등의후보지중에서왜하필한양이었을까?‘중앙입지와조운소통’의입지론이었다.당시3개의선택지,즉『도선비기』같은전통적인도참,형세를설명하는이론지리서,그리고국토중앙입지와조운소통같은입지론중에서마지막기준에힘을실린것은무엇을의미할까?장지연교수는정도전,조준,하륜같은조선건국자들에게도참론은아예지식으로취급도하지않았다고한다.중앙입지와조운소통이라는입지조건을따졌던것은당대의시대성을반영한것으로그만큼“최대한전국에대한국가의일원적인지배체제를염두에두고수도를생각했다”고본다.
이제책은새수도서울이건설되고제모습을갖춰가던시기,경복궁이라는법궁이어떠한기획아래만들어졌는지로이어진다.1394년12월부터시작된경복궁공사는약10개월간을거쳐이듬해인1395년(태조4)9월완공되었다.창건당시경복궁의전각규모는내전173칸,외전212칸,궐내각사390여칸,총775칸으로고종대중건된경복궁의5분의1의규모였다.
저자는이책에서‘강녕전(연침)-사정전(보평청,이상내전)-근정전(정전)-정문’순으로,경복궁의가장안쪽의전각에서부터바깥으로나오며그이름에담긴뜻을설명한다.이는저자가자의적으로정한것이아니라,정도전이정한순서를따랐다고한다.그리고이러한순서는바로‘군주의정심성의-격물치지와정사(천하의이치를얻는법)-구체적인정사의내용(천하의일을다스리는법)-요약’에해당하는구성이었다.수신에서평천하까지,내면의수양에서외면의정치까지가성리학을통해이루어져야한다는주장이었다.이는이념적으로고려와구별되는큰기획이었다.정도전이담은뜻은이시대새로운정치와사회개혁을희망했던이들이공감하고있었던것이기도하였다.이러한바람은이제새군주를통해찬찬히실현될수있을것만같았다.

공간의전환,그리고구질서의해체

조선건국여정에서그마지막걸림돌이었던정몽주를,암살이라는극히폭력적인행위로제거하며원죄를남겼던태종이방원은1차왕자의난(1398)이란쿠데타로권력을잡았고,재위에오른정종은개경의복귀하였다.이성계의충격과는달리개경천도는대다수관료와백성들에게환영을받았다.500년도읍지개경의관성은그만큼강력하였다.다시한양으로갈수있을까?이성계의한양천도와이방원의한양재천도는그들의과단성이없었다면불가능했을것이다.
저자는이두왕이거침없고단호한성격이란점에서닮았지만리더십스타일은전혀달랐다고평한다.이성계가왕건을의식하면서절차적정당성을준수하는방식으로새권력을얻었다면,이방원은목적을위해수단을가리지않았다.어쨌든전격적으로한양재천도가결정된후이둘의관계는극적으로개선되었다.태종은이후에한양의거의모든곳에손을댔다.창덕궁을수리하고,그앞에관아들이들어올조방을만들었으며,개천을준천하고,종로거리에는시전행랑을건설하였다.문묘를수리하고,도성을전면적으로보수하였다.한양은사실상태종의손에의해완전히새롭게정비된것이었다.
비록굴절이있었으나수도의이전은고려의구질서를깨는중요한계기였다.대표적인것이비보풍수(풍수의단점을보완)체계와왕의순주였다.한양천도는개경을비보하는체계가필요없기에불교교단을정리할수있었다.한편국왕의순주개념역시성립하기힘들었다.고려의국왕이별경이나별궁에순주한것은지맥의근본이서경(평양)에있었기에때때로개경이쉬어줄필요가있다는논리에서나온것이다.이처럼국왕의순주나비보사사의체계처럼개경이라는공간과직접적으로관련을맺고있었던고려의구질서는한양천도를계기로해체될수밖에없었다.태조와태종이이정도의효과까지기대하였던것은아니었을지라도공간의전환은예상외로많은변화를가져왔다.

무엇을어디에배치할지가바로정치의방식

경복궁의안과밖에여러관서공간들이갖추어져갈때,새체제에서지향한권력에대한생각은확연히드러났고또그대로적용되었다.과연관서의위치는무엇을의미할까?고려의경우주요관서들이모두본궐안에모여있었던데반해조선의건국자들은궁궐안에예문관,춘추관,집현전등최소한의기관만둔반면,의정부와삼군부,육조등의주요관서들은궁성남문밖에위치하였다.이에대해저자는국정운영의속도와편리성보다는투명성을중시했다고평가한다.도평의사사(의정부)와의흥삼군부가궁궐과가장가까운동편과서편에자리한것은문무의겸비를중시한조선건국자들의시대정신이었다고한다.저자는한국사회에서조선이망한이유를지난100년동안열심히찾아왔으니,이제는조선의건국자들이고려말홍건적과왜구의침략이란전란의세기를어떻게헤쳐나왔고,그들이살았던시대와짊어졌던짐들의가치에대해제대로평가하자고제안한다.
육조거리의관서배치중에저자가갸웃갸웃했던부분이바로예빈시의위치였다고한다.예빈시는일반적으로사신접대를맡은기관으로예조에소속되었다.기관의급도떨어지는데다중국사신이묵었던태평관부근에두지않고왜핵심요지였던도평의사사옆에두었던것일까?바로의정부재상들에대한대접이그이유였다.이는재상권을강화하고투명하게정치를운영하고싶다는조선의지향이담긴것이었다.

대통령집무실이전을앞둔지금,권력공간은어떠해야하는지
조선건국자들의고민에서배운다

두말할것없이조선의권력공간은조선의것으로21세기를살아가는우리가재현하는것은불가능할뿐더러그런시도는시대착오적일수밖에없다.하지만권력과공간의관계에는시대와장소를막론한보편성이있기에,그들이그권력공간에담은생각에도보편적인울림이있다.구실서의권위는어느선까지청산되어야하는가?새로운권력의정당성을확보하기위해서는어떠한방법을취해야하는가?부패하지않는권력을만들기위해투명성과공정성은어떻게담보해야하는가?이렇게정립한권력을,어떻게세대가바꿔어도그건전성를유지하며계승시킬수있을까?
한시대새로운나라를만든정치인들이던진이러한질문들과답이,비숫한고민을하고있는우리의생각을좀더두터우면서도폭넓게할수있으면좋겠다는바람을이책에담았다.지금의경복궁은초기의기획과달라졌지만당시의고민들을이해하고다시본다면본명이전과는다르게보이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