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지식들이경쟁하는시대가열리다”
‘철도’(『매혹의질주근대의횡단』2003)와‘이양선’(『악령이출몰하는조선의바다』2008)등을통해근대의역동적이고중층적인가능성의세계를특유의박람강기와수려한문장으로소개해온박천홍선생(아단문고학예연구실장)이새로운사실을찾는과정과집필에7년의공력을들여『활자와근대』를내놓았다.
‘1883년,지식의질서가바뀌던날’이란부제가암시하듯이책은우리나라최초로서양식연활자로인쇄한「한성순보」와「한성주보」,단행본출판사‘광인사’등신식활자문화의기원을이루는시공간인1880년대로거슬러올라간다.근대연활자인쇄술이조선의근대를어떻게바꾸었는지,특히신문이라는커뮤니케이션양식으로인해조선사회의의사소통구조에어떤변화가일어나는지,이를통해당시사람들이무엇을상상했고꿈꾸었는지살펴본다.오늘날우리가자명한것으로받아들이는지식과정보,개념등을낯선시선과감각으로다시들여다봄으로써오늘날의세계를새롭게해석해낼가능성을찾아보려는것이이책을낸이유이다.
당시조선정부가구입한‘푸트인쇄기’의수입경로,「한성순보」의발행부수와가격,박문국장인들의종류와인건비,활자체등박천홍선생이새롭게밝힌사실들은흥미롭다.저자는근대출판의기원을다룬이책『활자와근대』다음으로는20세기초반,근대적지식과문화를만드는데참여했던사람들을기록하는데힘쓸생각이라한다.
근대의활자문화공간,그국제적네트워크를찾는다
이책은활자와인쇄기가현해탄을건너오기직전,중국의미화서관,일본의쓰키치활판제조소등동아시아근대의활자문화공간을답사하는것에서시작한다.특히조선에직간접적으로관련을맺고있던당시일본의인쇄기술과활자제작시스템을세밀히복원하는것은우리나라근대인쇄출판의기원을좀더풍부하게재구성할수있기때문이다.일국사의시야에서벗어나국제적네트워크에주목한점이이책의첫번째특징이다.
중국에서는1819년영국선교사로버트모리슨이서양식연활자인쇄시스템을도입한이후개항장을중심으로신문과잡지,과학기술도서들이급속도로전파되었고,1860년대이후국영번역기관과관영인쇄국이곳곳에설립되면서근대출판세계로빠르게나아갔다.이무렵중국에건너온윌리엄갬블(1830~1886)이창안한‘전도자모법’은활판인쇄문화의일대혁신이었고이른바현재까지도인쇄문자의표준이되는‘명조체’를만들면서한자인쇄의역사에서신기원을이룩한다.이후갬블의일본행은일본의근대인쇄출판의역사를바꾸는계기가되었고,머지않아조선은갬블의후예들에게서양식연활자인쇄술을수입하게된다.
이책의국경을넘나드는활자여행은일본으로이어진다.일찍이네덜란드의일본무역거점이었던나가사키와‘난학’을통해제한적이나마서양과접촉하고있었던일본은메이지유신이후부국강병정책을가속화하면서빠르게서양화,근대화의길로나아갔다.1869년갬블이일본으로건너와연활자인쇄술을전수한이후모토키쇼조(本木昌造)와히라노토미지(平野富二)라는일본인쇄계의거목이탄생하면서근대출판의길이열린다.
특히요코하마의쓰키지활판제조소는조선의근대인쇄술형성에지대한영향을미쳤다.그전신인히라노활판제조소에서조선문자2호,3호,4호,5호활자가만들어졌고1880년대이후우리나라의근대신문,잡지,교과서,단행본,성경제작에쓰인활자와인쇄기는그곳에서제조,판매한것들이었다.이중「한성주보」에사용된4호활자(이수정체)를제외하고는초창기기독교의역사와긴밀하게연결되어있는데,이책은만주선양의조선어성경책인쇄소인‘문광서원’에관해소상히밝힌다.저자는2호와5호활자는가톨릭의사전과성경번역서에사용되었고,3호활자는개신교의성경번역에널리쓰였다고말한다.
박문국과광인사,근대출판의길을찾아서
“이미[도쿄에]머물고있던박[영효]공사가(…)우리인쇄국에서별도로제작한푸트인쇄기(フ-ト印刷機)두대를제조해보내고,기타지난20일[음력11월11일]샤료마루(社寮丸)로화물50여상자를실어보냈다.”(1882년12월22일자(음력11월13일)『도쿄니치니치신문』)-본문204쪽
이책이새롭게밝힌사실들중하나로우리나라최초의서양식인쇄기와연활자의수입내역이다.
1882년임오군란뒤외교사절로일본에갔던수신사박영효일행이일본에서활자와인쇄기를수입해온것이다.명조체한자활자와문선함과함께일명‘푸트인쇄기(족답인쇄기)’두대(구입가약2천엔)였다.이활자와인쇄기로1883년박문국에서최초의신문을제작한다.
드디어‘한성에서10일마다알리는새소식’이란뜻의한성순보(1883년10월1일(음력)발간)가나와이후주보로이어지며조선왕조의‘조보(朝報)’를대신했다.이책은그동안추정으로남아있던한성순보의발행부수,가격에대한결정적인증거를보여준다.
“조선의『한성순보』는3천5백책여(冊余)를인쇄,3천책은지방으로,2백책은경내(京內)로관명(官命)으로팔아넘긴다.3백책은사보고싶은자에게매호값30문으로판다.”(『시사신보』1884년1월25일자(음력1883년12월28일))-본문258쪽
이기사는한성순보발행부수가3천5백부라고명시하고,그내역까지자세히기록하고있다.당시신문의편집내지실무를맡고있던이노우에가쿠고로가보낸자료를토대로작성되었다.당시의인구규모나교육수준,교통통신상황을고려해본다면이발행부수가대단히많은편이다.저자는특히박문국의경영실태를보여주는희귀자료,서울대규장각에묻혀있던1886년도박문국회계자료『국용상하책(局用上下冊)』을입수하여새로운사실들을밝힌다.당시수입과지출의구체적인내역을분석,관영인쇄소의경영상태를재구성해냄으로써,기존의학설과달리당시박문국의재정상태가양호했음을입증한다.저자가새롭게밝혀낸사실들로가득하다는점이이책의두번째특징이다.
「한성순보」와「한성주보」는비록관보였으나나라바깥의거대한세계에대한지식을선택적으로소개,가공,해석함으로써지식의개방성을촉진시켰다.기자,편집자,번역자라는새로운직업군이탄생했다.이들은목적의식적으로기사를선별하고배치했다.이것은조선에서근대언론이탄생했음을보여준다.또한권력의하향적침투라는전통적방식을지양하고민의상달의이념을지면위에구현하려했다.나아가한글과국한문을신문문체로채택함으로써지배언어로서한문의특권을상대화하고한글이공적언어로유통될수있는가능성을열었다.
박문국의신문발행과민간출판사광인사의단행본출판은관청주도란핸디캡과대중적인독자가만들어지지못한한계때문에결국오래지속되지못하고말았다.하지만이들두언론,출판기구는1890년대이후애국계몽기의근대언론과민족주의출판이꽃피는데값진거름이되었다.
연활자인쇄술은조선의근대를어떻게바꾸었는가?
무엇보다도지식과정보의생산양식이달라졌다.활자주조와인쇄공정이다품종소량생산에토대를둔수공업적‘공예’의영역에서대량생산과유통,소비를위한기계제‘공업’으로이행해갔다.연활자인쇄술로한지면에담을수있는정보량이크게늘어났고,생산속도가높아지고인쇄부수가비약적으로늘어났다.
인쇄도훨씬선명해졌다.인쇄용유성잉크로판면을묻혀기계로압력을가하는방식으로변했기때문이다.종이를누르는압력의차이때문에연활자로찍은지면에서는요철의입체적느낌이살아있었다.활자체도전통과는단절되었다.조선시대활자를만들때글자본은주로학문과예술적경지가뛰어난왕족이나상층사대부들이썼다.하지만도쿄쓰키치활판제조소에서만들어진한글글꼴은주로하층의기독교신사들이쓴글씨를전범으로삼은것이었다.
활자로간행된책들의주제와소재,종류와성격도달라졌다.신문이라는커뮤니케이션형식이처음으로선보였고,서양의정치제제와사회제도,물리학과화학,농학과공학,지리정보등이번역소개됨으로써세계에대한지식과이해가확대심화되어갔다.외국어를배우기위한어학서와사전도활자화됨으로써언어의상대성과다원성에대한감각이생겨났다.비록나라바깥에서인쇄되었지만성경이한글로번역,인쇄되어국내에들어옴으로써기독교신앙에대한이단과금기의장벽도허물어져갔다.
지식사회를둘러싼이같은사태는두가지의의미심장한변화를상징적으로보여준다.조선시대내내흔들림이없었던성리학이도전받기시작했다.지식과정보의수입경로가복수화되며개항이후지식형성과정에서중국의독점적지위는무너졌다.그자리에일본과서양의담론들이경쟁적으로몰려들었다.
『활자와근대』는근대텍스트를구성하는물질적조건이지식과사유의구성방식,그리고독서경험을어떻게바꿔가는지에주목한다.이를통해텍스트내용분석에만치중하던관행에서벗어나텍스트의물질성과정신성의결합관계를밝히는데주력한점이이책의세번째특징이다.
신문과근대,커뮤니케이션양식은사회의소통구조를어떻게바꾸었는가?
국왕의통치행위를행정적으로전달하던행위에그쳤던조보와는달리,근대신문에서는원리적으로국왕의권력의지와민간의계몽의지가한지면에서공존할수있게되었다.이책에서는근대미디어의출현으로인해전통적인의사소통양식이어떤변형과정을겪으면서새로운시대에적응하게되었는지살펴본다.
전통시대에승정원에서간행되었던‘조보’는손으로필사되었고비밀주의,폐쇄주의,독점주의에갇혀있었다.기계식연활자로인쇄된한성순보와한성주보는공유와개방주의를지향했다.소수의지배계층에독점되어있던정치의영역도공개하고논리적으로설득하며이성적으로토론할수있다는것이근대신문의이념이었다.한성순보의개방성을상징하는것은구매가능성이다.순보는30문,주보는50문으로가격이매겨졌다.국왕과국가의지엄한통치행위뿐만아니라세상의모든지식과정보를언제든화폐로교환할수있는시대가되었다는것을의미한다.
국가의공식정기간행물에서국문체,국한문체,한문체가동시에출현했다는것도의미심장한대목이다.조선시대지식교양층의사유와의식,상상력을지배해온한문체의절대성이무너지고상대화되었다.하층민이나여성의속된언어로천대받았던한글이공식언어의지위에올라선것이다.언어가한민족의정체성과무의식을결정한다면,교양언어와민중언어의경계가허물어지면서민족적차원에서표현가능성의영역이확장되었다.
근대초기신문들은전통시대의‘윤음’처럼과거의구술문화전통안으로포섭되어서낭독되거나구술되었다.활자문화의산물인신문기사가낭독과음독에적합하도록과거의문체를모방하거나채용하기도했으나새로운커뮤니케이션양식은기나긴전통에서벗어나,시각중심적이고묵독에따른내성적인간으로특징지을수있는‘활자형인간’도이때태동하기시작했다.
의사소통의문명사적전환기의책과활자
1880년대에일본을거쳐서양식연활자기술이도입됨으로써조선에서도드디어근대인쇄출판의막이올랐다.이때를전후하여성리학이라는지배이데올로기의전일적인지배체제는반대로마침내막을내렸다.이질적이고때로는화해불가능한복수의지식들이서로경쟁하고,이단적인이론마저전통적인가치와경합하며,불멸의가치로추앙받던성인의말씀조차도전받는시대가열린것이다.
“이책에서근대지식세계의형성과정에주목한것은다양한복수의가능성가운데서당대인들이선택하고수용하고변형시킨것들이바로지금우리가세계를이해하고해석할수있는사고의틀을구성해왔기때문이다.그과정을다시살펴봄으로써우리는현재의삶을좀더풍부하고깊이이해할수있는실마리를발견하게될것이라고믿는다.”-들어가는말13쪽
그로부터한세기가지난1990년대이후디지털출판의시대가시작되었고,21세기이후에는종이책과전자책이공존하는시대를맞이했다.책의생산과유통,그리고소비과정을근본적으로혁신하는새로운미디어들이등장하면서구텐베르크은하계의행방을둘러싸고여러가지엇갈린전망들이나타나기시작했다.
오늘날우리는의사소통양식의문명사적전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