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

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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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민족에 관한 세계 학계의 논의와 이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된 서장부터 임진전쟁에서 출현한 ‘자발적 군대’인 의병의 격문과 통문 속에 나타난 민족담론과 상상의 공동체, 전쟁 전후 한글의 사용과 민족의 출현, 그리고 전후 임진전쟁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방식 속에서 민족담론의 모습을 살피는 모두 5개 장으로 이뤄졌다. 저자는 임진전쟁을 통해 민족이 출현했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 장에서 의병장의 격문이나 격서, 초유문, 선조와 장수들의 서간, 전후 기록문학 등을 분석하여 그 근거를 제시한다.
저자

김자현

이화여대영문학부를졸업했고,미시간대에서중국문학전공으로석사학위를,컬럼비아대에서한국사전공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일리노이대교수를거쳐컬럼비아대한국학석좌교수를지냈다.2011년향년69세로별세하였다.대표저서로박사학위논문을토대로한『왕이라는유산』(김백철옮김,너머북스,2017,TheConfucianKingshipinKorea:Y?ngjoandthePoliticsofSagacity,컬럼비아대출판부,2001)이있고,혜경궁홍씨의『한중록』영역(캘리포니아대출판부,1996)으로1997년문예진흥원의제3회한국문학번역상을받았다.

목차

머리말
옮긴이머리말

서장
동아시아에서벌어진큰전쟁
한국의민족담론
역사서술에대한고민:개념과용어
동아시아에서민족과근대성개념
한국역사학계에서민족의개념
역사적고려:트라우마와담론
접근과구성

1장의병과민족담론
서곡
의병봉기
백성들에게탄원하다:격문과민족담론의출현
순국:마음속에서그리고전장에서
종족과민족담론에대한수사들

2장의병과상상의공동체출현
전파방식과격문의수신
의병들의군사적활약
인민주권과재지사족
여파

3장언어전쟁:일본군점령기한문의위상변화
일본의혼란한공간침투
서울로진군
히데요시의점령계획
조선의식민지화
서울에서벌인대학살
일본군의후퇴

4장언어전략:일상어를통한민족적공간의출현
명의칙서
기다림
명다루기의복잡성
조선의민족적일상어공간의출현
선조의도약:조선말로백성을호명하다
강화협상
자존의중요성을강하게인식하는조선
새로운문어:한한(韓漢)병용
정서의언어
전후문서의공간

5장후유증:몽유록과기념문화
기념과전후담론장
몽유록과전복
전투:장례를치르지못한시체
이름없는백성의시신
묻히지못하는여성시체
문학작품의생산과패권적질서

김자현의연구목록
미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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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일본이조선을침략했을때한국민족이탄생했다

임진전쟁중토요토미히데요시가16세기판‘위안부’설치를직접명령했다
민족이사라질지도모른다는공포속에의병봉기,한글의사용이
민족의출현을이끈주요요인이었다
특히한자의압도적인헤게모니아래있었던한글이
전쟁중에‘우리의것’혹은‘민족적인것’이될수있었다

임진전쟁(과만주족의침입)은조선과중국,일본을포함한동아시아국제질서에큰변화를몰고왔다.중국에서는명·청교제가이뤄졌고,일본에서는도쿠가와막부가들어섰다.하지만주전장이었던한반도에서는조선왕조가300년더지속되었다.이에대해김자현교수(컬럼비아대)는마치아무일도없던것같은조선에서사실은민족의출현이라는커다란변화가나타났다고주장한다.
저자에따르면임진전쟁과병자호란이라는대규모외침을겪고대항하는과정에서조선의구성원들에게‘타-민족’과구별되는‘자-민족’에대한인식이생겼으며,이는‘민족정체성’의형성과강화로이어졌다.책은임진전쟁중에나타난의병운동,한글의사용,전후기념사업등을통해이러한징후를포착하고논증한다.전쟁중의병장이발송한격문과통문,초유사의초유문에서우리와타자를구별하는수사를발견하고,우리말과한글,문화와역사가우리와외부인(명군과일본군)을구분하기시작했다.임진전쟁을거치며조선인은‘우리’의범위를인식하고그것으로‘타자’를배척하거나구분했다.전후기념사업으로이러한인식이더욱굳어지며근대로이어졌다는것이다.
임진전쟁을통해한국에서민족이출현하기시작했다는저자의선언은파격적인화두다.“우리한민족은단군이래단일민족으로...”라는수사에익숙한보통사람들에게나한국민족은개항이후들어온근대의산물로여기는한국학술계모두에게이는심각한논쟁이될것이다.이책은서구학계에서활동한저자의장점을살려민족과민족담론을16세기말의조선을대상으로논의하는새로운장을열었다는점에서큰의미를갖는다.아울러이책은임진전쟁을‘언어의전쟁’혹은‘소통의전쟁’으로분석한관점역시매우신선하다.전쟁중조정에서는조선백성만해독할수있는메시지전달방법을고민했는데그해답을한글에서찾았다는것이다.전쟁이전한자의압도적인헤게모니아래폐쇄적이고지역적특성을지녔던한글이전쟁중에‘우리의것’혹은‘민족적인것’이될수있었다는것이다.

한편김자현은최근논란이되고있는바,『반일종족주의』저자들이2차세계대전중‘위안부’가자발적매춘부였다는주장에대해,‘위안부’문제가일본사회에서역사적으로매우뿌리가깊은문제라는사실(史實)임을발굴,소개한다.임진전쟁중토요토미히데요시가가토기요마사에게내린명령중‘서비스여성’이나첩등으로번역할수있는‘쓰카이메(使い女,つかいめ)’를요구하는특이한항목이있었다는것이다.전시에점령지여성을유린하는것이일반적인현상이라할수있지만저자가주목한것은이여성들에대한동원과제도화가최상위기구의명령이었다는것이다.16세기의맥락에서일본군의정복실태와그의미의맥락을면밀히고찰해볼중요한문제이다.‘보도자료’의마지막에이책의본문을달았다.
배우자인윌리엄하부시교수는인상적인머리말에서이책이저자의연구인생을총결산할기획이었지만2011년갑자기세상을떠나면서유언에따라출판되었다는미완성유작임을알린다.마르티나도이힐러(런던대),김지수(조지워싱턴대)등동료와제자들이편집을맡았다.서구학계의주류에서활동하는몇안되는한국학자였던김자현은임진전쟁을한국사차원이아닌동아시아,나아가세계사차원에서접근하고분석하는가운데우리에게놀라울정도의많은시사점을남긴다.

한국은17세기에‘nation'바로앞까지도달했다

민족이유럽중심의지식체계에서탄생한,다분히근대적개념이지만저자는16세기말임진전쟁으로조선에서민족이출현했으며,그것이만주족의침략으로조정및강화되며근대에이르렀다고주장한다.김자현은자신의논지를설명하기위해서장에서유럽학계에서발전한민족의개념과민족담론을소개하고,한국학계에서는민족담론에대한논의가어떻게진행되었는지설명한다.흥미로운점은서양의지식체계와조선의유교적인식체계의적극적융합을시도한점이다.베네딕트앤더슨의“상상의공동체”를16세기조선사회에적용한점이나인민주권(popularsovereignty)과같은개념을조선사에접목해당시의역사적상황을설명하려는것은서구학계에서활동한저자의장점을잘살린시도이다.물론유럽과는다른국가체제를구축한동아시아전근대역사에서구에서만들어진민족(nation),주권(sovereignty)등을적용하는것이저자에게쉬운결정은아니었을것이다.하지만이러한용어들을기존의용례에서치환가능한유사성을찾아상호작용시킬수있다면확장성을가질것이며,유럽중심의지식체계를다양화하고분산시킬수있을것이라저자는기대했다.

조선을하나의공동체로인식하기시작한‘민족의식’의증거들

이책은민족에관한세계학계의논의와이에대한설명으로구성된서장부터임진전쟁에서출현한‘자발적군대’인의병의격문과통문속에나타난민족담론과상상의공동체,전쟁전후한글의사용과민족의출현,그리고전후임진전쟁을기념하고기억하는방식속에서민족담론의모습을살피는모두5개장으로이뤄졌다.저자는임진전쟁을통해민족이출현했다는자신의주장을뒷받침하기위해각장에서의병장의격문이나격서,초유문,선조와장수들의서간,전후기록문학등을분석하여그근거를제시한다.

극히제한된지역외에서는타국인을만나본적이거의없던조선인들은건국이래200여년간지속된평화기에갑작스런대규모외적의침입을맞닥뜨렸다.미증유의국가적위기속에서의병은의무도경험도없지만자발적으로목숨을걸고전장에나감으로써의(義)와충(忠)을바탕으로한애국주의를구현했으며조선이라는상상의공동체를출현시켰다.일부의병장은격문과통문을통해타지방의사족과인민들에게도의병활동에참여할것을권유하며소통의공간을전국으로확대시켰다.전쟁중타-민족을배제하기위한방편으로사용된한글은한자를보완하는위치로위계가상승했다.한글이전쟁중에‘민족적성격’을대표했다면,전후에는하위문화의영역에서조선인의담론을생산하고유통하는수평적공간을탄생시켰다.조선조정은광범위한전후기념사업을추진하여전쟁기억의국유화작업을진행했다.기억의주된목적은애국주의였으며,이에대한평가와보상이이뤄졌다.조선은임진전쟁의기억을통해애국심을공유하는민족의공간을만들었다.이렇게저자는임진전쟁전후로나타난여러징후들이,조선민족이공유하는“상상의공동체”에대한증거임을논증하며이시기에조선에서민족과민족담론이출현했음을역설한다.

한글은다양한민족담론을제안하고대안적인담론공간을창출했다

이책의가장흥미로운주제가‘한글’이다.임진전쟁은군사부분만이아니라소통의싸움이기도했다.저자는전쟁중타민족을배제하기위한방편으로사용된한글이한자를보완하는위치로위계가상승하였으며많은사회계층이참여할수있는소통공간을구축한사실에주목했다.
궁지에몰린선조는북방경계에서돌아온후왜갑작스럽게한글교지를내렸을까?한글교서의배포는명과왜사이의강화협상에들어선시기에이뤄졌다.명군의참전과함께조선은종속적위치에처했다.조선의반대에도명군은일본과의강화협상에나섰고조선은배제되었다.명군에게소외당한조선조정은결국‘민’에의존해야한다는자각을하였고,이를위해명과왜를명확히분리하는언어정책을시도했다.결국한글은조선조정이조선인사이에서단결을이끌어내고,통합을시도하기위한메커니즘이었다.초기의한글교지는일반교지처럼중국경전의표현등을활용하여작성한후번역했다.하지만소기의목적달성을위해서는한글이가지는배타성과한국인만공유할수있는정서를살려야한다는자각을하였고,한국인의정서를담은한글문서를짓고공유했다.선조가보낸교지중에서“옛고을로돌아가예전에하던일을다시시작하라”는메시지는밝은미래를제시한적에대항하여,내부자만의과거를공유한것이었다.배타적문자는공유한역사와운명의독점을의미했다.전쟁이끝난후,선조는국가재건을위한백성의희생을다시요구했다.중요한것은조선민족공동체에대한비전을일깨우기위해한자본과한글본을모두공공기관에비치했다는점이다.
17세기만주족의침입이후,조선은유교문화담지자로서의역할을충실히수행하기위해한문과한자를더욱강조하였기때문에한글은다시하위언어로되돌아간듯보였다.하지만하위문화의공간에서한글은자율성,합법성,가시성을통해담론을생산하였다.모국어인한글은다양한민족담론을제안하고대안적인담론공간을창출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