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세상에 맞선 유학자 (사교재 김영익(1886~1962)문집)

변하는 세상에 맞선 유학자 (사교재 김영익(1886~1962)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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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환기의 유학자,
세변(世變, 세상의 변고)에 맞서다
이 책은 한국사회 대전환기를 살았던 유학자이자 교육자, 사교재 김영익이 남긴 자료를 하영휘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가 편역한 사교재 김영익 문집이다. 사교재 김영익(1886~1962)이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기간은 한국이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되는 대전환기였다. 열강의 침입, 동학농민전쟁, 갑오경장, 일제의 강점, 분단, 6·25전쟁, 4·19혁명 등 변혁의 소용돌이가 연이어 일었다.
이에 따라 기독교와 신학문 유행, 신분 해체,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제도 등 각종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나타났는데, 대부분 유교적 질서와 유학사상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사교재 김영익은 그것을 통틀어 ‘세변(世變, 세상의 변고)’이라고 하고, 거기에 맞서 유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평생 노력했다.
전환점에 선 유학자 사교재가 기존의 질서를 지키며 변화를 거부한 것은 숙명적인 일이었다. 사교재 김영익 문집,『변하는 세상에 맞선 유학자』에는 그가 새로 나타나는 각종 근대적 현상을 어떻게 보고 기록했는지, 그리고 거기에 대항할 수 있는 논리를 유교정전과 선유(先儒)의 사상에서 찾아내 정립하고, 그것을 학생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파했던 일생의 사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영휘는 7년간 자료의 선별과 편집, 그리고 번역의 힘든 작업에도 이 문집이 “한국 전근대와 근대 전환기의 사회사이자 유학사상사다. 이 책은 이 두 내용을 겸비하고 있다. 요컨대, 유학자가 근대를 어떻게 보았고, 그 대응 논리로 어떤 사고를 했는가?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며 의미를 둔다. 전환기의 유학자가 한국의 근대에 맞선 기록인 것이다.
저자

김영익

(金永益,1886~1962)
충남태안출신.일명영보永輔.본은광산,자는우삼友三,호는사교재四矯齋다.노백老柏최명희(崔命喜,1851~1921)와간재艮齋전우(田愚,1841~1922)의문하에서공부했다.한국이근대로이행한대전환기의변화에맞서유교적가치를지키기위해평생노력했다.학사당,수궤재,몽양재,수정재등전국각처에서유학자를기른유학자이자교육자다.

목차

머리말

가사歌辭
송곡농사해방기념가사_1945년7월

편지便紙
신식학교의학생군사교육〉이인서李仁瑞와임석영林奭榮에게줌_1908년
공부하는학동들에관한보고〉노백老柏선생께올리는편지_1915년11월
뫼시며배우고싶은마음〉간재艮齋선생께올리는편지_1916년6월25일
일제의앞잡이토이土夷〉조재원趙載元도형道亨에게줌_1917년윤2월16일
변하는세상에서어떻게살아야합니까?〉노백선생전상서_1919년4월
민성民性의순화는도道가높은학자의임무〉노백선생께올림_1919년7월
강학講學을그만두고돌아와서〉박계朴?에게줌_1919년10월6일
노백선생의제의를받고〉노백선생께답함_1920년1월24일
스승노백이제자사교재를선생으로초빙하는편지_1920년1월23일
섬에들어가지않고다시강학講學으로〉노백선생의편지에답함_1920년1월28일
노백,‘적극적으로대처하지않으면안되는시대상황’_1920년2월1일
친구는섬으로들어가고〉전완全浣에게답함_1920년3월25일
강상綱常을부지하는선생,간재艮齋〉간재艮齋선생께올림_1920년7월9일
최모문제〉이형렬李亨烈에게답함_1922년5월
석전강사石田講舍에서최모에게절교를알리는글_1922년윤5월9일
함경도의동문에게보낸편지〉허순영許順泳경천景天에게답함_1923년6월
섬으로들어간은자隱者에게〉김이청金夷淸병로柄老에게답함_1923년8월6일
공公과사私〉김이청金夷淸에게줌_1924년4월
간재艮齋사후그문인들의난맥상〉석농石農선생께올림_1924년8월
철원에서돌아와광교산에은거함〉김경하金景河씨에게보내다_1933년7월보름
일제강점기에세운정려각〉안재하安在夏에게주다_1948년5월
구도의길〉허담許潭에게줌_1948년8월
친구의손자를가르치며〉야당野塘유득로柳得老에게답함_1949년12월
순환과혁구〉본암本庵국범식鞫範植사문斯文에게줌_1954년정월
견비통〉이언경李彦卿에게답함_1954년오추梧秋20일
전쟁중실종된아들을찾은친구에게〉이재환李載晥에게줌_1954년8월22일
강상이무너지고자유와평등을외치는시대〉소당小棠이용구李龍求씨께답함_1954년10월망건수리〉안지산安芝山에게줌_1955년4월25일
강유위와양계초〉이용구李龍求에게답하다_1955년6월8일
안양재실이잿더미가되다〉사문斯文김정金鋌에게답하다_1955년12월
학천의스승문집간행을돕는문제〉학천學泉김하규金夏圭에게답함_1955년섣달
31년만에전하는소식〉정현모鄭賢模에게줌_1955년12월일
위토位土와파보派譜〉족인재연在璉씨에게답함_1955년12월27일
돈만받고완성된족보를주지않음〉갑수甲洙,용우容宇두종인께답함_1956년
위토를마련할곡식을보내며〉연산連山단향소壇享所에보내는편지_1956년10월1일
눈이머는아픔喪明之痛(아들의죽음)〉족숙직현씨께올림_1958년정월
행장行狀을써주며〉조재구趙載九에게줌_1958년6월그믐하루전
아들의요절/담배선물〉전용구田溶九씨에게답함_1958년10월14일
후사後嗣를세우는문제〉조장호씨에게답함_1958년12월8일
족인김용식의명절선물을받고〉족인族人용식容植에게답하다_1959년설날
병마와씨름하다,족인族人영달에게답함_1959년3월26일
경서經書팔기〉이재설李載說언경彦卿에게보내다_1959년10월
양재권순명에게아들을보내며〉양재陽齋권순명權純命에게답함_1960년2월
몸을깨끗이하여돌아감歸潔〉지산芝山안경익安景益에게답함_1960년8월3일
유학자의현대정치론〉이병용李丙鎔에게부침_1960년8월
나라는어지러워도산중세월은한가하네〉종씨어른재연씨에게답함_1961년9월25일
어떻게올바른사람에게투표합니까?〉모씨에게줌

잡저雜著,서序,기記,제발題跋,계화도일기繼華島日記
석전강사石田講舍보인계輔仁契설립문設立文_1917년
담배는요물이다〉탄연설歎烟說을수궤재제현에게보여주다_1920년3월13일
고질이된흡연〉흡연,쓸데없는습관_1947년
생일날두배비통한이유〉생일날아침에우연히쓰다_1947년7월27일
측은한독립
‘모교母校’라는말의그름_1947년
자신의과거를부정하는신문화〉평화신문을읽고
석장石丈찬贊_1956년12월
포은과목은의위차〉숙모전肅慕殿재중齋中에답함_1959년7월
삼은각三隱閣의재유齋儒에게답함_1960년5월
목은이색과조선의개국〉상촌신흠申欽의「휘언彙言」과『승국유사勝國遺事』를읽고
유학자의예수교비판〉서교변西敎辨-화지안花之安이지은『자서조동自西?東』의구절을잘라내어비판함_1961년6월
제국주의의멸인종
일본오랑캐의간악한술수
강대국의술수
자유의맹렬함
성현과범인의차이는용심用心에달렸다
조선유교의평가〉황의돈黃義敦의말뒤에씀
국가속의개인윤리〉이나라에사는의미
양명학비판
『경서언해經書諺解』의오류와오해
간사한친일무리의변신
목민牧民의도는무농務農이고,무농의근본은축우畜牛다〉축우계서畜牛契序_1914년12월
가난과곤궁〉유학동柳鶴東명구鳴九를송별하는서序_1923년9월2일
『해제준적孩提準的』서序_1949년1월
판결사공파보서判決事公派報序_1958년6월
학사당기學士堂記_1914년3월
심心은형이상인가,형이하인가?〉성재가화서의심설을보충한글뒤에쓰다
노백선생
계화도일기_1922년6월

전기傳記
학생한공행장學生韓公行狀_1957년
청천당안공행장聽天堂安公行狀_1958년12월
절부이씨전節婦李氏傳_1950년3월
현원방씨전賢媛方氏傳
현원김씨전賢媛金氏傳

한담수록閒談隨錄
『한담수록』_1920년2월
서재書齋(글방)선생
실망
부모를이기는자식
신분과충효
연호年號와중화中華
유학儒學의공사公私개념
유자儒者의처세

봉래산고蓬萊散稿
『봉래산고』〉봉래음사蓬萊吟社간판刊板서_1929년2월
대추와앵무새〉몽양재蒙養齋의여러학생에게써서보여주다_1930년1월12일
학문은확고한마음이서야한다〉학문에다섯장애가있다_1930년2월5일
양성재養性齋학계學契서序_1930년2월13일
몽양재蒙養齋일과표日課表서序
학學의의미〉천덕재天德齋제생의질문에답함
유학자와은자〉사명산四明山으로가는옥담거사玉潭居士를송별하는서序_1930년3월12일

어록語錄
체용體用에국한됨이없다는설
본연성설本然性說
본연심설本然心說
기질본연설氣質本然說
당초에기질을타고났다는설
오서오경독서일과표
유학의기본개념〉김용택,김용덕,이명용세동자에게답함
자신의심신에서실천해야
유학무용론에대하여
유학교육
네가지근본
네가지금지
옛덕을먹다
의리와이익
도는행하기위하여배운다〉도를배우는것이쓸데가없고쓸데가있는것
필부도사회에책임이있다
사람과동물은체가같고용이다르다
성인의도
대일통大一統
강상
예의는다스림이나오는근본이다

교훈敎訓
글과더불어사람도배워라〉동몽童蒙김종만金鍾萬에게줌_1914년9월12일
내안에있는천리와인욕〉안재하에게줌_1919년10월17일
성인聖人을배워라〉수정재守貞齋제군에게보여줌_1946년
스스로너그러워져라〉집아이각수恪洙에게_1946년
안양사安陽祠〉수정재守貞齋제군에게말함_1946년9월9일
인의仁義야말로부강하게되는길이다〉서사書社의제군에게말함_1946년
선생으로서가르치는어려움〉제생諸生[여러학생]에게말함_1946년
성인이바로천리다〉수정서사守貞書社의제군에게보여주다_1946년
학자의가난〉족인상수常洙에게줌_1946년10월
뜻이굳센사람〉족인화수和洙에게줌_1947년
가르침에대하여〉수정재守貞齋제군에게사과함_1947년2월
스스로처신하고변화하기〉집아이각수恪洙에게말함_1947년2월
면강勉强의도道〉각수恪洙에게줌_1947년7월
도가없는시대의사士〉헌수憲洙,태수台洙,화수和洙에게훈시함_1948년
곧음을지켜라〉수정재守貞齋제군에게보여주다_1948년
성리학의기본개념〉조규하曺圭夏에게주다_1948년
이기理氣〉희수喜洙에게줌
자신의욕심을극복하라〉각수恪洙에게주는말_1948년5월
이마음을보존하여천리를지킴〉서당학생들에게훈시함_1948년8월
곤궁한시대에수신修身이중요하다〉수정사제군에게보여주다_1949년설날
배움이무엇인가〉유원호柳元鎬에게주다_1949년3월10일
마음공부가중요하다〉유원호에게줌_1949년12월
예禮〉김영학에게줌_1950년5월
예禮를따르라〉안성순安誠淳에게훈시함_1953년3월
일기는정직하게써라〉안성순安成淳의일기습장日記習帳을위하여쓰다_1953년3월
『소학』의「경신敬身」편〉조광현曹光鉉에게주는글_1955년섣달
자유의비판〉김영두金永斗에게줌_1957년5월
상도常道를지켜라〉큰아들각수恪洙에게주는말_1960년3월20일
안양사安陽祠의복식과머리모양〉수궤재守軌齋벽에붙이다_1960년9월
가난과고난의의미〉윤희천尹羲天에게써주다_1960년12월20일
육식의절제〉검덕첩儉德帖_1962년정월
자기마음에비추어남의처지를헤아림〉아무개에게주려고쓴글
인심과도심,속안과도안〉안상우安相佑,정원영鄭元永,손인장孫仁長,손한성孫漢成등여러어린이에게주다
속이지마라〉집아이각수恪洙에게훈시함
『소학』의실천〉외손자재곤在坤에게
유가가불가와다른점〉같은사社의제군에게써서보이다
나로써사물을보라〉관동으로가는족인화수和洙에게주는말
중화中華와이적夷狄〉유兪공의묘표와노盧공의묘지명뒤에씀
논어의의미,하학상달下學上達〉조규하,이병용,이명용에게말하다
재난과시련속의성취〉서사書社의학생들에게보여줌
집중하여사색하고음미하라〉주자朱子편지중의독서법
훌륭한사람과사귀어라〉손자에게주는글

종중宗中
족보편찬의규례規例〉보소譜所에답함_1956년정월18일
파보와대동보〉보소譜所[족보편찬소]에답함_1956년정월
문중과가문의의미〉보소에답함_1956년2월
족보편찬의준칙〉보소에답함_1956년2월22일
6·25전쟁에파괴된사당〉양평종중에답하는편지_1956년9월20일
족보단금單金〉보소에답함_1956년
9권1질족보대금1만환〉김갑수에게답함_1956년9월28일
수포로돌아간족보편찬사업〉종인갑수甲洙에게답함_1956년
족보편찬범례〉종인갑수에게줌_1956년10월20일
종손宗孫의개념〉종인宗人원중元中에게줌_1956년12월
북촌공의종손으로자처하는봉수〉

출판사 서평

유학자의눈으로본전환기사회사
사교재김영익문집『변하는세상에맞선유학자』에는가사,편지,잡저와서·기·제발·일기,전기,한담수록과봉래산고,어록,교훈,종중,답문,산록등전통적인문집편목체제에따라그가남긴자료중모두228편의글이실려있다.
가장이른시기의글은1908년의「신식학교의학생군사교육」(31쪽)이다.신식학교에서는이미일제의압력으로학생군사교육을실시하고있었는데,사교재는이학생들이장차일제의총알받이가될지도모른다경고한다.이어지는문집의전편에서새로운제도와문물이점점확산되던전환기에유학의맥을잇기위해노심초사하는절박한사교재의심정을읽을수있다.말년의편지「경서팔기」또한그맥락이다.친구가팔아달라며맡긴『논어』,『맹자』등유학책을헐값에팔고쓴편지다.‘지금은공자를공자로받들지않고맹자를맹자로받들지않는시대’라며사교재는변해가는자기시대를말한다.
이책은일제,미국과소련등외세의지배에대한한유학자의적극적인대처는물론자유와평등,민주주의등의신문물에대한사교재의생각을생생하게담고있다.사교재는반일사상이강하지만민족주의자가아니고중화주의자이며,그의중화주의는중국고대의세련된주나라문화를존숭하는것이다.따라서그의정치사상은부국이나강병보다는인의에기초한다.이외에도한국전쟁때실종된아들을찾은친구에게보낸편지,함경도동문에게보낸편지에서19세기와20세기초함경도가경제력을바탕으로유학이성했음을알려주는등당대의사회문화적기록도담고있다.
사교재는기존의신분질서가무너지고새로운질서가도입되던시기에,기존질서를지키기위해직접부딪치며살았다.그가지키려고노력한기존질서중하나가종법질서다.이책에서‘종중’이란편목이외에도사교재는종법관계글을많이썼다.「최모문제」에서사교재는이것을최모개인의문제가아닌사회적문제로인식했다.최모가조상을날조하여족보를만듦으로써신분을세탁하는것은타고난분수를어기는것이고양반사회에대한도전이라고생각했던것이다.사회적신분이해체되는과정에서심화되는갈등을엿볼수있는대목으로이시대에포은정몽주와목은이색의위차문제가생경하면서도흥미롭다.6.25전쟁후에는성씨별로족보를다투어편찬했는데혼란한틈을타서적서(嫡庶)문제와위조가횡행했음을알수있다.

서구적근대에대항한전환기의유학사상사
사교재가가장중시한것이유학자를기르는일이었다.그는그것을평생사업으로삼았다.태안의학사당,수궤재,강원도의몽양재와양성재를거쳐인생후반에다시태안의수정재에서종신토록학생들을가르쳤다.그가학생들을‘독서종자(讀書種字)’,‘석과(碩果)’라고부른것은그들로하여금유학을널리퍼뜨려장차삼강오상이실현되는사회를만들것을염원한말이었다.사교재의끊임없는노력에도불구하고세상의변화는점점더거세지고사람들은대부분변화를뒤따르는쪽을택했다.그래도그는조금도흔들리지않고묵묵히자신의길을갈뿐이었다.옆에서지켜보던어떤사람이답답한나머지‘성공할가망도없는데헛고생그만하라’는투로충고하자그는“매사에자기에게주어진직분을다할뿐이고,그성공여부는운명을주관하는자의몫이다.”라고답했다.
문집에는양명학과중국의사상가양계초·강유위를비판하는대목이몇편이있어눈길을끈다.또한사교재글중압권은화지안(花之安,1839~1899,본명에른스트파버)이쓴『자서조동(自西?東)』의구절을잘라내어비판한「서교변(西敎辨)」이다.유교적입장에서예수교를비판한글이다.이를통하여당시유학자들이예수교를어떻게보았는지를엿볼수있다.
이책의핵심주제중의하나가유학사상이지만,사교재가가르치고퍼뜨리고자한성리학이그리어렵지않다.소통의대상이학생,자식과손자,친구,친척으로모두그시대를산사람들이었고,앞에서도언급한것처럼그의문제의식을지금시대우리가어렵지않게감정이입하고이해할수있기때문이지않을까.사교재의글들중에는학자의가난,가난과곤궁의차이,가난과수신등‘가난’이매우많다.가난이문제가아니라사는‘뜻’을잃어버린시대에대한경종이다.청빈을강조하는수사가아니라시대변화에굳건하게맞서겠다는각오처럼읽힌다.

시대의가장자리에서근대를기록하다

『소학』의실천〉외손자재곤在坤에게
네가지금『소학』을배운다.학學[배우다]의의미는‘본받는다’는것이다.『소학』을배우는것은『소학』을본받는것이다.본받는것은어떻게하는것이냐?『소학』에“발의움직임은무겁고,손의움직임은공손해야한다.”고하면,나는즉시발의움직임을무겁게하고,손의움직임을공손하게해야한다.『소학』에“아침에일찍일어나고밤에늦게잔다.”고하면,나는바로아침에일찍일어나고밤에늦게자야한다.『소학』에“외출할때반드시말씀드리고,돌아와서반드시말씀드린다.”고하면,나는곧외출할때반드시말씀드리고,돌아와서반드시말씀드려야한다.이것이본받는다고하는것이다.이렇게하지않으면배움의명목은있으나배움의실행이없다.평생『소학』을배워도자신에게조금도도움되는것이없으니,어찌크게허망하지않겠느냐._본문311쪽중에서

사교재가남긴자료는윗글에나오는사교재의외손자이재곤씨로부터하영휘교수가2013년에받아서일차로추리는데3년,다시읽으며추려2017년1,400여장의사진파일을만들었고,다시정독하여선집을확정하여번역을완료한것이2019년6월이었다.7년에걸친매우힘든작업이었을것이다.왜무명의유학자의흩어진글을주워모아기록하려했을까?
사교재김영익은전근대와근대의전환점에서서서두시대를살았다.앞시대에서김영익은‘공부한사(士)’로주역이었지만뒷시대의유가들은망국의책임까지덮어쓰며서구적근대의가장자리로밀려났다.비록사교재는서당의훈장으로전국을떠돌지만서구적근대문명에근본적으로맞섰다.역사는뒷걸음질이다.뒷걸음질은다시그렇게할수있는가능성을내포한다.21세기패러다임이라는전환기에선우리에게근대의가장자리에섰던유학자의사유와실천이눈여겨보인다.유학자의눈으로20세기한국의근대로뒷걸음질쳐볼이유가바로여기에있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