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후의 지암일기 (양장본 Hardcover)

윤이후의 지암일기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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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윤이후, 17세기 조선의 일상을 고스란히 기록하다
조선시대 생활상을 담은 보물창고 『윤이후의 지암일기』
『윤이후의 지암일기』는 고산 윤선도의 손자이자 공재 윤두서의 생부이며 「일민가逸民歌」라는 가사의 작가로 알려진 윤이후(尹爾厚, 1636∼1699)가 1692년 1월 1일부터 1699년 9월 9일까지 8여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 완역본이다. 함평현감을 마지막으로 해남으로 내려와 죽기 5일 전까지 그의 말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이후의 지암일기』의 진정한 가치는 조선후기 일상사의 보물창고라는 점에 있다. 현재 전하는 조선시대 일기가 적지 않지만 이 정도로 일상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기술한 자료는 거의 없다. 오랜 기간 병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 서울의 세 아들과 괴산의 딸 소식에 애틋해 하고, 정쟁에 휘말려 의금부에 갇힌 셋째 아들 생각에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마음, 인천 사는 누나와 자형의 죽음 앞에 애통해하는 형제의 심정, 천한 노비였으나 자신을 길러 준 유모의 죽음 앞에 그녀의 삶을 기록하는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집과 사당을 짓는 건축, 섬과 해안에 제언을 쌓아 농지를 넓히는 개간, 연이은 상례와 장지를 찾기 위해 풍수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 땅을 둘러싼 분쟁,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일상과 정감을 담은 많은 운문과 산문, 노래와 악기를 가까이 한 음악적 취미와 꽃과 나무를 구하여 조경을 하는 열정, 병치레와 치료의 기록, 영암과 강진 일대의 단거리 여행과 서울과 거제를 오간 장거리 여행의 상세한 기록, 오랜 기근과 전염병에 따른 참혹한 풍경들, 갑술환국(1694)을 둘러싼 파란의 정국 상황과 대동미 운영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조선후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윤이후의 지암일기』라는 창문을 통하여 17세기 조선이라는 공간을 들여다보자. 그곳엔 거시사와 제도사가 서술하는 화석처럼 경직된 조선후기 유교사회의 모습은 조금도 없다. 일기 속에는 종횡으로 얽힌 무수한 군상들 사이의 생생한 삶이 약동한다. 기근과 환난, 고통과 절망 사이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일기를 펼쳐 한 해 두 해 읽어나가다 보면 마치 내가 조선시대 사람으로 그 시대를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얼핏 각자의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삶이 시공간을 초월해 연결되고 이렇게 역사로 남는다는 사실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우리들 각자의 삶이 누군가에겐 공감이 되고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윤이후의 지암일기』는 최초의 완역본이다. 하영휘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외 7인이 2013년 11월 번역에 착수한 이래 6년 만에 빛을 보는 이 책은 마모가 심한 원문에서 한 자라도 더 살리려 노력한 결실이다.
저자

윤이후

尹爾厚(1636∼1699)
본관은해남,자는재경載卿,호는지암支庵이다.고산윤선도의손자이자공재윤두서의생부다.조실부모하고윤선도슬하에서자랐다.54세에문과에급제하여정언,병조정랑등을역임하고,함평현감재직중강호에뜻을두어벼슬을그만두고낙향했다.그후강호의꿈을이루기위하여죽도에별서를경영했다.『지암일기』는그가함평현감재직중이던1692년1월1일부터죽기5일전인1699년9월9일까지쓴일기다.이만큼내용이다양하고재미있는조선시대의일기를찾기는쉽지않을것이다.

목차

머리말강호의꿈

1692년벼슬을던지고돌아와解符歸來

1월그속마음을어찌알랴
2월돌아가병든어머니를모시려는마을일지니
3월죽도별업으로나와제방을보수하다
4월기둥을세우고방향을정하다
5월두친구의애쓰는정성이진실로고마워
6월두통으로괴로운나날들
7월구들을놓은뒤벽을바르고콩댐을하니
8월아버지묘에석물을세우다
9월조상제사의유사가되어
10월소리산에배를보낸이유
11월낙무당을보수하다
12월가야금과거문고를만들고

1693년운명인듯받아들여安之若命

1월집사람은글을모름에도
2월인천누님의별세
3월어머니상을당해
4월장례를지내고사흘만에큰비가오니
5월아내의눈병
6월동네사람들을진휼하다
7월학질의괴로움
8월파산석물에대한의논
9월서울로나포되다
10월의금부에하옥되다
11월석방되어돌아오다
12월송사청탁을물리치고

1694년근본에충실하여농사에힘쓰니務本力穡

1월겨울과봄에눈도오지않으니
2월서로목숨의지하는사이였건만
3월속금도에제언을쌓다
4월자던새가둥지에서놀라깬것같아
5월충헌,두글자의뒷이야기
윤5월류대감의위문편지에답하다
6월죽도가있기에세상을잊을수있어
7월외로운신하의눈물황천에사무치네
8월유모와나
9월죽은아들의궤연이돌아오다
10월팔마장에사당을짓다
11월묏자리잡기가어려워
12월인천자형도세상을버리시고

1695년산과물에도이치가있거늘山水有理

1월기대하지않은일세가지
2월집안에초상이줄을이어
3월사대부의수치가되는일일지니
4월은채굴지를방문하다
5월황원을둘러보다
6월비인향과수춘의추쇄
7월지사서육과풍수를논하다
8월논정땅을둘러싼다툼
9월진도를방문하다
10월죽도에초당을짓다
11월도둑맞고도다행한일세가지
12월한해가내달리는수레바퀴같아

1696년기댈구석없는고아로태어나零丁孤苦

1월시를주고받은날들
2월죽도의노래
3월암행어사가하는짓
4월절도의유배객을찾아가다
5월서울로가할아버지제사에참석하다
6월집으로돌아오는길
7월유모의딸가지개의죽음
8월이일을어찌할까
9월요사이괴로움을이루말할수없어
10월그래도친척이남보다낫네
1월밤에운수탉
12월종아의유배소식
1697년나는떠나고너는남아我去爾留

1월손자희원의탄생
2월종아를찾아가다
3월떠나는길눈물로옷깃을적시며
윤3월두모동제언을보수하다
4월아들의죽음
5월마음달랠길을찾아
6월유모의제사를지내다
7월도적을막는몽둥이
8월육촌형윤이형의죽음
9월노선백의집을수리하다
10월더부살이와같은삶
11월종아의가솔을데려오다
12월고요속에흥이넉넉함을알겠으니

1698년마음가는대로한가로이任意容與

1월대둔사를방문하다
2월천연두로손자를잃다
3월강진백운동을구경하다
4월변례중의변례
5월백치외숙의별세
6월일민가逸民歌
7월회록이여,어이해초당을태웠는가
8월고금도와강진일대를여행하다
9월고창현감의조사보고서
10월친족들과함께한가을나들이
11월전염병을물리치는별신굿
12월지사손필웅과풍수를논하다

1699년흰머리에파리하게여위어白頭疲?

1월눈보라속에서
2월인심의타락이이지경에이르렀으니
3월널찍한바위에올라화전을부치다
4월새급제자축하연에가다
5월가뭄과병충해
6월질화로에부친시
7월쌀닷섬의수모
윤7월합장암유람
8월애도의글을지으려니눈물이떨어지네
9월손자들을위해서실을짓다

부록
『지암일기』인물소사전
윤이후가계및친족도
『지암일기』의공간정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윤이후는누구인가

윤이후는자가재경載卿,호가지암支菴이며,고산윤선도의손자이자공재윤두서의생부이다.윤이후는지금껏그조부와아들에비해역사적조명을받지못했지만,윤선도의실질적인계승자로서해남윤씨집안의역사에서중요한자리를차지하는인물이다.윤선도의여러손자들가운데문과에급제한사람은윤이후혼자였고,윤이후항렬의모든이들이후사를두지못하여윤이후의아들들이양자로들어갔다.정치나사회적으로가문의가장큰울타리가될수있었던이가윤이후였고가문의미래를짊어질이들도모두윤이후의혈통이었기에,윤선도의빈자리는당연히그의몫이었다.
그는윤선도의정치적유산과가문의사업을이어받아,외적으로는중앙정계에서남인南人의중진으로역할하였고,내적으로는가문의대소사를관장하고대규모간척사업을통해집안의장토를늘리는등의활발한활동을벌였다.말년에는해남죽도에정사를짓고은거하여「일민가逸民歌」라는가사문학작품을남기기도했는데,이는윤선도가보길도에은거하여「어부사시사」를지은것과닮아있다.그의삶은마치윤선도의거울과같았다.할아버지윤선도의문명文名과아들윤두서의화명?名에가려있던윤이후는,어쩌면할아버지의글과아들의그림보다더소중한선물을후대의우리에게남긴것인지도모른다.

『윤이후의지암일기』최초의완역본

하영휘교수(성균관대동아시아학술원)외7인이2013년11월번역에착수한이래6년만에빛을보는이책은지난한공동작업의결실이다.역자들은마멸이심한원본에서행초로흘려쓴원문을한자라도더살려읽기위해,그리고개인의사적기록이기에파악하기힘든문맥가운데조금이라도더정확한번역을제시하기위해오랜기간함께모여분투했다.그가운데얻은여러지식을토대로독자가옛일기를조금이라도더쉽게읽을수있게끔여러장치를마련하여제공하였다.
하루하루를순차적으로기록한편년체자료로서개별사건을파악하기어려운일기의단점을고려해,일기에담긴주요사건을추려한눈에알아보기쉽게각연도별일기앞에설명하고,중요한사건의경우그배경이나맥락을해설하는박스를일기중간중간에배치하였다.기록이자세한만큼허다한인물과지명이등장하여자칫읽는이가길을잃기쉽기에,등장인물및지명의정리에도따로공을들였다.일기에등장하는인물가운데비중을따져고른180여명의인물소사전을책말미에덧붙이고,일기에언급되는600여곳의고지명에대한현재위치(주소)를책말미에제시하였다.그와함께일기의주요무대가되는해남,영암,강진일대의자세한지도도실었다.『윤이후의지암일기』는최초완역본이라는의의도크지만,번역가운데이루어진적지않은연구성과를함께담아냈다는측면에서,단순번역본을넘어선해설서로서의기능또한갖추고있다.

『지암일기』의시대_대기근과정쟁으로얼룩진환난의시대

윤이후가『지암일기』를쓴17세기말은사회적으로는혹독한대기근이닥치고,정치적으로는당쟁이정점으로치달은시대였다.“길을떠난후나주위로는보이는참상이더욱심하다.논값이1섬(15말)혹은2섬에불과한경우가많고,사람값은1섬에도못미친다.죽은사람도이루셀수가없다.광호촌만해도죽은사람이70여명에이를것이라한다.”(1696년4월).“5,6년의흉년과작년,올해의독한전염병으로사람이많이죽었다.”(1699년5월).길가에시체가널브러져있고강도가들끓었던을병대기근(1695~96)당시의참혹한정경을일기는여실이보여준다.심지어큰부자였던윤이후도양식이떨어져걱정하는대목이여러번나온다.딸린식객이많은데다오랜흉년에의탁하는사람이많았기에,윤이후또한기근의혹독함에서자유로울수없었던것이다.문을두드려구걸하는사람들의모습과도망친노비들이굶주림에지쳐스스로돌아오는풍경들을보면당대의참혹했던실상이머릿속에그려진다.

기사년(1689)에장희빈이왕비가되고남인이득세했지만,갑술년(1694)에는인현왕후가복위되고서인이정권을잡아남인들은모조리쫓겨났다.권대운,권규,목내선,민암,김덕원,정유악,류명천,류명현,이의징,이운징,이현기등당시남인계유력정치인들이대거파직되어해남부근의강진,진도,고금도,신지도,우이도등지에유배된정황이『지암일기』에자세히나온다.윤이후는벼슬을버리고강호에물러나있기는하였으나,이사건으로부터자유로울수없었다.남인의선봉에서서인에강하게맞섰던윤선도의손자이기도하고,한때그들과동지이기도했기때문이다.그는그들을방문하거나자주편지를보내위로하는한편,식량과생필품을보내며보살폈다.일기에는그들과의교류내용이1694년5월10일자에서부터생을마감할때까지꾸준히기록되어있다.갑술환국으로부터3년후인1697년셋째아들종서가‘세자저주무고사건’에연루된혐의를받아반대당의끈질긴공격으로죽게되는데,이사건도당쟁에서자유로울수없었던윤이후의처지를단적으로보여주는예라할수있다.개인의사사로운기록이지만『지암일기』는당대중앙조정정변의정황을다른각도에서고찰할수있는단서를무수히품고있다.

『지암일기』의공간_간척과경영및풍수와유람의공간

조선시대양반은유자儒子로서경세經世의큰원칙을논하는경우는많았지만,실생활에서토지경영이나거래등실물경제를언급하는일은드물었다.그러나윤이후는명문가의일원으로서선대로부터이어진해남윤씨가문의경제력과그로부터파생된독특한경영문화를바탕으로경영에대한노력을멈추지않았다.관직을버리고고향에돌아와전원에묻힌생활을추구하는가운데‘간척’과‘농업’에꾸준히관심을기울이고여러사업을벌였던이유또한그러한맥락에서이해할수있다.

윤이후는은퇴후해남일대해안과섬에제언을쌓고그안을간척하여농지를조성하는사업을지속적으로벌여나갔다.언전堰田(제언내부의농지)을조성하는것은해남윤씨집안이대대로재산을증식하는한방식이었다.윤이후는죽도,속금도,두모동의제언공사의전과정을,계획단계에서부터실행,사후처리(작인과마름의지정)에이르기까지일기에상세히기록했다.제언공사에서가장중요한공정은물막이작업이었는데,그때는인근면민과사찰의중이동원되고관의허가와협조하에서이루어졌다.속금도제언공사의경우동원된역군만1,587명,이들이평균2일씩일해연인원으로3,187명이동원되었다.적지않은지역의인원이동원되고관의허가가이루어진것을볼때,조선시대지역양반의주도하에이루어진간척공사의성격을짐작해볼수있다.공사가끝난다음개간을거쳐수확한곡식을간척지마름에게나누어준기록또한보인다.

죽도는은퇴후윤이후가둑을쌓고초당을지어별업으로삼았던공간이다.종래죽도의위치가정확히알려져있지않았으나,현지답사를다녀온역자들의노력을통해죽도의정확한위치를알수있었다.윤이후는1692년벼슬을버리고고향으로돌아오자마자죽도에제언공사를시작하여12월에야완료했다.죽도는밀물때는산으로둘러싸인호수가운데의작은섬이되고썰물때는흘러가는강물을발아래로굽어보아,‘호남에는상대가없을’정도로풍광이좋은곳이었다.윤이후는그곳에아담한초당을짓고제방을쌓아경지를만들어경제적으로도자립할수있는터전을마련했다.스스로꿈꿔온‘강호의삶’의중심공간으로서죽도에대한윤이후의애정은,그곳의아름다움을노래한수많은운문과산문그리고그곳을방문한친우들의시문까지포함해『지암일기』에고스란히기록되어있다.덕분에독자들은손에잡힐듯생생한죽도의풍광을그려볼수있다.

윤이후는해남과영암및강진일대명소를꾸준히유람하였다.대흥사,백련사,도갑사,무위사,미황사등큰절은물론,도장사,합장암,수도암과같은작은절도여러차례방문했다.사찰뿐만아니라강진의백운동,영암의구림등지역의명소에들러사람들을만나고시절과경치를완상한기록또한많이보인다.지역뿐만아니라『지암일기』는서울을두차례오간기록그리고거제를오간기록,총세차례에걸쳐장거리여정을다녀온기록이실려있다.길을가는데만난사람들과마주친풍경,묵었던장소,지역의특산물,오가는데걸린시간등조선시대장거리여행이어떠하였는지를짐작해볼수있는다채로운정보들이눈앞에펼쳐진다.특히해남에서거제를오간기록은그어디에도없는호남양반의영남유람기로서그가치가뚜렷하다고하겠다.

『지암일기』의사람_신분을초월한교유와애정으로기록된사람들

『윤이후의지암일기』는가족과친족,이웃과노비,관리와지역민등17세기해남이란시공간을무대로한생활및친교의기록이며,인간관계의기록이다.자신의동정과부인및자식들에관한기록은물론이고,자기집에내왕한인물과외출하여만난사람도신분고하를막론하고기록했다.편지의수발과그인편도기록했는데특히세아들이서울에있었기때문에그들의편지를통해알게된서울소식과소문도담았다.
일기에는총2500여명의인물이등장한다.이가운데370여명은지식엘리트계층의인물(문·무과급제자240여명,사마시합격자120여명,음서직10여명)이고,이외승려(60여명),노비(250여명),공인工人,석수石手,점쟁이,풍수장이,의원,침의,재인,악사,가수,화가,기생,걸인등다양한하층민들의생활상이실려있다.윤이후는가풍에서비롯한문화적소양과오랜기간갈고닦은학문적배경을토대로,양반ㆍ평민ㆍ천민을아우르는인간에대한소박한관심과시대의격변과인생의희비를반영한담담한통찰을,자신이경험한일상가운데고스란히담아냈다.
윤이후는간혹기인을만나면자세히묘사했다.김경룡이라는장사를만나고는다음과같이기록했다.“이사람은장사로유명하다.체구는작지만용맹이남다르고총을잘쏘아지금까지잡은호랑이가20여마리다.올해나이가여든인데,근력과정신이조금도쇠하지않고눈동자가빛나고시력이좋다.‘젊었을때호랑이여섯마리의눈12개를먹었습니다.지금껏시력이쇠하지않은것이혹그때문인지도모르겠습니다.’라고그가말했다.”(1697년4월6일자)

노비들의인간적인모습또한다채롭고생생하게담겨있다.이는그들에대한관심과애정을반영한다.자신의유모인복생福生의일대기및그와얽힌자신의추억과감상을일기에자세히기록하며“유모의손자대까지는신공을징수하지말고또잡아다부리지마라.그후소생은여러대가지나도절대로외손에게상속하지마라.”라는가르침을자손들에게남기기도했다.1697년10월20일일기에는덕립이라는노의죽음을기록하면서“노덕립이새벽닭이울때홀연히세상을떠났다.이노의나이가올해여든인데,부부가지금껏해로하고자손이60여명이나된다.실로세상에드문복이다.”라썼다.때로는병문안을온비에게시를써주기도했다.
책의말미에실은인물소사전의수록인물180여명가운데노비가20여명에달한다.신분이낮았던평민과노비를대하며그들의재주와매력그리고행복을발견하고편견없이기록한것을보면,윤이후는신분을초월해인간을사랑했다는것을알수있다.이러한기록은일기의재미를더하는요소이자나아가하층민의생생한기록이드문한국사에서소중한자료가아닐수없다.

『지암일기』의생활_취미,질병,교류사이에생생히드러나는일상

윤이후는음악을수시로즐겼다.약사와가사를초빙하여며칠씩머물며재능있는비들을가르치게했다.간혹산사나명승에모여연회를열때면,금비琴婢,야비倻婢,가비歌婢등을데리고다녔다.1692년9월29일일기에“윤천임이금아琴兒한명을불렀다.윤세미씨가데려온이형징은평소거문고와노래로이름난사람이다.나와함께간송창좌와서로어울려연주했다.밤이깊어서야파했다.오늘모임은훌륭하다고할만하다.”라고썼다.거문고만드는사람을부르고향목香木을마련해거문고를직접제작하기도했다.음악에대한취미뿐만아니라각종나무와화초심기또한스스로벽이라고할정도로좋아했다.감,배,사과,유자,포도등과실수는물론대나무,동백,진달래,매화등화훼또한즐겨심었다.진달래와동백,매화등을화분에심어방에두고완상한내용들로도꽃과나무에대한윤이후의관심과취미를짐작해볼수있다.

병치레에관한기록도많다.조부윤선도의제사참석차서울을다녀온후1696년8월부터약석달간다리에부스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