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의화교네트워크,
중국과동남아를연결한그초국적세계
‘바다야말로민(?)지역사람들의밭이다.’라는말만큼푸젠과광둥사람들의정체성을잘표현해주는문장은없다.남중국해를건너동남아시아로향한푸젠과광둥출신의상인,노동자,기술자들은,근대이전에는해상실크로드에서아랍상인들과다투었고,아시아근대의아수라장에서네덜란드,영국,일본제국의파트너이자경쟁자로살아남아결국승리했다.그비결은보이지않는영토,화교네트워크의형성에있었다.『화교이야기』는‘이민·교역·송금’네트워크에서끄리스땅,페라나칸등혼혈문화와알라신을믿는중국인,하이난퀴진,베란다건축,푸젠의발리촌등인종,상업,음식,종교,싱가포르의탄생등에이르기까지총천연색의드라마를펼친다.싱가포르최초의한국인이주자와도남학교이야기도부록에붙였다.
싱가포르국립대에서화교연구로박사학위를받은김종호교수(서강대동아연구소)는중국인의동남아로의대량이민은세계사에서유례가드문문명사적현상으로,한마디로말해동화와융합,혼종의역사라역설한다.저자는국적과인종을분리해서인식하는‘중국계싱가포리안’을우리가제대로이해할수있을지의문을던진다.세계는점점좁아지고있고,한국사회안의이주민이점차늘어나고있는현실에서,국민국가에기반하여인식적경계를설정하는우리의배타성에대해다시생각해볼때가되었다고문제를제기한다.
『화교이야기』는21세기의화두,“중국을어떻게볼것인가?”에대한너머북스의특별기획으로,중국의가장자리에서중국과세계를다시새롭게보자는취지의‘경계에서중국을보다’시리즈의『만주족이야기』(2018,이훈)에이은두번째책이다.
화교의기원,푸젠의민난인은어떻게화교가되었나?
바다로부터시작된민난지역의정체성은이슬람중심의해상실크로드에서는취안저우라는국제무역항을통해,근대에들어서는아편전쟁과난징조약으로개항한샤먼을중심으로한서구제국주의국가들과의무역을통해외부와의교류가끊임없이이어지면서초국적,초지역적으로형성되었다.명·청대민난지역의가장유명한수출품은차(茶)였다.‘티’의어원이민난의방언인‘떼’에서기원했을만큼푸젠은차의주산지로안시의철관음,우이산의대홍포등의차는유럽귀족의기호식품이되었다.
그러나『화교이야기』에서김종호교수는민난지역의진정한‘히트상품’은바로사람이라썼다.남중국해를오간화상의활동은취안저우가대항으로서자리잡기시작한당대부터송·원대를거쳐면면히이어져온것이지만,근대시기민난인의해외활동은주로동남아시아로의‘노동이민’이그핵심이었다.서구제국주의국가가동남아의대부분을식민화하고,자원착취라는목표를위해건설한아편,설탕,커피,팜오일,고무농장및주석,금은광산에필요한대규모의노동력을상당부분중국으로부터충당했다.이른바계약화공,릭쇼쿨리(인력거꾼)등대량이민이시작된것이었다.
그렇다면‘화교(華僑)’라는용어는언제생겼을까?동남아시아에이주해온중국인들은출신지에따라민난인,광둥인,차오저우인,하이난인,커지아인으로각기불리거나,혹은화상,화공,쿨리등으로그직업에따라불려왔다.이들을모두화교라는용어로공식화한것은1909년청제국이선포한국적법에바로‘화교’가등장하면서부터이다.화교들의송금이청제국경제에윤활유같은역할을하자종래해적시하는태도를바꾸어우대하기시작한것이다.‘화’는중화를의미하고,‘교’는위진남북조부터쓰인용어로서‘잠시머무르는이’를의미하는데우리가해외동포를‘교민’이라부르는것도여기에서나왔다.
보이지않는영토,화교네트워크
『화교이야기』는19세기이후남중국해를사이에두고중국의동남부지역과동남아사이에수백만명에달하는대량이민이왜,어떻게생겼는지,그들이번돈을중국의가족들에게어떻게송금했는지,아수라장같은아시아의근대를어떻게살아남아동남아시아의주류가되었는지를살피는데화교의중요한동력이자생존의비결은다름아닌‘네트워크’였다.혈연및지연에기반으로한네트워크를형성한화교공동체는이를통해이익을창출하였고,본국인중국이서구세력에의해침몰해가는시대에는홀로서기를위한생존의근간으로삼았다.‘이민·무역·송금’3가지축이유기적으로연결된네크워크에서저자는특히‘송금’에주목하여네트워크의구조와작동방식을설명하는대목이이책의가장큰특징이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미얀마,인도네시아,필리핀등지로퍼져노동력의대가로돈을벌게된화교는대부분고향에가족을두고온성인남성이기에,번돈대부분을교향(화교의고향을이르는말)의가족에게송금했다.이주의증가는곧송금의증가였다.수백만의화교가보내는송금은가정경제와교향지역사회뿐만아니라중국경제에미치는영향도막대했다.화교의송금은이러한경제적효과와더불어남중국해를사이에두고화교공동체와교향을연결하는물질적기반이었다.
민난지역의방언으로‘교비’(교는해외거주민,비(批)는돈과편지가결합된형태의송금방식)라고불리는화교송금을담당한이들이‘수객’이었다.이들은해외중국인커뮤니티에서매우독특한존재였다.남중국해를무대로한소(小)무역상으로동남아에서구입한진귀한물품을샤먼이나샨터우로건너가판뒤,고향마을을돌면서교비를전달하고신객을모집하여다시동남아로건너가는식이었다.우정시스템,은행,전신등이없었던19세기초중반까지수객을통한송금전달외에는방법이없었는데책에는풍랑으로목숨과함께교비마저잃어버린사연이나비열한수객이교비를가로챈사연등수많은이야기로가득하다.
그러나화교의폭발적인증가에따른송금의뢰수집과발송능력의한계는교비국으로대표되는전문적인송금처리기구를낳았다.교비국은이내20세기초반근대금융네트워크로확장되는데이른바‘화교은행(OCBCBank)’은남중국해를중심으로동남아와중국푸젠,광둥지역에걸친초국적금융송금네트워크의산물이었다.
동남아화상이근대를살아가는법
19세기중반이후영국,네덜란드등서구제국의식민지배는아이러니하게도아시아의상인들에게기회의장을제공했다.전통적인남중국해의해상실크로드에서구가이식한자본주의상업제도와교통,통신의인프라로인해세계와긴밀하게연결된초국적시장이열렸던것이다.이때제국의상인들인인도상인과일본상인들이밀려들었다.
인도상인은‘대영제국’의제국민이라는지위를상업영역에이용하였는데,영국령말라야의경우1844년에서1931년사이에만30만명의인도상인이진출했다고한다.후발주자인일본상인의진출은청일전쟁이후타이완을할양받으면서본격화했는데국가가관리한일본상인은제국진출의첨병이었다.화상들은두상인집단과협력과경쟁을했다.그런데21세기현재까지동남아를비롯한아시아전역에깊게뿌리내려‘아시아의유대인’이라불리며초국적네트워크를유지한이들은화상이유일하다.저명한학자왕궁우가‘제국없는상인’이라명명했던화상들은본국의지원없이어떻게최후의승리자가될수있었을까?
이책은무국적과다국적사이에서줄타기하는화상의생존법을구체적으로풀어낸다.돌아갈곳이없는상황에서낯선타국에뿌리를내려야한다는절박함의발로였을까?화교들은상업적이익을최우선가치로삼아현지여성과결혼을하거나이슬람으로개종을하는등자신들의종교,소속감,문화,심지어인종까지도바꾸는교류와적응이화상이생존한비결이라고저자는이야기한다.
아울러2차세계대전과일본점령을맞은화교기업가들의친일행각,그리고그에대한상반된평가를소개하는한편,동남아의저명한화교기업가인탄카키(TanKahKee)를사례로전후냉전시대푸젠이라는지역을정체성의근간으로삼고서구제국의질서하에서활동을벌이던화교들이동남아국가들의독립이후국민국가시대를맞아,‘제국민’과‘국민’사이에서정체성을어떻게강요받았는지에대해서도살펴본다.
혼혈의탄생과까삐딴시스템
동남아시아의근대는서구제국-화교-동남아현지사회의삼각구도로작동했다.말할것없이화교집단이서구제국과동남아세계를링크하는역할을했다는뜻인데,이문제를깊이들여다보면끄리스땅,페라나칸등의‘혼혈’과서구의식민지배방식인‘까삐딴’시스템을만나게된다.
유럽국가의동남아진출로인해발생한다양한혼혈그룹은크게포르투갈과동남아인사이의혼혈,중국인과동남아인사이의혼혈로나눌수있는데앞의후예들이끄리스땅이고뒤의후예들이페라나칸(말레이어로‘현지에서태어난이’)이다.저자는혼혈집단이화교의존재양태에끼친영향을흥미롭게풀어낸다.
간단히언급하면서구제국들은장거리식민지배의공백을혼혈그룹을통해메웠는데점차중국인혼혈후예들이이어받았던것이다.서구제국들이이를공식화하여마치제국의식민지공무원처럼활용하였으니바로까삐딴시스템이다.20세기중반동남아국가들이독립,건국하는과정에서보이는-심지어지금까지도남아있는-반(反)화교정서의근간에는서구세력의가혹한착취를대리했던이들중국계혼혈의활동이자리했음을저자는지적한다.
동화와융합,혼종의역사
수세기에걸친중국인의동남아이민은동화와융합,혼종의역사다.『화교이야기』는중국인들의대량이주가발현시킨다양한현상들을사회문화적측면에서기술한다.전술한것처럼중국인들이현지의커뮤니티에스며들어발생한혼혈그룹과함께이슬람화한화교에서심지어힌두교를믿는중국인들을소개하는데푸젠의발리마을과발리의화교공동체가그것이다.발리에서푸젠으로건너간귀환화교의발리문화적요소와발리에남아있는중국계가발리의힌두문화에적응한양상은동남아시아의인도화,이슬람화,제국주의적팽창,전쟁과냉전을거치는과정에서형성된남중국해를무대로한화교공동체형성의역사를잘보여주는일례이다.
특히동남아시아하이브리드건축양식인숍하우스‘베란다’건축양식에관한이책의서술은자못흥미롭다.동남아의‘베란다’는우리가흔히아파트에서보는베란다와는전혀다른공간으로각건물일층점포앞에형성된외부복도를말한다.숍하우스베란다공간은중국동남부연해지역의‘점옥’,벵갈지역의‘벙갈로우’,그리고열대지방특유의현지문화결합된그야말로‘코스모폴리탄한’동남아문화를보여준다.관심을끄는것은동남아에서형성된이혼종적건축문화가다시남중국해를건너중국대륙의교향도시로역수출되어도시개발과도심지형성의주요축이되었다는사실이다.
다인종,다문화싱가포르
『화교이야기』는대영제국의식민도시싱가포르가일본제국의쇼난토를거쳐,어떻게다인종,다문화국가‘싱가포르공화국’을세우게되었는지그여정으로이야기를맺는다.싱가포르는이주민으로서제국의신민으로삶을영위하던화교들이공산화한중국대륙도아니고국민당이점령한타이완도아닌,그들만의국가공동체를형성한케이스이다.그것도중국계만의국가가아니라다인종·다문화공동체를형성한‘싱가포르공화국’은기존에존재하지않았던‘싱가포리안’을탄생시킨것으로,세계이민사에서매우흥미로운사례로꼽힌다.싱가포리안은하나의민족이하나의국가를형성하는것이너무나당연하다고인식하도록교육받은우리로서는무척이해하기힘들지만우리안의폐쇄성을깨뜨릴수있게하는타자의역사적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