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봄 (잃어버린 이름들을 새로 쓰다)

1991, 봄 (잃어버린 이름들을 새로 쓰다)

$22.00
Description
1991년 봄의 기억,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기록
『1991, 봄』은 1991년 봄, 국가 폭력 앞에 몸을 던져 저항한 젊은이들과 그 후 30년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중심으로 1991년 5월을 다룬 다큐멘터리 〈1991, 봄〉을 연출, 제작한 권경원 감독이, 1987~1991년 사이의 일들을 복기하고 1991년 이후 목숨으로 불의를 고발했던 이들을 수 년간 취재하고 기록한 책이다. 정준희, 송상교가 글을 보태고 이강훈 작가가 강경대, 김귀정에서 변희수와 김용균까지 21명을 그린 그림을 실었다.
전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 항쟁.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정권이 들어섰으나 사회 각 부문으로 민주화 열기가 번져나갔다. 그런데 1987년부터 4년간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가 그 이전 1959년~1987년까지 (419혁명과 518항쟁 제외) 희생자 수보다 많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5월 26일 김귀정이 경찰 폭력으로 사망할 때까지 젊은이 8명이 몸을 던지고 박창수 씨가 의문사했다. 저자는 이들의 분노와 희생이 어떻게 폄훼되고 지워졌는지 찬찬히 살펴본다. 애도의 행렬을 경찰을 앞세워 폭력으로 막는 한편 언론은 ‘죽음의 굿판’ ‘배후 세력’ 운운하며 연일 혐오를 조장하고, 검찰은 검사 9명을 동원하여 유서를 대필했다며 한 개인에게 뒤집어씌운 것이었다. 정준희 교수는 이때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으로 자유를 얻은 언론이 그 자유를 악용하며 권력의 한 블록으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한다. 유서대필 조작사건 담당 송상교 변호사는 수사부터 재판까지 1991년의 사법적 현실이 30년 동안 거의 변함 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차분히 설명해준다.
지금도 힘없고 이름 없는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은 『1991, 봄』이 30년 동안 불의한 현실에 몸을 던져 저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이다. 17살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이야기에는 김용균이 떠오르고,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목을 맨 육우당 이야기에는 변희수, 김기홍 선생이 떠오른다. 이강훈 화가는 이들이 ‘꽃 피는 봄날 살았더라면’을 상상하며 철쭉 핀 교정, 벚꽃 길, 보성 녹차밭 등을 배경으로 옅은 미소를 띈 모습으로 그려 냈다.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림과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며 전국에서, 해외에서 이들을 함께 기억해온 이야기들이 책에 온기를 더한다.
저자는 승리했던 기억만을 이야기하거나 이들의 희생이 학원 자주화나 부문운동의 요구여서 박종철이나 이한열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는 빈약한 역사의식이 있지 않은지 반성하자고 한다.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1991년에서 30년이 지났다. 이제 그 죽음들과 지워졌던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내어 애도하고 성찰하고 기록해야 할 때이다.
저자

권경원

사범대학윤리교육과를졸업하고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영화를공부했다.〈넘버3〉,〈마지막늑대〉,〈친절한금자씨〉를함께만들었다.‘독립영화워크샵’에서10년간강의를했고,『영화감독을위한연기연출법』을우리말로옮겼다.단편영화〈새천년건강체조〉,독립다큐멘터리〈1991,봄〉을연출,제작했다.

목차

머리말1991년을기억한다는것5

0. 1987년과1991년사이15
1980년대말,한국사회의안과밖17
1991년의이미지정치아언론권력의탄생28

01 1991년악몽의서막39
돌아오지못한대학신입생강경대41
강경대없이흐른시간45
우린너무오래참고살아왔어49
정권의반격,3당합당과‘공안통치’?51
악몽의전주곡,1987~199154
시위자는끝까지추적하여검거한다56

02 저항,외면,침묵59
잇따른저항61
금지당한애도63
배후세력을만드는배후세력들65
잊거나잊지않거나70

03 돌아오지못한젊은이름들75
1991년4월29일,박승희77
1991년5월1일,김영균84
1991년5월3일,천세용88
1991년5월8일,김기설94
1991년5월9일,박창수97
1991년5월10일,윤용하105
1991년5월18일,이정순110
1991년5월18일,김철수115
1991년5월22일,정상순120
1991년5월25일,김귀정125
이름없고힘없는희생은멈추지않았다131
1991년,그이름들135

04 소설보다이상한이야기,유서대필사건의재구성139
“길을가다모르는사람이뒤통수를때린것같았다”141
“겁쟁이위선자아첨꾼들은한해에도백만명씩태어난다”144
고인이의도하지않았던곤경151
지금더잘나가는사람들154
그레고르와같은당혹감이었을까?159
이방인강기훈162
“희생자역할을맡아줘”165
어떤소망168
거짓,위선,그리고살아남은자들171
1991년의사법적현실174
끝나지않은재판,7년에걸친재심186
아무도한번도사과하지않았다191
손해배상청구소송의실체196

05 그후로오랫동안돌아오지못한사람들201
1985년9월17일,송광영203
1988년7월,문송면210
1990년6월5일,김수경216
1991년3월,동우전문대이야기221
1991년11월7일,양용찬227
1993년9월26일,길옥화231
1995년3월8일,최정환237
2003년4월26일,육우당243
2007년10월11일,이근재250
2013년4월,최종범255
지워버린시간,그이름들260

6. 기억하는사람들267
맺음말 갇힌걸까흩어진걸까295

출판사 서평

1987년에서1991년사이,그리고1991년5월

이책은1991년의봄을현재로불러내기에앞서1987년과1991년사이의시간들을다시응시한다.1991년비극의씨앗이이때잉태되었다고저자는본다.87년의민주화열기는이내3당합당과공안정국으로대변되는정권의반격으로얼어붙었다.1990년10월대범죄전쟁선포는‘시위자는끝까지추적하여검거한다’는강력한공안통치로이어졌다.권경원감독은한국사회가단단히거꾸로돌아간때,한마디로‘악몽의전주곡’이라이책에썼다.
1991년4월26일명지대학교학생이던강경대가백골단의쇠파이프구타로사망했다.그리고새파란청춘들이자신의목숨을던져정권의폭압에항거했다.4월29일전남대학생박승희가강경대사망규탄집회에서분신했다.5월1일안동대학생김영균,5월3일경원대학생천세용,5월8일전민련사회부장김기설,5월12일직장민주화청년연합회원윤용하,5월18일노동자이정순,전남보성고학생김철수,5월22일노동자정상순이몸을던졌다.5월6일한진중공업노조위원장박창수씨가의문사했고,5월25일성균관대김귀정이시위도중사망했다.모두20~30대의나이였다.
이에맞서국가권력은‘죽음의배후가있다’며최악의유서대필조작사건을만들어내었다.검사9명을동원하여‘배후세력색출’에나선이들은한몸처럼움직이며민주질서의회복을요구하던분신정국의흐름을패륜집단에대한응징으로바꾸는데성공한다.
『1991,봄』은이과정에서‘언론권력’이탄생했다는정준희한양대정보미디어사회학과겸임교수의분석을실었다.김지하의칼럼을실은조선일보를비롯하여유서대필의혹을앞다투어보도하고밀가루범벅이된정원식총리서리사진을대서특필하며‘패륜’이미지조작에성공했고,마침내명실상부한‘언론권력’이되었다는것이다.

권력재창출구도의불안정성·불예측성이급속히커짐으로써수시로공백이발생했고,파워엘리트내부의이익을조율하는한편대외적정당성을확보하기위한담론경쟁의중요성이커졌다.바로이틈새를파고든것이한국의주류언론이다._정준희

불의한공권력에저항했던죽음은이과정에서폄훼되고혐오의대상이되어버렸다.살아서함께하자던외침도급속도로힘을잃어갔다.상처로만남게된것이다.

남을살리려고자신을희생한젊은이름들

겨우20대~30대였던이들의삶은어떠했을까?그들의마음은어떤것이었을까?수년간그들의삶의자취를취재한이야기들이담담하게펼쳐진다.
학교가서열심히공부하고금방오겠다는다정다감한메모를부모님께남기고,번돈의99%를기부하는사업가가되겠다는포부를가진명지대신입생강경대.그는때전교조에가입한뒤해직된선생님들을만나러명동성당에방문하던고등학생이었다.박승희,김용균,천세용도90학번으로고등학생때선생님이해직된경험을했고항의전단을돌리기도했던,고등학생운동에참여했던이들이었다.고등학교2학년이던보성고의김철수역시‘제대로된교육을받자’며자기몸에불을붙였다.이후투병을하며남긴육성유언에는“여러분,여러분”이라는외침이여러번나와마음을무너지게한다.
이런새파란죽음들을그저볼수만은없었던윤용하,이정순,정상순의저항은알수없는돌연한죽음이라는차가운시선을받았다.그러나어려운시대에태어나열심히일하며자신의삶을가꾸어갔던이들이었고,“왜젊은학도들이가야합니까우리젊은기성세대는부끄럽습니다목이메입니다”라는정상순의유서처럼몸을던지는이유를당당히밝혔었다.
충무로에서토끼몰이진압에희생당한김귀정은형편이어려워아르바이트로학비를벌어야하는와중에도동아리활동,학생회활동에여념이없었다.나중에돈벌어서맛있는것을사준다고약속했던김귀정의어머니김종분님의이야기를다룬다큐멘터리〈왕십리김종분〉이5월25일에개봉할예정이다.

누구도,단한번도사과하지않은유서대필조작사건의주역들

1991년5월항쟁의국면을외면과침묵으로돌변하게만들었던유서대필조작사건.대부분홀로,때로몇몇동료들과함께,강기훈은단하루도용납할수없는감옥살이를1,151일을하고도오해와편견이라는감옥에갇혀있다.
저자는우리가유서대필조작사건에제대로알지못하고있다고말한다.이사건은치안본부나정보기관이아니라처음부터검찰이수사를시작하고사건을만든최초의사건이다.김기설씨가분신한5월8일아침‘치안관계대책회의’를마친뒤바로‘배후를조사하라’는검찰총장의지시에따라서울지검강력부검사들로팀이꾸려졌다는점,최소한의인권조차없이강압수사와별건수사를일삼았고,김기설의필적으로보이는증거들은수집한뒤다없앴으며그렇게하고도장소와시간을특정하지도못한기소장을냈다는것이다.연일언론에피의사실을공표하며‘사실’로만들었고,재판또한결론이정해진것이었다.

(1990~1991년)당시의사법적현실이어떻게구성되고작동했었는지를몇가지로요약하자면,그로부터30년이지난지금도큰변화가없다는사실에또한번놀라게된다._송상교

2014년재심대법원에서무죄판결이났다고는해도법적으로는김기설의유서는여전히김기설이아닌다른사람이쓴것으로되어있다.담당검사나판사중누구도,단한번도지금껏사과한적이없다.이들은거의모두가승승장구했고2021년에도변호사로,국회의원으로,사학재단이사장으로재직하고있다.트라우마를겪으면서도민사소송을할수밖에없었던이유이다.

재심법정에서도여전히과거의주장을되풀이하는검찰에게한마디남기고싶습니다.진정한용기는잘못을고백하는것입니다.국민의자랑거리가되어야할검찰이조롱거리가된현실의책임은검찰스스로에게있습니다.
-2014.1.16강기훈재심최후진술중에서

책에는30년동안이사건에갇혀있으면서도곧고담담하게감당해온강기훈씨와그주변사람들의사람됨을느끼게해주는따스한일화들이담겨있다.

힘없고이름없는희생들을기억하는것에우리사회의미래가있다

1991년을거치며희생과죽음의의미는폄훼되어버렸다.그리고그의미는많은이들에게상처를남겼고약자들의죽음이여전히존중받지못하는현실은여전하다.
1985년,전두환의탄압에대학생으로처음분신했던경원대송광영을비롯해1990년대이후분신한경원대학생들이유독여럿이다.그의추모비를교정에서없애려는학원측의폭력은동우전문대와동의대등학원비리를해결하기위해싸우는와중에일어난희생들과다르지않다.
돈을벌며공부를하려고온도계공장에취직한16살문송면.열악한사업장에서일한지몇달만에수은중독으로인한그의죽음은전국적인민주노조운동의흐름에서한참비껴있었다.2018년태안화력발전소에서안타까운죽음을맞은김용균의죽음처럼.삼성이라는이른바일류회사가노조결성을방해하기위해어떤비열한짓을했는지고발하고자했던별이아빠최종범의희생은몇년후삼성의무노조원칙을깨뜨리는기반이된것은분명하다.
획일화되고억압적인교육에서벗어나인간화참교육을외쳤던전교조에가입했다고수많은선생님들을해직했던사태는1990년6월5일대구경화여고에서몸을던진김수경,탈퇴각서를쓰라는모욕을차마견디지못하고2003년9월26일세상을떠난길옥화선생님의희생을불러왔다.지난해전교조는마침내합법화되었다.그러나합법적인절차를거쳐교육민주화운동전력이있는교사를뽑은서울시교육청을공격하는날선말들이여전하다.
2003년4월26일은19살동성애자육우당이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동인련)사무실에서목을맨날이다.자신의존재를지우려는극렬교회와온갖악플에죽음으로저항한지거의20년이흘렀건만변희수하사,김기홍선생님은사는길을벗어날수밖에없었다.삶의터전을관광지로바꾸는것에저항한양용찬,장애인차별철폐를외쳤던최정환,도시미화라는구호앞에서생존권을위해싸운이근재등의이야기들은나중으로미뤄도되는삶은없다라는진실앞에기억하고기록되어야할것이다.
책의말미에는기억하는사람들이야기를담았다.다큐멘터리〈1991,봄〉을체코프라하,요코하마,이탈리아우디네등외국에서초청받아상영했던이야기,정읍,부산,광주,안동등등에서만난분들과의만남이야기가최소한의공감과연대를위한길을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