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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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늘날의 상속 갈등을 조선 상속제의 변화와
유럽과의 비교를 통해 반추한다
어느 노비 가계 2백 년의 기록을 분석하여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이란 인상적인 책을 집필했던 권내현 교수(고려대)가 1556년 대구의 한 양반가의 가출 사건에 주목하면서 조선시대 상속의 역사를 담은 신간『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을 냈다. 소재가 된 사건은 이항복이 「유연전」이란 기록으로 남겼는데, 16세기 프랑스의 마르탱 게르 사건과 흡사하다. 균분 상속에서 장자 우대 상속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벌어진 소설보다 극적인 이 실화에는 ‘상속’을 둘러싼 당대인의 욕망과 갈등, 관습과 제도가 응축되어 있었다. 장남 노룻을 해야 할 ‘유유’의 가출과 귀향, 실종은 남은 가족들의 일상에 큰 파문을 던졌다. 8년 만에 돌아온 유유의 진위는 명확하지 않았으며, 상속과 가계 계승을 둘러싸고 그의 부인인 백씨와 동생 유연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에 처가의 재산 상속에 관심이 있었던 왕족인 유유의 자형이 끼어들었다. 쉽게 해결될 것 같았던 사건은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데다 훈척 대신이 재판을 편파적으로 이끌면서 뒤틀어진다.

상속 갈등과 결과가 뒤바뀐 재판을 통해 16세기의 일상과 욕망, 관행과 제도, 사법과 정치 현실까지 폭넓게 다루는 이 책은, 이 사건에 그치지 않고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시기를 확장하여 균분 상속에서 장자 우대 상속으로의 전환 과정과 그 실상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본다. 또한 조선시대 상속제도의 변화를 비교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일찍 장자 상속제를 선택한 유럽과 조선을 비교하고 그것이 근대 사회로의 전환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탐색한다.

저자는 유럽이 장남에게 극단적으로 몰아준 장자 상속제로 인해 부가 집중되었고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는 견해는 유럽 중심주의라 일축한다. 균분이란 오랜 상속 관행을 깨고 조선 사회가 장자 우대 상속으로 재편되었던 현실적 배경을 짚어내면서, 장남에게 가계 계승의 명분을 주면서도 나머지 아들들이 상속에서 배제되지 않고 장남 주변에 머물러 살았던 전략적 선택이 한국 사회의 근대 이행의 특징이라 강조한다. 이 책은 16세기 어느 양반의 가출에서 비롯된 비극적 종말이라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과정에서 조선의 상속 전반에 관한 흥미로운 여행을 할 수 있게 쓴 독특한 수작이다. 2021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다.
저자

권내현

고려대사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사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한국역사연구회연구위원장,동아시아문화교류연구소소장,남북역사학자협의회집행위원장등여러학회와단체의임원을역임했거나맡고있다.현재고려대역사교육과교수로재직중이다.조선후기사회경제사를전공하였고,특히호적대장을활용한가족·친족·신분연구,조선·청간교류와은유통에관한연구에주력하고있다.
저서로는『모두의한국사』(예경,2019,공저),『노비에서양반으로,그머나먼여정-어느노비가계2백년의기록』(역사비평사,2014),『미래를여는한국의역사』(웅진지식하우스,2011,공저),『TheNorthernRegionofKorea-History,Identity,andCulture』(UniversityofWashingtonPress,2010,공저),『조선후기평안도재정연구』(지식산업사,2004)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며

사라진유유
유유의가출
아버지와아들
아들과딸
결혼과상속

종친이지
왕족인자형
종친의삶
이지의편지
처가재산에대한관심

유유의귀향과유연의재판
돌아온유유
유유의진위
유연의재판
유연은형을죽였나

상속,그리고각자의이해
탈적,형의자리를빼앗다
형망제급,장남과차남
총부,큰며느리와작은아들

사림의세상,이지의재판
또다른유유의출현
이지의재판
상속의정치적활용
유연집안의상속문제

유연과이지를기억하는방식
유연의억울함을알리다
이지를위한변명
백씨는악녀인가
족보에서빼다
공정한재판에대한기대

적장자의시대
정약용의비판
종법과상속
재산감소와상속
상속의실상
평민과노비의상속

유유와마르탱게르
두명의가출자
유럽의상속
『오만과편견』
조선의적장자우대강화
유럽과조선

마치며
참고문헌
미주

출판사 서평

소설보다더극적인실화

책의제목에서연상할수있듯이이사건은같은시기유명한프랑스의마르탱게르사건과비슷하다.유유의가출과귀향,이를둘러싼재판이라는큰흐름이유사하기때문이다.그러나같은사건이지만결말은완전히달라지는데여기에상속재산의향방이결정적이었다.사건으로들어가보자.
유유가가출한후아버지유예원이사망하였다.동생유연이형대신집안의대소사를주관하며살던중1562년자형이지에의해해주에사는채응규가유유라는뜻밖의소식이전해졌다.이듬해유유는가출한지7년만에춘수라는첩,정백이라는아들과함께돌아왔다.문제는유유의진위였다.얼굴과몸매가달랐기때문이다.이지는틀림없다고했고,유연은의심했다.친척과주위사람다수가가짜라했지만진짜라확신하는의견또한무시할수없었다.채응규는백씨부인과의첫날밤비밀스런부위까지증언하며진짜라항변했고,진위를가릴수주인공백씨부인은침묵하는대신정백을자신의아들로거둬들였다.그런데진위를가리는대구부의재판이갑자기살인사건으로전환되었다.보석으로재판을받던채응규가실종되었고첩춘수는탈적,즉형의자리를뺏기위한친형살해로유연을고발했다.백씨부인또한유연을원망했다.결국유연은살인사건그것도강상죄를적용받아의금부로이송되었고고문과자백속에능지처참란비극적종말을맞았다.유연이탈적을노리고형을죽였을까?백씨부인은왜시동생유연을살인자로내몰았을까?자형이지는무슨이유로채응규를유유라확정했으며또한유연재판에영향을행사했을까?해소되지않은의구심을남긴채사건은마무리되는듯보였다.

형망제급과총부권,16세기상속의관습과제도가충돌하다

권내현교수는종법이일상에서뿌리내리기시작한17세기,늦어도18세기이후라면이사건이발생하지않았을거라했다.이집안의장남유치가아들없이죽었지만아마도양자를들여가계를이어나갔을것이고이때유유,유연혹은유유의부인백씨는가계계승과는관련없는인물이되기때문이다.즉가계계승자에게더주어지는상속의대상이아니라는것이다.사위이지또한상속에서딸의몫이줄어들다점차사라지므로처가재산에관심을두지않았을것이다.
문제는16세기조선사회의일반양반가에서종법이아직정착되어있지않았다는데있었다.당시관습은장남이자식없이죽었을때그의부인이총부로서제사를관리하고가계계승자를선택할수있었다(총부권).반면법전의규정은그권리를장남의남동생에게부여했다(형망제급).관습과제도의모순이충돌한데다이시기에가계계승자에게돌아가는상속몫이점차늘어나고있었던상황이었다.
유연이형을죽인이유로사람들이생각한탈적(奪嫡)이란‘적통을빼앗다’,구체적으로는집안을이어나갈적장자의지위를빼앗아차지한다는의미다.저자는당시의탈적과재산분쟁의다양한사례를소개한다.그런데여기서백씨부인의처사를어떻게이해할수있을까?백씨가채응규의진위를적극적으로가리지않았고그의아들(정백)까지데려다키운것은상속과가계계승에서불안한위치에있었던자신의처지를고려한행위였다.더나아가그녀는불확실했지만하나의안전판이었던남편(채응규)이사라지자시동생유연을살인자로고발하여마침내죽음에이르게하였다.자형이지는처가의재산상속에관심이많았다.균분상속의관행에따라죽은부인의몫이처가로부터올것이지만그는그이상을탐냈다.결국이지의욕망과유연의죽음은균분상속의틀이유지되는가운데가계계승자의몫이늘어나고있었던,하지만아직종법은뿌리내리지않았던시대의소산물이었던것이다.

이항복의「유연전」은소설이아닌사실의기록

그런데사건은끝이아니었다.유연이처형된지16년이흐른1579년진짜유유가나타난것이다.이내유연이억울하게능지처참되었음이입증되었고,잘못된재판을바로잡기위해사건의단초를만든가짜유유,즉채응규를찾아잡아들이는일이우선이었다.다음으로채응규가왜가짜유유행세를했는지,그배후에는다른인물은없는지로초점이이동했다.채응규는압송도중자결했다.이지는채응규를사주한혐의를결코인정하지않았지만춘수가이지를지목하는자백을했고,이지는결국신문과정에서죽음을맞이했다.유유의가출에서시작하여이지,채응규,춘수의공모를거쳐부실한수사와재판으로만들어진유연사건은억울한죽음과한집안의붕괴라는파국으로끝이났다.한편아무것도알지못한채평안도에서서당훈장을하면서천유용으로살았던진짜유유는어떻게되었을까?아버지의상장례에참여하지않아인륜을저버린죄로100대의장형과3년의도형을모두채운뒤고향대구로귀향했고2년만에죽었다.

이사건은어디에어떻게기록되어전해왔을까?이항복의「유연전」,권득기의「이생송원록」,사건의신문기록인공초,실록의처리기사,그리고많은관료와지식인이관련기록을남겼다.특히이항복의「유연전」은풍부한문장력을바탕으로흥미롭게그려져오늘날국문학계는소설로간주한다.저자는「유연전」에등장하는이들은모두실존인물이었으며,사건의전반적인흐름도사실과부합한다며역사가의눈으로읽어낸다.이항복의관점은유연의억울함에가있었던반면,권득기의「이생송원록」은이지의관점에서쓴기록이다.작자의의도와관점에따라범죄의주체를다르게볼뿐만아니라재구성한사건의내용도달라질수있다는것을염두에두면서권내현은이러한자료들을다양한분재기와다른사건자료와비교하고당대의사회상을최대한고려하여사실을재구성한다.『유유의귀향,조선의상속』은유연재판사건을통해16세기당대의상속과가족갈등에얽힌사회현상,정치세력변동에따른판결의번복이라는정치현실까지다루는데,신중한재판을통해억울한처분을받는사람이없어야한다는점또한저자가중시하는독법이다.

17세기에서20세기초까지장자우대상속으로의전환과정과그실상

자녀균분상속의관행,총부권과형망제급규정이부딪친유연사건의배경은17세기이후의현실에서는점차낯선일이되고있었다.『유유의귀향,조선의상속』은20세기까지시기를확장하여자녀균분에서장자우대상속으로의전환과정,상속의실상,그리고평민과노비의상속까지기술한다.
장자우대상속이거스를수없는흐름이되었던배경에는상속재산의축소(경제력)와종법(이념)의확산두가지가있었다.흥미로운점은이런흐름속에서아들사이의차별,딸에대한차별이커짐에도상속갈등과송사는외려줄어든다는것이다.즉줄어드는재산과적장자우대라는현실에직면하여움츠러들었던것이다.
또한가지눈여겨볼점은18세기에도균분의유제는뿌리깊게남아있었다는것이다.일례로1703년광주의전의이씨이집의4남매는봉사조를제외하고부모의토지와노비를균등하게나눠가졌다.분할상속의흔적이여전히남아19세기조선사회에도적장자가대부분의재산을독차치하지는않았다.조선과는달리일찍부터장남단독(중심)상속이확립된유럽에서장남이아닌귀족의자제들은새로운생활방편을찾아떠나야했는데반해,조선에서는차남들도일정부분상속을받고장남주변에머물며함께살았다.적장자우대상속은현실적으로는장남에의한가계계승을보장하면서나머지아들들의경제적몰락을억제하는효과가있었던것이다.권내현교수는딸들에대한차별과아들들에대한우대를거처장남우대로상속관행이바뀐것은경제력하락을경험한당대인들의전략적선택에따른것으로,조선시대가근대로이행하는방법으로해석했다.
장남을우대하는관행은근대이후에도오랫동안지속되었다.아버지의권위는장남에게이어졌고그는상속에서절대적으로유리한위치에있었다.오늘날에는개별가계의경제력이급속하게성장하고가부장적이데올로기의외피가얇아지면서다시균분상속으로돌아가게되었다.물론장남우대라는오랜상속전통과균분의부활속에서결등을겪는집들도있겠지만장남우대상속은조만간역사의뒤꼍으로사라질것이다.

유럽의장자상속제와조선의차이

『유유의귀향,조선의상속』의마지막장에서거의같은시기조선과프랑스의가출자인유유와마르탱게르를대비한것은조선시대상속제의변화를비교사적으로이해하기위해서다.유럽의가족유형과상속방식은지역이나계층에따라다양했지만유럽의귀족들은대체로11~12세기를거치며장자상속제를채택했다.국왕의권력이장남을통해계승되는것은유럽이나조선이나마찬가지였지만유럽의귀족들은처가살이의전통이없었고,여성에대한차별도훨씬강고했다.그들은세습되는영지와작위,농민에대한지배권을가지고있었으나조선양반들은대개그렇지못했다.유럽의귀족들이택한장자상속제는장남이아닌아들들에게는매우가혹한것이었다.성직자,군인,상인등으로새로운삶을찾아야했다.조선에서는균분에서건장자우대에서건차남들의생활방식에는큰변화가없었다.동시대유럽과조선의차이는유유와마르탱게르의간격,그이상이었다.
일부경제사가는영국을포함한유럽의장자상속제가부의집중을통해지속적인경제성장을이루게한발판이었다고이해한다.반면이슬람사회와같이공평한분할상속을실시했던지역은재산의파편화로자본축적과근대적경제성장이어려웠다고보기도하지만저자는이러한견해가유럽중심주의나결과론적해석이라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