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을 넘어서  : 한국 사회 특권층의 뿌리를 찾아서

출생을 넘어서 : 한국 사회 특권층의 뿌리를 찾아서

$32.00
저자

황경문

1967년부산에서태어나1970년대에미국으로이주하였다.미국오벌린대를졸업했고,하버드대에서석·박사학위를받았다.1998년부터2020년까지남가주대(USC)역사학과교수를역임했고,2021년부터캔버라의호주국립대교수로재직중이다.저서로는『출생을넘어서』를비롯하여『RationalizingKorea_theriseofthemodernstate,1894?1945』(2016),『AHistoryofKorea』(3판,2022)등다수를썼고,현재한국의역사영화에관한책을쓰고있다.

목차

한국어판머리말
머리말

서론
한국근대와전근대의제2신분집단|서술및접근법

1장출생과관료제:조선시기의사회계층
세습,혼인,국가|제2신분집단|조선사회구조의도식

2장신분의개방:관료엘리트에임명되다,1880-1930
선행연구|조선왕조의관료선발과승진제도|1880년대와1890년대의정부조직|관료양성|해외유학|일본망명|국내소요,1897-1910|식민지관료제속의한국인|상승이동의통로:지방관청과경찰|결론

3장중인
중인집단의발전|중인가문|논의:국가,전문가,정당성

4장향리
기원|조선왕조에서의발전|근대관료제에서의등장|사례연구|논의:지방사회의전형적존재

5장서얼
집단의발전|개화기의서얼관료|논의:모순점과논쟁점

6장서북인
조선초기서북사회의기원|조선후기서북의사회계층|배제에대한서북인의대응|근대시기의서북인|논의:민족,지역,집단의식

7장무반
1880년까지집단의발전|개화기와식민지기관료제에서의존재|근대관료제속의무반후손들|논의:한국사에서군의역할에대한성찰

결론:제2신분집단과한국의근대성
한국근대성에대한재고|관료제와국가|가문공간과사회적권력|자본주의와계급|개화,문화,지식|민족주의와반민족주의|한국근대성의심성구조

옮긴이의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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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제2신분집단의부상이한국사회의현대적변혁을구현했다

『출생을넘어서』는조선사회유교의교리와양반의지배라는수면밑을조사하여제2신분집단이아우성치는풍경을드러내보인다.이신분층은외국어,법률,의술,회계분야의전문가(중인),지방의행정구역에서일하던말단관리(향리),첩의자식과후손(서얼),서북지방의엘리트,무반으로구성되었다.이집단들은수세기동안관료적위계와사회적위계양면에서종속적인위치에머물면서,주로혈통에입각하여자신들을귀족의아랫자리에영구히고정시킨풍조와조직안에서힘겹게생활했다.그정치·사회적차별에도박제가,허준,황진이,김홍도,신윤복,신재효,조희룡등중요한인물이등장하기도했다.
특히주목할만한것은이집단의인물들이한국문명에서오랫동안사회적신분을수정하는중요한역할을수행해왔던관료체제의상층부에진입했다는사실이다.이책은우선관료제로관심을돌린다.관료제는조선왕조사회위계의척도였고,이책이증명하는것처럼관료제는오랜규범과근본적으로결별하는데있어서가족제도,혼인양상,경제관계,그리고대부분의다른사회적또는제도적지표에선행하고있었기때문이다.
조선시대관료제는세습적인사회신분제와견고한귀족층의이익을강화하는수단이었다.17세기에이르면중인,향리,무반은낮은직위로관직접근권이한정되었고귀족과의세습분리가고착화되었다.문과에합격한서북인은고위관직으로는진출할수없었고,서얼은과거에응시할기회조차갖지못했다.이책이보여주듯이조선후기제2신분집단이통치질서로진입을추구했을때그들이초점을맞춘것은관직접근권이었다.19세기후반제국주의의위협과20세기초일본제국주의와식민주의의이익을강화하는지배구조가모식되는과정에서제2신분집단은그들의재능,재산,정치적혼란,시대에대한예리한인식등에기반하여비약적으로신분상승의경로를밟아갔다.
『출생을넘어서』는19세기후반부터일제식민시기중반(1930년대)까지새로운엘리트집단의부상이가능했던관료선발과승진제도를전반적으로소개한다.관료제의구조변경은관료선발과승진의오랜패턴을빠르고극적으로뒤엎는결과를가져왔다.출생신분의우월성은급격히약화되었다.1880~1890년대통리아문,내무부,외무부,갑오개혁등한국관료체제의종합적인구조조정이란새로운상황은제2신분집단의관직접근을촉진했다.이들은갑오개혁무렵에는정부최고위관직도일부보유하였고,식민지초기인1910년대도지사,도참여관등대부분의조선인고위직은제2신분집단출신들이었다.무반의후손인이진호는1920년대총독부각료반열의장관직에올랐다.
이들의관료적명성과지위는나아가이후비관료부문에서새롭게형성된사회엘리트로부상하는발판을제공했다.윤치호,박영철,구영서,현진건,최남선,나혜석,주시경등근대기의많은중요한인물들이그러한배경속에서배출되었다.그리고서북출신의수많은인물,특히정치·문화계의안창호,조만식,이동휘,이승만,박은식,이승훈,이광수,김소월,김동인,백인제와같은인사들이그렇다.조선시대였다면관리로서뿐아니라다른사회영역에서도그러한큰영향력을지닐수는없었을것이라는점에서전근대사회위계의전복을선언하기에충분한근거가되었다.
17세기중반을시작으로근대시기까지어이지는사회구조의역사,특히사회위계의역사를다루는이책은제2신분집단의구성원이관료제에서극적상승을이뤄낸다양한수단,그들이어떻게이러한운명의반전을확대하여수세기에걸친사회위계의전복에이르게했는지,그들의이야기가어떻게한국역사에대한전통적인관점을재고하는데필요한지상세히다룬다.특히이책은중인,향리,서얼,서북인,무반등대한구체적인사례연구가돋보이는데,이사례논의가궁금한독자들이라면2장부터읽어보는것도한방법이다.쉽고상세하며흥미진진하다.
개화,문화,지식의재조정과정에서이들의우세는분명했다
제2신분집단의후손은근대초기에먼저관료조직의상위계층에서상당한위치를차지하게되었고,그다음으로여타사회부문의엘리트계층에서상당한위치를차지하게되었다.중인과서북인을한데묶는공통점은신학문에대한접촉과열렬한수용이었다.가지고있었던부(富)를통해유학등신교육을습득할기회를제공받았던이들은신학문의가치와필요성을예리하게인식했다.따라서교육과지식의방향이재조정되는과정에있어이들출신의우세는분명했다.
20세기첫30년은새로운국민적정체성출현의최전선에있었던서북한국인의시대이기도했다.그들이문학,역사,언어,교육등의분야에서이룬성취는이시기번창하던지적산출물의매우많은부분을차지했다.이들이없는근대한국문화는생각도할수없다해도과언이아니다.중인을비롯한제2신분집단이근대한국의한글형성과정에등장한것은큰중요성을갖는다.저자는만약이들의기여가없었다면초기근대시기에있어민족문화의건설이매우상이한,아마도변화가덜한방향으로전환되었을것이라고주장한다.관료제개혁이귀족의정치권력을무화시킨것과마찬가지로한국문화에대한귀족권력의의례-윤리적토대를궁극적으로해체하는방식으로이뤄졌다는것이다.

저명한한국인들사이에서강력하게지속되는엘리트주의의뿌리는?

제2신분집단은그들의복잡한모든활동속에조선의신분체계를역설적으로드러내고있다.서얼의서사는제2신분집단의영향력과포괄성을보여주는가장좋은그림을제공한다.첩의후손인서얼은조선초기귀족이신유교를국가이데올로기로확립하면서탄생했다.이이데올로기의교의는본처자식과첩자식사이의의례적위계를주장했으나,시간이지나면서이러한가족내차별은과거시험응시권박탈이라는국가영역으로확대되었다.더큰사회적,관료적특권을얻어내기위한수세기에걸친서얼의호소의내용들에는제2신분집단이세습신분제도의희생양일뿐아니라그것의‘실행자’이기도했음이여실히드러난다.중인,향리,서북인,무반또한각자의방식으로문제를제기하지만자신들을옭아맨차별구조를끊어내기보다스스로양반이되고자한전체적인패턴은같았다.
예를들어서법전에서중인과함께분류되는것에대한서얼의혐오,혹은여러서얼의근본적인기원에대해중인집단이보인경멸,그리고중인이일반적으로향리와함께엮이는것을피하는것에서보듯이,제2신분집단은신분과관직기회의배정에있어출생과가문에기반한방식을근본적으로개혁하려고하기보다는오히려스스로를귀족이라고인식하려했던것이다.제2신분집단사이의이러한지위의식은근대시기로까지이어졌고,실질적으로사회적명망을달성하자그들의엘리트주의를강화시켰다.특히정부고위관료의지위는관직과명성의연계에관해여전히작용하는사회적인정에의존했다.이앞에서는많은경우외세점령정부에부역하는등문제가있는행동까지도문제가되지않았다.
또한제2신분집단후손에게출세로가는길은조선후기와개화기초기의사회위계에서그의가문이차지한상대적으로높은지위에의해어느정도닦여있었다.귀족에의해지배된전국적인위계가아니라각세습신분집단에고유한내적서열을말한다.이것이근대시기후손의운명을결정하는중요한요인이었다.다시말해서제2신분집단의성공이야기는이집단의모든후손에게해당되는것은아니었던것이다.
서얼이라는예외를제외하고각각의제2신분집단은내부과정을통해그자체의엘리트가문들을배출했다.역관직,의관직을지배한경향이있는천녕현씨같은중인가문,군이나도수준에서가장높은서리직을보유했던동래의창원구씨같은향리가문,지속적으로무과급제자를배출하거나토지재산을축적한정주의수원백씨같은서북인엘리트,그리고대대로무과에급제하여최고위무관직에올랐던전의이씨같은무반가문등이그것이다.전통적으로이런엘리트제2신분집단가계라하더라도지배귀족과그들을가르는장벽을넘을수없었다.하지만그들은자체신분집단의위계내에서는지배자였다.이제2신분집단의엘리트들은종종조선통치체계에대한쓰디쓴환멸을드러냈지만그들도그들자신의신분집단,즉특정사회적권력의영토내에서는그와똑같은메커니즘의지배를시행하여자신들의특권을유지했다.근대전환기새로이출세한집단의엘리트주의의지속적인강력함은전근대적조건으로부터직접적으로발원했던것이다.

제2신분집단과한국의근대성의관계

이책은전환기제2신분집단의부상과사회위계의수정이한국근대성의핵심이라주장한다.이는자본주의,산업화,도시화가근대성의기준점이며현대한국사회의계층화는주로계급차이에따라이뤄진다는종래연구와는전혀궤를달리한다.또한국가개입,상업활동과사적축적에대한혐오,민족적집단의식등한국근대성의중요한주제들이수세기에걸쳐한국의전근대에서발현된것이라는요지는조선후기를봉건제해체기로보고근대로귀결했다는역사서술과는상반된다.따라서근대전환기제2신분집단의불만과능력이민중계급과의결합을통해새로운사회적권위나가치를창출하는동력이되었다는식의우리에게다소익숙한주장이이책엔없다.
황경문교수는제2신분집단이한국의근대성을이해하는데필수적이라한다.이들의부상으로사회적지위가출생에서성취가가능한것으로전환한것이근대성의핵심이며이는자본주의,산업화,도시화등물질적근대에선행했다고강조하면서한국의근대성에관한재인식을촉구한다.식민지시기산업화와한국인자본가가등장했고자본주의윤리의일상화라는것이생겨났다하더라도훨씬이후에나뿌리를내렸다는것이다.돈이지위를높일수는있지만뚜렷한한계가있었다.20세기후반,사회적으로자본주의가정착해가고있던와중에도자본가가지배적지위로상승하는데는제한이있었던것처럼.또한저자는진보의증대라는정해진단계를밟아가는것으로보는한국사의지배적인역사서술에대해이는이미국제학계에서폐기된서유럽사모델의반영이고아이러니하게도이방법은일본의결론을뒤집으려는것임에도불구하고식민사학을반영하고있다고비판한다.조선시대‘봉건제붕괴’라는전제만제거하면한국고유의역사적동학에기반해서전근대와현대사이의보다안정적인연관성의증거를찾을수있으며,제2신분집단의지위의식에는한국만의고유한근대성의특질이살아있다고주장한다.『출생을넘어서』는이질문을반복해서던지며제2신분집단의운명을추적한다.

민족주의란이데올로기보다더강력한무언가가있었다

제2신분집단이그들의돌파구를마련한것은일제식민지체제와의일종의비민족주의적인,심지어반민족주의적인협력에의한것임은부인하기어렵다.이는한국의근대성이이들과일제에의해얼룩졌음을시사한다.일제와의합작을통한이들의부상에대해황경문은바로이점때문에종래식민지기에관한민족주의역사연구에서제2신분집단을기피했다며,첫째,20세기초한국인에게강력한민족주의적의식을전제하는것은비역사적으로,한국의민족주의는서구와다르게조선후기에이미출현했으며,갑오개혁(1894~96)이나식민지기한국관료들을무차별적으로‘친일’로명명하는것은그들이복잡한상황의상호작용이낳은산물이자,관심과동기의복잡한조합으로부터행동이도출되는인간이라는정체성을부정하는것이라며민족주의역사서술을반대한다.둘째,개인의이익을맹목적으로추구하면서외국인이든내국인이든상관없이권력자에게달라붙은악명높은사례들이있긴했지만대부분의관료들에게는자신들이한국군주제에고용되었는가아니면조선총독부에고용되었는가하는것은위신,기회,그리고관직을통해직업안정성을확보할가능성보다는덜절박한문제로본다.다시말해서이시기한국인관료들은관직을통해인생의성취를가늠하는수세기간의관행을좇고있었다는것이다.이렇게보면왜똑같은이들관료중다수가해방후미국이라는또다른점령권력에기꺼이봉사했는가도설명된다.저자가한국의근대적변화에대한탐구에기초하여얻은핵심적인통찰중하나가바로이런것이다.황경문은민족주의가실제로도강력한이데올로기적힘이었지만많은이들에게는그보다더강력한무언가가있었다고보는것이다.

한국근대성에대한제고,
사회적지위가출생을넘어개인이성취할수있는경제적부나학력으로전환되다

이들을움직인강력한무언가는바로‘지위의식’이었다.지위의식은제2신분집단과그후손들이한국의근대성에남긴중요한자취이다.지위의식의지속적영향력은단지전통의영속을의미하는것만은아니다.오히려그것은전통에대한강력한수정이반영된것이다.
한국사회의근대성에큰영향을끼친전근대의유산은놀랍도록많다.예를들어가족체제나국가개입의두드러짐같은것들이다.한국사회에서혈연의계보적연결은20세기의거의마지막10년까지도강고하게유지되었지만일부재벌가문의경우를제외하면이제는조상배경에대한이같은집착을케케묵은것으로여겨진다.국가의존재감또한민주화이후정부투명성이증가하고경제의자유화와1990년대독립적인시민문화의성장등으로인해이전같지는않다.
반면지위가있어야최상위로올라설수있다는지위의식은극도의내구력으로지속하고있다.전근대‘양반이되고자하는욕망’과관직을가진자에게주어진사회적우월성이현대에도지속적으로힘을발휘한다.지금도어떤사람의졸업장에적혀있는학교이름은조선왕조에서출생과관료자격의상관관계와크게다르지않은방식으로최상위직업에대한자격요건을결정한다.엘리트에가담하기위한정열적인노력은교육에관한몰두그자체는아니다.한국에서식견있는사람치고어떤사람이받은교육의질이그가다닌대학에상응한다고믿는사람은아무도없다.오히려그것은사람들을특정한위광의지표를소유했느냐에따라특권과인정의서열속으로줄세우려는집착이다.
해방이후북한에서는사회혁명이일어났지만이후세습지배는거의바뀌지않았다.평등을중시하는사회주의나라에서이점은비극적인아이러니일수밖에없다.남한은사회혁명이없었기때문에신분의식의고갱이가어느정도유지되긴했지만사회적지위의구성요소는결정적으로‘출생을넘어’개인이성취할수있는경제적부나학력등으로발전했다고볼수있다.그러나사회적지위의식이없어진것은아니다.그것은높은지위가주로출생과세습에따른것이었다면성취가가능한것으로전환된것이다.제2신분집단과그후예들이현대한국에남긴것은가능성에관한의식,즉지위를습득할수있다는믿음이다.명문대졸업장을갖기위한열정,집착은일반적인사회의경쟁이상의것이다.지위의식이일종의한국식개인주의가된것인지혹은이러한역동성이경제기적을추동했는지의여부는논쟁대상이될수있지만부정할수없는것은지위의작동과그에관한인식에있어서의변화가가진함의는사회위계의재배치를넘어서한국근대성의다른많은측면에영향을미쳤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