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

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

$20.00
Description
대성동마을에 관한 첫 책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De Militarized Zone) 안에는 민간인 마을이 두 곳이 있다.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을 기준으로 남쪽, 즉 대한민국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북쪽, 즉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기정동 ‘평화의 마을’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마을이고 판문점이 지척이다. 가끔 연말 뉴스에 나오기도 하지만 겉보기일 뿐, 그 마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주민들의 삶은 어떠한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인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돼있고, 군사구역이라 기밀에 해당하는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성동마을에 대한 ‘가짜 뉴스’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대성동마을 사람들은 2개 국어를 쓴다, 즉 모두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다. 또 주민들이 DMZ 밖으로 아예 나올 수 없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모두 틀렸다.

이 책은 대성동마을을 본격적으로, 총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첫 책이다. 대성동의 면모를 알리는 동시에 왜곡되게 알려진 사실도 바로잡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대성동마을에 관한 첫 책이라는 의미 외에도 이 책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사료를 뒤지고 주민 인터뷰를 통해서 기록과 기억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지역 주민의 삶을 면밀히 들려다보고 최덕빈 중령 이야기 등 잊혀진 인물을 조명했다. 또 유엔사(미군) 관할지역의 특성상 국내에는 없는 자료는 외국의 자료를 찾아서 책에 실었다. 지도를 넣어, 갈 수 없는 곳을 시각적으로 가늠할 수 있도록 했고, 더불어 제3땅굴을 비롯해 판문점, 임진각 등 안보관광으로 소비되는 지역의 역사도 돌아보도록 구성했다. 대성동마을에 관한 이런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책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최근 종전선언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다. 저자가 에필로그에 다루었듯, 서울과 개성을 잇던 의주로의 한 마을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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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종업

신문쟁이.초등학교때부터신문읽기를시작해지금까지구독하고있다.《전자신문》에서시작해《한겨레신문》편집부,여론매체부,문화부등에서30년동안기자로일했다.
직업의경험과공부를살려《신문기사제목달기》《한국의책쟁이들》《미술마을인문기행》《작품의고향》등의책을썼다.

목차

저자의글_비무장지대첫마을,대성동_2
프롤로그_정상회담을엿들은주민_16

1장대성동,누구의땅도아닌
ㆍ이름없는마을_23
ㆍ전쟁중에도떠나지못한땅_32
ㆍ열쇠이자족쇄인DMZ_45

2장DMZ첫마을
ㆍ대성동가는길_59
ㆍ태극기휘날리며_73
ㆍ동네한바퀴_84
ㆍ마을의유일한학교_96

3장대성동의탄생
ㆍ중앙정보부가주도한대성동개발_109
ㆍ남향에서서향으로재배치된자유의마을_122
ㆍ대성동마을을기초한인물최덕빈중령_128
ㆍ마을의수익기반이된사천강습지_140
ㆍ동의대성동과서의기정동_145

4장대성동주민으로살아가기
ㆍ까다로운거주조건_155
ㆍTSDMayor대성동이장_162
ㆍ대성동헌법이된유엔사규정_174
ㆍDMZ주민,미군_184
ㆍ늙어가는마을_195
5장대성동사람들
ㆍ자기땅에유배된난민_201
ㆍ걸어다니는옥편김씨_218
ㆍ도토리줍다가북에다녀온홍씨_223

6장대성동인근돌아보기
ㆍ지척에있는제3땅굴_231
ㆍ도끼만행사건이일어난돌아오지않는다리_238
ㆍ공동경비구역판문점_244
ㆍ무장된비무장지대_258
ㆍ건물명에서지명이된임진각_263
ㆍ오래된미래의주로_274

에필로그_하나된나라를지향한다면_283
참고문헌_286

출판사 서평

대성동의과거와현재
대성동마을은정전협정이결과탄생했다.남북한양측이비무장지대에마을하나씩만남긴다는정전협정에따라군사정전위원회가1953년8월3일에조성을시작했다.일종의완충지대이자선전마을이었다.

대성동은행정구역이름이아니다.마을의행정구역은‘파주시(옛장단군)군내면조산리’다.‘대성동’은47세대가밀집된주거지와주민들이농사를지어생계를꾸리는인근영농지역을일컫는다.DMZ안분계선남북쪽마을하나씩을두기로하면서유엔군에서‘TAESUNGDONG’FREEDOMVILLAGE라는이름을붙였는데,마을앞에있는둔덕인‘태성’에서따와‘태성부근의마을’이라는뜻으로이름을삼은것이다.영자표기를다시한글화하는과정에서‘대성동’이됐다.
대성동,즉장단면조산리는개성과서울을오가는의주로상에있었다.의주로는조선시대서울과전국각지를잇는9개간선로중하나로서울-의주를연결하는길이자,대륙으로나가는길이었다.오랫동안장을보러다니던그길이하루아침에끊겼다.지금대성동으로가려면임진강,민간인통제선(국군의검문),DMZ남방한계선(JSA유엔사검문)등삼엄한차단선을통과해야가능하다.

이책은모두여섯개의장으로구성돼있다.대성동의지리적배경,대성동들어가는길과마을풍경,대성동탄생의역사,대성동주민의삶,대성동인근의관광지등을소개한다.

1장대성동누구의땅도아닌
판문점과대성동의이름유래와오늘날까지의역사를개괄해소개한다.대성동은주민들이자리잡아누대살아온그들의향토다.주민들대부분의농사를짓는다.‘바깥’에비하면대농이다.그러나‘시절이좋아지면’계속이땅에서농사를지을수있을까.주민들이고민이깊다.
유엔사는대성동주민이바깥으로이주하는것은허용했지만외부의남성세대주가대성동으로이주하는것은불허했다.대성동여성과결혼한외부남성도마찬가지다.따라서외부로부터의경쟁없이대성동주민끼리농지점유권을확보하는게가능했다.그로인해정전협정이래대성동은마을규모의변화없이영농지만확대되어오늘에이르고있다.(38쪽)
현재대성동가구당평균농지면적은3만평(약10헥타르).많이짓는사람은최대8만평까지짓는다.주민들가운데2만평(약7헥타르)보유농가를‘소농’이라고부른다.참고로통계청2019년자료를보면전국평균벼경작지면적은가구당약2헥타르이다.(38쪽)

주민들은몇가지고민이있다.농사철에외국인노동자를쓰고싶은데승인이나지않는것이다.민통선마을인통일촌처럼대성동에서도허용됐으면하는바람이다.또하나,아이들이농사를이어서지을지모르겠다는것.아직대성동은다른농촌에비해평균연령이낮은편이지만고령화추세는여기라고피해가지않는다.(43쪽)

“애초이곳사람들이딱히먹고살게없으니농지개간을다허용했어요.정부에서도와주기도했지만주민들이돈을들이고피땀흘려일군거죠.근데땅문서가없어요.
만일개방되어원주인이나타나소유권을주장하면막막하죠.배운게도둑질이라고농사밖에모르는데어디에가서뭘먹고사나걱정이에요.”
DMZ라서곡창이된대성동이DMZ인탓에존폐위기에놓인것이다.DMZ가열쇠인동시에족쇄인셈이다.(44쪽)

2장DMZ첫마을
대성동가는길에대한안내와마을풍경을소개한다.‘용무가없다면’아직일반인은마을에들어갈수없는데,마을에들어서는순간,여느농촌마을과다르지않음이느껴진다.한해졸업생이5명인대성동초등학교은전국에서손가락안에꼽힐정도로시설이좋다.

대성동마을에닿으려면임진강을건너북상해야한다.임진강은휴전선과가장가까운천연장벽이자민통선이라는정치적,군사적장벽과겹친다.임진강에걸친다리가운데가장왼쪽에놓인통일대교가대성동관문이다.(59쪽)

이곳학생들은한해한차례단체사진을찍는다.졸업앨범용이다.한해졸업생이5명인데,5명으로썰렁하게찍느니전교생이함께찍는오붓함을선택한거다.해마다즐겨찍는장소는운동장.학교본관건물을끼고대성동마을의상징인태극기게양대가배경으로보이는곳이다.사진을보면누구나대성동초등학교와그학생들임을알수있다.졸업연도만다를뿐.(106쪽)

3장대성동의탄생
대성동은마을이만들어진후크게두번개발이되었다.이장은1950년대판문점군사정전위원회의최덕빈중령이주도한대성동마을조성,1970,80년대중앙정보부가주도한대성동개발과정을다룬다.

1959년유엔사와정부에의해추진된크리스마스전까지낙후된자유의마을을근대화한다는계획에따라마을에변화가시작됐다.미군이기증한발전기가도입되었고블록주택(문화주택)3동이지어졌으며,공회당과동사무실,의무실,목욕탕등공공시설이지어졌다.
최덕빈중령이그린이상촌은자치조직을기반으로한주민공동체다.이를위한기반시설로주민들이모일수있는공회당을세웠다.현재는마을의동쪽구릉위한적한곳이지만당시는뒤쪽에서마을전체를내려다보며아우르는곳이었다.(130쪽)

현재의대성동마을은1979~1980년‘대성동종합개발’에따라갖춰졌다.대성동종합개발은정부의첩보기관인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전신)주도로이뤄진다.중앙정보부는1979년1월8일당시박정희대통령한테‘판문점지역종합개발건의’제하의문건을올려재가를받았다.(109쪽)

4장대성동주민으로살아가기
대성동주민으로살아가는데필요한필요,충분조건을다룬다.대성동에서는이장의역할이매우중요하다.TSDMayor라불리는이장의역할과권한도알아본다.

대성동주민은주민등록증외에또다른신분증을갖고있다.빨간색비무장지대출입증이그것이다.주민증과형식은비슷한데주소표기와발행기관이다르다.예컨대주소가14-2라면14번주택에거주하는세대주의아내라는뜻으로해석된다.통상1번은세대주,2번은배우자,3번은첫번째자녀식으로번호가매겨진다.발행자는유엔사공동경비구역대대장.(156쪽)

대성동에관한한이장이경비이외의모든사안을관리한다.그가‘아니오.’하면안되고,그가‘네.’라고하면된다.그래서인가,그의의사표현은된다,안된다가분명하다.주민대표로서유엔군사령관,대성동민정중대장,공동경비구역한국군경비대대장,공동경비구역유엔사경비대대장및유엔사군정위비서장을상대로대등하게현안에대해교섭할수있는권한을부여받고있다.외부인의대성동방문은사실상이장이관할한다.
자신의농사일을겸하기에2배이상바쁘다.통화도힘들다.그와의스케줄은두어달전에잡아야할정도다.(169쪽)

5장대성동사람들
한국전쟁후민간인마을을조성하게된배경과,대성동주민들의인터뷰를생생하게전달한다.

대성동마을은유엔사관할이다.주민들의모든행위는그들의통제를받는다.자유의마을출범당시주민들은대한민국국민이아니었다.1969년주민등록증이발급돼비로소국민이되었다.유엔사의역할이한국군에게이양되어한국군이그실행을대행하고는있지만최종권한과책임은유엔사에있다.대성동경비가한국군으로이양된것은2004년,불과16년전이다.하지만이곳을출입하려면대한민국장관도유엔사의허락을받아야한다.(216쪽)

6장대성동인근돌아보기
제3땅굴,도끼만행사건이일어난돌아오지않는다리,판문점(JSA),임진각등전쟁혹은평화와관련된주변의가볼만한곳을소개한다.아울러이들을품고있는의주로에대한저자의의견을피력한다.

자유로와통일로는그이름과달리대성동못미쳐서끊겨있다.문대통령역시2018년남북정상회담때자유로를달려판문점에서멈췄다.그에반해의주로는분단이전에남북을잇는길이었고,통일이되면서울과평양을잇는길이될터이다.그점에서의주로는우리한반도의과거이자미래다.(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