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와 국가의식

지역문화와 국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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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청메이바오

지은이:청메이바오(程美寶)
홍콩중원대학(中文大學)을졸업(1990)하고영국옥스퍼드대학에서석사학위(1992)와박사학위(1996)를취득했다.현재는중산대학(中山大學)의역사학과교수로재직중이며,근대중국의사회문화사를가르치고있다.그녀의주된연구분야는광동,홍콩,마카오의근현대사로,특히18∼19세기광동의로컬리티형성에많은관심을가지고있다.주요저서로는<홍콩의역사,1842~1997년>,<서양인의눈에비친중국의풍경:에반윌리암스(EvanWilliams)가기증한19세기광저우의수출용통초지(通草紙)수채화>,편저로는<광동의역사:광부(廣府)문화와완원(阮元)논문집>,<18~19세기양성(羊城)의풍물:영국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소장광저우의수출용그림>이있다.
  

옮긴이:정진선
가천대학교중어중문학과를졸업하고중국북경사범대학교중문과와서울대학교중어중문학과에서각각석사와박사학위를취득했다.중국사회과학원민족문학연구소에서방문학자로남방소수민족신화에대한연구활동을수행하였으며,현재서울대,가천대등에서강의하고있다.석사학위논문은「중국과한국의일월조정신화및그신앙민속비교연구(中韓兩國的日月調整神話及其信仰民俗之比較硏究)」이고,박사학위논문은<중국신화의변용양상연구―춘추전국시대부터진한대까지를중심으로>이다.연구논문으로「고대중국기물정괴고사의발생과그의미:<태평광기(太平廣記)>정괴부(精怪部)를중심으로」,「중국국가급무형문화유산의정리작업과그현재적의미:신화의제전화를중심으로」,「중국서남지역의로컬리티형성에관한시론:<화양국지(華陽國志)>를중심으로」등이있다.  

옮긴이:최형섭
서울대학교중문과를졸업하고같은학교대학원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취득했다.중국사회과학원고급진수과정을수료했고,현재서울대,한양대,서울시립대,인천대등에서강의하고있다.석사학위논문은「풍몽룡(馮夢龍)화본소설(話本小說)연구」이고,박사학위논문은「중국소설을통해본‘개인’에대한인식의변화-‘사대기서(四大奇書)’부터<홍루몽(紅樓夢)>까지의변화를중심으로」이다.연구논문으로「출판문화의보급과텍스트,저자,독자,그리고독서관습-경전읽기와소설읽기의비교분석을통하여」,「출판문화의보급과지식의성격,그리고17세기시사소설(時事小說)」,「언어와번역을통해본17~18세기중국사회」,「고대중국문학속에재현된여자축국(蹴鞠)문화」등이있다.저서로는<개인의식의성장과중국소설>이있고,번역한책으로는<서유기(西遊記)>(공역),<무성희(無聲戱)>,<서광계문집>,<금고기관(今古奇觀)>등이있다.  

목차

해설:근대중국의지식과제도의변화/7

제1장프롤로그:문화를전시하다/39
문화의전시/45
문화와문인/55
‘천하’에서‘국가’로/64
‘국가’에서‘지방’으로/69
지방과중앙/75
본서의주제와구성/86

제2장영남지역의중국화과정/93
광동인의범위/94
가르쳐교화시키다/106
방언에서종족으로/123
향토에서국가로/161
소결:문화―종족―국가/175

제3장광동어로창작하기/179
남쪽오랑캐의말에서중원의고음으로/180
구술에서쓰기로/189
문인의광동어노래부르기/200
월극의특징/209
속어로선교활동을하다/216
점차규범이되다/224
내손은내입이말하는대로쓴다/238
소결:방언과국어/246

제4장영남학술의원류를찾아서/249
영남학술의원류/250
학해당내부/256
학해당외부/269
학해당이후/282
소결:구문화에서신문화로/311

제5장민속에서민족으로/315
중국에서의민속학/317
광동에서의민속학/321
학술과정치/332
학자와정계인물/348
소결:민족주의와지방문화/368

제6장구시대사람이편찬한신시대의지방지/371
<고요현지>의편찬/374
용어와내용/381
신구교체기의지방지식인/390
지방지속의국가문화/394
지방의이익과민족의의미/408
소결:국민과향인/417

제7장에필로그:문화전시의배후/419
문인의위치/420
‘문화’란무엇인가?/428
‘광동문화’는어디에있을까?/433
지역문화연구에대한재검토/438

저자후기/442
옮긴이의말/447
참고문헌/455
찾아보기/476

출판사 서평

이책은거시적인문제의식을가지되작은것에서부터시작하라는말에따라거시적인관점을연구방법으로채택하고있지만상당히구체적인진술로이루어져있다.수준이높은독자들은구체적인서술너머에있는각사람의‘거시적인틀’을파악할수있을것이다.본총서에참여하고있는저자들의이러한대의에대한깨달음에는차이가있으며,어쩌면서로부합하지않는내용이있을수도있다.그들의연구성과는독립적인것이다.독자가그가운데서깨닫는것도개인마다다를수있으니,어떤사람에게고개로보이는것이다른사람에게는봉우리로보이는것과마찬가지이다.처음시작은뒷사람에게문을열어주는의미가있다.첫번째총서의출판은표본을제공하기보다길을탐색하여방향의윤곽을제시하려는것이라고할수있다.이를계기로국내외동료학자들이관심을가지고커다란잠재적인의미를지닌이연구에동참하기를기대하고있다.이런연구방향에따라각자지혜와노력을기울이다보면구체적인연구성과도낼수있고연구방법도점차완정하게될것임을강조한다.본연구계획이완료되었다하더라도그것은관련연구가끝났음을뜻하지않으며,오히려학자들에게광활한연구영역을제시하는의미가있다.즉,이총서를위해뜻을같이하는동료학자들이힘써추구하는또다른목표는사유내용을풍부하게하고사유능력을제고시키는데있다.
이책에서다루고있는시기는대략1820년대부터1940년대이다.오늘날일반적으로알려져있는‘광동문화’에대한서술방식이나틀이1930,40년대전후에확립되었다면,그형성과정은대략1820,30년대에시작되었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여기에서다루고있는내용을요약하면대략다음과같다.
먼저제1장‘프롤로그:문화를전시하다’에서는1940년2월에홍콩대학펑핑산(馮平山)도서관에서열린‘광동문물전시회’에서부터논의를시작하고있다.오늘날우리가알고있는‘광동문화’의기본적인내용은대략20세기전반기에형성되었는데,이전시회는그것을구체적으로보여주고있기때문이다.저자는이전시회에서표현하고있는사실과관념을언급하는것을시작으로광동문화관념이구체적인역사과정에서어떻게형성되어왔는지를추적하고있다.이책에서는근대광동문화관념의형성과정을서술하면서문헌기록에나타난서술내용과함께관련된역사인물간의사승(師承)/지연(地緣)등의인간관계를중요하게다루고있다.아울러지역문화와역사를기술하고정의하는지식인의지역적정체성과국가문화,국가인식간의긴장과변증법적관계에주의를기울이고있다.
제2~4장에서는주로청대도광(道光,1821~1850)연간에서부터청말민국초까지를다루고있다.제2장‘영남지역의중국화과정’에서는먼저고대문헌기록을바탕으로‘광동인’의범위와광동문화서술의역사를추적하고있다.문화진화론과문화전파론은역대지방역사서술에서중요한해석논리였다.중원지역에서이주한사람들의영향으로광동은시대를거듭할수록점진적으로문명화되었다는것이다.19세기이전광동문화와역사서술의주도권은광부인(廣府人)이장악하고있었다.그러다가객가인(客家人)의정치·경제적인영향력이커지게되면서,그들은중원기원설(中原起源說)을바탕으로정통한족으로서의입지를확고히하였고,광동인과광동문화에대한정의에도영향을미쳤다.청말과거제도가폐지되고학당(學堂)이설치되었으며,헌정(憲政)이실시되고의회제도가수립되었다.중앙정부에서는지방지대신에향토지와향토교과서의편찬을장려하였다.지식인들은이러한지방저작들을통해서현대적인의미의국가관과향토를연결시키고자시도하였다.그들은또한자신이동일시하는지역문화와족군(族群),국가의식간의관계를연계시키고자하였고,광동인과광동문화,나아가국가관을새롭게정의하였다.
제3장‘광동어로창작하기’에서는국가관념이방언의발전과지위에어떤영향을미쳤는지고찰하고있다.전통시기중국정부는방대한지역을효율적으로통치하고지식인들의국가에대한동질감을강화하고자하였다.문언과‘관화(官話)’는그런역할을하였다.민국시기에이르러그것은백화와국어로대체되었다.17~19세기유럽에서는민족국가의출현과함께국어의보급이본격화되었고,중국은1920년대에적극적으로국어보급운동을추진하였다.한편방언의상황을살펴보면광동의지식인들은광동어가중원의고음(古音)에속한다고주장하면서국가문화및국가전통과의연관성을강조하였다.청말부터민국시기까지광동어를포함한방언은유신혁명의상징으로혁명가들도방언을빌어국가관념을표현하였다.또한19세기중엽이후광동인들이상해,홍콩,동남아,북미로이주하여광동어문학시장이확대되면서많은광동어문학작품이출현하였다.그렇지만그내용은여전히오락,선교,부녀자와아동교육의범위를벗어나지못하였다.방언의전복성은새로운국가관념을확립하는데어느정도도움을주었지만,결국국가관념은방언의발전을억압하여종속적인위치에머물도록하였다.
제4장‘영남학술의원류를찾아서’에서는학해당(學海堂)을중심으로사회정치적상황과국가관념의변화가광동의학술사에어떤영향을끼쳤는지를다루고있다.1820년양광총독(兩廣總督)완원(阮元,1764~1849)이광주(廣州)에학해당을설치한것은광동의학술사에있어서중요한전환점이었다.도광(1821~1850)이후학해당은광동의학술문화계의중심이었을뿐만아니라정계(政界)에서도큰영향력을행사하였다.청말경학을중심내용으로하는과거제도와관료체계가와해되고,민족주의가보급되어반만(反滿)정서가확산되면서,확고하던학해당의위치도위협을받게되었다.청정부의실각과함께관방적색채를띠고있던학해당은보수의상징이되었다.동치(同治,1856~1874)연간진례(陳澧,1810~1882)와명성을나란히하던주차기(朱次琦,1807~1881)는학해당학장에취임하지않으려했다는과거의행적덕분에반만인사들에게광동학술계의고결한선비로인식되었다.신해혁명후학해당의불씨는식민지홍콩에서다시타오르게되는데,그중심에는‘만청유로(遺老)’들이있었다.정치무대에서밀려난만청유로들은전통문화를복원하는것으로구시대의유물을부활시키고자하였다.1903년학해당은폐쇄되었지만,학해당학장에의해서편찬된광동학술사와제자/후손들이편찬한문집총서와열전(列傳)등으로인해학해당의영향력은이후에도상당기간동안지속되었다.
제5장과제6장에서는주로1920~1940년대를다루고있다.제5장‘민속에서민족으로’에서는민속학운동에내재되어있는지역/민중에대한관심과국가의식간의관계에대하여다루고있다.‘5·4’운동의세례를받은새로운시대의지식인들은중국에대한개혁을자신의임무로생각하였고,유가예교와봉건미신을중국의진보를가로막는걸림돌로간주하였다.문언은백화로대체되었고,서구의민주주의와과학은이시기지식인들의중요한가치기준이되었다.이들은‘민중’이란개념을만들어내고‘군중속으로들어가’향촌생활을통해영감을얻고백화문창작을풍부히하고자하였다.1920년대그런관심이대학연구의범주속으로들어오게되는데,그일부가‘민속학’으로발전하였다.북경에서시작된민속연구는민간문학을수집하는것에서점차민속조사로확대되었다.광동에서의민속학연구는1927~1933년구제강(顧?剛,1893~1980),룽자오쭈(容肇祖,1897~1994),중징원(鍾敬文,1903~2002)등에꽃을피우게되었다.이시기민속학에관심을가지고있던지식인들의궁극적인관심은농촌의민중문화가아니라새로운국가의식의수립이었다.그들은스스로‘과학’과‘진보’의이미지를자처하며,민간풍속과문학의‘봉건미신’적인요소에대해오히려혐오감을드러냈다.여기에서저자는특히객가학(客家學)을창시한뤄상린(羅香林,1906~1978)이새로운정치적세력의비호속에서객가인의문화적정체성을어떻게강화시켜나가고있는지를치밀하게논증하고있다.
제6장‘구시대사람이편찬한새시대의지방지’에서는민국시기에편찬된<고요현지(高要縣志)>를대상으로새롭게형성된국가의식과지방문화관념이지방지편찬과내용에어떻게반영되어있는지를분석하고있다.중국은역대로지방지를편찬하는전통이있었고,청대부터는지방관의주도하에지역에서영향력있는문인들을모아집단적으로기술하였다.지방지는지방문화관념과국가의식이반영되어있을뿐아니라,각종사회·정치세력간의경쟁과대화의결과물이라고할수있다.민국이후에도국민당정부는지방지편찬관이나문헌위원회를두어지방지편찬을적극장려하였다.민국시기에반포된지방지편찬조례는새로운국가체제와정치적이데올로기를지방지체계와내용에어떻게반영해야되는지규정하고있다.1948년에편찬된<고요현지>는내용이상세하고체제가완정한민국시기전형적인지방지이다.이지방지편찬자들은모두청조때과거에합격한사람이면서,민국시기에새롭게관료사회에진출한사람들이었다.이들은새로운지방지에‘현대’,‘민족’,‘국민’의식을부여하고자시도하였다.그들은사람들의풍속과습관이미신적이고낙후되었다고비판하고있는데,그이면에는‘미신적이고낙후된’풍속이바로국민의약점이자,국가의진보를가로막는원인이라는관점이내포되어있다.또한그들은모어(母語)와일상어가모두광동어임에도월곡(?曲)과월극(?劇)을폄하하고‘국악(國樂)’을제창하였다.지방의지식인들은지방의풍속을개혁하는과정에서자신들이새로운중국문화를건설하는데참여하고있다고생각하였다.
제7장‘에필로그:문화전시의배후’는결론부분이다.여기에서저자는중국의근대지방문화관의형성과관련된지방/국가/문인/문화등몇가지개념을새롭게정의하고있다.또한이후중국의지역문화연구를진행할때주의해야될점들을언급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