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저자는 초대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활동하고 있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조식 선생을 모신 덕천서원까지 차로 2분이 안 걸린다. 덕천서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곳을 지날 때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고 뭔가 성스럽고 대단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은 저자의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저자의 정체성을 들라고 하면 당당하게 ‘나는 남명파의 후예다. ’라고 말할 정도로 남명의 위대한 모습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남명의 소년기에 드러난 타고난 자질, 청년기에 내린 만백성을 위해 살겠다는 결단, 수십 년에 걸친 초인적인 노력, 마침내 도달한 지적, 인격적, 정신적 경지, 모여드는 제자들과 스승을 받들어 모시는 태도, 제자들과의 대화, 남명이 남긴 어록, 당대의 평가 등등을 통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고 믿믿을 만큼 남명을 늘 염두에 두면서 살았다.
남명에 관한 책과 논문은 많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남명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2011년 12월부터 여러 가지 일들이 터지기 시작, 곡절을 거쳐 2016년 한국선비문화연구원으로 온 저자는 남명을 염두에 두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남명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원장직을 맡았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남명은 이때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면서 될 수 있으면 남명이 했을 말과 행동을 하려고 했고, 남명파의 후예로서 또 가장 가까운 제자의 후손으로서 그 먼발치나마 따르려 애쓰며 살려고 하는 저자의 의지를 보여주고, 남명에 관한 일화와 생애를 되짚어 보고 있다.
남명 조식은 또한 우리나라의 유학자들 가운데서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그것은 그가 사직소를 통해 당대의 정치에 대해 과감한 비판을 행한 데에서 잘 드러나 있지만, 또한 역대의 인물에 대해 그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에 따라 비판을 감행한 데서도 두드러진다. 조식의 역대 인물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출처(出處), 벼슬에 나아갈 때와 나아가지 말아야 할 시기에 대한 명철한 판단 여부가 그 기준을 이루었다. 그는 제자들에 대해서도 “출처는 군자의 큰 절개”라 하여 이를 매우 강조하였다. 그 자신은 한평생 열 차례 이상 조정으로부터 벼슬을 받았지만, 한 번도 취임한 적이 없었다.
남명의 소년기에 드러난 타고난 자질, 청년기에 내린 만백성을 위해 살겠다는 결단, 수십 년에 걸친 초인적인 노력, 마침내 도달한 지적, 인격적, 정신적 경지, 모여드는 제자들과 스승을 받들어 모시는 태도, 제자들과의 대화, 남명이 남긴 어록, 당대의 평가 등등을 통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고 믿믿을 만큼 남명을 늘 염두에 두면서 살았다.
남명에 관한 책과 논문은 많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남명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2011년 12월부터 여러 가지 일들이 터지기 시작, 곡절을 거쳐 2016년 한국선비문화연구원으로 온 저자는 남명을 염두에 두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남명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원장직을 맡았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남명은 이때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면서 될 수 있으면 남명이 했을 말과 행동을 하려고 했고, 남명파의 후예로서 또 가장 가까운 제자의 후손으로서 그 먼발치나마 따르려 애쓰며 살려고 하는 저자의 의지를 보여주고, 남명에 관한 일화와 생애를 되짚어 보고 있다.
남명 조식은 또한 우리나라의 유학자들 가운데서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그것은 그가 사직소를 통해 당대의 정치에 대해 과감한 비판을 행한 데에서 잘 드러나 있지만, 또한 역대의 인물에 대해 그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에 따라 비판을 감행한 데서도 두드러진다. 조식의 역대 인물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출처(出處), 벼슬에 나아갈 때와 나아가지 말아야 할 시기에 대한 명철한 판단 여부가 그 기준을 이루었다. 그는 제자들에 대해서도 “출처는 군자의 큰 절개”라 하여 이를 매우 강조하였다. 그 자신은 한평생 열 차례 이상 조정으로부터 벼슬을 받았지만, 한 번도 취임한 적이 없었다.
남명, 그 먼발치를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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