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의진 평전: 빨간 베레모 (문경 석달마을 민간인 학살 사건 진상 규명 70년의 기록)

채의진 평전: 빨간 베레모 (문경 석달마을 민간인 학살 사건 진상 규명 70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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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운
한국판 체 게바라
‘부수적 피해’. 군이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 비무장 민간인이 당하는 재산과 인명의 손실을 뜻하는 군사용어이다. 군은 용서받지 못할 만행을 저지르고도 책임을 면하려고 이처럼 ‘사무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는 비난을 자주 받는다. 동족 간의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이야말로 부수적 피해를 뼈저리게 경험한 나라 중 하나이다. 광복 직후 이념 갈등이 극에 달해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민간인들은 지옥을 보고 있었다.

1949년 12월24일 경북 지역의 공비를 토벌하던 국군 부대가 문경 석달마을 24가구 주민 127명 중 86명을 마치 사냥하듯 학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인솔자가 상황을 오판한 데 이어 정찰만 하고 오라는 상부의 명령을 어기면서 빚어진 비극이었다. 이 날 확인 사살을 면하고, 형님의 시신 밑에 깔렸던 채의진 소년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졸지에 가족 9명을 잃고 고아가 되다시피 한 채의진의 앞날은 이 날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생을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전사로서의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역대 정권은 다른 숱한 국가 폭력 사건과 함께 이 사건 역시 덮어 버렸다. 유족의 끈질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를 무시하고 공비가 저지른 일로 조작했다. 중고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당국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진상규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채의진은 퇴직 후에 본격적으로 이 사건을 널리 알리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1980년대 말 영문으로 석달마을 학살 사건 보고서를 작성해 전 세계에 알렸다. 그는 학살 사건이 해결되는 날까지 머리와 수염을 자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이후 허리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 덥수룩한 흰 수염에 붉은 베레모를 쓴 그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현장이라면 어느 곳에나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우는 한국판 체 게바라의 탄생이었다.

그는 투쟁하는 과정에서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숱한 민간인 학살이 결국 개별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모든 시민이 맞서 싸우고 극복해야 할, 국가라는 거대 조직이 빠지기 쉬운 거짓과 위선에 대항해 싸우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가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이해했다. 그는 전국 유족회를 묶어 범국민위원회를 만드는 산파역을 자임했고, 과거사 정리 기본법 통과를 위해 전력을 다했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믿기 힘들 정도로 그는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않고 일에 매달렸다. 사람들이 건강을 염려할 때마다 그는 “나는 쓰러지고 싶어도 못 쓰러진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저승 근처에는 얼씬하지도 말라고 하신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강인하던 그도 2016년 여름 결국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 책 <빨간 베레모>는 어린 시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그가 평생을 인권을 위해 싸운 과정을 그려냈다. 스물여섯 새내기 기자 시절 그를 만나 27년간 기자와 취재원이라기보다는 동지로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 <시사IN> 정희상 탐사전문기자가 글을 썼다. 두 사람은 2016년 진실의힘인권재단이 수여하는 제6회 인권상을 공동수상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이 땅의 억울한 죽음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정희상 기자가 지칠 줄 몰랐던 인권 투사이자 오래된 친구를 위해 쏘아 올린 엄숙한 예포이다. 국가가 인권을 얼마나 유린해왔는지 그 과정에서 힘없는 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국가란 괴물에 맞서 어떻게 싸워왔는지 생생하게 기록한 대한민국 인권투쟁사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 앞에 세상은 조용했지만 오늘 대한민국의 삶이 어제의 그것보다 조금은 나아졌다면, 그는 반드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우리의 안녕은 그와 같이 이름 없는 이들이 싸워준 덕분에 누리게 된 ‘부수적 이득’이다.
저자

정희상

저자정희상
1963년전남보성에서태어났다.《말》기자,《시사저널》취재부장을거쳐현재《시사IN》탐사보도전문선임기자로활동하고있다.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사건,김훈중위의문사진상,다단계업체제이유사건과조희팔사건,친일파후손재산상속등을특종보도했다.한국기자협회기자상·특별상,삼성언론상등을받았다.저서로는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을탐사한《이대로는눈을감을수없소》,현대사의그늘을집중조명한《대한민국의함정》,검찰의구조적비리관행을고발한《검사와스폰서》등이있다.

목차

머리말채의진의인권투쟁기록
내가본채의진평생을건싸움_김동춘
       인생의만남,채의진선생님_박갑주
프롤로그진혼곡

제1부1949년에멈춘시계
1장시체아래누운아이
2장공비나막으라고?
3장영원한우정
4장신성모나오시오!

제2부꺼지지않은불씨
1장서울을울린혁명의목소리
2장수배령이내려지다
3장스승의길
4장사라지지않은앙금
5장고통과외로움을깎다
6장운명적만남
7장불씨를지피다

제3부마음과마음이만날때
1장의문의편지
2장바다건너찾은증거
3장제주도에번진불씨
4장이심전심
5장돌아오는인연
6장내가죽어야말이지
7장길잃은분노
8장예술로승화한아픔

제4부진실과화해를향한발걸음
1장특별법통과요!
2장누더기법안과눈물의삭발식
3장하늘을울린마음
4장드러난진실
5장아직할일이남아있다

제5부국가라는적
1장마지막전투
2장국가는들으라
3장뻔뻔함도정도가있지
4장기각,기각,기각
5장내생애가장기쁜날

제6부잠들지못한진실
1장나의소원
2장상처만남은길
3장암울한시대의증언자
4장오호애재라

에필로그마지막울음
평전을마치며끝나지않은전투
채의진연대표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내가본채의진선생님

평생을건싸움

학살피해자가자기문제가아닌일반적인이야기를하는데는한계가있다.채의진선생님은이한계에대해잘알고있었다.그렇기에늘자신을사회운동가가아닌한사람의유족일뿐이라고말했다.사실끝내한사람의유족입장을벗어나지는못했지만,그는문경석달마을민간인학살사건의진실을밝히고,희생자들의명예를회복시킴으로써자기개인과가족의해원만을추구하는일반적인유족의한계를뛰어넘은사람이다.
김동춘(성공회대교수·진실화해위전사무처장)

인생의위대한만남

문경학살이후부터평생을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해노력해오신채의진선생님의활동이없었더라면진실규명에더많은시간이걸렸을것이다.만일채선생님이돌아가시지않고국가의부당이득반환청구에대해끝까지다투었다면그결과가현재와같지않을수도있었을것이다.그런의미에서채의진선생님은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사건의유족운동에서도하나의역사이며,그의지와활동에서특별한분이셨다.솔직히말씀드리면,과거사기본법이통과된후많은유족회가생겨나고활동하는유족들이많아졌지만,나는아직까지채의진선생님과같은분을만나지못했다.
박갑주변호사(문경석달마을민간인학살손해배상청구변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