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최초의 다산학 개론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창해 최익한은 10년간이나 옥고를 치르고 1936년 초 출옥 후에는 곧 운동을 중단한 채 서평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집필하면서 고전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 최익한은 일제강점기는 물론 월북 후 분단 시대에도 다산 연구를 지속한 유일한 고전문학자였다. [여유당전서를 독함]은 1938년 12월 9일부터 1939년 6월 4일까지 [동아일보]에 64회 연재된 고전 비평이다. 시인이요 고전학자인 창해 최익한이 시문을 왕래하는 호방한 문체로 기존 연구와 자기 생각을 종합 정리하여 최초로 다산학 개론을 완성한 데 그 출발적 의의가 있다. [여유당전서를 독함]은 ‘최초의 다산학 개론서’이다. 그 특징은 ‘상업성·개량성·종합성’에 있다. ‘실학’은 유명무실한 담론 상품에 불과하다. 개량적 사회주의자 최익한은 봉건적 관료학자 다산을 개량적 공상가로 구출하기 위해 실학이란 탈을 씌웠다. 이러한 기획은 당시 일본 유학파 안재홍·백남운 등의 언설 방식과도 비스름하다. 한마디로 [여유당전서] 간행의 상업성에 발맞춘 일시적 밥벌이 담론이었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조선학운동’과 ‘조선학담론’도 구분치 못하고 있다. 참고로 조선학운동은 제도권에서 날조한 말이며, 최익한은 ‘조선학’이니 ‘운동’이니 하는 용어조차 전혀 사용한 적이 없다. 극우 제도권 학자들이 ‘조선학운동’이란 말을 지어내서 [여유당전서를 독함]에 갖다붙이며 무조건 다산을 찬미하는 것은, 최익한을 모독하고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는 무도한 짓이다. 이번에 펴내는 교주본은 당시 신문에 실린 원문은 물론 최익한이 참고한 다른 여러 인용 원문들까지 모두 찾아서 수록하고 자세한 해설도 덧붙였다. 또한 [실학파와 정다산](1955), [정다산선집](1957)과 연계해 볼 수 있도록 중요한 대목마다 면수를 적어 놓았다. 끝으로 편자는 〈창해 최익한 연보〉를 75면이나 작성함으로써 그의 전기적 사실에 대한 구체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였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조선학운동’과 ‘조선학담론’도 구분치 못하고 있다. 참고로 조선학운동은 제도권에서 날조한 말이며, 최익한은 ‘조선학’이니 ‘운동’이니 하는 용어조차 전혀 사용한 적이 없다. 극우 제도권 학자들이 ‘조선학운동’이란 말을 지어내서 [여유당전서를 독함]에 갖다붙이며 무조건 다산을 찬미하는 것은, 최익한을 모독하고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는 무도한 짓이다. 이번에 펴내는 교주본은 당시 신문에 실린 원문은 물론 최익한이 참고한 다른 여러 인용 원문들까지 모두 찾아서 수록하고 자세한 해설도 덧붙였다. 또한 [실학파와 정다산](1955), [정다산선집](1957)과 연계해 볼 수 있도록 중요한 대목마다 면수를 적어 놓았다. 끝으로 편자는 〈창해 최익한 연보〉를 75면이나 작성함으로써 그의 전기적 사실에 대한 구체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였다.
여유당전서를 독함 (양장본 Hardcover)
$5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