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박부성</b>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수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수료 후 현재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는 수학을 좋아하는 수학도기도 하지만, 또 수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수학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내에 많은 교양 수학 책이 나왔으나, 그는 이런 책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발하고 신기한 수학 이야기들 덕분에 자신과 전공이 다른 팀의 단골 회식 손님이 되기도 하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수학 퍼즐 전문가로 《재미있는 영재들의 수학 퍼즐》, 《재미있는 영재들의 수학 퍼즐 2》를 펴내어 퍼즐이 단순한 심심풀이 차원을 넘어 심오한 수학적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제1장 괴짜 수학자 에어디시 정수론 문제라고 했소?/ 스스로 음수를 인식한 아이/ 새로운 방법으로 증명한 베르트랑의 공준/ 신의 책에서 가져온 증명/ 공동 연구와 에어디시 수/ 역사적인 경기와 루스-아론 수/ 램지 이론/ 현상금/ 콘웨이의 1만 달러짜리 수열/ 에어디시의 은어/ 바르샤바에서 떠나다 *암산의 바보-쿠머
제2장 인도의 신비 라마누잔 아름다움이야말로 등식이 참이라는 증거/ 마드라스의 천재/ 신이 보여준 정리/ 1729/ 아름다운 정리/ 라마누잔의 노트/ 라마누잔의 죽음 *암산의 천재 1-가우스
제3장 수학 지상주의자 하디 리만 가설을 증명하다/ 수학 순결주의자/ 하디-바인베르크의 법칙/ 거울 혐오증/ 소련은 하디를 싫어해 *암산의 천재 2-콜번
◐ 수학의 유희에 빠진 수학의 명인들 《천재들의 수학 노트》는 수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수학자들 중에서도 독특한 일생을 산 에어디시, 라마누잔, 하디, 카르다노, 갈루아, 오일러, 힐베르트, 괴델, 튜링 등 아홉 명의 수학자와 그들과 관련된 수학 부분에 대해 살펴본 책이다.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한 피타고라스의 후예들은 수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그 이치를 밝히고자 노력했다. 때로는 화두에 몰두하는 선승의 모습으로, 때로는 창조 작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예술가의 모습으로, 때로는 세상의 근본과 원리를 찾는 철학자의 모습으로 선택받은 자 혹은 선택한 자로서 형벌을 감수하듯 자신의 삶을 걸고 수의 세계에 도전한 사람들의 일생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풍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그들과 관련된 일화와 수학 연구 중심으로 가능한 한 수식을 배제하면서 쉽고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각 장의 끄트머리에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암산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수학자들과 그들의 암산 방법, 그리고 형편없이 계산을 못 한 수학자의 얘기가 실려 있다. 이 책을 통해 천재들의 운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수학자들이 전 생을 걸고 매달릴 만큼 매혹적인 수학의 세계를 발견하고, 수학자와 수학에 대해 좀더 친밀감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 수학으로 세상의 진리를 증명한 아홉 명의 천재들 제1장 괴짜 수학자 에어디시 “수학자란 커피를 정리로 바꾸는 장치다.” -에어디시 괴짜 중 괴짜로 유명한 수학자 폴 에어디시(1913-1996)은 네 살 때 처음 음수(陰數)를 인식한 천재로서 고등학생 시절 그 유명한 ‘베르트랑의 공준’을 초등적인 방법으로 증명한 정수론의 대가다. 유태인으로 태어나 정치적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전하였으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모든 일상적인 생활을 동료 수학자들에게 신세지면서도 전 세계의 대학을 전전하며 연구에 몰두했던 그가 남긴 공동 연구 논문은 무려 1500편에 달한다. 이처럼 에어디시가 수학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논문을 발표한 것에서 수학자들은 에어디시와 다른 학자들과의 그물망 같은 연결관계를 나타내는 ‘에어디시 수’를 만들기도 했다. 에어디시 자신을 0이라고 할 때 그와 공동 논문을 쓴 수학자는 에어디시 수 1이 되고, 에어디시 수 1인 사람이 다른 수학자와 연구를 하게 되면 에어디시 수 2가 되는 식이다. 이것을 영화계에서 응용한 ‘베이컨 수’도 유명하다. 에어디시는 많은 문제를 멋진 방법으로 풀어 수학계를 풍성하게 하였으나 현상금 문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재주를 지니기도 하였다. 그 많은 현상금을 어떻게 지불할 것인지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에어디시의 문제를 풀었다는 영광 때문에 수학자들은 웬만해선 그의 서명이 담긴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대신 두고두고 보관했다고 하니.
제2장 인도의 신비 라마누잔 “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식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라마누잔 33년의 짧은 생애 동안 독자적인 수학 세계를 보여주었던 스리니바사 라마누잔(1887-1920)은 영국으로 건너가 연분수와 정수론 분야에 큰 공을 세운 수학자다. 영국의 대수학자 하디가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바로 라마누잔을 발견한 것”이라고 대답했을 만큼 라마누잔은 걸출한 수학자였다. 지독한 무신론자인 하디에게 발탁된 라마누잔은 ‘나마기리’ 여신이 꿈속에서 수식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만큼 신비로운 수학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독창적인 연구 결과가 담긴 ‘라마누잔의 노트’에 담긴 이론들은 아직도 증명해 내기는커녕 해독조차 할 수 없는 것도 많다.
제3장 수학지상주의자 하디 “나는 어떤 ‘유용한’ 것도 결코 하지 않았다. 나의 어떤 발견도 세상의 쾌적함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최소한의 차이도 만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디 수학이란 실용성과는 상관없이 음악이나 미술과 같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 가치를 갖는 학문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그 극단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하디였다. 그는 “진정한 수학은 전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정수론이나 상대성 이론에서 전쟁 목적에 이용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런 발견을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한 수학 순결주의자였다. 준수한 외모의 그는 거울 혐오증을 지닌 반나르시시즘의 장본인이었으며, 일광욕 광인데다가 크리켓광이었으며 광적인 무신론자기도 했다. 하디는 천재적인 수학적 능력뿐만 아니라 타고난 재치와 문장력을 갖춘 예술가였다.
미치광이 천재 카르다노 “카르다노에게 그런 과오가 없었다면 그에게 필적할 자 누가 있겠는가.” -라이프니츠 《아르스 마그나》라는 책을 출간하여 3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공표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는 지롤라모 카르다노(1501-1576)는 수학사에서 가장 기묘한 인물로 손꼽힌다. 본업은 의사였으며 지독한 도박사에 점성술사의 이력까지 지닌 사람이다. 카르다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탈리아의 수학자 타르탈리아와 관련된 표절 문제다. 3차방정식의 해법을 풀었던 타르탈리아에게 절대 해법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서 해법을 얻었으나 카르다노는 또 다른 수학자 델 페로의 노트에 담긴 해법을 참고하여 3차방정식은 물론 4차방정식의 해법까지도 공개한 것이다. 결국 타르탈리아의 수학 인생은 몰락했으며 배신감 속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러나 카르다노의 말년 또한 행복하진 못했다. 아내를 잃고 사랑하는 아들이 처형을 당하는 상황을 견뎌야 했다. 그는 점령술사로서 자신의 죽는 날을 예언하기도 했다.
불꽃같은 영혼 갈루아 “운명은 이 나라가 나를 기억하게 할 만한 시간을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갈루아 현대 물리학과 양자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군群이론을 처음으로 고안하고, 그것을 방정식으로 해법에 적용한 ‘갈루아 이론’으로 유명한 에바리스트 갈루아(1811-1832)는 그야말로 비운 속에 요절한 천재의 전형이다. 그는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시험관들 때문에 대학에서 두 번이나 떨어지고, 군주정에 대항하여 공화당원으로 활동하다가 두 차례나 감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스테파니 D라는 여인을 사랑하여 결투를 하던 중 칼에 맞아 21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수학자였다. 갈루아의 전설을 가장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일화는 결투 전날 밤 그가 남긴 편지 때문이다. 친구에게 보낸 그 편지에 자신이 발표했던 논문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내용을 전하면서 “이 증명에서는 완성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으나, 나는 시간이 없다”라는 문장을 덧붙여 그 절박함을 전했다.
해석학의 화신 오일러 “오일러는 마치 사람이 호흡하는 것처럼,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별다른 노력 없이 계산을 하였다.” -프랑수아 아라고 18세기 최고의 수학자라 할 수 있는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는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발명한 미적분학을 고도로 발전시킨 사람이며 역학, 대수학, 기하학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가 만들어낸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리와 이론으로 인해 수학자들 사이에서 “절반은 오일러의 이름이 붙었어야 할 것이다”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였다. 평생 500편 이상의 저서와 논문을 출판하였던 그는 지나친 연구열 때문에 두 눈의 시력을 상실한 뒤에도 “이제야 (양쪽 시력이 같아져서) 좀 덜 혼란스럽겠군” 하는 농담과 함께 더 왕성한 연구를 지속했다. 100개의 소수와 그것의 제곱부터 여섯제곱수까지 모두 외워 계산했으며 로그표까지 몽땅 외울 만큼 엄청난 기억력과 암산력을 보유한 암산의 천재기도 했다.
괴팅겐의 거장 힐베르트 “우리는 알아야 하며, 알게 될 것이다.” -힐베르트 독일 괴팅겐 대학교를 명실상부한 세계 수학의 메카로 이끌었던 다비트 힐베르트(1862-1943)는 대수적 정수론과 기하학 기초론 또는 적분 방정식론 등에 크게 기여한 만능 수학자며, 아인슈타인과 교류하는 동시에 독립적으로 상대성 이론을 유도해 낸 위대한 인물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허술한 면이 많아 파티를 열기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잠자리에 들 만큼 얼빠진 행동을 연출하기도 했다. 힐베르트의 무한수에 관한 비구성적인 증명에 대해 “이것은 수학이 아니라 신학이다”라고 말한 수학자는 다시 “신학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음을 알았다”고 견해를 수정했다. 힐베르트는 대수학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에미 뇌터가 성차별 때문에 교수에 임용되지 못하자 “여기는 대학이지 공중목욕탕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분개하였던 의식 있는 학자였다.
수학의 마왕 괴델 “괴델은 인간 이성에서 한계라는 것의 역할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오펜하이머 철학적인 관점에서 수리논리학을 연구하여 수학뿐 아니라 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친 쿠르트 괴델(1906-1978)은 에디슨처럼 어렸을 때부터 질문이 많아 ‘왜요 도령’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수학자다. 그의 3대 업적으로 꼽을 수 있는 ‘완전성 정리’, ‘불완전성 정리’, ‘연속체 가설의 무모순성’은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별다른 의심 없이 사용하는 참/거짓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정의한, 수학적 진리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가장 뛰어난 논리학자”라는 찬사까지 받은 괴델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하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쳤으나 신경쇠약과 강박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게 된다. 그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심사를 받는 자리에서 “미국이 독재 국가가 되는 합법적인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강박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제9장 컴퓨터의 아버지 튜링 “우리는 눈앞 가까운 곳만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거기에는 이루어져야 할
천재들의 수학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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