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김 자유를 노래하다 (러시아 음유시인 시선집 | CD2장포함)

율리김 자유를 노래하다 (러시아 음유시인 시선집 | CD2장포함)

$18.02
저자

율리김


<b>저자율리김</b>

스딸린의철의장막속에서1938년율리김이두살때아버지김철산은‘민중의적’이라는죄의누명을쓰고총살당하였다.러시아인이었던그의어머니니나발렌찌노브나역시한국인의아내라는이유만으로8년의유형을살아야만했다.율리김은대학시절아버지의죽음과그비밀을알게되었고,스딸린체제에항거하기위해인권운동을시작하게된다.이렇게시작된그의시와노래,인권운동은그의삶의전환점이되었고,동시에그를옭아매는족쇄가되었다.이때문에선생님의직업도버려야만했고,‘김’이라는자신의성도버리고‘미하일로프’라는이름으로살아야만했지만,체제가그의목소리를없앨수는없었다.그의금지된시는노래가되어암울한소비에트시대에희망과자유를심어주었다.밝고유쾌한그의노래는차가운러시아인들의마음을따뜻하게녹여주었다.한국에는2003년KBS<한민족리포트>를통해알려졌고,2005년10월방한하여내한공연을갖는다.

1936년12월23일모스크바에서출생.
1937-38년아버지김철산은형법58조항에따라처형,어머니니나발렌찌노브나도같은죄목으로5년강제수용소,3년유형에처해졌다가1954년복권됨.
1954-59년모스크바국립사범대역사인문학부에입학,대학시절이미시와노래로인권운동을시작.
1959-61년졸업후깜챠뜨까야간학교의교사로발령되어근무함.
1962-68년모스크바학교에서교사로서근무함.
1969-반체제운동으로인해교사활동을하지못하게되었고모든예술활동을저지당함.이름을율리미하일로프로바꾸어활동.
1963년이후영화작업에참여.그의노래가50여편의영화와40여편의연극에삽입됨.
1974년이후극작가와시나리오작가로활동하기시작하여,자신이직접쓴20여편의연극이현재러시아전역에서상연중.2편의영화<비온뒤목요일에>,<하낫둘?슬픔은불행이아니다>가1985,87년에유좁스끼감독에의해영화화.
1985년자신의이름율리김으로활동을재개.
1986년이후해외에서활동.
1998년<황금오스따프>상수상,1999년<불랏아꾸좌바>상수상
1987년영화인협회회

목차

출판의말
역자의말
서곡
구름한점없는젊은날을노래하다
1812년의노래들
깜챠뜨까의노래
유행가를부르다
여러색깔의노래들
친구-바르드들에게
역자의주석
20세기러시아노래의발달과러시아바르드-최선

출판사 서평

한국에서러시아의노래는이제낯설지않다.알라뿌가쵸바의“백만송이장미”가번안되어불려지고,“백학”이<모래시계>라는드라마에등장한이후많은러시아노래들은낯선이방인의노래라기보다는우리의가슴을파고드는유행가의한소절만큼정감어리다.비록언어는다를지라도마음을전할수있는것이바로노래가아닌가.그네들도우리의노래를들으며같은느낌을갖지는않을까.
이러한생각들이러시아바르드음악혹은음유시(авторскиепесни,бардовскийпесни)세계에접근하도록하였다.자신의시에곡을붙여통기타로노래하던이소비에트의신생장르는시대를노래로써저항하던숱한예술가들의유일한숨통이었다.이것은또얼마나우리의70년대가수들과닮아있는가.여기에<러시아의시와노래>라는시리즈의기획의도가있다.율리김을시작으로오꾸좌바,?소쯔끼등의시와노래를통해러시아인의숨결을좀더가까이에서느끼고,그들과더불어시대의아픔을공유할수있기를바라는마음이다.
이시리즈의첫번째시인이율리김인것은매우의미심장하고도기쁜일이다.그는러시아음유시장르의제1세대로서유일하게생존해있는,실로러시아시와음악의산증인이기때문이다.오꾸좌바,?소쯔끼,갈리치등과더불어러시아음유시장르는율리김과과거와현재를같이하고있는것이다.이러한기념비적인인물의시와노래를통해러시아의정신을알리고자하는것이본기획출판의첫번째이유이다.
또한율리김이빅또르최와마찬가지로바로한국인이는점은매우의미심장하다.불행한아버지의죽음으로인해한국인이라는의식조차모르고살아왔지만,그의내면에는한국인의뜨거운피가흐르고있는것이다.그가말년에라도조국의땅을밟아보고자하는것은당연한이치이며,이것이우리가율리김의시를번역하고초청하여그의시와노래를이땅에알려야하는두번째이유가된다.
그의번역시집의출간과더불어우리는그를초청하여초청공연을갖는다.이는현러시아의유명하고도역사적시인의초청공연이라는점에서뿐만아니라조국을그리워하는재러한인예술가의죽기전조국땅을밟아보고자하는염원을실현한다는점에서커다란의미를갖는다.
율리김은러시아에서뿐만아니라세계적으로유명한음악인이며,현재에도왕성하게활동중이다.그의노래는현재러시아초등학교교과서에실릴정도로러시아에서그를모르는이는없다.그의시와노래가아직그의모국인한국에서알려지지않은것은오히려의아한일이아닐수없다.이번기회에그의존재가그의예술과더불어한국인의가슴속에아로새겨지길바란다.


추천사

율리김은스탈린시대의억압을거부한저항의시인입니다.율리김은힘겨운삶을때론진지하게때론경쾌하게노래로풀어낸민중의시인입니다.그리고그가외롭게노래할때면언제나기타가유일한벗이되어주었습니다.러시아4대음유시인중유일하게생존해있는그는그래서러시아바르드(음유시인)의전설적존재가되었습니다.고희의나이에도불구하고기타선율에싣는그의문학적열정에경의를표합니다.(이대우,경북대교수)

고려인2세율리김은러시아바르드음악의선두주자인동시에러시아연극및영화계에도널리알려진예술인입니다.이번에그의음악이우리나라에소개되는것을진심으로기쁘게생각합니다.늦은감이있지만이제라도율리김의무대가그의아버지의나라인한국에마련되는것은,잊고있던우리정체성의한부분을되찾는다는의미가있을것입니다.율리김의이번공연을통해한국과러시아사이의공감대가더욱확장될수있길바랍니다.(이상훈,독일마르부르크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