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기마족과 왜

부여기마족과 왜

$21.40
저자

존카터코벨

<저자 약력>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1910-1996)
미국 태생의 동양미술사학자. 미국 오벌린대학을 나와 서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1941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15세기 일본 선화가 셋슈(雪舟)의 낙관이 있는 수묵화 연구’로 일본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교토 다이도쿠지(大德寺) 신주안(眞珠庵)에서 오랫동안 선(禪)미술을 연구했으며 1959년부터 1978년까지 리버사이드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한국미술사를 포함한 동양미술사를 가르쳤다.
일본문화를 연구하면서 그 근원으로 인식하게 된 한국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해 1978-1986년 한국에 머물며 연구에 몰두하여 한일고대사, 고려불화, 도자기 회화를 포함한 한국미술과 불교 등에 대한 1천여 편이 넘는 칼럼을 썼고『한국이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조선호텔 70년사』『한국문화의 뿌리』등 5권의 한국문화 관련 영문저작을 냈다. 일본문화와 미술에 관한 16권의 저작이 있으며『대덕사의 선(禪)』『일본 선정원 연구』『이큐 선사 연구』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편역자 약력>

김유경(金裕卿)
1969-1997년까지 경향신문 기자를 지냈고 현재 번역가, 작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옷과 그들』이 있고 최태영 저『인간 단군을 찾아서』『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와 존 카터 코벨 저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를 정리, 편역했다.

목차

편역자의 말 - 김유경

서론
한국의 영향과 일본의 숨겨진 역사; 부여기마족

1. 부여족과 말(馬)
일본문화의 근원 - 부여, 가야 그리고 백제
부여기마족과 고고학
부여족의 항해와 말 1; 기병과 보병의 전투력 비교
부여족의 항해와 말 2; 말을 싣고간 방법
부여족과 말
페르가나의 말과 천마

2. 바다 건너 왜로; 부여기마족의 왜 정벌
쓰루가의 한국인 자취
신공왕후와 아리나례강
신공과 ‘용감한 큰 곰’ 무내숙니
부여 바위왕자 진무왕 그리고 오진
오진과 백제의 우정
닌도쿠왕 시대; 바위공주 매사냥, 거대 고분
부여족의 바위신사, 이소노카미 신궁
부여족의 바위와 이름 - 닌도쿠왕과 바위공주
천황 가계의 한국 산신과 삼종 신기
오진부터 게이타이 이전까지 완전한 부여혈통
부여족의 권력 투쟁과 변신
일본으로 간 부여 한국인들, 5세기 왜국의 지배자
부산항

3. 학자들의 부여기마족 연구
그리피스의 진구왕후 일본정벌론;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리피스, 페놀로사가 밝히는 일본문화의 근원 한국
기다 사다기지와 에가미 나미오, 부여 기마민족설의 원조
개리 레저드와 코벨의 부여 기마민족 정벌론
북한 김석형의「삼한 삼국과 일본열도」
천관우와 백제의 칼 칠지도
한국역사의 3분의 1은 일본에 있다
일본의 첫 사서『구다라기(백제기)』
한일 간의 문화교류? 한국이 일방적으로 준 것이다
‘일본국의 시원’과 에가미 나미오 비판-최태영

4.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임진왜란의 3코스와 아시안게임 성화 봉송로
임진왜란과 왜국의 첩보활동
이순신이 포획한 히데요시의 금부채
장보고와 이순신의 활동지, 주도
해상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이순신과 거북선
임진왜란으로 조선, 분단될 뻔
충무공을 기리다
한국 원산 벚나무와 워싱턴
1607~1811년 간의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에 대한 정치적 목적과 조선에 대한 외경
천명과 혁명

5. 일본의 역사왜곡
한일 양국의 증오감
가토를 노린 한국 호랑이
한국미술사 칼럼 쓰며 일본인 이웃과 절교
한국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한국문화의 뿌리 찾기
한국이 일본에 전한 6대 영향
역사를 통해 본 일본의 역사왜곡 -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을 보고
1300년 계속되는 역사왜곡과 일본사가들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군국시대 ‘신성한 천황’의 부활
솔직할 수 없는 일본인들
영국 사학자 조지 샘슨의 일본사
일본인을 좋아하지만 신뢰하지는 않는다
유구한 역사왜곡의 나라 일본 - 나카소네 일본 총리 방한에 부쳐 / 앨런 코벨

존 카터 코벨 지음『부여기마족과 왜(倭)』원문

출판사 서평

동양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의 한글판 두 번째 저서. 저자는 1978-86년까지 말년을 한국에 머물며 동서양 예술사를 넘나드는 폭넓은 시야로 한국문화를 탐색하는 1천4백여 편의 글을 남겼다. 저자는 특히 일본미술사를 전공해 일본문화 속에서 한국문화의 자취를 포착하는 작업에 전념한 바 있다. 이번 책은 글을읽다에서 발간하는 존 코벨의 한국문화 시리즈 1권이다.
이 책에는 부여족의 야마토 정벌과 왕권 장악, 일본에 남아있는 한국문화와 한국이 일본에 전한 영향, 임진왜란과 조선통신사, 일본의 고질적인 역사왜곡을 학문적으로 밝히는 내용을 담은 글 62편이 수록됐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일본은 전적으로 한국의 선진문화에 힘입었는데 그럼에도 왜 일본은 이를 숨기려 하는지 그 근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제3국 학자의 이같은 객관적 성찰은 한국문화의 정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4세기 부여가 멸망한 후 그 일부가 한반도로 남하해 가야에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 배에 말과 무기를 싣고 왜로 진출하게 된다. 이어 부여기마족은 369년 왜의 야마토를 정벌하고 6세기 초까지 왕권을 장악하며 일본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그 후 가야와 백제, 고구려의 잇단 멸망으로 십수만 명에 달하는 지배층과 지식인들이 일본에 유입되면서 8세기까지 일본의 문화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한국인들의 선진문화에 힘입어 발전하게 된다. 이런 사실은 8세기에 저술된 일본의 역사서『고사기』와『일본서기』에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에 남아있는 토기와 칼, 말갑옷, 말 장식, 금관, 고분벽화 같은 유물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는 숨길 수 있으나 유물은 역사를 날조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저자의 주장은 부여기마족을 연구한 미국의 그리피스, 페놀로사, 레저드와 맥이 닿아 있으며 일본의 에가미 나미오, 기다 사다기지, 한국의 최태영, 천관우, 북한의 김석형의 연구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이들 학자들의 연구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은 고대 일본이 한국인들의 힘으로 형성되어 발전된 것이라는 사실을 극력 숨기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기에서 일본의 역사왜곡 내지 날조는 1300년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712년과 720년에 나온 일본의 역사서『고사기』와『일본서기』를 편찬한 것은 백제 지식인들로 이들은 반(反)신라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망해버린 조국, 백제의 역사를 일본의 역사로 차용하고 왜곡했다. 이때부터 한일관계는 꼬이기 시작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일본인의 특성상 이런 긴 역사를 가진 역사왜곡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이순신, 조선통신사 부분에서는 세계 해전사에 비추어 단 여섯 척의 거북선으로 해상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이순신의 업적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선을 제외하고 일본과 중국이 협상함으로써 한반도가 분단될 뻔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히데요시는 명나라 정복이 불가능하다면 조선 땅을 가져보려는 계책을 꾸미는데 한강 이남을 일본이 먹고 그 이북은 중국이 원하는 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묵시적 협상을 중국과 벌인다는 것이었다. 남북이 분단된 오늘의 상황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이순신이 포획한 히데요시 금부채’는 저자 존 코벨만이 쓸 수 있는 고미술과 역사가 어우 일본의 역사왜곡 부분에서 저자는 한일 간에 존재하는 증오감은 일본이 솔직해져야 사라질 것이라며 일본이 역사왜곡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군국주의자들은 ‘신성한 천황’의 부활을 외치며 실제적인 권한이 없는 천황을 꼭두각시로 이용해 명령을 내렸다. 군국주의자들에게 고고학으로 밝혀지는 역사자료는 위협적인 것이며 따라서 천황릉의 발굴을 엄격히 금하고『일본서기』에 서기전 660년 일본 왕통이 시작됐다는 역사날조는 여전히 유지되어야 할 항목인 것이다.
러진 명쾌한 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학자를 비롯해 일반인들이 일본식 교육의 주입 아래 지나치게 겁을 먹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을 대표한다는 역사학자나 미술사가들에게는 자신의 주장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 광야에서 혼자 외치는 듯한 외로움을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