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훼손을 먹고 산다 (채령 개정판)

사람은 훼손을 먹고 산다 (채령 개정판)

$20.00
Description
‘옷 만드는 사람’에 대한 소설이다. 미학적 인간이 아닌 그냥 ‘옷 짓는 인간’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서 난 핏덩이를 맡겨 놓고 그를 찾아 미국으로 훌쩍 떠난다. 그녀는 그곳에서 ‘스킨 모자이크 사건’을 일으키고 아이를 안고 산으로 들어간 그는 20년 동안 산속에서 기른 딸과 함께 미국으로 엄마를 찾아 떠난다. 채령이라는 한 이름으로 불리는 딸과 엄마 사이에서의 사랑 이야기에 패션의 내면생활이 담겼다. 엄마에게 발현된 사랑이 딸에게 투사되고 딸을 맡긴 남자를 딸이 사랑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몸과 옷의 동화작용처럼 그려진다. 내면의 치열한 탐색을 따라가다 보면 옷 짓는 인간의 체온에 대한 상처가 원죄만큼이나 깊다. 패션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물화 감성과 카멜레온의 체화 감성이 갈등하며 서로를 훼손한다.
저자

김교락

옷 짓는 일로 잠시 경제생활을 영위했다.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사유의 깊은 실마리를 제공 받았다. 글 짓는 일도 그와 연관이 있다.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함축하는 노동의 바닥을 만난다. 지은 글로 책을 내려 컴퓨터를 배웠다. 옷 짓는 일을 할 때는 그냥 막연히 까탈이 심한 일로만 생각했다. 아름다움을 점령한 까탈에 마음을 다치면 사방에 물결쳐 상처를 낸다. 카멜레온은 숨기려 드러내고 드러내어 숨기는 내성적 체화에 민강하다. 사람은 위험과 책임의 외주화로 사물과 인성을 훼손한다. 의식주 중에 옷 짓는 일이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삼베 양모 목화 누에로 실을 만들어 베를 짜고 염색을 하고 손바느질로 일일이 지어 입어야 했다. 그게 기계화 되면서 산업발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노동착취의 어두운 일면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봉제노동운동가 전태일과 나이가 같다. 그는 22살에 산화했지만 지은이는 아직도 살아서 그 혜택을 굳이 훼손부담이라 한다. 옷은 노사갈등 뿐 아니라 피부접촉과 인종분쟁까지도 삶의 기초라는 허울로 얼버무린다. 이민자 차별은 피부가 모자이크 되는 자기 능욕이다. 천사는 체온을 입는다는 말처럼 옷은 인간의 밝고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체온을 입는다.

출판사 서평

까탈이란 무엇인가? 일의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훼손이다. 여자 옷 만드는 일처럼 까탈스런 건 없다. 혁명의 한자어는 가죽 혁에 목숨 명이다. 큰 동물사냥의 가죽으로 목숨을 부여받음이다. 인지혁명은 까탈의 훼손 값이다. 옷의 재료는 가죽 양모 목화 누에 석유다. 목숨 아닌 것이 없다. 생존이 달렸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까탈 없이 인지가 발달할 수 있었을까? 까탈의 훼손 값으로 아름다움이 창조되었다. 한국에서는 노동운동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재봉틀은 기계를 대표해 미싱이란 이름을 얻었다. 삼베 명주 무명 모직을 수공업으로 짜다가 방직기의 발명으로 산업혁명까지 이끈다. 옷은 무기와 함께 사물화의 인공철학을 형성하는 핵심 구성원이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물인 몸에 세상에서 가장 유연하고 유기적인 재질로 만상의 이미지를 찾아 옷 입히는 지고 지난한 일을 하면서 그 잘못을 족집게처럼 잡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원죄이자 원천오류로서의 훼손이다.
여자 옷 만드는 일에 얽혀있는 내면의 이야기다. 패션은 인간의 욕구를 가장 진솔하게 드러낸다. 아름다워지고 싶고 있어 보이고 싶고 심지어 신체적 결함을 감추거나 여성스럽거나 섹시해 지고 싶을 때에도 패션을 찾는다. 귀부인들의 욕구불만까지 해소해 준다. 유행의 메카인 파리는 선망과 동경의 처소다. 동경이 큰 만큼 짧은 유행은 쓰레기 산을 이룬다. 천사는 체온을 입는다는 말처럼 옷은 인간의 밝고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옷은 동물의 짝짓기를 사랑으로 심화시켰다. 후각에서 시각으로 이사 온 사랑은 언어와 무기로 전천후 성감을 자랑하며 정체 모를 부끄러움을 진리와 윤리로 승화시켰다. 심지어 동성애를 사랑의 디자이너로 들어앉혔다. 인간은 짝짓기를 버리고 사랑을 선택했고 털을 버리고 옷을 선택했다. 자연의 혜택을 버리고 인위적인 훼손을 선택했다. 양모 목화 누에 화학섬유 노동자와 방직 노동자와 옷 짓는 노동자의 삶을 양극화로 훼손하는 게 패션이고 사랑이다. 이 거대한 훼손시스템을 혜택시스템으로 재설계할 수 있을까? 화려한 패션의 뒤안길에서 주인공들은 파리를 꿈꾸고 뉴욕을 꿈꾸며 절망한다. 기후변화를 견디던 옷이 수많은 노동 식솔들의 애환으로 얼룩져 양극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개인의 경험치가 너무 앞서서 패션문학이라기에는 조금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