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6월25일새벽,북한공산군이이승만을제거하고한반도를적화하기위해중공을등에업고,소련의군비지원과조종하에침략전쟁을도발했다.스탈린과김일성의초상화를앞세우고,한민족의국기인태극기를배신한채소련이디자인해준인공기를앞세우고!
(무릇한민족이라면,남북통일을말하기전에,북한에대해소련이만들어준인공기를폐지하고,‘태극기’부터통일하자고제안해야마땅하지않을까?)
섹스심볼마린린먼로를뺨치는관능적육체와미모에최고의지성까지갖춘종군여기자가한국전쟁발발이틀후부터미군과동거동락하며전선을누비고있었다.그이름은마거리트히긴스(MargueriteHiggins,1920-1966)!
270명의종군기자중에서유일한여성이었던마거리트히긴스는전쟁초기6개월간,여러번죽을고비를넘기며,한강인도교폭파ㆍ평택과천안전투ㆍ대전전투ㆍ낙동강전투ㆍ인천상륙작전과서울수복ㆍ장진호전투등을직접목격한산증인이었다.
특히,전쟁발발나흘후인1950년6월29일수원비행장에서히긴스는전쟁상황시찰차방한중인맥아더장군을만난다.당시둘이만나는사진은충격적이다.30세의히긴스는오른손을허리에얹고,70세의맥아더는오른손으로히긴스의왼팔을가볍게잡고말을건네고있다.1945년8월일본패망후맥아더연합군최고사령관앞에서감히그런포스를취한사람은없었다.이는맥아더가양손을허리에얹고,일본국왕은차렷자세로선사진과비교된다.
아무튼맥아더는수원비행장에서히긴스에게자기전용기에동승을제안하고,히긴스는도쿄로가는도중그를단독인터뷰해서‘한국에지상군파병’에관한특종을건진다.이후그녀는6개월동안맥아더장군의특별배려로전선을취재하며,여러특종보도를하고,1951년에는한국전쟁에관한세계최초의단행본『WarinKorea』를발간하여여성최초로퓰리처상을수상한다.
『WarinKorea』에는맥아더라는이름이다른인명들과는비교가안될정도로많이등장할뿐아니라,히긴스와맥아더의사이가무척가까웠을것이라는
의혹을가질만한부분도있다.심지어히긴스와맥아더가이책을공동집필한것이아닐까하는의구심을갖게만든다.
『WarinKorea』에는한국전쟁을다룬수많은국내외의저술과차별화되는매우시사적이고,객관적이며,흥미롭고,유용한정보들이담겨있다.
첫째,한국전쟁에관한저술중이렇게빨리나온책은없다.히긴스는1951년1월1일책의서문을썼다.1950년12월까지그녀가전쟁터에있었다는사실을고려하면놀라운일이다.
둘째,전투하는군인이아니라뉴스를전하는종군기자가전장을더할나위없이객관적으로기록했다는점이다.저자는나름대로아군이건적군이건공평한잣대를들이대고한국전쟁을보려고시도했다.
셋째,맥아더장군을비롯하여이등병까지미군을폭넓게인터뷰한기록일뿐만아니라,이승만대통령,한국언론인,한국군,심지어북한군및중공군장병과의대화도담고있다.이는한국전쟁터의근처에도가보지않은저자들이쏟아낸수많은저술과는본질적으로다르다.
넷째,남성이아니라여성의눈으로본기록이라는점이다.저자는여성으로서차별대우를받으며취재했음을여러곳에서기록하고있다.그런데묘하게도이런차별은이책이갖는매력의하나가되고있다.
다섯째,소설보다도더긴장감넘치고,흥미진진하며,생생한실화라는점이다.나아가섬세하고감수성넘치는문학작품이다.발간과동시에미국에서베스트셀러가되고,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등여러개언어로번역된것은이런이유에기인한다.
여섯째,단순한한국전쟁르포를넘어서전쟁,자유민주주의,국가존립의이유,국가간의동맹,남녀차별의사회적문제,인간적유대감,애국의의미,삶과죽음에관한교과서아닌교과서라는점이다.
코러스출판사는2009년『자유를위한희생』이란제목으로『WarinKorea』의한글번역판을출간했다.『한국에가혹했던전쟁과휴전』의제1부는『자유를위한희생』의초판발행14년후인올해에기존에미흡했던번역과역주를대폭보완한것이다.
한편,『WarinKorea』는한국전쟁초기6개월(1950년6∼12월)동안의전장르포다.이는3년1개월동안의전쟁중에서6분의1도되지않는기간이어서한국전쟁을전부아우르기에는많이모자랐다.그런데뜻밖에도단편적이고분량은많지않지만,히긴스기자가한국전쟁의휴전에관해서기록한매우소중한자료를발견했다.
그귀중한자료를소개하기전에히긴스가1951년1월1일『WarinKorea』원고를출판사에넘긴후부터한국전쟁휴전(1953년7월27일)후인1954년까지7차례나한국을방문했다는사실을언급하고자한다.도대체왜그랬을까?히긴스는제2차세계대전종전후,폴란드·체코등동유럽국가의국민이자유를소비에트공산체제에서질식하는모습을생생하게목격한증인이었다.
히긴스는한국전쟁발발이틀후비에젖은서울거리를군용차로달리는데,짐보따리를머리에이고갓난아이를등에업은채피란하는수백명의여인이손을흔들며환호하는것을보고,간절한소망을갖게된다.
“제발,우리가저사람들을낙담시키지않았으면좋겠어!”
또한히긴스는자신의이소망을더굳게만드는광경을인천상륙작전후서울수복과정중명동성당에서목격하게된다.
“성당은아수라장이었다.십자가는제단에서떼어졌으며,모든종교적인상징들은건물에서제거되어있었다.그대신사방의벽에서스탈린과김일성의초상을그린대형포스터들이우리를비웃듯이내려다보았고,미군을죄없는한국부녀자와어린이를살해하는인면수심의괴물로풍자한포스터들도벽에붙어있었다.성당은공산당본부로사용된것이분명했다.”
히긴스는제2차세계대전후에동유럽이공산화되는과정에서지겹게보았던스탈린과그꼭두각시들의초상화를서울명동성당에서다시목격하고는스탈린의세계적화야욕을한국에서기필코분쇄하지않으면미국이위태롭게된다는사실을통감한다.
참고로1945년8월15일일제가패망하고,미군과소련군은일본군무장해제를위해38선을경계로한반도를나누어점령했다.그런데스탈린은이를악용해서겉으로는해방과평화를표방하고,실제로는한반도적화에착수했다.곧북한전역에스탈린과김일성초상화가걸리고,북한공산화와남조선적화를위한병영화가진행되었다.
이과정에서소련군의인적·물적인약탈도심각했지만,북한에서태극기와애국가를폐지해서한민족의정체성을약탈한것은가장악랄한만행이었다.사실해방이후북한은남한과마찬가지로태극기와애국가를공유했다.그러나소련군의지시로북한은1948년7월8일태극기를폐지하고,7월24일부터소련이디자인한인공기를시범게양한후,9월9일정권수립때인공기와새로운국가(國歌)를채택함으로써민족을배신하고소련의위성국가가되었다.
이처럼동유럽에서의경험보다도훨씬더애처로운한국인과한국의참상(慘狀)을목격한히긴스는어느종군기자도감히범접하지못할용기와사명감으로무장한채전선을누비며,죽을고비도여러번넘겼다.또한종군기자로서의임무를끝내고도한국인을낙담시키지않았으면좋겠다는소망의실현을위해나름대로헌신했다.
히긴스의소망이란미국을위시한유엔이한국인의자유를말살하기위한침략전쟁을도발한스탈린과그꼭두각시인모택동과김일성으로부터항복을받아내서한반도에자유통일국가가건설되는것을보는것이었다.이는맥아더장군의소망이기도했다.그때문에종군기자로활약후에도일곱차례나한국을방문하여전황과휴전협상을확인하고,최고위급저명인사들을만났다.
히긴스가만난인사는나이순으로맥아더장군,트루먼대통령,아이젠하워장군,밴플리트대장,리지웨이대장,클라크대장등한국전쟁과휴전에관해서가장영향력이있는미국의최고위인사는물론,영국군고위장교,심지어는중공군소령도포함되었다.
히긴스는그들과의인터뷰를1955년『NEWSISASINGULARTHING』이라는저서에실었다.『WarinKorea』에없는내용과휴전에관한소회가담긴히긴스의이기록은‘역사적으로매우중요한의미’를가지므로,인물별로7개의장으로나눠서『한국에가혹했던휴전』이라는제목으로번역자의주석(註釋)과함께『한국에가혹했던전쟁과휴전』의제2부에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