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위에서 본 조선 (헐버트(Homer B. Hulbert)의 조선시대(1890년) 평양 여행기)

말 위에서 본 조선 (헐버트(Homer B. Hulbert)의 조선시대(1890년) 평양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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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책의 특징
- 헐버트가 조선 내륙의 특성과 평양이라는 옛 도시를 역사, 문화, 지리 측면에서 국제사회에 최초로 소개
- 조선 내륙을 여행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안내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고
- 조선의 풍광, 역사, 문화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기술. 많은 외국인들이 조선을 살짝 들여다보고 표면적 관찰만을 기술한 점과 크게 대비
- 평양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경제적, 군사적 측면에서의 전략적 강점을 조명
- 평양 사람들의 특성을 파헤치고, 한민족을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눠 각각의 얼굴 특성을 밝혀냈음
- 헐버트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자주적 역사관을 만날 수 있음
- 조선의 무역 통계를 제시하며 한반도 서해안의 평양, 목포, 의주를 개방하는 논리를 설파함
- 북쪽에 거대한 부가 존재한다고 131년 전에 설파한 헐버트의 혜안에 감동

발간 목적
- 헐버트의 평양 여행기를 통해 남북이 하루빨리 하나 되기를 기원하기 위해
- 헐버트의 한민족 탐구 열정과 자주적 역사철학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 헐버트가 분석한 평양 사람들의 특성과 한민족의 기원을 알리기 위해
- 헐버트가 평가한 조선의 풍광, 한민족의 인종적 우월성을 통해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기 위해
저자

호머헐버트

HomerBezaleelHulbert
주요약력
-조선최초의근대식학교교사(육영공원1886)
-최초의교과서이자최초의한글교과서《사민필지》저술(1891)
-명성황후시해사건직후고종침전에서불침번을서다(1895)
-민족의혼아리랑을역사상최초로서양음계로채보(1896)
-한성사범학교(서울대학교전신)책임자,대한제국교육고문(1897)
-최초의종합역사서《한국사TheHistoryofKorea》저술(1905)
-을사늑약을저지코자미국의루스벨트대통령을방문하는고종황제의대미특사(1905)
-을사늑약의부당함을알린《대한제국의종말ThePassingofKorea》저술(1906)
-헤이그만국평화회의특사(1907)
-일본의박해로미국에귀환.1945년까지38년을강연,기고,회견으로한국독립호소
-미국상원외교관계위원회에‘한국독립호소문’〈한국을어찌할것인가WhataboutKorea?〉
제출(1919)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태극장’(현독립장)추서(1950)
-대한민국,‘이달의독립운동가’로선정(2013년7월)
-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추서(2014)
-(사)서울아리랑페스티벌,제1회‘서울아리랑상’추서(2015)

목차

일본의영자신문《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에연재한순서대로나눔

1.조랑말을타고돈의문,영은문을지나자북한산의아름다운자태가눈에들어와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6월6일-

2.조선에서가장멋진임진강을만나,숙박료는안받고음식상숫자로만돈을받아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7월4일-

3.송도(개성)외곽에도착하니헛간이열을지어있는것처럼인삼밭이다가와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7월18일-

4.비를맞고조선식화로에몸을말려,조선풍광의특징은웅장함(grandeur)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7월25일-

5.‘조선’은‘Chosen’이아닌‘Chosun’으로써야하며,‘朝鮮’은‘조용한아침(MorningCalm)’이아닌‘아침햇살(MorningRadiance)’을의미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8월1일-

6.봉산(鳳山)고을에도착하니주막주인이호랑이주의보를내려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8월15일-

7.평양은매우전략적도시일뿐만아니라아름답기까지해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8월29일-

8.평양사람들은강직하며,용감하며,불의를보고참지못하는특별함을지녔다.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9월12일-

9.바빌론(Babylon)만큼이나유서깊은도시평양의흔적에서오늘날아메리카(America)평원에새롭게조성된신도시가보여주는정연함이연상돼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10월10일-

10.한반도서쪽에서평양을먼저개방하고,곧바로참으로아름다운목포(木浦),압록강어귀의의주(義州)를개방하여조선경제를일으켜야
-《재팬메일(TheJapanWeeklyMail)》,1891년10월24일-

출판사 서평

재야역사학자인재외동포신문이형모대표는“헐버트는이여행에서평양이조선최초의수도로서한민족의유구한역사에서어떤위치에있었는지를명확히깨달았으며,특히평양의문명화된도시로서의면모에흥분을감추지못하였음을이책은말하고있다.따라서그의후일한국역사에대한천착은그의평양여행에서크게자극받았음을부인할수없을것이다.헐버트는또이글에서조선의풍광과관습을정감있게그려냈으며,동시에조선의경제적미래를위해한반도서해안에제물포뿐만아니라평양,목포,의주도개항하는것이필요하다고예견하며조선의미래와통찰하였다.헐버트의타고난미래지향적학문추구의자세를보여주는대목이다.조선말기의풍물과사회상에대한헐버트의설명은21세기한국인에게131년의시간차이를실감나게한다.낙후한교통,통신실태와평양의경제적,군사적측면,한반도북쪽지방의잠재력,서쪽항구들의적극적개항필요성과미래에대한통찰에공감하며,오늘날까지이어지는한국현대사의격렬한시대변화를돌아보게된다.결과적으로헐버트의평양여행은그와한민족의63년의인연을담금질하는중요한기회였다고여긴다.”라고이책의역사적의미를평가했다.

헐버트는누구인가?
1949년7월1일86세의한서양노인이미국워싱턴의주미한국대사관을나섰다.노인은신생대한민국대통령으로부터1949년광복절행사에참석해달라며국빈초청장을받은것이다.AP통신기자가노인에게한국을방문하는소회를물었다.노인은어린아이처럼기뻐하며“나는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한국땅에묻히기를원합니다(IwouldratherbeburiedinKoreathaninWestminsterAbbey).”라고답하면서도,한국땅을다시밟는다는감격에눈시울을붉혔다.일제의박해로한국을떠난지40년만이아닌가.이노인이누구이기에이렇게진한한국사랑을고백하였을까?노인은바로23살에조선땅을밟아생을마감할때까지63년을한민족과영욕을함께한헐버트(HomerB.Hulbert)이다.
헐버트는남북전쟁이한창이던1863년1월미국동북부버몬트(Vermont)주에서대학총장이자목사였던아버지와다트머스(Dartmouth)대학설립자후손인어머니사이에서3남1여중둘째아들로태어났다.그는‘원칙이승리보다중요하다(Characterismorefundamentalthanvictory)’라는가훈속에서성장하였다.헐버트는대학을졸업하고신학대학에재학중,조선최초의근대식관립학교인‘육영공원(育英公院)’교사가되기위해1886년7월5일조선땅을밟았다.
헐버트는내한하자마자조선의역사,문화에매료되어한민족의진수를한국인보다도짙게음미하며한민족의앞날에희망을품었다.그러나그의일생은저항과도전의역사였다.그는내한초기조선을속방으로여기는청나라의횡포에,한글전용을주창하면서는한자만을고집하던사대부들의사대성에,조선의자주독립을역설할때는러시아와일본의침탈야욕에,을사늑약당시에는미국의친일적작태에,일본의한국식민화를국제사회에고발할때는미국지성사회의한국몰이해에저항하였다.그러나그는어떠한난관에도굴하지않고생을마감할때까지한민족이언젠가는세계속에우뚝서리라는꿈을버리지않았다.헐버트는무엇보다도이땅의청년들에게자로잴수없는울림을낳았다.그의교육열정은배재학당에서주시경,이승만등에게학문적욕구를자극했으며,그의대일항쟁의울림은멀리연해주에있던안중근의귀에까지전달되었다.그를‘한국인보다한국을더사랑한사람’으로불러야하는이유는차고넘친다.
헐버트는안타깝게도한달여의여정에지쳐한국에도착한지일주일만인1949년8월5일세상을떠광복절경축식단상에는서보지도못하고한강변양화진에묻혔다.그러나아직도분단상태인한민족을슬퍼하며오늘도그의눈물이한강으로방울방울흘러들고있을지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