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내리지 마세요 (정세용 시집)

햇살을 내리지 마세요 (정세용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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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진단하는 시편들
정세용 시인에게 인간은,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하며 사랑을 나누는 존재여야 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결단해야 할 갈림길에서/ 우리는 인간이어야 한다”(「 인간이어야 한다」 )고 시인은 주장한다. 이 시집에는 많은 이들이 비인간과 인간의 경계에서 고투를 벌이고 있다.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살다가 “깨끗하게” 간(「 영철이」 ) 후배, “어둔 데서는 정안자(正眼者)보다/ 더 잘 볼 수 있다”며 “한 손에는 아내 속옷 한 벌/ 한 손에는 하얀 지팡이”를 짚고 “또박또박 어둠을 가르며”(「 박희철」 ) 걸어가는 맹인 안마사, 아빠 따라 절벽을 기어오르다 다쳐 등에 상처를 새긴 다섯 살 아이(「 필리핀」), 방송계의 비인간적 노동환경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 PD(「 가을」 , 「 이한빛 PD에게」 )가 있다.
시인은 사랑하는 이들을 괴롭히는, 인간을 비인간의 처지로 전락시키려는 사회를 비판한다. “갑이 주저앉힌 을은/ 갑을 부정하고 뿌리를 뽑아야”(「 을」 ) 한다고 외치고, 미투(MeToo) 운동처럼 성차별구조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에 “사상과 생명과 여성을 기억하는 다툼이/ 이제서야 문을 연다”(「 노출과 관음」 )며 동조의 지지를 보낸다.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피동의 시대”에 “실천해야 할 의무”가 “빚”으로 남아 있어서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려면 “결행할 수밖에 없다”고 시인은 말한다. “내 뜨거운 불꽃이/ 너에게 한 점 자유를 줄 수 있다면”(「 가을」 )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

정세용

1963년서울에서태어남
등단하지못하고나이만든채,띄엄띄엄살아온세월을보듬고,시구에살을붙이려애쓰며살고있다.
몸집이불어야비로서뺄수있을터.
90년대후반부터현재까지[새.시]동인으로있음

목차

여는시|시인

1부|
그대ㆍ거울ㆍ길ㆍ나비ㆍ동행ㆍ햇살을내리지마세요ㆍ첫눈내리는날ㆍ돌려줘ㆍ
종점ㆍ입술ㆍ로단테ㆍ반성을생각하다ㆍ봄맞이ㆍ세월ㆍ주사
2부|
살수의노래ㆍ인간이어야한다ㆍ선사ㆍ걱정인형ㆍ망국ㆍ분노ㆍ을ㆍ노출과관음ㆍ
이민자들ㆍ신문ㆍ단상ㆍ불을끄다ㆍ새알이딱딱한이유ㆍ직선그리고달
3부|
어느여선생이야기ㆍ연애편지ㆍ실업자ㆍ딸ㆍ여름과겨울ㆍ무건리ㆍ앵무봉ㆍ
공릉천갈대밭ㆍ성철이에게ㆍ영철이ㆍ회상기ㆍ이력서ㆍ주름살ㆍ아마추어ㆍ가을ㆍ
이한빛PD에게
4부|
빨간장갑ㆍ노동의새벽은없다ㆍ박희철ㆍ밥그릇ㆍ배관ㆍ생산ㆍ소망ㆍ너의장미ㆍ
친구야ㆍ김목수ㆍ눈물세ㆍ만원ㆍ필리핀ㆍ안개ㆍ모닝콜

맺는시|혁명

발문|‘잃어버린시’의회귀(소종민)

출판사 서평

꿈과현실을넘나드는시편들

출근해서직장생활을만들고
퇴근후술자리를만들고
바람같은이야기끝에
한숨을다스려위안을만든다

철커덩,새벽두시철대문여는소리를만들고
아내눈가에그늘을만들고
창가에스며드는별빛을만든다
(시「소망」에서)

이시에는곱고차분하고쓸쓸한노래가들린다.생의관조와더불어은근한소망또한배어난다.‘철커덩’,철대문여는소리가직접적인청각효과를만들어서구체적실감도살아난다.직장인으로만머무르고있는비애가느껴지고,이와는다르게잊을수없는얼굴로기억되고발자취를남기고싶은작은희망,소박한꿈이깃들어있다.

직선은
바빠야먹고사는사람들에게속도를제공한다
가끔
팔방향교차로에서길을잃게하지만
평면과직선이화음하는드림비트에
까닥까닥헤드뱅잉끼워놓고
와인한잔바르면
발바닥에고인물도굳은살이된다

직선들이무수한진동으로
투명하던빛을햇빛으로물들인다
샤프란향아득히버무린사각침대에
두개의선이합쳐지며각의평온에흡수된다

사각의태양이하루일을마치고
발갛게익어내려지평선에잘리면
아홉개의동전으로남은달이
짜그락거리며제몫을한다
(시「직선그리고달」에서)

하지만,시「직선그리고달」은자동차-퇴근길-음주,나아가과로-룸살롱-금융자본-윤락행위등으로의미가번진다.「소망」의무대가이제점점찾아보기어려워져가는도시의어느달동네골목길외등아래라면,이시「직선그리고달」의무대는깊은밤서울강남의어느대로변같다.
그렇듯「소망」은직장인의소박한꿈이,「직선그리고달」은직장인의가혹한현실을표현한것으로읽을수도있다.꿈을노래하는「소망」과,현실의단면을그린「직선그리고달」.서로다른정서를담고있는이두편의시들모두정세용시인의것이다.따뜻한온기가필요했을때시인은「소망」을썼을것이며,냉정한묵시가요구되던순간에「직선그리고달」을썼을것이다.가혹한현실의압박을견디면서시인은,현실의폭력에휘말리지않으려애쓰면서‘시’를잃지않을힘을길렀던것이다.

물과사랑의시편들

그렇듯,자신을포함해서사랑하는이들이모두가더이상비인간적인상황으로떨어지지않고,죽은노동의사슬에서벗어나는것이정세용시인의오래된꿈이자눈앞의현실이다.시인자신을포함해서‘꿈꾸는사람’은이시집「햇살을내리지마세요」의곳곳에서‘물방울’,‘이슬’,‘빗방울’등으로표현된다.

먼저살다간어른이단단하게
다녀놓은길에내리는
이슬비에젖어보는것
그길을걸어수많은발자국을따라가다
하나의발자국에뿌리박고
이슬비에온몸이젖어가는것
(「반성을생각하다」에서)

시인에게‘물’은매우긍정적인가치를지니며,보존되고이어가야할과거의유산으로도읽힌다.시인은비에흠뻑젖어나를고집하지않고나를내려놓는다.마침내‘나’는어디든섞여들어갈수있는액체상태가된다.시인은‘물’을인간의본질로이해한다.물은부드럽고흐르며온도에적응하여자신을기체,액체,고체로잘변모시키고,다른개체에잘녹아들어간다.그렇게우리인간들도서로섞이고보듬으며함께흘러가는삶그리고종착역에서서로잘가라고,잘살았다고미소지으며인사나누는.그렇게물과같이되길바라는것.정세용시인은이땅의모든경계를넘어서로스며드는,너ㆍ나없는사랑의시간,물의삶을희원한다.한마디로,정세용은한없는사랑의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