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당신의이야기이자우리의이야기다
소설의배경은1947년9월16일의하루,부산이다.동이튼때부터일몰후까지단하루의일들이원고지1,880장에달하는긴분량속에담겼다.그시절부산에는돌아온사람들,돌아가다그대로머문사람들로북새통을이뤘다.그들은중국에서,만주에서,일본에서해방됐다는소식을듣고조선으로돌아왔다.이른바귀환동포들이다.그들은거지떼처럼들어와눌러앉아골치를썩이는존재들로취급받는다.이소설은그들온갖귀향자들이품고있는슬픔과고통의주름들을고스란히보여주는슬프고도처연한,처연하지만아름다운이야기다.
당시부산은‘뜨내기들의천국’이었다.“온갖잡새가아니라온갖잡다한인간”이귀환선타고,열차타고흘러들어와떠돌았다.일자리가넘쳐나는공간이었지만“사람은더넘쳐나가장헐한게사람”이었다.그들사이에는돌아온자들이라는유대감이흐르지않았다.제한몸건사하기바빴고,가족의생계를부지하기에급급할뿐이었다.그들은모두보통사람들,민중들이었다.
그러나그들의몸에는하나같이식민의경험이남긴상흔이낙인처럼찍혀있다.떠난사람이있으면기다리는사람이있고,떠나서돌아오지못한사람이있고,기다리다지쳐쓰러진사람이있다.그들모두“늑골이주저앉는것같은고통”에신음한다.
중국을떠돌다돌아왔으나죽어도육신을거둬줄부모형제하나없는이,강제징용으로먼타지에끌려가간신히살아돌아온자들,히로시마에떨어진원자폭탄에화상을입어얼굴이문드러진사람,끌려가서돌아오지못한남편이나자식을하염없이기다리는여자들,가난에신음하는가족을먹여살리기위해고향을떠나돈벌러부산에온자들,일본군‘위안부’로끌려가겨우돌아왔으나다시사창가로옮겨갈수밖에없었던여자들,조선인남편을따라조선에왔으나버림받고오도가도못하는일본여자,고향으로돌아가지못하고조선에그대로눌러앉은일본인들과중국인들,고아가돼구걸하는수많은거지아이들…….그중히로시마에서원자탄에죽은아내의시신을등에업고걸으며쓸쓸한독백을읊조리는백씨의모습(126~131쪽)은‘슬픔’의극치를보여준다.
해방직후부산의암울한역사,바깥으로밀려난‘잃어버린’사람들
무지하고나약하고비루한인간들로들끓는세상이었다.암시장이성행하고무질서가판을치는암울한시절이었다.사람들은입에배고픔을주렁주렁달고살며고통과분노에허덕여야했다.식민의가혹함이남긴광풍이휘몰아치는그때에그들보통의사람들은그저먹고살기위해비정한삶이이끄는대로나아갈뿐이었다.푸념과투정,회한과하소연만이그들의일상을무겁게차지했다.
“애끓던그시절엔늑골이주저앉는이별이이다지도흔했다.누군가를잃어버리는것이보통이었고,이별한뒤에는두번다시만날수없었으며,기적같이재회했을땐돌이킬수없는상처를안고살아가야하는숙명의무게가생에얹혀졌다.무겁고무서운시절이었다.사무치도록그리운것이많은시절이었다.”-박혜진(문학평론가)
이소설에는수많은인간군상의‘슬픈’이야기가얽히고설킨채펼쳐진다.식민과전쟁으로빼앗긴삶의비극이곳곳에흩어져떠돈다.대다수의등장인물들은역사에서몫을빼앗긴자들이다.역사의바깥,시대의변두리를배회하는사람들이다.몫이없어진,“바깥으로밀려난”이‘잃어버린’사람들에게작가는자기목소리로말하게그들을일으켜세운다.굴곡진시대에농락당한어둑한삶이지만그들이토하는제목소리를생생하게재현하고담담하게전달하면서작가는무슨말을하고싶은걸까?역사의강물은도도히흘러가지만은않는다는것,삶이지니는난잡함과다채로움이야말로인간의본질이라는것이다.알수없는운명의날카로운조각에베이고,사회의혼란과무질서에속절없이휘둘리는사람들,그보통의사람들이곧우리의역사이고우리의자화상이다.
교차와중첩의이야기구조로직조하는솜씨가경이롭다
“평범한삶의사소한세부들속에서시대나사회의징후들을발견하는것”(자크랑시에르)이문학이라고한다면,김숨의작품세계는그와같은정의에맞아떨어지는적절한예가될것이다.왜냐하면그는그간“입양아,철거민에서‘위안부’피해자와강제이주고려인까지,제자리에서뿌리뽑힌사람들”에집요하고세심하게천착해온작가이기때문이다.
특히이번소설『잃어버린사람』은해방직후부산에서벌어지는소란과난장속에서수많은보통의(혹은익명의)사람들이어떻게살았고어떻게죽었는지,시대와역사의부침을어떻게견디고어떤기억들을담아둔채생명을이어갔는지담담하면서도농밀하게그려내고있다.현실과역사,이둘은결코동떨어져있지않다.여러그물망으로얽혀있다.이소설에서김숨은특유의‘거대한’문학적상상력으로그물코사이로빠져나가는이둘을움켜쥐어바로지금우리앞에펼쳐놓는다.
해방직후부산의역사적현실을첨예하게그려낸이소설에는수많은인간군상이등장하면서허다한사연과에피소드들이곳곳에서펼쳐진다.현실에뿌리를두었으되현실을넘어서는비애와애탄과한의이야기가나무가가지를뻗듯이어진다.이야기하나하나가의미있는소설한편한편으로읽힐정도다.삶의구체적인현장과목소리를담은각각의에피소드는부산이라는공간에서밀물처럼밀려들고,소용돌이치고,때로교차하고중첩된다.역사의저수지에고였다가범람하고,넘쳤다가는다시잔잔히흐른다.그고임과넘침과흐름을따라가다보면중단없이읽게되는묘한힘에이끌리게된다.
이소설은미도리마치(綠町)라는유곽으로친구를만나러가는애신의발걸음을따라가며마주치는여러공간들과인물들의이야기가무게중심을잡아주지만,소설전체를아우르는사건이없고딱히주인공도없으며뚜렷한스토리라인도없어보인다.하지만인물이중첩되고사연이교차하는이야기구조가얽히고설켜있다.이교차와중첩의구성을의도적으로정교하게짜맞춰통일성을갖추도록한직조솜씨는경이로울정도다.
예컨대중풍으로비뚤어진입의어부는언청이로태어나찢어진입의여자와겹치고,은발의눈먼숭어망지기는도둑맞을까가자미를지키고앉아있는눈이먼노파와겹치고,드럼통같은원자폭탄은날품팔이하역꾼들이곰장어를구워먹는드럼통으로겹친다.또조선인남편에게버림받아부두를떠도는일본여자는기모노를걸치고수레에산송장처럼누워있는조선인노파와어긋나면서도묘하게겹치고,국수를끓여파는여자가양은솥을훔치는장면은발가벗은사내애를위해남의집옷을훔치는여자애의모습과겹친다.
여기서읽은사연이저기서읽은사연과겹치는것,이것은그시대그들의삶이이시대우리의삶과연결된다는의미가아닐까.“사람과역사를향해한발자국도물러서지않고”역사의시공간을현재로재구성한작가의결연한자세앞에서숨을멈추고집중하지않을수없다.소설을읽으며인물과이야기의촘촘한짜임새를따져보는것은이소설을읽는또하나의재미가될것이다.
무지하고비루한사람들이던지는통렬한역설과씁쓸한위트
문학평론가박혜진은이소설을두고“장대한슬픔의파노라마”라고했다.분명이소설은장엄한‘애사(哀史)’다.하지만서사를풀어가는김숨특유의화법은슬픔을슬프게만그리지않는다.갖가지애환을품에안은사람들의사연에는애타는기다림의아픔과뼈를긁는상실의고통이넘쳐나지만,또한그들의말속에는해학이있고통렬한역설이있으며씁쓸한위트가있다.예컨대아홉살영미가“금붕어배를갈라요,말아요?”라고말하는대목(396~399쪽)이나‘할일없는나카무라상’(385~387쪽)같은패러디는웃음을자아낸다.특히하루벌어하루먹고사는사람들앞에서뒷짐을지고“태평성대예요!”를외치는복덕방쟁이박주찬의모습(348~351쪽)은아이러니그자체다.
이소설은갓태어난아기의울음소리로시작해언청이여자가아기를가진것을알게되는장면으로끝난다.떠오른태양빛이넘쳐나는땅과바다로시작해하루가저물어이마을저마을,이집저집에등불빛이밝혀지는것으로끝난다(마지막부의제목은‘빛’이다).‘장대한슬픔의드라마’이지만새생명의탄생과희망의메시지를전하고싶은것이이소설을쓴작가의진정한전언이아닐까.삶이란“아기가태어나더해지고빛이더해져세상의무게가더해지는”것이다.또한허우재가“모자라지도않지만넘치지도않는군”이라고말하는것이나청요릿집사해루의어항에금붕어가항상여덟마리에서모자라거나남는걸싫어하는것은혼란을벗어나질서와안정을염원하는사람들의간절함을보여주고자한것일터이다.
만약김숨이없다면한국현대문학의폭은훨씬좁아질것이다
“읽는이의마음에자국을남기는작가.그의집요함과세심함이만들어낸이야기의힘과서사의밀도는독자와평론가들에게깊은울림을준다.”
“인간존엄의역사를문학으로복원해온그가한국문학장(場)에뜨거운숨을불어넣고있다는점에이견은없을것이다.”
“김숨은지금까지한번도멈춤없이꾸준하게자신만의개성적인문학세계를만들어온작가이다.”
이와같은독자와문학계의평가가과장이아님을이소설은증명하고있다.우리의시야에서가려졌던,우리의눈이놓쳤던‘잃어버린사람들’에감응하며그들을다시불러일으켜세우는문학적실천,부산이라는공간에서일본과중국,만주,오키나와까지넘보며동아시아전체를읽어내는상상력,모순과균열로뒤엉킨역사의수맥을정밀하게읽어내는예각적이고심층적인사유,이모든것이이소설에오롯이담겨있기때문이다.“만약김숨이없다면한국현대문학의폭은훨씬좁아질것”이라고말한다고해서이의를달사람은없을것이다.앞으로그의문학적행보가어디까지이어질지더욱궁금해지는이유다.
추천사
김인숙(소설가)
슬프다는말한마디없는이소설이,나는슬프다
김숨의소설은글로읽히기전에소리로들린다.그래서김숨의소설을펼칠때면귀를먼저기울이게된다.소리는숨결로전해진다.귀를기울이다못해가만히손을내밀어받아야할것같다.
누군가의인생이,한시대의역사가들숨과날숨처럼얽혀사방에서들려온다.아우성같기도하고속삭임같기도한그소리는실은누군가돌아오는소리고누군가돌아오지못하는소리이기도하다.그들은히로시마에서도오고,나가사키에서도오고,식민지의땅조선의어느곳에서나온다.그리고부산에이른다.그러는동안모서리가다닳아버린사람들,남은게이야기밖에없는사람들.경이롭다.웅장하다.웅장한것은사람과역사를향해한발자국도물러서지않는김숨의시선때문이고,경이로운것은그들을향한김숨의마음때문이다.
위로하지마시라,연민하지마시라.이것은당신의이야기,당신시대의이야기다.말을덧붙여뭐하랴.이것은당연히,나의이야기다.그들과당신이아니라오직나의이야기.그래서슬프다.슬프다는말한마디없는이소설이,나는그래서슬프다.
박혜진(문학평론가)
김숨의최후이자김숨의최초
보고싶은바람이얼마나간절해야“늑골이주저앉는것같은고통”이라고표현할수있을까.육체를잠식한영혼의통증에시달리던자들의비극을읽는동안나는자주먼곳을응시하거나깊은숨을내쉬었다.(…)
애끓던그시절엔늑골이주저앉는이별이이다지도흔했다.누군가를잃어버리는것이보통이었고,이별한뒤에는두번다시만날수없었으며,기적같이재회했을땐돌이킬수없는상처를안고살아가야하는숙명의무게가생에얹혀졌다.무겁고무서운시절이었다.사무치도록그리운것이많은시절이었다.
이토록장대한슬픔의파노라마를완성한김숨은도대체얼마나깊은작가인걸까.그의가슴에들어와박힌난망한사연들은그의심연에어떤지층을쌓았을까.(…)
때로는서사시같고,이따금회화같지만,결국엔노래가되는김숨의소설은‘문학적’관점을가진역사적인간의존재들을증명하는인류의텍스트이다.먼훗날우리는이러한태도를가리켜,또한텍스트를가리켜김숨의관점이라고표현하게될텐데,사실인지아닌지확인하기위해긴시간을기다릴필요는없다.이소설을읽는것으로충분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