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O와 망각의 강

H2O와 망각의 강

$13.00
Description
근대의 물질 H2O에 쓸려간 물과 꿈에 관한 보고서
- 물과 공간의 역사를 통해 밝혀낸 ‘근대성’의 기원
H2O는 물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가 만들어낸 화학물질이며, 변기와 호수에 두루 쓰이는 재활용수에 불과하다. 망각의 강으로부터 기억을 실어 나르고 잠든 영혼을 일깨우던 물의 역할은 오늘날 사라졌다. 물이 H2O가 되면서 차이와 우연에서 비롯된 세계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우리는 연속적이고 균일한 환경이 끝없이 펼쳐진 근대의 획일화된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이 책은 오래도록 우리들 인간의 꿈과 상징을 담아내던 ‘역사적 물질들’을 통해 현대라는 시대가 상실한 삶의 본래적 모습을 슬프고도 아름다운 언어로 되살린 회고록이다.
저자

이반일리치

IvanIllich
1926년오스트리아빈에서태어났다.로마그레고리안대학에서신학과철학을공부하고잘츠부르크대학에서역사학박사학위를받았다.1951년사제서품을받은후교황청국제부직이예정되어있었으나미국으로건너가뉴욕빈민가의아일랜드-푸에르토리코인교구에서보좌신부로일했다.1956년에푸에르토리코가톨릭대학부총장이되었고,1961~76년에는멕시코쿠에르나바카에일종의대안대학인〈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설립하여연구와사상적교류를이어갔다.교회에대한비판으로교황청과마찰을빚다가1969년사제직을버렸다.80년대이후에는독일카셀대학과괴팅겐대학등에서서양중세사를가르치며저술과강의활동에전념했다.이책외에『학교없는사회』『공생공락을위한도구』『행복은자전거를타고온다』『그림자노동』『의료의한계』『누가나를쓸모없게만드는가』『과거의거울에비추어』등성장주의에빠진현대문명과자본주의제도에급진적비판을가하는책들로세계적인주목을받았고,사회,경제,역사,철학,언어,여성문제에도깊은통찰들을남겼다.2002년12월2일독일브레멘에서타계했다.

목차

감사의글

제1장물질들의역사
댈러스타운레이크/욕조속누드/‘질료’의역사성/물이라는‘질료’/서식처도아니고차고도아닌곳

제2장공간
의례로창조된공간/플라톤의모성적공간/불도저로밀어버린공간/안팎이없는공간과악몽

제3장물
포착하기힘든물/물의분할/물의이중성-순수함과청결함/레테의강물로씻다/회상이모여있는므네모시네의샘/수로와문자가고갈시킨므네모시네

제4장도시
안팎이없이흐른로마의물/하비가주창한‘순환’의개념/오물이넘쳐나던도시/도시가풍기는아우라/죽은사람의냄새/냄새없는도시라는유토피아

제5장냄새
기체로판명된미아스마/배변과사생활/인종과계층의냄새/교육받은코-부끄러움과당황/향수로지운아우라

제6장현대의물
변기에물을사용하다/거름이가득한파리/오염된런던하수도/미국가정의수세식화장실/미국문화를통합한WC/‘질료’의회복

참고문헌
옮긴이해설

출판사 서평

■근대의물질H2O에쓸려간물과꿈에관한보고서
-물과공간의역사를통해밝혀낸‘근대성’의기원

H2O는물이아니다.그것은근대가만들어낸화학물질이며,변기와호수에두루쓰이는재활용수에불과하다.망각의강으로부터기억을실어나르고잠든영혼을일깨우던물의역할은오늘날사라졌다.물이H2O가되면서차이와우연에서비롯된세계의다양성은사라지고,우리는연속적이고균일한환경이끝없이펼쳐진근대의획일화된세상에서살게되었다.이책은오래도록우리들인간의꿈과상징을담아내던‘역사적물질들’을통해현대라는시대가상실한삶의본래적모습을슬프고도아름다운언어로되살린회고록이다.

『H2O와망각의강』은20세기를대표하는급진사상가이반일리치의후기사유를여는책이기도하다.필요의발명과상품이독점한체제위에지탱해온근대산업사회,그리고학교,병원,교통등인간의자율을압살하는제도들의폐해를강도높게비판해온일리치는,1980년대중반이후로는이러한현대의문제를낳은관념들로관심을옮긴다.현대를만든도구대신도구의의미로,현대를지배하고있는관념대신그관념들의뿌리로관심을돌린것이다.이책에서일리치는특히물,공간,냄새와같은‘질료’의역사를통해근대산업과경제의논리가어떻게인간의풍요로웠던삶과문화를평평하게다지고획일화된사막으로바꾸었는지고발한다.

■이반일리치후기사상을대표하는저서

『H2O와망각의강』은『ABC:민중지성의알파벳화』(1988)와『텍스트의포도밭에서』(1993)등과함께한층깊고원숙해진일리치후기사상을대표적으로보여주는책이다.일리치는1980년대를거치며그가겨냥한현대제도와끝없는경제성장의폐해가수그러들기는커녕더욱심화되는것을보면서꽤나깊은절망에시달린듯하다.“처음창조된모습에서점점멀어져가공된현실에서살게된우리들의무력함”을한탄하며,“이무력함을순순히받아들이고사라져버린것을애도할수밖에없다”고고백한데서도심경의변화를엿볼수있다.이책은그러한애도의마음으로쓴,일리치의책들가운데가장문학적이면서철학적인저서라할수있다.

이책에서저자가복원하려는것은인간의오랜삶을형성하고지탱해준물질들의역사다.그역사를통해과거와현재의인간삶에감춰진의미가하나하나되살아난다.고대동서양의의례와신화속의상징들,레테의강물과므네모시네의샘,피타고라스와플라톤의공간개념,고대로마인의수로사업,분뇨와시신으로인한도시의냄새,근대의화장실과향수의의미,근대의학이정식화하고화폐경제가고안한‘순환’의이념,그리고마침내근대의희소자원으로새로‘발명’된H2O에이르기까지,저자가소개하는질료의역사는큰흥미와놀라움을자아낸다.하지만이런역사적탐구속에는시종일관유지되는문제의식이있다.근대경제가주장해온‘교환’과‘획일화’의논리가고대의질료들에배어있던인간의꿈을훼손하고,기계적이고노예화된삶으로바꾸었다는것이다.

■댈러스의인공호수에서레테의고대적강물로

이책은저자가미국댈러스시중심부의인공호수건설을둘러싼논쟁을접하고는,현대의물과과거의물이가진의미가판이하게달랐다는것을회고하는데서부터시작한다.댈러스시가호수를채울물로재활용하자고제안한생활용수가결국변기물이나다를바없지않느냐는질문에서시작해,역사적으로인간의풍부한상상력과꿈을더이상반영하지못한물에대해이제는H2O라는이름이더어울리지않겠느냐고저자는묻는다.그대답을위해저자는고대의물과그물이흐르던공간의탄생시점으로거슬러올라간다.

일리치가고대의물과공간에대해말하려고하는것은두가지다.인간이거주하는가장기본적인조건으로서의물과거주공간등은처음부터나뉘고구획된것으로인간에게주어졌다는것이다.공간에대해안팎의경계를정하고물을하늘과땅,이승과저승의것으로나누면서인간의문화도비로소형태를갖추었다.즉첫째로인간의삶은애초부터이원적인차이의원리를기초로하고있고,둘째로질료는처음부터객관적으로존재한게아니라인간의삶에깊이엮여있었다는얘기다.죽은이의발에서기억을씻어주던레테의강물,그기억을강물에서길어내어시인에게전해주던므네모시네(기억)와뮤즈의샘은세탁(청결)과정화(순수)의이중적상징을가진물의역할을잘보여준다.공간역시광활하게펼쳐진야생의땅에최초의고랑을파서마을과도시의안팎을구획하고거주를실현함으로써인간의공간으로서의의미를얻게된다.물과공간의의미는고대의의례에고스란히표현되었고,인간의문화는이런‘차이’와‘분할’을기초로시작되었다는것이다.

■고대후기와중세의변화

춤추고지저귀던생명의물,신성한암소가밭을갈던공간반경등이‘보편적’이고‘무제한적’인질료로바뀌게된것은고대후기부터이며,그런물질관은근대초까지긴시간을거치며서서히확립된다.고대로마에서도시경계를넘는수로를통해흥청망청공급되던물은안팎이구분되지않는거대제국을건설한로마의이상과도연관된다고한다.이후중세를거쳐근대초에이르면서물은삶을적시고흩어지는것이아니라,끊임없이‘순환’하는물질로바뀐다.이런물질관념은혈액의순환을알아낸근대의학및과학의성과이기도하지만,끊임없이도는재화와화폐를통해경제가성장한다는근대시장경제의이념과도잘맞아떨어지는것이었다.사용가치가아닌교환가치의이념,물질의가치가사용하는데서오는것이아니라교환하는데서온다는근대의이념은물과공간의특이성들을무시하고언제든지대체가능한획일적대상으로바꾸었다는것이다.

우선물이그러했다.물은중세와근대를거치며당대도시들이골치를앓던도시내분뇨와냄새의일차적해결수단으로인식되었다.특정공간을점하고사는인간삶의건강한흔적인분뇨와냄새는도시안에서추방해야할대상이되었고,이와함께물은정화의힘보다는청소기능을가진물질로부각된다.근대적관리와조작에필수적인물질이된것이다.물을가정에끌어와욕실을만들고,냄새를혐오스러운것,부끄러움의상징으로치부하기시작한것도이즈음이다.죽은이가남긴시신과그냄새도도시밖의공동묘지로추방된다.

공간도마찬가지다.저자는무엇이든담아낼수있는빈그릇으로서의고대적공간이데카르트적절대공간이되면서,공간내의모든존재는위치에의해서만표시되는상호교환가능한원자들이되었고,친밀함과낯섦으로구분되던나의내면과외부의공간도더이상구분할수없게되었다고한탄한다.이런변화를상징적으로보여주는것이불도저이다.스키피오가카르타고를갈아엎음으로써그존재를역사에서지웠듯이,현대의불도저는빈민가의삶을밀어버리고아파트주거단지로획일화한다.사람들은아파트에서삶의공간을스스로창조하며살아가는것이아니라,동물처럼서식하거나차고처럼자신의몸을주차시킨다.

■근대문명의획일화논리와폭력성에대한고발

일리치가이책에서질료들의역사에관심을가진이유는결국근대문명이지닌획일화와균질화의논리,그리고그속에숨은폭력성을고발하기위해서다.보편적이고총체적인것은처음부터없었다.사물안에는이미차이와구분과특이성이고유하게내장되어있었다.고대인들은물과공간과같은기본질료속에서성과속,안과밖,차안과피안등의근원적경계를강렬하게의식하고있었다는얘기다.그러나근대문명은이런근원적경계를잃고이모든차이를불도저로밀어버렸다.그결과우리는변기의물과호수물의차이도,지저귀며노래하는시냇물과끊임없이솟는도시분수물의차이도,자연의불과끝없이타오르는핵발전의불사이도분간하지못하게되었다.

일리치가주목하는것은이런근대의획일화논리에숨은폭력성이다.그에따르면근대산업사회는경제성장과효율의이념에따라서,그리고모든것을등가적교환의시장논리에합당한것으로만들기위해서,모든차이를밀어버리고균질화의폭력을행사해왔다.이과정에서물은희소자원의하나인H2O로전락했다.그리고‘희소성’과‘필요’라는근대경제학의논리에따라,인간역시저마다가진유일무이한특성,삶의자립적능력을화폐및상품의교환에맡기고숫자로계량되는노동력내지하나의자원으로전락했다.

일리치는말한다.“이제H2O는꿈꾸는물의능력을잃어버린한낱액체에불과하며,물은더이상눈에띄지않는상상의물질이되어버렸다”고.그러나댈러스의인공호수에서나마물이내뿜는아름다움을기대하는마음들이남아있는한,이런회상들을되살려내야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