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전부인 줄 알았다 (유세미의 인생수업 | 애경그룹 최초 여성 임원인 워커홀릭이 뒤늦게 찾은 인생 레시피)

성공이 전부인 줄 알았다 (유세미의 인생수업 | 애경그룹 최초 여성 임원인 워커홀릭이 뒤늦게 찾은 인생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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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환자는 엄마에 대해 적대감이 있어요.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거죠. 아마 오래 전부터였을 겁니다.’ 아들의 상담치료 결과는 충격이었다. 엄마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거라 믿었던 아들은 무의식적으로 엄마에 대한 적대감과 방치되었다는 외로움이 마음속으로 병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깊은 병 속으로 도피해 버린 아들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폭풍 같은 고난은 그녀에게 인생을 다시 가르쳤다.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을 돌보고, 아이의 치유를 온몸으로 기도하고, 채찍질만 했던 자신을 사랑하기에 꼬박 500일을 보냈다. 마침내 무심히 스친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고, 작은 인연들에 귀함을 느끼고,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하나씩 깨달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엄마의 삶에 급브레이크를 걸어 준 아이가 완전히 치유된 지금 저자는 ‘그동안 남들 눈에 나다운 것은 사실 나답지 않은 것 투성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나답게 살기 위한 용기’로 무장하고 인생 제2막을 새롭게 시작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낸 그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담담하게 글로 정리했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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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세미

저자 유세미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를 졸업했다. 삼성물산과 애경에서 20여 년 동안 유통전문가로 재직했으며, 애경 최초의 여성임원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하다. 학창시절 배낭여행 한번 못 가본 것이 한이 되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잡지사에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맛집 단행본 만드는 일을 잠시 했다. 대기업에서 치열하게 직장생활과 워킹맘 역할을 해내며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중 인생의 급브레이크를 경험하고 잠시 멈춤의 기간을 보냈다. 성공이란 다만 사회적인 지위나 부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진정한 인생의 성공이란 일과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제대로 균형을 이루는 것임을 깨닫는 기간이었다. 지금은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자기계발 및 소통과 공감 분야 강사로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유세미의 인생수업
카페: www.lifeclass.co.kr
블로그: http://blog.naver.com/perpetua0919

목차

프롤로그: 처음부터 심각할 필요는 없다

Part 1 가끔은 욕심 내려놓기
아픈 아들이 내 스승입니다
회사와 이혼하다
리허설 없는 위기
엄마로 산다는 것
응급실에서 진짜 나와 만나다
암보다 무서운 우울증
헬리콥터 맘의 추락

Part 2 성공이 전부인 줄 알았다
성공이 전부인 줄 알았다
산전수전, 공중전 회사 9단
남의 생각에 목숨 걸기
직장이라는 막장 드라마
하루는 28시간입니다
세계의 브랜드와 사랑에 빠지다
여성 최초 임원이 되다

Part 3 시련은 인생의 위대한 스승이다
기승전, 그리고 실패
버틸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아줌마 경제학
괜찮아, 넘어졌다고 죽지 않아
가볍게 상처받고 더 단단해지기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는 시크릿
시련의 선물
실패에서 배운 인생 현답
시련은 인생의 위대한 스승이다
인생은 오늘도 수선 중

Part 4 나답게 살기 위한 용기
유쾌한 행복사전
내가 잃어버린 것들
나답지 않은 삶과 결별하기
지금부터라도 원하는 삶을 살자
심플하게 살아가기
나의 가치는 내가 결정 한다
나답게 특별하게

Part 5 가장 좋은 시절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행복의 조건
인생은 시골길 완행버스
지금 여기서 행복 하라
다시 시작하는 인생수업
결국은 해피엔딩이다
가장 좋은 시절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혼자 걷는 길, 함께 걷는 길
멀리 보기 연습

에필로그: 마흔아홉, 이제 시간은 내편이다

출판사 서평

애경그룹 최초의 여성임원, CEO가 되기를 꿈꾸며 앞만 보고 달려온 워커홀릭 슈퍼맘이 자의반타의반으로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고2 아들의 갑작스런 공황장애 발병과 입원, 더 이상 일과 아들 간호를 병행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사표를 내기 전 아이의 담당의사는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 “어머니는 왜 직장을 계속 다니시나요? 환자 증세가 악화되는데 너무 혼자 내버려 두는 것 아닙니까?” 병실에서 밤을 새우고 출근하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회사를 그만둔다는 생각은 하지 않던 때였다. 20년 넘게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회사에 그렇게 사표를 냈다.

워커홀릭 슈퍼맘에게 몰아닥친 악운의 쓰나미
‘환자는 엄마에 대해 적대감이 있어요.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거죠. 아마 오래 전부터였을 겁니다.’ 아들의 상담치료 결과는 충격이었다. 엄마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거라 믿었던 아들은 무의식적으로 엄마에 대한 적대감과 방치되었다는 외로움이 마음속으로 병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깊은 병 속으로 도피해 버린 아들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폭풍 같은 고난은 그녀에게 인생을 다시 가르쳤다.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을 돌보고, 아이의 치유를 온몸으로 기도하고, 채찍질만 했던 자신을 사랑하기에 꼬박 500일을 보냈다. 마침내 무심히 스친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고, 작은 인연들에 귀함을 느끼고,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하나씩 깨달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엄마의 삶에 급브레이크를 걸어 준 아이가 완전히 치유된 지금 저자는 ‘그동안 남들 눈에 나다운 것은 사실 나답지 않은 것 투성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나답게 살기 위한 용기’로 무장하고 인생 제2막을 새롭게 시작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낸 그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담담하게 글로 정리했다.

시련이 가져다 준 선물: 근사한 후반전을 준비하다
그녀는 한꺼번에 몰아닥친 불운의 한가운데서도 내일에 대한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멀쩡하던 청년 아들이 시도 때도 없이 쓰러져 차갑고 더러운 길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노라면 차라리 내가 연기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했다.”고 당시의 고통을 말한다. 그렇게 눈앞이 캄캄할 때도 주문처럼 자신을 다독이며 얘기한다. ‘인생길이 어떻게 오르막만 있겠어? 평지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계곡도 건너야지. 지금 넘어졌다고 죽지 않아.’ 아픈 시간을 버텨낸 그녀의 마법이었다.
저자는 ‘공황장애를 이기는 법’이라는 주제로 언젠가 책을 써보고 싶다고 한다. 자기 아이와 비슷한 일로 인생이 갑자기 힘들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련은 모습을 달리한 축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까지 유리 깨진 바닥을 맨발로 걸어가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 그 고난이 자신의 삶속에 해석되면 그것이 바로 축복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시련의 세월들을 그녀는 이렇게 배웅한다. 그리고 그 시련이 결국 인생의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는 깨달음에 엎드려 감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희망의 멘토 [유세미의 인생수업]
이제 맞이하는 후반전은 좀 더 여유 있고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고 싶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래서 인생 후반전에 [은퇴 설계 코치]라는 역할을 하나 더 추가했다. 전반전을 잘 뛰고 있는지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전반전을 마구잡이로 뛰어 채이고 상처 난 사람이 적임자 아닐까? 가슴 찢어지는 하프타임을 겪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몸 풀기를 가르친다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그녀는 자신한다.
카페와 블로그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유세미의 인생수업]은 그래서 문을 열면서부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젊은 직장인, 수많은 슈퍼맘, 은퇴자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어떤 인생을 살든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결국에는 해피엔딩이라는 주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도, 눈앞에 거대한 벽 때문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결국 길은 찾게 되고, 문은 열릴 거라는 믿음이 오늘도 나의 등을 떠민다.”

[미리 보기]
프롤로그: 처음부터 심각할 필요는 없다

힘을 빼야 물에 뜬다. 그래야 힘들지 않다. 빨리 가겠다는 생각도, 멋지게 보여야 한다는 욕심도 없이 그저 한 단계씩 차근차근 가다 보면 언젠가는 돌고래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수영을 시작했다.
나이 마흔아홉에 운동을 배우는 건 난생 처음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운동이 너무 싫다. 대체 왜 공을 따라다니며 헉헉대며 뛰는 걸까? 왜 죽을 것 같은 고통이라고 하소연하며 두 시간을 넘게 악착같이 달리냐는 말이다. 가장 압권은 헬스클럽에서 무거운 걸 들었다 놨다 하든지 제자리에서 한 시간 넘게 뛰는 것이다. 경악할만한 이질감이다.
그런 내가 수영을 시작한 것은 세월에 따라 몸이 급격히 약해지는 현상을 뼛속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진짜 뼈가 아프다. 무릎 뼈가. 지인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나이 때문이란다. 뒷말은 다들 똑같다. 그러기에 진즉 운동을 하라니까. 그게 다 몸에 대한 보험이고 투자이며...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데, 듣기 싫은 잔소리를 내가 뭐 크게 잘못한 양 매번 듣자니 이 또한 고역이다.
그래서 영양제나 보약을 먹는 것보다 딱 오만 배라는 운동의 효과를 믿어보기로 한다. 등 떠밀리듯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일 강습반이다. 일단 시작하면 제대로 하든지 안하든지 둘 중 하나라는 객기를 여기서조차 부렸다. 매일 하지 뭐. 뜸벙뜸벙 하면 그게 운동이 되나? 할 수 있을 때 바짝 해야... 후회 하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대충 할 걸, 남자들이 군대 가면 이런 기분일까. 수영장물도 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생초보인 나는 음파음파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엔 물에 뜨기. 사람이 물에 뜬다는 걸 내 몸으로 증명해 보다니. 놀랍군.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은 킥보드를 의지해 어쨌든 발차기로 레인 저쪽까지 갔다 와야 하는 일이다. 수없이 물을 먹고 머리를 더 집어넣어라 어깨를 내리라는 강사의 지적에 거의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 혼자 지옥훈련이라 이름 지은 수영이 점차 호기심과 친밀감까지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수영을 배우는 과정이 살아가는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최근 깨닫는다. 고급반에서 거의 선수 아닐까 싶게 수영을 하는 그들은 참 근사하다. 나는 초급반이니 저기까지 가기에는 대체 얼마가 걸릴지....그러나 쉬지 않는다면 반드시 저 레인에서 저런 폼으로 수영을 할 수 있겠지. 지금이야 물에 떠 있는 건지 앞으로 나가는 건지 구분조차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이 과정을 생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처음에는 온몸이 아팠다. 물에 잘 뜨지도 않고 특히 발이 자꾸 가라앉는다. 온몸에 힘을 줘서 그렇단다. 일부러 힘주는 게 아닌데, 분명히 힘을 뺐다고 생각했는데도 그게 생각뿐이지, 사실 힘을 바짝 주고 있으니 몸은 몸대로 아프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절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뭘 잘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너무 힘들어 물에 그냥 떠 있었더니 오히려 더 쉽게 앞으로 나아간다. 별로 힘들지도 않다. 이거네!

20년 넘는 직장생활을 온몸에 힘을 꽉 준 채 해냈던 건 아닌가 싶다. 뭐든지 참 잘하고 싶었다. 남들보다 속도를 냈다. 그게 나다운 거라 생각했다. 두 군데 기업에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여성 최초’ 아니면 최소한 ‘여성으로는 아주 드문’이라는 타이틀이라도 붙여야 직성이 풀렸다. 첫 아이를 낳을 때, 근무 중 산통이 시작되는 기색을 느끼고 일일이 팀원들을 불러 업무 인수인계 내용을 다시 확인한 후 병원에 가서 애기를 낳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 스스로 왜 그렇게까지 무례했을까 싶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아주 당연하고 잘하는 일이라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매사에 그렇게 살았다. 아주 잘 산다고 확신하며.
수영으로 따지자면 나는 초급 과정에 있으면서 중급으로 어떻게 최대한 빨리 가느냐에 안달복달하며 지냈다. 어떻게 과정을 효과적으로 생략하며 줄여볼까 하는데 골몰했다. 이제 막 물에 뜨면서 돌고래처럼 물살을 가르는 다른 이들을 보며 부러웠다. 처음에는 물도 먹고, 가라앉을까 힘주다 몸살도 걸리고, 힘들면 잠시 서서 쉬기도 해야 하는 걸 모르는 채 지냈다.
그 덕분이었을까. 남들보다 비교적 빨리 효과적으로 성공하고 기업의 임원이 되었다. 질주하던 존재는 사고가 나면 대형이다. 과정을 너무 생략하고 힘을 빼지 않은 까닭이다. 어느 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나에게 떨어졌다. 사랑하는 아들이 아프면서 나의 인생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자진한 일은 아니었으나 인생의 하프타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력으로 달리던 그 길에서 비켜섰다. 콩나물 꼬리 하나 다듬어 보지 않았던 내가 어설픈 전업주부 흉내를 내며 된장찌개를 끓이고, 아이가 깜박 잊고 놔두고 간 체육복을 들고 뛰고, 음식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줄이기에 골몰했다. 20년 동안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을 돌보고, 아들의 치유를 온몸으로 기도하며, 또한 그동안 채찍질만 했던 나 자신을 사랑하기에 꼬박 500일을 보냈다.
평소에는 무심히 스친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고 작은 인연들에 귀함을 느끼고 인생에 대해 하나씩 깨달아가는 건 이제야 나라는 존재의 힘을 빼고 자연스러워졌기 때문 아닐까. 급브레이크를 걸어 준 나의 아이가 완전히 치유된 지금, 나는 인생이 너무 아름답다고 외치고 싶다. 그리고 이제 내 인생의 2막을 다시 시작한다.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내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나의 치열한 직장생활과 슈퍼맘을 자처한 세월들을 사람들에게 얘기하며 이렇게 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기도 어정쩡했다. 그러나 그런 쓸데없는 걱정도 안하기로 한다. 그저 그 젊은 날은 그대로 열심히 살았고, 예기치 않았던 인생의 폭풍 앞에서는 울며불며 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