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늙은 시인의 사부곡 - 불교문예시인선 59

어느 늙은 시인의 사부곡 - 불교문예시인선 59

$11.00
Description
임상갑 시인의 시집 『어느 늙은 시인의 사부곡』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풍등』 『감포에는 촛불 하나 밝히셨는가』에 이어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고 “병동 침대 위에 햇빛이 한 줌 엎질러져 있다”(「상속」)고 희망 한 줌을 애써 발견한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을 끌고 달리던 아버지는 멈추게 된다. “큰 딸의 양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누워/ 댓잎 같은 소리로 숨을 고른다/ 큰아들은 옆에서 잔잔하게 기타를 연주하며/ 가시는 길 무섭지 마시라며 운다(「어느 늙은 시인이 사부곡」).
누구나 보내는 사람이 어느 날 가는 사람, 멈추는 사람이 되어 삶이 상속되기 마련이다. 이런 삶의 굴레 속에서 시인은 ”죽음과 함께 걸어가는/ 긴 꿈에서 깨어나 허공 되는 날/ 실체가 없고 아무것도 아닌,/ 상상으로도 표상되지 않는,/ 그것을/ 나는 신이라 부르겠네(「허공 되는 날」)“라고 말한다.
임상갑 시집은 전체적으로 삶의 진솔한 면면들을 살펴볼 수 있고,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까지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저자

임상갑

저자:임상갑
충남공주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국어국문학과졸업
2016년《불교문예》등단
시집『풍등』『감포에는촛불하나밝히셨는가』
강화검도관장

목차


시인의말

1부
배추벌레의서사
거미줄
대놓고말은못하겠고
이해불가
슬픈것들아!
새벽닭이울면
종을알수없는생물에게
하늘이없다
바람불고비오고해나고
갈곳없는영혼
자벌레
종놈
그분이거할곳은
살아보니

2부
구안와사1
구안와사2
구안와사3
산지기그녀
새벽손님
신비
잃어버린기억과시간들
어느늙은시인의사부곡
소멸
몰락
푸석거리는보리밥처럼
상속
그집에는귀신이산다
묵은언어와행위들
달이빛난다별이반짝인다
2023년그여름

3부
어느슬픈별이야기
북극성저너머새로운집을찾아
구름도사고바람도사고향기도사고
기억
달떠오르면
허공되는날
늙었다는것
비구니스님의연정
못자리
농사
무게
가뭄
무지랭이의부황뜬하루
그냥저냥살걸그랬어

4부
小路네집
벚꽃핀봄밤
생명
머리와가슴이나누는대화
도깨비바늘의편지
구절초
가을바다
어리연
여뀌
속노란고구마
존재
책값

개복숭아
시가오지않는날은

작품론
하늘이없는시대하늘보기|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추천사

임상갑시인의시는직설적이다.현란한수식어로아름다움을과장하거나,중층의비유나이미지로복잡한사유를가장하지않는다.그러면서도그의시는쉽게도달할수없는사유의경지를보여준다.어찌보면조금투박해보이는그의언어가가진힘이그것을가능하게하고있다.그힘은삶의진정성에서온다.삶의현장이그의언어가되고시가된다.그렇다고임상갑시인의언어가이런삶의현장을그대로옮기는것에그치고있지는않다.그보다는그현장에없는‘하늘’을꿈꾸는곳에서시인의언어가만들어진다.하늘이없는곳에서하늘을생각하고,하늘이아닌곳에서하늘을바라본다.그래서암울한현실을허공으로만들고절망을허무로승화한다.바로이허무의경지가시인의희망이고또한그의시그자체이다.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책속에서

<배추벌레의서사>

자잘한새소리에도
급하게물렁뼈를껴안으며
처마끝에잘못매달린달처럼위태롭다
애벌레가배춧잎의파란피를빨며
잎사귀에구불구불서사를써내려가는것은
나비가되는꿈을우물거리며
기껏하늘을나는자유를얻고싶어서였다

알몸으로푸른핏줄을팽팽하게당기며
어떤때는막출가한스님처럼
잠못이루며뒤척인때도있었다
으리으리한것따르며살아야만했던서사들을
굵어지고굽어버린손마디는알고있을까
붉은피를씹던젊음은가고
휑하니허물어진헛간처럼왕따당한듯
뒷켠에서꾸벅꾸벅졸며
늑골속삐걱거리는뼈울음소리듣는다

<어느늙은시인의사부곡>

그긴시간을끌고달리던당신이멈췄다
큰딸의양뺨을두손으로감싸안고누워
댓잎같은소리로숨을고른다
큰아들은옆에서잔잔하게기타를연주하며
가시는길무섭지마시라며운다

영혼은몸을떠난지이미오래
몸속의마지막찌꺼기마저모두버린당신은
90년긴세월의여정을끝냈다

다음생은입열리고귀열리셔서
세상의아름다운소리원없이들으시고
하고싶은이야기다하시고답답해하지마소서
소망합니다
꼭다시뵙기를소망합니다
그때는그동안하지못했던많은이야기들을
몇날며칠밤새우며이야기할수있기를소망합니다
귀하고귀하신나의아버지
부디가시는길편안하소서
아버지
사랑합니다

<허공되는날>

나에게아무런감각도주지않는
공간과시간의연속은결국
꿈속으로빨려들어간
하루의끝이었다네

죽음과함께걸어가는
긴꿈에서깨어나허공되는날
실체가없고아무것도아닌,
상상으로도표상되지않는,
그것을
나는신이라부르겠네

나도신이되겠네

<여뀌>

짓이겨물에풀면물고기도기절하고
맛이매워귀신을쫓는다고역귀라고불렸다지요
잡초라고무시해도꿋꿋하게뿌리박고
예쁜꽃피웁니다
어둡고추웠던지난밤모진비바람에
다리아래개울가여뀌들이지쳐누워있습니다
비개인아침이오면
안개사이로쏟아지는햇살을맞을겁니다
그리고또씩씩하게일어납니다

삶이거칠다고항거하지않았습니다
오염된물묵묵히정화하며살았습니다
밟고짓이기지만않으면독을풀지않습니다
삶을방해한어둡고무서웠던지난밤들을
어떻게든참고견디면
여뀌는참예쁜분홍꽃피울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