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넘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넘치지 않았다

$12.70
Description
김수원 시집 『나는 아직 넘치지 않았다』의 시들은 목소리 높여 무엇을 주장하거나 시인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여백이 많은 여유로운 정서와 비교적 느린 호흡을 통해 독자를 편안하게 언어의 숲으로 이끈다. 김수원의 시는 일상의 사물과 잊힌 장면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 안에 깃든 슬픔과 소망, 생명과 공존의 가치를 감각적으로 구체화한다. 이 시집은 ‘그림자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는 일’을 통해, 우리 각자가 자신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조용한 회복의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회복은 필기체처럼 흔들리고, 나뭇잎처럼 아득히 울린다. “새벽의 숲은 숨을 죽이지/ 아침이 오고 꽃이 아이처럼 아장아장 일어날 때/ 숲은 무엇으로 가득해질까// 숲에 비가 내리면(「숲의 하루」 부분)” 시를 쓰는 것은 이렇듯 언어의 숲을 가꾸는 일이다. 그 언어의 숲에 꽃을 피우고 아이처럼 아장아장 걸어오는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김수원 시인은 오늘도 숲에 내릴 언어의 비를 기다리고 있다.
-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저자

김수원

저자:김수원
강원도영월출생
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문예창작학과전문가과정수료
2017년《불교문예》로시등단
2019년《한국시조문학》으로시조등단
시집『바람의순례』『나는아직넘치지않았다』외동인지다수
참여문학상,계간문예상상탐구작가상,
서로다독작가상,숲속의시인상장원수상
국제펜한국본부회원,한국문인협회복지위원,
산림문학편집위원,불교문예작가회부회장,
서로다독부회장,계간문예이사,인천시인협회회원,
시산맥정회원,내항문학회원,중앙대학교문인회회원,
여성시조협회회원,인천시조협회회원
oh679566@hanmail,net

목차

시인의말

1부
로키산맥
빛의사격
봄밤
칼을위하여
그림자가바람에펄럭입니다
컵의깊이
실크처럼
바람의지도
시계소리
볼록거울속의시
낯선도로에서
동백이라했다
과수원옆에는
콩이후의이름
봄밤은

2부
편지의계절
녹는꿈
가로등
그늘
회색문
홍수주의보
비밀의방
비가내리는날엔
저녁의숲은
자다르바다
여름에쓴책
캥거루포켓에는
나는아직도
몸짓들
숲의하루
여름편지
돌의마음

3부
백야
까보다로까
청색시대
사이프러스나무
숲이생겼다
덩어리숲
수상한나라
다음생에만나요
빵을만드는일
막차
유혹
당신떠나고,비
일몰후기
어둠속에서
살아야할수있는것

4부
바람이지나가며
거미의일기
빈집냄새
아버지의가계부
사거리의저녁
휘두르는저녁
데칼코마니
비가온다,비가悲歌
적막이된집
빗방울
두개의계절
엄마와크레파스
엄마의잠
진다
잘가
흔드는손

작품론
존재의어두운그림자와재생의공간으로서의숲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금강경』에서‘일체유위법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如夢幻泡影’라하여인위적으로만들어진모든것이꿈이요,환상이요,물거품이요,그림자라하고,특히아상我相을버리라고했다.이는곧라캉의이론과도상통하는데,그는‘자아라는것은없다.자아란환상이고주체는금이가고분열되어있기때문에우리는누구나분열된주체,환상적자아를지니고살아갈수밖에없다’고말한다.시를‘기표적형성물’로규정하고심리적인증상과환상의종합인시를쓴다는것은이성,지식,이데올로기를억압하고잉여향락에빠짐으로써자아를해방하고자하는행위로간주하는이승훈은‘증상을즐기라’라고하였다.김수원의시는삶의현실에서억압되거나부정된욕구들을시적상상을통해표현함으로써자아해방의길을탐구하고있다.동시에인간의숙명적한계와존재의실상을자각하고그현실을견디면서조금씩앞으로나아가려는노력을보여준다.이를통해독자들에게도시라는미적형식이주는쾌감과더불어동시대를살아가는사람들의보편적고뇌를대신표현해줌으로써공감과성찰을불러일으킨다.
―고명수(시인,문학평론가)

책속에서

<그림자가바람에펄럭입니다>

나는상자예요.누군가다녀간흔적도있는.그러나다녀간사람의그림자는보이지않아요.상자도그림자는가두지못하니까요.밤이되면그림자는투명해지니까요.어떤사람은버려진것도그림자였다고수군거리더군요.상자에는그림자도많아요.고양이그림자도있고애인에게받은꽃그림자도있고아기그림자도있어요.그림자는그림자이니그냥봄밤에펄럭이는기저귀라고할까요.하지만내가말했죠.상자도그림자는가두지못해요.나는상자예요.이어지지못한벽이에요.어둠이내게얼굴을파묻으면나는서늘하고어두워지죠.출구가보이지않죠.내몸을만지면날카로운바닥이느껴질거예요.육면이모두바닥이니까요.상자에게도엄마가있을까요?아기그림자가나를다녀갔으니내가엄마일까요?봄밤에펄럭이던아기그림자는어디로가고있을까요?그림자를버리고가는그림자들을보았어요.

<낯선도로에서>

당신이신기루처럼희미해질때있어요
먼곳에서깃발을흔들며
앞장설때도있지만
신기루처럼
당신은흩어지고
나는깃발을스쳐가고말아요
신기루니까요
뜬구름을잡는걸까요
일생에잡아본것은빈주먹뿐이었는데요
당신은가끔대기권밖을떠돌다가돌아온사람같아요
유영하는그림자였던것도같고
낯선도로에서
장승처럼서있기도하고
그런당신의표지를따라왔어요
당신이깃발처럼펄럭일때있거든요
닿지않는거리는틈일까요
다가가는만큼멀어지는교차로,
희미해지는거리끝에서
신호등처럼입술이붉게켜지고있나요
내가가면왜따라오나요
건물도나무들도구름도
긴신호가되는나를따라왔어요
나는당신을따라왔고요
깃발을흔드네요
그림자처럼

<나는아직도>

컵에손가락이찔렸다

분명허공이었는데
공중을날아가다유리벽에충돌했다
그것은너무투명해서눈이부셨다

그러니까내손가락은유리에부딪힌새

뼛속에구멍이있어가볍게날아가는새처럼
온몸에숭숭구멍투성이인나는몸이허공이었다
언제나힘을다해날아올랐다

컵을채우려는듯이

넘쳐서흘러나오려는듯이
비행하다벽에부딪혀죽어가는새들이늘었다

어떤날은컵을거꾸로세워땅을딛고섰다

하늘보다땅이나에게더높은세상이되었고
그후로도여러번비상했지만
컵이나의세상이되었고
그작은세상에서벗어나기위해

하루에도몇번씩넘치는나를만나며
컵에수없이손가락이찔렸지만

나는아직도넘치지않았다

<숲이생겼다>

담벼락에흰칠을했다
낙서를지우려페인트로꼼꼼히칠을했다
어느날부터인지금이가더니수많은자작나무를피워냈다
한그루두그루숲을이루었다
나무들이낙서속에서나와가지를키웠다
아침에는아침햇살로씻고
저녁에는노을빛으로세수를했다
담벼락의나무를보려고동네사람들이몰려
그림자가우르르몰렸다
나무들이자란후없던것이생기고
생긴것위에이야기가생기고이야기위에나무가더자라서
나무들의장터가생겼다
숲이생겼다
숲에아이들의소문이숨어있다
아이들이더몰려들어담벼락에낙서를했고
숲이더무성해졌고
어른들이와서담벼락에흰칠을한다
모든것은생겨나고또한사라졌다
장터처럼
숲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