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 (무각 스님이 일러 주는 일상에서의 수행)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 (무각 스님이 일러 주는 일상에서의 수행)

$13.08
Description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이 내 삶을 결정한다.
일상 속에서의 수행이 가장 빠른 마음공부의 길이다.
어렵게만 여기던 참선 수행법을 일상의 언어로 쉽게 깨우쳐주는 참선 입문서

지은이 무각 스님은 일찍부터 재가 불자나 일반인들의 마음공부, 곧, 참선 수행에 깊은 관심을 가져오던 터, 17년 전 재가 불자들을 위한 참선 수행 도량인 “공생선원”(서울 도봉구)을 열어, 일반인들에게 경전 공부와 더불어 참선 수행법을 가르치는 한편, 최근에는 간화선을 중심으로 한 선불교대학을 개설해 운영해 오고 있다.

이 책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는 바로 그 공생선원에서 무각 스님이 “일상 속에서의 수행”이라는 제목으로 여섯 달 동안 법문한 내용을 정리하여 엮은 책이다. 처음 불교에 입문하여 참선 공부를 하는 초심자들을 위해서 불교가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선禪이 무엇이고 왜 참선을 해야 하는지 등을 일러 주어 공부의 기틀을 잡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러고 공부를 함에 있어 이론적인 알음알이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집중하여 몰입해 들어감으로써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일상 속에서의 선 수행”을 설파하는 책답게, 마음공부의 길로 들어서는 방법을 일러 주되, 생활 속의 관계와 상황을 비유로 들면서 쉬운 일상의 언어로 찬찬히 들려주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다. 법문을 정리한 것이어서 글이 더러 논리의 비약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있기보다는 오히려 생동감이 느껴지는데다 입말의 맛을 살려 읽는 재미가 있다.

절에 다니며 아무리 법문을 듣고 불교 서적을 읽고 해도 알 듯 모를 듯 어렵기만 하던 불교가 아니던가. 또한 가 닿기엔 한없이 멀어 보이기만 하던 선 수행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 책은, “진리는 ‘지금, 여기’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한편, 불교의 핵심과 참선 수행의 요체를 소박하고 소탈한 일상 언어로 일러줌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일상생활에서 참선 수행의 길을 손쉽게 찾아갈 수 있게 안내한다.

“고상하게, 고준하게만 접하니까 부처님은 저 위에 거룩하게 있고 나는 저 아래에 동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어려운 게 아닙니다. 우리 삶입니다. 불교는 진리를 이야기하고, 진리는 지금 우리 삶 속에 있습니다.” (32쪽)
저자

무각

무각스님은 승가사 상륜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무문관 등 제방선원에서 안거를 성만하였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에서 상담심리 박사를 수료하고, 동 대학원 선학과에서 환성지안선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득하였다. 동국대학교와 제방선원 등에서 ‘종횡무진 화엄경 강설과 선치료 법회’를 개설하였으며 BBS불교방송에서 ‘선어록 강설’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 속리산 청운사 여여선원장으로 정진하고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
읽기에 앞서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이에게

1장 불교란 무엇인가
2장 나는 누구인가
3장 무아, 연기, 중도
4장 참선
5장 반조와 간화
6장 일상에서의 수행

덧붙여 기도, 천도재, 극락, 업식, 하심

출판사 서평

지금껏 참선에 관한 책들은 많이 나왔지만 고담준론으로 일관한 것이 대부분일 뿐 첫 발걸음을 떼는 일반인들을 위해 기본을 일러 주는 책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많은 불자들이 선禪에 관심은 많지만 어렵다는 생각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는 일상생활이 그대로 참선 수행의 재료가 되고 길이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일러준다. 곧, 굳이 산중 사찰이나 선원에 가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선 수행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음을 깨우쳐준다.

참선이라고 하면 “관觀하고 화두를 들고 집중하여 용맹정진으로 뚫고 들어가라”는 따위의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기 위한 전 단계로 “마음의 쉼, 곧,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책은 드문데, 무각 스님은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마음을 믿고 마음에 맡기는” 것이 중요함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쉬게 하고, 그 마음에 맡기면서 생활 속에서의 간절함으로 깊이 몰입하는 것이 참선을 잘할 수 있는 과정임을 일깨워준다. 그러다 보면 생활하는 중에 부닥치는 일상의 난관들도 저절로 잘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며, “행복하게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모두 마음 쓰기에 달려 있고,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이 자기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생활을 떠나서 불교가 존재할 수 없으니,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아야 합니다. 삶을 떠나서 진리가 따로 존재할 수 없으니 우리의 삶 그대로가 불교의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대로 진리의 표현임을 깨달아 가야 합니다. 내가 불 하나 켜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모두 밝게 삽니다.” (32쪽)

“도라는 것은 지금 삶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삶 속에서 닦아야 합니다.” (67쪽)

“마음을 관觀하는 것은 마음이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자각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 작용, 일체의 경계, 순경계, 역경계, 생각 생각을 또 다른 마음이 놓치지 않고 주시해 보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생각을 지켜보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곧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실히 알고 마음이 어떻게 나가고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147쪽)

한편, 참선을 하는 데에서 수행 일변도로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을 경계하며, 재가 불자나 출가자 할 것 없이 일상의 삶이 수행의 근본임을 늘 되새기라고 한다. 옛 선사들이 그러했듯이, 늘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수행을 점검하는 “스스로 마음을 믿고 맡기는” 마음 쉼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참 나”를 알아야 불교를 제대로 알고 참선도 주저함 없이 올바르게 할 수 있다. 무각 스님은 “선禪은 내가 부처임을 알고 부처로 사는 것”으로, 오래 전에 임제 스님이 가장 수승한 수행이라고 역설하였듯이, “바른 안목(眞正見解)”을 갖추어야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바른 안목”은 자기 자신의 안목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자기라는 틀을 벗어버려야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고 그래야 부처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중생이 이미 제도되어 있는 완전무결한 부처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37쪽)

“정견은 내가 누구인가 아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본래 부처입니다. 나타나는 현상이 연기이고 실체가 없고 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내가 본래 진리임을 자각하는 것이 바른 안목, 정견正見입니다. 정견은 자기 마음 가운데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갖춰져 있는 바른 안목에 의지하면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살고 생각도 바르게 돌아갑니다.”(83쪽)

무각 스님이 이 책을 펴내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재가 불자들에게 올바르고도 손쉬운 참선 공부의 길을 안내하기 위함이다. 그런 한편, 이 책이 전법傳法의 최일선에 선 포교사들이 불교를 제대로 알아 선을 이론이 아닌 체험으로 익힘으로써 바른 안목으로 포교할 수 있는 지침서로도 활용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그것은 조계종 포교원에서 포교부장 소임을 맡았을 때 포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는 모두 6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앞뒤로 “읽기에 앞서”와 “덧붙여”라는 글을 곁들였다. “읽기에 앞서”는 참선 공부를 처음 하는 이들을 위한 당부의 글이다. 1장은 불교가 무엇인지, 2장은 나는 누구인지, 3장은 무아, 연기 중도를 4장은 참선, 5장은 반조와 간화, 6장은 일상에서의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밝히고 있다. “덧붙여”에서는 불자들이 일반적으로 궁금해하는 기도, 천도재, 극락, 업식, 하심 등에 관해서 선禪의 견지에서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교敎는 모든 존재와 소통하는 것입니다.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마음이 쉬어져야 합니다. 나라는 고정관념을 놓아 버리고 온갖 작용을 쉬게 하면 내 마음이 깨끗한 거울과 같아져 만상이 오는 대로 밝게 비추어서 소통하는 것입니다. - 28, 29쪽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랑, 완전한 행복, 완전한 자유를 바랍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해탈과 열반이라고 합니다. 해탈은 완전한 자유를 말하고 열반은 완전한 행복, 완전한 상태입니다. 불자뿐 아니라 일체중생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 31쪽

생활을 떠나서 불교가 존재할 수 없으니,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아야 합니다. 삶을 떠나서 진리가 따로 존재할 수 없으니 우리의 삶 그대로가 불교의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대로 진리의 표현임을 깨달아 가야 합니다. 내가 불 하나 켜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모두 밝게 삽니다. - 32쪽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중생이 이미 제도되어 있는 완전무결한 부처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 37쪽

어떨 때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놈이 진짜 나인가요? 모습 없는 참 모습, 이름 없는 참 이름. 온갖 노릇을 하게 하는 그 자리, 그것이 자기의 본래 면목인 “참 나”의 본체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요? 본래 부처이고 본래 진리이고, 본래 청정한 놈이고,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허공과 같이 이 우주를 감싸고도 남지만 찾아보면 흔적도 없습니다. 나는 부동不動하니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허공과도 같아 없어지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지만, 자기 스스로 동쪽 허공, 서쪽 허공 나눠서 분별할 뿐입니다. 허공 자체는 나뉘지도 않고 분별도 없습니다. 잡을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 45쪽

“참 나”의 성품은 어디에 있는가. 작용하는 곳에 있습니다. 슬프면 슬픈 줄 알고, 기쁘면 기쁜 줄 알고, 좋으면 좋은 줄 알고, 화나면 화난 줄 알고, 그 속에 항상 아는 놈이 바로 성품입니다. 그러나 “참 나”는 중생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수행을 통해 생활 속에서 실현해 내고 진리의 안목을 갖추어야 볼 수 있습니다. - 46쪽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모두 도를 닦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도는 무엇인가? 마음입니다. 마음을 닦아서 뭐하는가? 텅 빈 허공처럼 자유스럽고 행복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함입니다. 그 가운데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직장도 다니고 이런 저런 것을 하는 겁니다. 도인이 되기 위해서, 부처가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66쪽

도라는 것은 지금 삶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삶 속에서 닦아야 합니다. -67쪽

참으로 그 자리를 믿기만 하면 그 힘을 지금 당장 쓸 수 있습니다. 도를 닦아서 나중에 도인이 되어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체험을 하지 않았어도 상관없이 참으로 믿고 진실되게 하면 모든 부처님의 법과 자기의 법이 하나로 적중되어 원만해집니다. -71쪽

믿고 나갈 수만 있다면 진리를 깨닫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턱 믿고 밀고 나가면 여지없이 깨닫게 됩니다.

왜 앞으로 못 나가느냐? 무명 업식 때문에 그렇습니다. 끝없이 너 나,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를 분별합니다. 이 모든 것이 경계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경계가 닥치면 믿고 놓아 버리세요. 거기에서 조금씩 진리의 길로 걸어 들어갑니다.

밖에서 닥치는 모든 순경계, 역경계는 모두 내 마음의 나툼입니다. 이런 이치를 모르면 알음알이 분별망상을 내어서 육식이란 놈이 나를 휘젓고 다니면 끌려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업력이라고 하고, 이것을 지혜로 굴리면 법력이라고 합니다. -74쪽

정견은 내가 누구인가 아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본래 부처입니다. 나타나는 현상이 연기이고 실체가 없고 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내가 본래 진리임을 자각하는 것이 바른 안목, 정견正見입니다. 정견은 자기 마음 가운데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갖춰져 있는 바른 안목에 의지하면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살고 생각도 바르게 돌아갑니다. -83쪽

공부해서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래 내가 없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오온에 의지해 있지만 의지해 있는 것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 나는 본래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그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형체가 없으면서 모든 작용을 다 합니다. 보면 볼 줄 알고, 들으면 들을 줄 알고, 두드리면 바로 응합니다.

우리는 내가 따로 있다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명입니다. 나라는 것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