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나눔’의건축가이일훈의
건축너머이야기
불편함을받아들이고,자연을거스르지않으며이웃과삶을나누던‘채나눔’의건축가이일훈의유고집이발간되었다.그가우리건축에남긴커다란발자취만큼이나,평생정갈하게벼려온그의글또한오래도록기억되길바라는마음으로그의5주기에맞춰유족과동지들의뜻을모아빚어낸《보다듣다묻다》이다.
《보다듣다묻다》는고인을향한단순한감상적추모를넘어,그동안‘건축가이일훈’의그늘에가려져있던‘문장가이일훈’의인문학적깊이와사유의궤적을조명하는유고집이다.생전발표되지못하고잠들어있던고인의단상과시,일기등을모아선생의정신적유산을고스란히담아냈다.
“나는건축아닌얘기하(듣)고싶은데‘다건축’이라니.
건축아닌이야기언제한번해(들어)보나.”
그가남긴이다정한푸념은역설적으로그의삶이건축과얼마나단단히밀착되어있었는지를보여준다.그에게건축은세상을바라보는눈이자살아가는방식이었다.마찬가지로,그의문장들역시또하나의건축이었다.
그는다진땅위에벽돌을쌓듯노트와메모지위에문장을쌓아올렸다.그렇기에그가진정으로하고싶었던이야기는‘건축아닌이야기’가아니라,건축에발을딛고서서,건축의시선으로바라본‘건축너머이야기’였을것이다.
이‘건축너머’에서마주하는이야기들은“글맛과입담좋기로유명하여건축계안팎에서자주강연자로초대되었던”문장가이일훈의진면목을보여준다.건축에자신이바라는삶을담아낸것처럼,자신이바라는세상,자신이원하는자신을그렸던평소의기분과생각,질문이가감없이유쾌하게,때로는먹먹하게드러나있기때문이다.
그에게글쓰기란“저는선생님을수행자로보는측면이있습니다.”라는오랜벗의말처럼세상을향한정직한고백이자,자신을투명하게정돈하는일종의수행(修行)이었을지도모른다.말과삶,글과건축이다만어긋나지않기를바랐던바로그가다듬음이《보다듣다묻다》에오롯이숨쉬고있다.
늘보고,듣고,묻던사람
건축을대할때만큼글쓰기에도지극한애정을품었던까닭일까.그는자신의글들을차분히그리고정갈하게정리해두었다.그중유독눈길을끄는것은‘보다’,‘듣다’,‘묻다’라는이름으로남겨진글들이다.“평소에자신의짧은글들을‘산문시’라부르며,시로글짓는의미와재미를말했”다던이글들에는그가오래도록추구했던세상을인식하고타인을대하는성찰의태도가고스란히녹아있다.
눈앞의현상과소외된이들을편견없이‘보고’,그이면의맥락과타인의역사를깊이‘듣고’,그것들을온전히이해하고삶과사회를향해‘묻는’행위.그에게이세가지행위는단순한개별의육체활동이아니라,한인간으로서세상을대하는일련의과정이자마땅한예의였다.
“선생님은법적,계약의유무를넘어선어떤세상을그리고있었을까요?건축설계분야의거래관행이기질적으로맞지않았을까요?선생님께서꿈꾸는건축설계분야의상도의는어떤형태일까요?”
_〈늘보고듣고묻던수행자〉중에서,양운기수사
“한동안이땅에서건축가이일훈과같은동류,동급의인물을다시만날수있을거란기대는하지말자.그만큼공치(이일훈)형은특별한존재였다.그래서나는형이입을통해,글을통해,그림을통해,사진을통해,건축을통해,던졌던수많은해제와해법들을더는듣고보지못한다는것이너무나아쉽고,안타깝다.”
_〈답을주는건축가〉중에서,전진삼격월간〈와이드AR〉발행인
이처럼그가떠난뒤에도사람들에게깊이각인되어있는‘봄’,‘들음’,‘물음’은끊임없이자신을연마했던그의일생을보여주는가장투명한궤적이다.
이일훈은자신이지은건축물처럼주변과조화를이루는삶을살아낸사람이다.이책에실린글들역시화려한꾸밈대신,자신의삶을담백하게눌러담은문장들로가득하다.이처럼마지막까지단정했던그의뒷모습을닮은《보다듣다묻다》는고인을추억하는모든이에게가장‘이일훈다운’인사를건넨다.
떠난이의흔적을묶은유고집을들여다보는일은,정리가아닌치열한질문의과정이다.‘더는그에게새로운가르침을얻을수없다’는막막한슬픔을마주하는순간,역설적으로고인이남긴문장들이또다른배움의길을열어주기때문이다.이책도그러하다.남겨진문장들사이를거닐며,그가평생지켜온삶의태도를보고,듣고,묻는여정으로나아가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