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몸에 갇히다 (중증 길랑바레 탈출기)

어느 날 내 몸에 갇히다 (중증 길랑바레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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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몸은 멈췄다. 의식은 뚜렷했다. 그것이 황혼기에 느닷없이 만난 길랑바레 증후군이었다. 10만 명당 1명꼴의 확률이었다.

처음에는 장염이 오래가는 줄 알았다. 속이 메슥거리고 기운이 빠졌다. 몸이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체했나 보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몸 안에서는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감염 뒤에 생긴 면역 반응이 어느 순간 방향을 잃고 내 말초 신경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훗날 알게 된 진단명은 길랑바레 증후군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 생소한 병은 내 삶을 한순간에 멈춰 세웠다. 발끝과 손끝에서 시작된 이상 감각이 전신으로 번지며 힘을 앗아갔다. 어느 순간 호흡근까지 마비되었다. 순식간에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 넘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움직이려는 의지도 몸에 닿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듣고 있었고 살아 있었다.

발병 전의 이상 신호, 응급실을 전전하던 숨 막히는 시간, 중환자실의 낮과 밤, 기관 절개와 석션, 콧줄 식사, 가족 간호, 재활 병동에서 손가락을 다시 움직이고 걷기까지의 과정이 꿈처럼 이어졌다. 퇴원 뒤에도 저림과 통증, 수면 장애의 여진이 남았다. 촛농이 입혀진 듯한 얼굴 감각과 먹먹한 청력, 일상에서 계속된 재활의 과정까지 고난의 길이었다.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이 병을 온몸으로 통과했다. 그래서 환자의 몸으로 겪어야 알 수 있는 것, 보호자가 곁에서 살펴야 할 것, 의료진의 설명만으로 채우기 어려운 고통과 두려움과 회복의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길랑바레는 드문 병이다. 하지만 퇴원한 뒤 만난 환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까이에 있었다. 누군가는 장염 뒤에, 누군가는 감기나 코로나19 감염 뒤에 이 병을 만났다. 또 누군가는 뚜렷한 계기를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마주했다.

시작은 달라도 공통점이 있었다. 몸에서 구멍 난 풍선처럼 힘이 빠지고, 저림이 찾아오며, 어느 순간 걷잡기 어려울 만큼 마비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길랑바레는 빨리 알아차리고 치료를 시작하는 일이 중요하다. 숨쉬는 근육까지 약해지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낯선 저림과 힘 빠짐을 가볍게 넘기지 않기를 바란다. 장염이나 감기 뒤에 다리에 힘이 없고, 손발의 감각이 달라지며, 숨이 짧아진다면 길랑바레를 떠올리기 바란다. 한 사람이라도 제때 병원을 찾고, 한 가족이라도 두려움을 덜 수 있다면 이 기록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회복의 길을 걷고 있다. 매일 조금씩 신경이 제 길을 찾고, 몸이 움직임을 다시 배우며, 마음도 살아나고 있다. 이 수기가 길랑바레를 처음 만나는 누군가에게는 경고등이 되고, 그 긴 시간을 통과하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저자

김선희

목차

시작하는 글 004

1부 삶이 멈춘 그날
이상 신호, 무너지는 몸 008
장염 뒤에 숨어 있던 면역의 착각 012
정상 CT, 정상 MRI, 그러나 무너지는 몸 015

2부 중증의 시간을 견디며
이름 모를 병에서 이름 있는 병으로 024
몸 안에 갇힌 사람 027
덥고, 춥고, 끝없는 낮과 밤 031
말하지 못한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034
숨을 잇는 관, 살아나는 길 037
가족은 나의 두 번째 호흡기였다 039
숨길을 지키고, 존엄을 지키는 일 042
숫자가 흔들릴 때, 생명을 살피는 눈 048
소통의 길이 열리다 051
침대 위에서 시작된 재활 055
다시 배우는 몸 059
손가락 하나의 기적 065
다시 삼키다 070
다시 숨쉬고, 다시 말하다 074
다시 걷다 080
줄이 하나씩 사라지는 날들 087
집으로 가는 길에도 고비는 있었다 091
꿈에 그리던 퇴원 096

3부 일상 재활의 시작
집에 왔지만, 회복은 계속된다 104
잘 먹고, 잘 쉬는 것도 재활이다 107
밤이 무서웠던 날들 116
마음을 지키는 것도 재활이다 120
나는 누군가의 꿈이었다 125
걷는 일이 내 일이 되다 140
손으로 다시 사는 법 144
두피, 얼굴, 귀, 눈, 목도 회복 중이다 148
다시 사람들 속으로 154
나는 아직 회복 중이다 160

4부 더 깊어진 삶
살아 있기만 해도 괜찮다 166
가족이 나를 다시 살게 하다 173
고난은 내 삶의 속도를 바꾸었다 178

마치는 글 182

부록
길랑바레 증후군 Q&A 188
중증 환자와 소통하는 법 199
가족 간호 체크 리스트 208
재활 도구와 일상 재활 219
낯선 길랑바레 용어 쉽게 풀기 225
제도와 현실 준비 236
길랑바레 환자의 회복을 위한 제도 보완 제안 243

출판사 서평

〈중증 길랑바레 증후군 탈출기〉

『어느 날 내 몸에 갇히다』는 장염 뒤에 찾아온 중증 길랑바레 증후군으로 호흡근까지 마비된 한 사람이 죽음의 문턱을 지나 다시 걷고, 먹고, 말하며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온몸으로 기록한 책이다. 병이 시작된 순간부터 중환자실과 재활 병동, 퇴원 뒤에도 계속된 회복 과정과 그 시간을 함께 견딘 가족의 사랑을 진솔하게 담았다.

2024년 10월, 손발의 저림과 다리의 힘 빠짐으로 시작된 이상 증세는 며칠 사이 전신 마비로 번졌다. 여러 병원을 찾아갔지만 CT와 MRI 결과는 정상이었다. 병명조차 모른 채 몸은 계속 무너졌고, 마침내 호흡마저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살려 주세요!”라는 아들의 절박한 외침 끝에 기관 삽관이 이루어졌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뒤에야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인공호흡기와 기관 절개관, 콧줄과 소변줄에 의지한 중환자실의 시간은 혹독했다. 의식은 온전했지만 아프다는 말도, 덥고 춥다는 말도 전할 수 없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저림과 통증, 두려움은 생생했다. 그러나 눈빛을 읽어 주고 처치 과정을 설명해 주는 의료진, 자모판으로 뜻을 찾아 준 자녀들, 밤낮없이 몸을 닦고 손발을 주무른 남편이 곁을 지켰다. 치료가 생명을 살렸다면 가족의 사랑은 살아갈 마음을 붙들었다.

회복은 움직이지 않던 손가락 끝의 작은 떨림으로 찾아왔다. 떨리는 손으로 쓴 한 글자, 콧줄을 빼고 삼킨 미음 한 숟가락, 기관 절개관을 제거한 뒤 나온 첫 목소리, 워커를 붙잡고 내디딘 한 걸음이 모두 기적이었다. 건강할 때는 당연했던 숨쉬기와 먹기, 말하기와 걷기의 소중함을 몸으로 깨닫는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1부 「삶이 멈춘 그날」에서는 몸이 보내던 초기 신호와 병원을 전전한 시간, 정상으로 나온 CT와 MRI 뒤에서 빠르게 진행된 마비를 되짚는다.

2부 「중증의 시간을 견디며」에서는 전신 마비와 기관 절개, 석션과 콧줄 식사, 가족 간호와 재활의 전 과정을 들려준다.

3부 「일상 재활의 시작」은 퇴원 뒤에도 이어진 저림과 통증, 불면과 피로를 견디며 걷기와 글씨 쓰기, 성경 필사와 집안일을 재활로 삼은 과정을 담았다. 마침내 다시 운전하고 예배당과 카페에 가며 환자의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천천히 돌아온다.

4부 「더 깊어진 삶」에서는 “당신이 내 앞에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남편의 말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는다. 사람의 존엄은 혼자 걷고 일하는 능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며,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사랑이고 희망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한다.

부록에서는 길랑바레 증후군의 원인과 증상, 검사와 치료, 회복 과정을 문답으로 설명한다. 말하지 못하는 중증 환자와 소통하는 법, 가족 간호 체크 리스트, 재활 도구와 일상 재활, 의학 용어, 퇴원·전원·보험·복지 제도의 준비 사항도 담았다. 개인의 투병 기록을 환자와 가족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안내서로 넓힌 것이다.

병상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이 다시 펜을 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길랑바레가 삶의 한 장을 차지했지만 마지막 장까지 대신 쓰게 두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다. 『어느 날 내 몸에 갇히다』는 처음 병명을 듣고 두려워하는 환자와 눈으로만 세상을 붙잡고 있는 중환자, 긴 간병과 재활을 견디는 가족,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잊은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작지만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