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의 가장 어린 여행 작가 (홍경해의 조선통신사 동행기)

나는 조선의 가장 어린 여행 작가 (홍경해의 조선통신사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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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조선의 가장 어린 여행 작가』에는 한양을 시작으로 영천, 부산을 지나 쓰시마, 아이노시마,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 하코네를 지나 에도(도쿄)에 도착하는 여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조선통신사 행렬은 일단 떠나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의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오기 때문에 사계절 옷을 준비해야 한다. 배가 떠나기 좋은 길일을 받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바다의 신에 제사도 지낸다. 행여 폭풍을 만나면 배에 탄 일원 모두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선을 떠나 일본에 도착한 홍경해의 눈에 비친 일본의 풍경은 낯설고 신기하다. “머리를 길게 기른 아주머니들이 이를 검게 칠한 모습”이나 “대여섯 살 난 아이들이 자기 키만큼 큰 칼을 차고 있는 모습”은 당시 일본 서민들의 모습을 그려 보게 한다. 조선통신사에 대한 일본의 예우도 확인할 수 있다. 홍경해는 통신사 행렬에 제공된 음식의 종류와 양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포구마다 금도청에서 수상한 사람들을 붙잡아 조사”했는데 이것은 조선인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홍경해는 여행 작가답게 방문하는 지역의 특징도 상세하게 묘사한다. 아이노시마 섬을 두고 “섬 굽이굽이 푸른 벽이 둘러 있어, 옥으로 만든 소반 같다”는 대목에서는 뛰어난 문학성을, 오사카에서는 “문이나 칸막이에는 금가루를 뿌린 종이에 산수화, 인물화, 꽃 그림 들을 그려서 걸어 두었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옆의 변소까지도 화려했다”는 기록에서는 꼼꼼한 관찰력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통신사와 조선 문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대단한 관심도 확인할 수 있으며 가는 곳마다 일본의 학자나 시인이 조선인과 필담을 나누려고 몰려들었고, 조선통신사 행렬을 기록한 책자 또한 여러 권 출간되어 널리 읽혔다. 홍경해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조선인의 글씨를 얻는 것을 영광과 행운으로 생각하여” 심부름꾼 아이에게까지 글씨를 청했다. 무사가 지배하고 쇼군이 다스리던 일본과 달리, 조선은 유교를 바탕으로 과거 시험을 통해 관리를 뽑았기 때문에 조선 선비들이 유학 교육을 받고 시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홍선주

그린이홍선주는어린시절,동화책속의그림부터확인하며책을읽다가일러스트레이터가되었습니다.어린이책작업을하면서매번새삼스럽게세상을다시배워나가고있습니다.
《콩중이팥중이》,《초정리편지》,《임금님의집,창덕궁》,《시금털털막걸리》를비롯해여러책에그림을그렸습니다.

목차

옮긴이의말-18세기평범한학생의일본여행이야기,한번들어볼래?

들어가며-믿음을주고받는사신,조선통신사

첫째장아버지를따라서일본으로떠나다

*쉬어가는이야기
살인사건까지일으킨인삼의인기
조선통신사여행길은정말힘들어

둘째장일본여행의시작쓰시마섬

*쉬어가는이야기
조선통신사에는어린이도있었어

셋째장신선이사는곳처럼아름다운아이노시마섬

넷째장드디어육지로,시모노세키

다섯째장화려하고번화한오사카

여섯째장천황이사는교토
*쉬어가는이야기
교토에있는귀무덤

일곱째장아름다운비와호수,그리고후지산
*쉬어가는이야기
통신사는한류스타

여덟째장에도성에들어가국서를전달하다
*쉬어가는이야기
책을사랑한일본인들
돌아오는길글씨를남기다

나가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조선청년의기행문을통해경험하는조선통신사행렬

《나는조선의가장어린여행작가》는스물네살홍경해가쓴기행문《수사일록》을현대어로풀어쓴작품입니다.홍경해는아버지홍계희가조선통신사정사로임명되면서‘자제군관’의자격으로일본에방문합니다.조선통신사에는기록을담당하는제술관이있어각행렬의자취를남겼으나홍경해는자신이경험한것을기록하는‘여행작가’가되겠다는당찬포부를가집니다.공적인업무가아니라개인적인경험을자유롭게기록했다는점에서이작품은남다른의미를가집니다.
약4백년전일본을방문한조선청년의솔직한자기기록을통해우리는당시조선과일본의관계,당시일본의모습,조선통신사행렬의특징등을생생하게만날수있습니다.

21세기한류열풍의뿌리를확인하다

전세계적으로‘한류’열풍이불면서우리나라의문화,특히대중음악에대한관심이뜨겁습니다.흥미롭게도조선통신사행렬의자취를들여다보면,특히일본에서가지는한국대중문화에대한관심이하루아침에생겨난것이아니란것을알수있습니다.
조선통신사는통신,즉‘믿음을주고받는’역할을수행한사절단입니다.나라의중요한외교문서인‘국서’를전달하는것이주요업무였지요.그런데조선통신사가일본을방문하면요즘아이돌이나배우가방문했을때처럼사람들이몰려들고,조선인이쓴글씨를받으려고줄을서서기다렸다고합니다.종이가없으면등에다글씨를써달라조르는사람이있을정도였다는군요.특히‘마상재’(말을타고화를쏘는등의재주를선보임)의인기가대단히높았는데,이는현재아이돌공연에대한외국현지의뜨거운반응과크게다르지않다는것을확인할수있습니다.

18세기일본으로떠난특별한여행

《나는조선의가장어린여행작가》에는한양을시작으로영천,부산을지나쓰시마,아이노시마,시모노세키,오사카,교토,하코네를지나에도(도쿄)에도착하는여정이생생하게담겨있습니다.
조선통신사행렬은일단떠나면짧게는6개월,길게는1년의일정으로일본에다녀오기때문에사계절옷을준비해야합니다.배가떠나기좋은길일을받고무사히다녀올수있도록바다의신에제사도지냅니다.행여폭풍을만나면배에탄일원모두가목숨을잃는사고가일어나기때문에신중을기할수밖에없기때문입니다.
조선을떠나일본에도착한홍경해의눈에비친일본의풍경은낯설고신기합니다.“머리를길게기른아주머니들이이를검게칠한모습”이나“대여섯살난아이들이자기키만큼큰칼을차고있는모습”은당시일본서민들의모습을그려보게합니다.
조선통신사에대한일본의예우도확인할수있습니다.홍경해는통신사행렬에제공된음식의종류와양을기록하는것은물론,“포구마다금도청에서수상한사람들을붙잡아조사”했는데이것은조선인들을안전하게지켜주기위해서라고밝힙니다.
홍경해는여행작가답게방문하는지역의특징도상세하게묘사합니다.아이노시마섬을두고“섬굽이굽이푸른벽이둘러있어,옥으로만든소반같다”는대목에서는뛰어난문학성을,오사카에서는“문이나칸막이에는금가루를뿌린종이에산수화,인물화,꽃그림들을그려서걸어두었다.이층으로올라가는사다리옆의변소까지도화려했다”는기록에서는꼼꼼한관찰력을확인할수있습니다.
조선통신사와조선문화에대한일본인들의대단한관심도확인할수있습니다.가는곳마다일본의학자나시인이조선인과필담을나누려고몰려들었고,조선통신사행렬을기록한책자또한여러권출간되어널리읽혔습니다.홍경해에따르면“일본인들은나이를가리지않고조선인의글씨를얻는것을영광과행운으로생각하여”심부름꾼아이에게까지글씨를청했습니다.무사가지배하고쇼군이다스리던일본과달리,조선은유교를바탕으로과거시험을통해관리를뽑았기때문에조선선비들이유학교육을받고시를지을수있었기때문입니다.

일본에남겨진조선청년의자취

조선통신사의일원으로일본에방문한홍경해는일본의누각‘대조루’에손수글씨를남기기도했습니다.조선에돌아온홍경해는과거에급제해여러지방의암행어사로활동하였으나35세의젊은나이로세상을떠납니다.이후아버지홍계희가대역죄에연루되면서홍경해가쓴《수사일록》이나‘대조루’글씨는일본에만남게되었습니다.“가장어린여행작가’가되겠다”던홍경해의당찬포부를생각하면참으로안타까운일입니다.
이런아쉬움을조금이라도덜기위해《나는조선의가장어린여행작가》는홍경해의자취를현재로가져옵니다.당시홍경해의경험을좀더생동감있게나누기위해,조선후기화가이성린이그린<사로승구도>와그림작가홍선주가그린그림을함께담았습니다.이를통해우리는홍경해가보고,듣고,느낀18세기일본의모습을조금더가깝게그려볼수있습니다.